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가 감귤 따다 줄행랑 친 사연

[서울처녀 제주착륙기7] 제주 감귤 수확 이야기

등록 2012.11.28 18:22수정 2013.03.18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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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되면 제주도 어딜가도 눈에 들어오는 게 있다. 노오랗게 주렁주렁 귤이 달린 귤나무들이다. 우리집에서도 창문을 열면 바로 코앞에 하우스귤 농장이 보인다. 창밖으로 손만 뻗으면 잡힐 것 같은 감귤을 보면, '그림의 떡'이란 게 바로 이런거구나 싶다. 


제주도에는 지나가는 행인 누구나 쉽게 귤을 딸 수 있을만큼 귤나무가 널려 있다. 돌담조차 치지 않은 귤농장도 많다. 나도 올레길을 걷다 갈증이 날 때 감귤나무를 보면서 '하나 따먹고 싶다'는 유혹에 시달린 적이 많다. 

전광석화같이 빠른 '귤서리' 액션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다 '없이 살아도 이건 아니여' 하며 고개를 도리질한 적도 있다.      

'귀신같은' 감귤 따기, 초짜는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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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남원 노지 감귤밭의 귤들이 탐스럽게 열렸다. ⓒ 조남희


사실 제주도에는 '제주에 살면서 돈 주고 귤 사먹으면 바보'란 말이 있다. 그만큼 이 시기에 귤이 흔하다. 제주도 어딜 가서 누굴 만나도 심심찮게 생기는 게 바로 감귤이다.

제주 감귤 수확철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나도 감귤 수확의 전선으로 들어가보기로 했다. 감귤 따기는 이번 겨울 나의 '용돈벌이 프로젝트'의 일환이자 제주 살면서 해보고 싶은 일 중 하나다.  


우리집 주인 아주머니는 대평리에서 마당발이다. 마을 근처 감귤농장 하나 소개받는 건 일도 아닐터였다. 또 어떤 독자 한 분은 <오마이뉴스> 쪽지로 이런 글을 보내왔다.

"고향이 대평리인데 기사 잘 읽고 있다. 대평리 사람되려면 감귤도 따봐야 한다. 원하면 소개시켜 주겠다."

감귤 따는 일이 그렇게 힘든 노동은 아니라지만, 난 농사 비슷한 일도 해본 적 없는 사람이다.  괜히 도전했다가 일을 잘 못하면 '감귤도 제대로 못 따는 육지 것'으로 낙인 찍힐 수 있다. '우리 마을이 아닌 다른 곳에서 감귤을 따보자'는 몹시 소심한 생각이 들었다.

아는 제주도 선배에게 부탁했더니 바로 서귀포 남원으로 오란다. 차로 약 한 시간 정도 걸리는 대평리에서 동쪽에 있는 농장이었다. 감귤은 제주도 거의 전역에서 재배된다. 하지만 기후가 더 적합한 서귀포의 감귤을 더 알아주는데, 그 중에서도 남원 감귤은 타 지역의 것보다 맛있다는 소리를 듣는다.

지난 일요일 아침, 남원2리 리사무소 근처의 노지(비닐하우스가 아닌 햇볕 받는 땅에서 키운 것) 감귤농장으로 갔다. 감귤 수확일은 보통 오전 7시에 시작해 오후 5시 정도에 마친다고 한다. 조금 늦게 도착하니, 농장 안에서 이미 다른 분들이 작업을 하고 있었다. 대부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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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농사를 오래 해오신 분들이라 능숙한 손놀림으로 감귤을 딴다. ⓒ 조남희


이 마을에서 계속 귤농사를 지어온 농장주를 만났는데, 정신 없이 바빠 보였다. 그는 내 손에 감귤 따는 가위를 들려주며 요령을 가르쳐주었다. 가위 바깥날로 감귤이 달린 가지를 적당한 길이로 자른 후, 안쪽날로 감귤 꼭지 부분을 바짝 잘라주면 된다고 했다.

너무 바짝 잘라 꼭지가 없어져서도 안 되고, 감귤 표면에 상처를 내서도 안 된다. 상처가 나면 당연히 상품가치가 떨어지고 저장과정에서 썩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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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에 감귤 따는 가위가 주어졌다. ⓒ 조남희


그리고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손에 쥐기에 좋고 표면상태와 모양이 좋은 이른바 '상품'(上品)만 골라서 따라고 했다. 상품은 저장되었다가 바로 육지로 판매되는 것들이다. 기타 감귤은 주스를 만든다든지 다른 용도로 쓰인다.  

시키는대로 상품으로 보이는 것들을 하나씩 따서 감귤 꼭지를 잘라봤다. 손에 익지 않아 한 개를 제대로 따는데 시간이 걸렸다. 지켜보는 농장주의 눈길이 부담스럽기만 했다. '이래서 초보자를 잘 쓰지 않는다고 하는구나' 싶었다. 마음과 달리 굼뜬 손이 원망스러운 순간, '똑, 똑, 똑, 똑...' 일정한 소리로 줄기와 꼭지를 마무리하는 손들이 보였다. 그 손에는 감귤이 세 개씩 들려 있다. 신기해서 멍하게 쳐다보는 나를 보고 농장주도 빙긋 웃었다.

"귀신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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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같은 손'으로 귤을 따는 할머니가 웃으신다. ⓒ 조남희


오전 7시에서 오후 5시까지, 보통 일꾼 한 명이 일당 몫을 하려면 노란 플라스틱 감귤 상자 40개 분량을 따야 한다. 이날은 '극 조생' 물량, 즉 조금 이르게 수확해서 출하하는 물량을 맞추기 위해 동네 어르신듯이 품앗이로 모였다.

각자 감귤밭을 갖고 있으니, 이웃의 밭에서 작업한 일 수만큼 나중에 도움을 받거나 일당을 받기도 한다. 12월 중순까지는 수확을 끝내고 음력 설 전으로 출하를 마쳐야 하기에, 11월 말부터는 일손이 달린다. 그래서 거제도 등 육지에서 숙련된 사람들이 오기도 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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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 30~40개 정도를 일꾼 한명이 하루에 수확한다. ⓒ 조남희


"장가 안 간 우리 아들 있는데, 농사 지을 수 있겠어?"

감귤농사는 일조량이 중요다. 하지만 올해 볼라벤, 덴빈 등 큰 태풍을 맞은 터라 당도, 작황 등이 제대로 나올지 농장주는 걱정이 많다.  

"무엇보다 귤 가격이 제대로 서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아요. 거름값, 인건비는 많이 드는데…. "

농장주는 넋두리를 하더니 이내 "귤에 대해서 잘 모르죠?" 하며 배려를 해준다.

제주의 흔한 지금의 감귤은 재래종이 아니라, 일제시대에 일본에서 이식된 종이다. 조선시대 이전부터 제주 재래종 감귤이 있었지만, 농민들은 조선시대 왕가에 감귤을 수탈당하는 게 싫어 감귤 농사를 꺼렸다. 지금의 감귤은 한국 전쟁 이후에 대대적으로 재배된 종이라고 한다.

취재를 빙자한 농장주와의 이야기가 길어지자 '귀신 같은 손'들에게 왠지 무안해지기 시작했다. 감귤 따기에 전념하기로 했다. 바로 옆에서 감귤을 따고 있는 할머니가 그러신다.

"왠 아가씨가 미깡(밀감)을 따러 왔어?'

모자도 없고, 뭔가 준비도 부족한 처자가 와서 감귤을 따겠다며 옆에 서 있으니 생경할 만도 하다.

"어디서 왔어?"
"대평리에 사는데요, 얼마 전에 서울에서 내려왔어요." 
"나이는 몇인데?"
"서른 셋이요."
"장가 안 간 우리 아들이 있는데, 농사지을 수 있겠어?"
"네, 그럼요!"

언제나 이런 질문의 답은 시원시원하게! 인생사 모를 일 아닌가. 품앗이 온 마을 주민들이다 보니, 이 집 저 집 돌아가는 이야기를 서로 주고받으며 고된 노동을 잊는 듯했다. 다만 그 속에서 제주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나는 좀 고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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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꾼이 힘 쓸수 있도록 양껏, 맛나게 차려진 점심식사. ⓒ 조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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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에 둘러앉아 서로 모자란 것을 챙겨주며 맛있게 점심을 먹었다. ⓒ 조남희


점심시간이 됐다. 감귤밭 옆 저장창고 안으로 들어가니, 바닥에 벌써 식사가 차려져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 틈새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할머니 한 분이 국을 뜨고 계셨고, 나는 국그릇을 날랐다.

"이 아가씨 국그릇 나를 줄도 알고!" 

역시나 날아드는 칭찬.  내 옆에서 식사를 하시던 할아버지 한 분에게 "국 좀 더 드시라" 하자, 그러신다.

"이쁜 아가씨 옆이라 더 못 먹겠네!"

그러나 정작 그 아가씨는 고봉밥을 앞에 두고 전투적으로 밥그릇을 비워나갔다. 감귤 수확 작업을 하면 밥은 워낙 잘 나온다고 하더니만 아니나다를까, 이 정도면 한끼 식사로 훌륭했다.

작업 마감시간까지 끝까지 버티기로 마음을 먹은 터라 '먹어야 일 할 수 있다'는 단순한 진리에 충실할 수밖에 없었다. 또 '있을 때 많이 먹는다'는 게 나의 제주살이 원칙이다.

저녁 약속 핑계로 농장을 후다닥... 집으로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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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련된 일꾼은 두개의 바구니를 놓고 상품감귤과 기타 등급을 동시에 선별하면서 딴다. ⓒ 조남희


식사를 마치고 실한 상품 감귤이 많이 달린 귤나무가 있는 쪽을 찾아 농장 구석구석을 훑고 다녔다. 작업은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내 손에도 귤이 세 개씩 쥐어져 있었다. 이쯤 되니 귤은 먹는 게 아니라 오직 따는 것으로 인식됐다. 그 뒤부터는 무념무상, 무아지경으로 귤만 땄다.

나무 윗쪽, 제일 아래쪽, 바깥쪽 등 손이 잘 닿지 않는 곳에 달린 감귤을 따니 등을 시작으로 허리가 아프고 점차 팔이 무거워져 왔다. 오후가 되어 그늘이 지니 바람이 세지 않은데도 한기마저 느껴졌다.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힘이 드신지 오전처럼 수다를 떨지 않고 조용히 감귤만 딴다. 하지만 누구 하나 "힘들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젊은 내가 "아이고 힘들다" 한마디 소리내기가 부끄러워 꾸역꾸역 조용히 감귤만 땄다. 

오후 3시 즈음이 되자 농장 한 구석에 간식이 마련됐다. 둘러앉아 감이며, 고구마, 커피 등을 먹는데, 할머니 한 분이 그러신다.

"힘들지? 어디가 제일 아파?" 
"등이요."
"아이구 이제 좀 있으면 허리도 아프고, 팔도 아프고 그럴 텐데? 근데 감귤농사가 농사 중에 제일 쉬운거야~"  
'아... 네..."
"그런데 아가씨는 언제 갈라구?"

"끝까지 해보려고요."

저질체력인 주제에 오기만 남은 나는 그렇게 말한 걸 오후 5시 즈음부터 후회했다. 온몸 구석구석이 '감기몸살 예약되셨습니다'를 부르짖고 있었다. 오후 5시가 돼도 작업이 종료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이 정도면 밥값은 한 거겠지'라며 스스로를 합리화하기 시작했다.

따 놓은 감귤 박스를 나르느라 정신 없는 농장주에게 목장갑과 감귤따는 가위, 모자를 안겨주고 저녁 약속을 핑계로 농장을 후다닥 뛰쳐나와 집으로 내달렸다. 전기장판 온도를 올려놓고 무겁고 한기가 든 몸을 녹이며 '역시 대평리에서 안 따기를 잘했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그제서야 일전에 물건을 빌리러 안거리(주인집)를 기웃거렸을 때의 주인 아주머니가 생각난다. 당시 아주머니는 "오늘 감귤을 따고 왔다"며 자리에서 일어나기 힘들어 했다. 그리고 제주도에서 살고 싶다는 어느 육지 아가씨가 했던 말도 떠오른다. 그는 감귤 농장 둘째 아들에게 시집 가는게 꿈이라고 했다. 그에게 이렇게 얘기해주련다.

"일단 해보고 다시 얘기합시다."

누워있는데 농장주에게서 전화가 왔다.

"힘들죠? 오늘은 좀 쑤실거예요."

'예 맞습니다....'

그래도 생각한다. 체력은 달리지만 몇 번 하다 보면 요령이 생기리라. 전기장판 위에서 골골대며 눈을 감으니 눈앞에 '나 좀 따 달라'는 듯 주렁주렁 귤이 가득하다. 오늘 밤에는 노오란 감귤 꿈을 꿀 것만 같다. 조만간 재도전이다.
#감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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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사는 서울처녀, 제주도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전해드릴게요 http://blog.naver.com/hit10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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