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범죄도 줄이고, 경제도 살리는 이 방법은?

영국 사회혁신채권(Social Impact Bond)의 실험과 도전

등록 2012.10.29 10:18수정 2012.10.29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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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짓고 감옥에 가는 범법자 한 명에게 투입되는 사회적 비용은 얼마나 될까? 최근 영국 법무성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만 18세 미만의 청소년 범죄자 1명에게 투입되는 연간 사회적 비용은 약 8만 파운드,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1억4천만 원 정도가 들어간다고 한다.

치안을 유지하는 경찰, 법을 집행하는 법원, 그리고 유죄판결을 받은 이들을 수용하기 위한 감옥 운영비 등을 모두 합한 값이다. 1번 이상의 범죄 경력을 가진 '전과자' 한 명에게 들어가는 생애 총비용은 이보다 훨씬 많은 30만 파운드(5억3천만 원) 수준이라고 하니, 범죄자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사회가 감당해야 하는 비용은 눈덩이처럼 커질 것이라는 사실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피해자가 입었을 육체적, 정신적 상처와 그에 따르는 치료비, 피해자는 물론이고 가해자 가족이 감당해야 할 경제적 손실분까지 감안한다면, 범죄 1건에 대해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은 이보다 훨씬 클 수밖에 없다. 여기서 간단한 계산을 한번 해보도록 하자. 만일 죄를 짓고 감옥에 간 청소년 범죄자 중 100명이 재범을 저지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최소 140억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는 답이 나온다. 영국(잉글랜드와 웨일즈)에 존재하는 청소년 범죄자 숫자가 약 60만 명 정도라고 하니, 이 중 1%만 감옥에 다시 가지 않는다 해도 무려 84000억 원의 돈을 줄일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청소년 범죄에 수반되는 높은 사회적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두말할 나위 없이 '재범률'을 낮추는 것이다.

청소년 범죄자 1명에 투입되는 사회적 비용, 약 1억4천만 원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지름길이 사후약방문이 아니라 예방이라는 것은 누구나 안다. 하지만 예방적 프로그램과 조치는 장기적으로 많은 돈이 필요하고 정부는 이를 수행할 만한 재정적 여력이 부족하다. 민간에는 단순한 자선을 넘어 가치투자를 희망하는 자선단체와 착한 투자자들이 존재한다.

시민사회에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와 전문성을 지닌 비영리 조직들이 있지만, 먹고 사는 문제에 너무 많은 시간을 쓰느라 정작 해결해야 할 '문제'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와 투자자, 시민사회단체 이 삼자가 힘을 모아 '범죄 예방'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함께 협력모델을 만들 수는 없을까? 정부는 마당을 깔고, 투자자는 자금을 동원하며 비영리단체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청소년들의 재범률을 일정 부분만 줄여도 정부는 일 년에 수천억 원의 돈을 절약할 수 있다. 그러니 우선 시장에서 자금을 동원하고 민간 전문가들에게 범죄 이력을 가진 이들을 다시 사회로 복귀시키는 일을 맡겨보자. 대신 일정한 성과를 만들어낸다는 조건 하에 투자비용에 더해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접근한다면 투자자는 물론 모두에게 이익이 되지 않을까?

만일 이 프로그램이 성공해서 단기적으로 비슷한 예산이 들어간다 해도 장기적으로는 훨씬 더 많은 비용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범죄가 줄어들면 사회는 더 건강해질 것이고, 정부는 국민이 낸 세금을 더 효과적으로 운영할 수 있고, 투자자는 이익을 얻고, 비영리단체는 안정적인 기반 하에서 본래의 사명을 달성하는 '일석사조'의 게임이 아닌가. 사회혁신채권 혹은 사회성과 연계채권이라고 부르는 소셜임팩트본드(Social Impact Bond)는 이런 배경 속에서 탄생했다. 


a 영국 Social Impact Bond 1호 : Peterbourough 흐름도   Social Finance UK(2012.3)

영국 Social Impact Bond 1호 : Peterbourough 흐름도 Social Finance UK(2012.3) ⓒ 문진수


2010년 9월, 영국 피터버러시 단기 재소자들의 재범률을 낮추는 최초의 사회혁신채권 프로그램이 도입된 이래 캐나다, 호주, 미국, 이스라엘 등 전 세계 각국 정부가 사회혁신채권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이 '특별한' 상품이 비용 대비 편익 면에서 예산 효율을 포함한 높은 사회적 효과(Social Impact)를 거둘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게 하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은 중앙정부 예산에서 총 1억 달러를 이 사업에 편성할 만큼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지방정부들도 적극적이다. 메사추세츠주와 뉴욕시는 금년 여름부터 청소년 범죄예방을 주제로 한 사회혁신채권 시범사업을 시작했고, 미시간주와 캘리포니아주에서도 해결이 필요한 사회적 의제를 이 상품과 연계하기 위한 프로젝트 준비가 한창이다.   

사업 대상 및 범위도 다양해지고 있다. 영국은 재범 방지 프로젝트 이외에 가출 청소년 보호, 결손가정 구제, 청년 실업, 의료, 주택문제 해결 등 광범위한 영역을 대상으로 모형을 짜고 있는 중이며, 호주 역시 청소년 문제와 알코올 중독자 및 노숙인 문제해결을 포함하여 총 10개의 의제를 선정해 놓은 상태다.

미국도 노숙인 자립, 장애아동 복지 등 총 7개 영역에 시범사업을 추진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최근 출시된 뉴욕시와 메사추세츠주의 사업모델은 모두 청소년 범죄예방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사회혁신채권을 도입하고 있는 나라들에서 지방정부들이 더 적극적인 이유는 이 프로그램이 전국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것보다는 지역(local)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상품의 구조 및 운영 시스템도 진화하고 있다. 영국 사회혁신채권의 기본구조가 투자자들이 모든 투자위험을 감수하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에 반해, 뉴욕시를 포함하여 미국식 사회혁신채권의 상품구조는 투자위험을 정부나 다른 이해관계자가 함께 짊어지는 방식을 통해 투자자의 손실규모를 줄이는 접근 방법을 취하고 있다.

수익을 추구하는 투자자들에게 매력을 주기위한 전략적 포석이 깔려있다고 볼 수 있다. 뉴욕시 라이코스 교도소에 수감 중인 만 16세에서 18세 사이 청소년들의 자립을 돕기 위한 프로그램에 총 960만 불을 투자한 골드만삭스의 경우, 기준치(재범률 10% 이상 하락)를 넘는 성과를 만들지 못하더라도 최대 240만 불만 손해를 보게 되며 나머지 돈은 뉴욕시장이 설립한 자선재단에서 부담하도록 되어 있다.

진화하고 있는 사회혁신채권, 미국 건강보험 체계에도 영향

그렇다면 사회혁신채권은 각 나라가 골머리를 앓고 있는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치료약이 될 수 있을까? 지난 5월, 영국 사회혁신채권의 산실인 사회투자 전문회사 소셜파이낸스(Social Finance Ltd)를 방문했을 때 만난 루이스 사벨(Louise Savell) 이사는 사회혁신채권 1호라 할 수 있는 피터버러시 프로젝트가 시작된 지 불과 1년이 지난 시점임에도 매우 긍정적인 변화의 신호들이 나타나고 있다며, 이 새로운 상품의 미래에 대해 매우 낙관적인 전망을 피력했다.   

a   영국 소셜파이낸스 사무실에서 Louise Savell 이사와 함께 2012.5.30 방문

영국 소셜파이낸스 사무실에서 Louise Savell 이사와 함께 2012.5.30 방문 ⓒ 문진수


"사회혁신채권은 이제 막 태어난 신생아입니다. 아직 사회적 가치측정을 위한 성과지표 마련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고,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협력해야 하는 일인 만큼 어려움도 많을 것으로 예측됩니다. 하지만 풀기 어려운 사회문제를 낡은 해법이 아니라 새로운  방법론을 통해 해결하려 한다는 점에서 혁신성이 내재되어 있고 또 충분히 실현 가능한 모델이라고 믿습니다. 최근 유럽 국가를 포함해 많은 나라에서 이 상품에 대해 문의를 해오고 있습니다. 향후 각 나라의 환경에 맞는 더 발전되고 진화된 형태의 사회혁신채권 모형이 많이 만들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녀의 예상대로 사회혁신채권은 새롭게 진화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작은 도시 프레즈노(Fresno)에서 만성천식 환자들을 대상으로 추진 중인 건강혁신채권(Health Impact Bond) 프로그램이 대표적 사례다. 천식을 앓고 있는 저소득층 자녀 1100명을 대상으로 추진 중인 이 '건강회복' 프로젝트는 캘리포니아 기부재단(California Endowment)에서 자금을 지원하고 건강공동체(Collective Health) 등 비영리단체들이 실행조직으로 참여한다. 북미 지역을 넘어 예방보건과 관련된 사업으로는 세계적으로 처음 시도되는 사회혁신채권 프로그램인 셈이다.

a 미 캘리포니아주 프레즈노(Fresno)시 질병현황 분석  A market for health by UC Berkeley (2012.3)

미 캘리포니아주 프레즈노(Fresno)시 질병현황 분석 A market for health by UC Berkeley (2012.3) ⓒ 문진수


이 도시에서 사회혁신 프로그램이 추진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도시 안팍의 환경적 원인으로 인해 프레즈노 주민 중 약 20%가 크고 작은 질병을 앓고 있다고 한다. 미국 도시의 평균 유병률(Prevalence rate)이 약 8% 수준임을 감안할 때 매우 높은 수치다. 버클리 대학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20만 명의 주민이 만성천식에 걸려있고, 그로 인해 매년 6천 명이 응급처치를 위해 병원을 방문하며 1100명이 치료를 위해 입원한다고 한다. 노동력 상실에 따른 손실을 포함하여 천식으로 인해 프레즈노시가 부담하는 총비용은 연간 8700만 불(약 950억 원)에 달한다.

건강혁신 프로그램 도입에 따른 경제적 효과는 얼마나 될까? 천식을 앓고 있는 1100명의 어린이와 취약계층 가정을 대상으로 한 서비스(집 청소, 베개 및 매트리스 커버의 정기 교환, 공기정화기 사용, 해충 제거 등) 비용을 모두 합산한다 해도 기존에 들어간 비용과 비교할 경우, 연간 460만 불(약 50억 원)을 절약할 수 있다는 것이 프로젝트팀의 설명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만일 이 혁신적인 실험이 성공할 경우, 문제점투성이인 미국 건강보험 체계에 새로운 변화의 물꼬를 틀 계기를 제공함은 물론 국민건강 문제에 관심을 가진 많은 투자자 집단들에게 새로운 '투자처'를 제공하게 될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관측이 나오고 있다. 건강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저소득 계층을 포함하여 이들을 고용하고 있는 기업, 보험회사, 지방정부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이 미 서부의 작은 도시 프레즈노의 새롭고 혁신적인 실험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다루기 힘들고 고비용'인 문제는 우리도 많다

영국 피터버러시에서는 시장과 정부 관계자, 교도소장, 프로젝트 기관과 수감자 대표, 그리고 그 가족들이 원탁에 모여 현재 추진 중인 사회혁신채권 프로그램 진행과정을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평가하는 회의를 갖는다고 한다. 재범률이 줄어들면 불필요한 곳에 예산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고, 지역사회를 건강하게 하는데 더 많은 재정을 투자하면 주민의 삶의 질이 향상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각자가 가진 조건 하에서 함께 사회문제를 해결해가려는 '작지만 소중한' 노력의 소산들이다. 대한민국의 협치(Governance) 수준은 어디까지 와있을까? 
                      
학교 내 집단 따돌림, 문제가정의 증가와 그로 인한 청소년들의 가출, 아동 성범죄, 독거노인의 증가와 자살, 만성적인 청년실업, 운둔 형 게임중독자 증가, 한계수위를 넘은 가계부채 등 우리에게도 '다루기 힘들고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크고 작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변화와 혁신, 사회통합을 외치는 대선주자들의 목소리가 드높다. 거대한 담론도 좋지만 지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만성적인 문제를 구체적으로 해결해 나가기 위한 작지만 송곳 같은 공약(公約)들이 많이 나와 주기를 희망한다. 변화는 더디고, 혁신은 가볍지 않으며, 통합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혁신채권 #SOCIAL IMPACT BOND #SIB #사회성과연계채권 #사회적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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