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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엘르>, "성매매를 왜 시작했어?"

[영화리뷰] 여성의 시각에서 풀어낸 통렬한 사회 모순

12.10.13 12:02최종업데이트13.03.22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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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엘르> 포스터 ⓒ (주)와이즈앤와이드엔터테인먼트


유명한 잡지 '엘르'에서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는 안느(줄리엣 바노쉬 분)는 일과 가정 모두 완벽한 균형을 추구하고자하는 전형적인 부르주아다. 그러던 그녀가 기획기사로 성매매에 뛰어든 젊은 여성들과 인터뷰를 하게 되고, 안느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동안 자기 스스로도 몰랐던 욕망을 깨닫게 된다.

폴란드 출신의 촉망받는 여성 감독 마우고자타 슈모프스카의 <엘르>는 철저히 페미니즘적인 시각으로 남성 위주의 자본주의의 폐해를 관조한다. 하지만 <엘르> 속 여성들은 남성들에게 대항하여 맞선다기보다 오히려 그들이 사는 세상에 편입하고자 몸부림친다. 전형적인 중산층의 화초 안에서 살아온 안느는 자신이 가진 지식만 팔면 그만이지만, 돈을 벌기 위해 매춘업에 종사하는 샤를로트(아나이스 드무스티어 분)과 알리샤(조안나 쿠릭 분)에게 성매매는 담배처럼 끊기 어려운 달콤한 유혹이다.

"성매매를 왜 시작했느냐"는 안느의 질문에 샤를로트와 알리샤는 "돈"이라고 답한다. 그들은 돈이 절실했고, 심지어는 돈이 없어 방을 구하지 못했던 설움도 겪었다. 그러나 잠깐의 망설임은 그녀들에게 잠시나마 신분이 상승한 것 같은 쾌락을 안겨준다.

하지만 그녀들은 안느의 남편의 표현에 빌리면 "창녀들"일뿐이다. 호기심으로 성매매에 종사하는 젊은 여성들과 인터뷰를 하기 직전 안느가 그녀들을 보는 시각도 '매한가지'였을 것이다.

아무리 사정이 딱해도 순결을 파는 젊은 여대생들의 심리를 이해할 수 없었던 안느는 그녀들과 함께 지내는 짧은 시간 동안 어느 샌가 샤를로트와 알리샤에게 동질감을 갖게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겉으로는 남부러울 것 없는 완벽한 생활이었지만 무미건조의 기계적인 삶을 이어나가던 안느는 샤를로트와 알리샤의 만남을 통해 다시 웃게 되고, 여성으로서의 생기를 되찾게 된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듯 담담하게 고백하지만 샤를로트와 알리샤의 충격적인 비밀은 그녀들 본인은 물론 남성들의 성적 쾌락을 위해 희생하는 여성들의 비애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들의 눈물과 한숨은 그동안 상류층의 위선에 사로잡혀있어 정작 자신의 솔직한 내면은 들여다볼 틈이 없었던 안느의 숨겨진 욕망을 이끌어낸다. 그리고 안느는 차마 입으로 꺼낼 수 없는 그녀들의 비극에 진심으로 아파하기 시작한다.

일탈을 일삼는 아이들을 걱정된 눈빛으로 바라보던 '어른'은 "왜 그녀들이 그 일을 시작했을까?"라는 질문에서 자신을 향한 물음으로 방향을 바꾼다. 그리고 맨 얼굴의 자신과 마주하게 된 안느는 그 속에서 포르노를 즐겨보는 아들과 남편의 두 얼굴을 확인하고 상처를 받는다. 그렇게 남성이 행사하는 권력의 이중성을 깨달은 안느는 비로소 샤를로트와 알리샤를 진심으로 이해하게 되고, 세 사람은 어느덧 하나가 된다.

여성 각각의 말 못할 아픔을 보듬고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여성이라는 연대의식을 은밀히 강조하는 영화 <엘르>. 돈이면 뭐든지 내놓을 수 있다는 자본주의의 폐해. 그 속에서 악착같이 살아남고자 몸부림치는 여성들의 덤덤한 울림. 그녀들의 아픔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아파하는 한 여자의 고뇌가 가슴 먹먹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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