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서 사라진 '얼짱앵커' 왕종명, 왜 여기서...

[현장] 조합원의 '유배지' MBC 아카데미... "고립된 섬 같다"

등록 2012.10.26 17:51수정 2012.10.26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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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MBC 노조 총파업 소식을 알리는 김완태 아나운서. ⓒ 유성호


"잠실 가는 길. 라디오에서 <기억날 그날이 와도>란 노래가 나온다. 사운드는 예전 것이지만 듣고 있으니 울컥해진다. 오늘 같은 날씨엔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를 들으며 목청 터지게 따라 부르면 눈물이 쏟아질 것이다."

김완태 MBC 아나운서가 8월 24일 아침, 트위터에 남긴 글이다. 김완태씨는 왜 이른 아침에 여의도 MBC가 아닌 잠실로 향했을까? 왜 그는 라디오를 듣다가 울컥했을까?

가을이 깊어가는 10월 중순, 김 아나운서가 요즘 출근한다는 잠실로 향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신천역. 출근시간이라 분주했다. 4번 출구로 나와 약 80m를 걸은 뒤 왼쪽 모퉁이로 돌아서니 MBC 로고가 선명하게 새겨진 큰 건물이 보였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 189번지. 이곳은 미디어 종사자 배출을 주 목적으로 하는 'MBC 아카데미'다.

변종 삼청교육대, '신천교육대'의 현장

김완태 아나운서는 이곳 MBC 아카데미로 출근해 오후에 퇴근한다. 경력 15년을 훌쩍 넘긴 베테랑 아나운서인 그. 혹시 이곳에서 후배 아나운서 양성을 위한 강사로 활약하는 걸까? '얼짱 앵커'로도 알려진 왕종명 MBC 기자도 요즘 이곳으로 출근하는데, 혹시 그도 강사?

아니다. 이들은 교육생 신분으로 MBC 아카데미에 온다. 직원 재교육을 위한 김재철 MBC 사장의 배려일까? 이것도 아니다. 김재철 사장 체제의 MBC는 파업을 끝내고 현장에 복귀한 노조원 일부에게 3개월간의 '교육발령' 조치를 내렸다. 일종의 징계다.

교육발령 결정이 난 조합원은 무려 95명에 이른다. 경영, 기술직 조합원을 비롯해 방송경력 20년 차의 국장급, 부장급 인사부터 연차가 낮은 PD, 기자, 아나운서 등이 여기에 포함돼 있다. 이들은 MBC 아카데미에 온 순서에 따라 수업을 듣고 있다. 지난 8월부터 9월말까지 이곳에 온 날짜에 따라 1반부터 4반까지 총 4개 반으로 나뉘어 있다.

"MBC 아카데미? 우린 그렇게 안 불러요. '신천교육대'라 부르지. 80년대 전두환씨가 만든 삼청교육대 아시죠? 괜한 사람 잡아다가 온갖 고문같은 훈련을 시킨 곳. 거기에 빗대서 신천교육대라 불러요. 파업 참가에 대한 보복으로 기자, 피디 등 조합원을 이쪽으로 보낸 겁니다. 일종의 유배지죠. "

MBC 노조 한 조합원의 말이다. '유배지 신천교육대' 현장에서 만난 또다른 조합원은 "회사는 95명의 노조원을 이쪽으로 발령 내면서 명백한 기준을 제시하지 않았고, 설명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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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아카데미 1층 출입구의 모습. "MBC는 화합과 소통의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문구의 네온사인이 눈에 띈다. ⓒ 정현환


MBC 노조 조합원들이 부르는 대로 MBC 아카데미를 이제부터 '신천교육대'라 부르자. 신천교육대의 오전 쉬는 시간. 각 반으로 흩어져 수업을 듣던 조합원들이 우르르 나왔다. TV에서 보던 낯익은 얼굴도 있었는데, 대체로 표정이 어두웠다.

신천교육대 실내 복도에는 MBC의 대표작 사진들이 붙어 있다. 그런 대표작을 만들던 사람들의 얼굴 표정이 어둡다는 게 역설적으로 다가왔다.

한 조합원은 "이곳에서 교육받는 조합원들과는 잘 지내는데, 여의도에서 근무하는 다른 조합원들은 어떤지 모르겠다"며 "철저히 격리된 느낌이고, 섬에 갇힌 기분이다. 그래서 우리끼리 이곳을 '유배지'라 부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열심히 듣는 사람도 있지만 수업시간에 몰래 다른 책 읽는 사람도 있고, 알아서 '땡땡이' 치는 사람도 있다"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그는 "수업이 오후 5시 정도에 끝나는데 나는 집에 일찍 가서 아이들을 돌본다"고 씁쓸하게 웃었다.

김재철의 배려? MBC 직원들의 브런치 만들기

'유배지'에서 땡땡이를 치다니. 김재철 사장이 알면 대노하지 않을까? 방송사에서 근무하다보면 바빠 따로 공부하기 힘들 터. 아무리 징계라지만 이런 기회에 공부를 열심히 하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궁금해서 한 PD 조합원의 수업 시간표를 들여다봤다. 놀라웠다.

10시~12시 : 개념미술의 이해
14시~16시 : 인생, 그림 앞에 서다

10시~12시 : 내가 만든 브런치
14시~16시 : 파워 클래식 (현악 4중주단)

10시~12시 : 디자인, 미래 산업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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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아카데미 커리큘럼 오전 10시 부터 12시까지 내가 만든 브런치 수업이 진행 되었다. ⓒ 정현환


기자는 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 안 됐다. 누구 말마따나 "내가 대학 좀 다녀봐서 아는데" 요즘 대학 1학년 교양과목에도 이런 수업은 없다. MBC 대표작을 만들고 여러 특종을 보도한 베테랑 기자들이 취재 현장이 아닌 <내가 만든 브런치> 수업을 듣기 위해 잠실로 오는 것이야말로 '뉴스'였다. 신천교육대 현장에서 만난 한 기자와 피디는 자조적으로 이런 대화를 나눴다.

"요즘 책 볼 시간이 많아졌어요."
"우리 대학원에 진학해 볼까?"

이날 진행된 수업 <스마트 미디어 강의>는 급변하는 스마트폰 시장에 대한 이해와 전망에 대한 강의이다. 수업 중에 한 기자가 "수업 내용이 현 시점과 동떨어진 내용"이라고 이의를 제기했다. 하지만 강사로 온 대학 교수는 "이 자료는 미국의 최신자료"라고 말한다. 수업 내용을 궁금해 하던 다른 노조원들이 해당 자료를 직접 찾아봤다. 5년도 더 지난 자료였다.

한 조합원은 "모든 강사가 이곳에 와서 전부 이렇게 가르치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강의하는 강사도 있다"고 말했다. 강사진에는 현 정권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은 사람, 방송시장에 시장경쟁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A조합원은 "나도 (여기 강사처럼) 강의하면 잘할 거 같다"며 "요즘 대학원 진학을 깊이 고민하고 있다"고 비꼬듯이 말했다. 

기자도 MBC 노조원들이 듣는 수업을 인터넷으로 검색해 봤다. 쉽지 않게 원하는 결과를 찾았다.

"수강료 16,000원, 현재 접수예정중"

MBC 아카데미는 롯데 백화점 32개 문화센터와 제휴를 맺고 각종 문화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중이다. 롯데백화점 문화센터 한 강의에서 낯익은 이름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인생, 그림 앞에 서다>는 롯데백화점에서도 똑같이 진행되는 수업이었다. 다른 수업도 비슷하다. 수업 이름만 살짝 다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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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백화점 문화센터 강의 시간표 MBC 아카데미에서 수업을 진행했던 이 아무개씨의 롯데백화점 강좌이다. 강의명과 함께 수강료가 책정되어 있다. ⓒ 정현환


MBC 측은 "이번 교육발령은 파업 참가 인원들이 업무에 복귀하기 위한 기본 교육"이라고 밝혔다. 회사의 주장대로라면 직원들은 현업에 복귀하기 위해 브런치 만들기와 미래 산업이 꽃인 디자인을 연마하는 셈이다. 한 조합원에게 현 MBC 상황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현장 뛰는 기자 40%가 유배지에... 권력에 잘 보이기 위한 것"

- 요즘 MBC 뉴스에 대한 공정성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솔직히 요즘 MBC를 잘 보지 않는다. 집에 가도 웬만하면 TV를 보지 않는다. 어쩌다가 TV(뉴스)를 봐도 대부분 모르는 얼굴이다. 수십 년간 손발을 맞춘 MBC 노조원 95명이 이곳에 있다."

- 회사는 기간제 인력을 뽑아서 방송을 하고 있다.
"우린 그들을 본 적이 없다. 같이 일해본 적도 없다. 하지만 가끔 내부에 있는 MBC 노조원들에게 이들의 소식을 듣는다. 강원민방에서 근태 문제로 해고 직전까지 갔던 사람, 박근혜 후보에게 '대표님 힘내세요'라고 했던 기자, 자신을 정규직으로 채용해 주면 회사에 충성하겠다고 밝힌 사람도 있다고 한다."

- 그래도 '징계'가 끝나면 그들과 함께 일하지 않나?
"(웃음) 그때 가서 논의하겠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중요한 게 있다. '김재철 사장 퇴진'이 먼저다."

오후 4시 45분, 모든 수업이 끝났다. 오늘 수업은 다소 일찍 끝났다. 김완태 아나운서를 포함해 여러 조합원들이 우르르 신천교육대를 빠져 나왔다. 머리가 희끗한 사람부터 젊은 기자까지 면면이 무척 다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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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종명 MBC 기자. ⓒ MBC


이들은 언제쯤 방송에 복귀할 수 있을까. 대선을 앞둔 지금, 언론계로서는 '대목'이다. 많은 사람의 눈길이 뉴스에 쏠린다. 그만큼 기자 직군 사람들은 바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곳 신천교육대에 온 조합원 중 약 40여 명은 기자다. MBC에서 현장을 직접 뛰는 기자는 약 100명 정도라고 한다. 그렇다면 약 40%에 이르는 기자들이 취재 현장에 아닌 유배지에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MBC 노동조합 측은 "대선까지 기자들을 유배지에 묶어 놓겠다는 게 회사의 뜻"이라며 "결국 취재력을 약화시켜 권력에 잘 보이려는 게 현재 MBC 실정이다"라고 말했다.

신천교육대에 있는 조합원 대부분은 아무리 빨라도 대선 직전에야 현업에 복귀할 수 있다. 대선에서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는 셈이다.
덧붙이는 글 정현환 기자는 <오마이뉴스> 3기 대학생 기자단 '오마이프리덤'에서 활동합니다.
#MBC 노조원 87명 #MBC 잠실 아카데미 #내가 만든 브런치 #롯데백화점 문화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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