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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녀석들'의 박성광…어떻게 돌아올 것인가?

[주장]<개그콘서트>의 '용감한 녀석들'의 박성광은 ‘대체 가능’한가?

12.11.11 11:27최종업데이트12.11.11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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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박성광은 지난 10월 21일 방송된 <개그콘서트>의 '용감한 녀석들'이란 코너 끝에 가장 위험한 내기를 걸었다. 외모를 놓고 <개그콘서트>의 이승건 PD와 자신 간의 '시청자 외모 투표' 결과에 하차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10월 28일 방송분에서 발표된 투표결과, 박성광은 이승건 PD를 이기지 못했다. 지난 11월 4일부터 지금까지 박성광은 무대에 오르는 대신 객석에서 '용감한 녀석들'을 관람하는 데 신세로 전락했다.

박성광은 '술푸게 하는 세상'(2011)이란 코너에서 "국가가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느냐?"라고 외친 적이 있다. 그러고 보면 그의 도발은 정말 거침이 없다.

주인공 없는 코너는 가능한가?

<개그콘서트>, '용감한 녀석들' 10월 28일 방송분 캡처 ⓒ KBS


어떤 한 코너에서 주요 캐릭터가 빠지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코너를 감당하지 못할 내적인 요인이나, 외적인 강압이 없고 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이 같은 이유 모두 출연자 자신과 관련된 불미스러운 일과 결부되는 경우가 많다.

<개그콘서트>의 경우 해당 코너의 지속하는 동안 스스로 코너의 종언을 알리는 작별인사 전까지는 캐릭터의 생명은 자연 유지됐다.

박성광의 공약은 어쩌면 이런 관행에 기댄 공약이었다. 동시에 '리얼'이라는 명목 아래 더 큰 자극의 강도를 요구하는 코너의 특성에 따른 도발이었다.

이는 코너가 끝나지 않고 캐릭터는 끝날 수 있느냐는 '코너와 캐릭터의 떼려야 뗄 수 없었던 경계'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과연 영화상에서 주인공이 중간에 죽는 게 과연 가능해?'라는 물음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박성광, 시청자가 기억하는 한 죽지 않는다

<개그콘서트>, '용감한 녀석들' 10월 28일 방송분 캡처 ⓒ KBS


현재 박성광은 코너에서 '부재의 자리'로 존재한다. 이를테면 우리는 우리 곁에 누군가의 죽음이 반드시 부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 진정한 부재는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 곧 망각에서 비롯된다. 시청자의 기억은 그가 '무모한 내기'를 걸었을 때에서 멈춰있다.

물론 '용감한 녀석들'이라는 이름만큼 다른 '녀석들'이 그의 역할을 해낸다. 더구나 3명 뒤에 코너 초반 잠깐 재현 상황에만 출연하던 양선일은 박성광이 빠진 다음 주 직후에 그의 몫을 대신했다.

그렇지만 이제 한 명의 시청자인 동시에 무대 위에서의 마이크 역시 할당되지 않아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박성광의 자리는 양선일이 대신하는 가운데서도 오히려 선명하게 확인된다.

방청객 속 카메라가 그를 비출 때면 꽤 묘한 느낌이 든다. 현재 '용감한 녀석들'은 박성광 부재의 자리에 따라 본의 아니게 현실과 유령이 동거하는 형국이라고나 할까.

박성광의 파격, 경계 선상에서 묻다

<개그콘서트>, '용감한 녀석들' 10월 28일 방송분 캡처 ⓒ KBS


<개그콘서트>에서는 특정 코너가 막을 내리더라도 <개그콘서트>는 끝나지 않는다. 코너들의 최상위 범주로서, <개그콘서트>는 새로운 코너를 새롭게 등장시키며 생명력을 이어간다.

'만약 박성광이 이겼다면, 이승건 PD가 떠나야 했을 것인가?' 제작에 관여하는 PD가 떠나는 것은 현실적으로 박성광이 하나의 코너를 떠나는 것보다 더 큰 사안이다. 그렇게 되었다면 코너의 재미와는 별개의 문제가 됐을 것이다. 또한, 박성광은 유령처럼 남아 있더라도 PD는 코너 자체에 어떤 자국도 남기지 못한다. 시청자에게는 내기에 따른 구체적인 결과가 제시되지 않으므로, 내기의 결과가 의미를 얻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박성광이 패했더라도 박성광 역시 바로 이 코너를 떠날 순 없다. 내기가 진행됐을 때 벌어질, '이미 누구든 떠나야 한다는 사실'은 그 떠남이 내기를 관망하던 사람들에게는 확인될 필요가 있다. 내기에는 일견 법적 효력만을 가진 듯 보이지만, 내기는 원래 무모하고도 유희적인 놀이(play)의 성격을 띠고 있다. 더군다나 박성광의 내기는 대국민적 참여를 유도한 내기였다.

'자리 없는 자'로서 박성광은 이제 '기억의 흔적'과 '내기 결과의 확인 단계'에서 희미하게 자리한다. 하지만 이 방청객의 자리에서 박성광의 피켓에 쓴 대사들은 예기치 않은 효과를 자아낸다. 다른 '녀석들'이 그의 자리를 모른 척 숨기고 태연하게 코너를 진행하는 가운데, 박성광은 부조리한 이 상황에 항거한다.

이른바 목소리를 빼앗긴 자, 무대에서 쫓겨난 자의 도발은 저항적 행위가 된다. 그리고 이는 일견 정치적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박성광의 "국가가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느냐?"라는 술 취한 남자를 가장한 채 던지는 도발적 질문은 생각하지 않았던 국가라는 존재를 호출한다. 이는 '내 인생은 왜 이 모양이야!'라는 자조적 한탄에서 그치는 게 아닌, 그 원인을 구조적인 부분에서 찾는 동시에 그 구조를 뛰어넘고자 하는 적극적이고도 저항적인 몸부림이다.

그리고 이번에 그는 자신의 무모한 도발에 저당 잡혀 유령이 되었지만, 이내 부당하게 해고된 노동자가 벌이는 피켓 시위를 벌이는 저항을 꾀한다. '용감한 녀석들'이 초반의 활약이 조금 미적지근해질 즈음 역설적으로 박성광은 '용감한'의 의미를 가장 잘 실천해 낸다.

박성광의 코너 복귀의 가능성은?

<개그콘서트>, '용감한 녀석들' 10월 28일 방송분 캡처 ⓒ KBS


박성광의 자리를 김장훈이 대신한 것은 또 다른 저항이었다. 독도 전도사를 비롯해 많은 사회적 활동을 몸소 실천해 온 김장훈은 코너 바깥에서 외부의 목소리를 덧댔다.

얼마 전 불화를 겪던 김장훈과 싸이가 김장훈의 무대 난입과 진정 어린 고백 이후 극적 화해와 훈훈한 광경을 낳았던 적이 있다. 김장훈의 등장은 그것의 '자기 패러디'적 측면으로 읽혔다.

사실상 김장훈의 싸이를 향한 화해의 제스처는 리얼이었지만, 일종의 퍼포먼스이기도 했다 다시 말하면 김장훈의 화해는 가장 감동적이고 효과적인 '리얼한 퍼포먼스'였다.

코너 자체의 경계를 넘는 무모한 발언을 하고, 현재 피켓 시위로 자신을 드러내는 박성광은 이 코너 자체를 뒤흔들 만한 커다란 장력에 따르지 않고서는 다시 코너에 등장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여기에는 꼼수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가령 '용감한 녀석들'을 떠났으니 '용감한 녀석들' 제목에 시즌2를 살짝 붙여 새로운 코너로 돌아왔다거나 하여 코너 자체를 새로 짜는 것이다. 또는 '영원히' 떠난다고 한 것은 아니었다는 식의 이유를 붙여 돌아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이승건 PD와 박성광이 재투표를 통해 시청자들이 박성광의 손을 들어주고 그래서 돌아온다면, 이 재투표의 재재투표는 계속 순환론적으로 반복될 가능성도 있다.

마치 박성광이 서수민 PD와 끝없는 다툼을 무대와 무대 바깥의 경계 선상에서 펼쳐냈던 것처럼 이 내기로 또 다른 코너의 원동력의 축을 얻어낼지도 모른다. 박성광의 내기는 일견 무모했지만, 코너를 매우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며 이후 코너 쇄신의 원동력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아트신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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