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 되는 인쇄시장, 해법은 협동조합"

[인터뷰] 인쇄 20년 현경남 서광프린텍 사장

등록 2012.12.06 10:08수정 2012.12.06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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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경남 서광프린텍 사장 ⓒ 백병규


현경남 서광프린텍 사장은 "중소업체 스스로 살 길을 찾는 것이 당연하지만, 그것으로는 한계가 명확하다"고 말한다. 어떤 길이 있을까. 현 사장은 "어려운 중소업체들끼리 서로 연대하고 협동하는 것이 어렵더라도 가야 할 길"이라고 말한다. 다음은 현 사장과 일문일답.

- 중소업체들이 단결할 수 있는 방안이 있는가?
"그런 틀은 지금도 있다. 인쇄조합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현실적인 구심체 역할에는 한계가 있다. 나름 인쇄업체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제도적 요구도 하고 있지만, 중소 인쇄업체들에게 현실적인 타개책이 되진 못하고 있다."

- 그렇다면 어떤 방식의 연대나 협력이 가능할까?
"말 그대로 온전한 의미에서의 협동조합이 필요하다. 조합을 중심으로 중소인쇄업체간의 협업이나 구조조정도 가능할 것이다. 일본처럼 협동조합을 통한 공동수주·공동구매를 통해 시장 질서를 정상화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잉크나 용지 등의 공동 구매를 통해 대형 인쇄업체에 대응하고, 조합원들이 보유하고 있는 인쇄기종과 처리 가능 물량을 파악하고 조직해 대형 물량은 물론 소량 다품종의 인쇄 물량을 수주받는 식이다. 일본에서는 인쇄를 할 때 인쇄조합을 찾는 비중이 꽤 높은 것으로 알고 있다."

- 그런 협동조합을 만들 수 있을까?
"누가 시작할 것인지가 문제지만, 중소인쇄업체들이 살자면 모색해볼 수 있을 현실적인 대안일 것이다. 기존의 조합이 이런 역할을 모색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 있는 한국 인쇄시장, 일본만 봐도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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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 인쇄 작업장에서 인쇄 공정을 설명하고 있는 현경남 서광프린텍 사장. ⓒ 백병규


- 인쇄 단가가 너무 낮다는 게 가장 큰 문제인 것 같은데, 나름 수요 공급, 혹은 경쟁에 따라 형성된 가격 아닌가?
"맞다. 그러나 그것이 최소한의 생산비에도 못 미친다는 데 문제가 있다."

- 그러나 그 가격에도 하겠다는 인쇄소들이 많은 것 아닌가?
"대형 인쇄업체들은 그래도 여력이 있다. 그러나 중소업체들은 말 그대로 '출혈 수주'다. 인쇄업은 고정설비업이다. 기계를 돌리지 않으면 앉아서 망한다. 기계도 다 자기 돈으로 사고, 공장이나 사무실도 자기 것이라면 밑지는 단가라면 기계를 돌리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대다수 중소인쇄업체들은 그럴 수 없다. 기계를 놀리느니, 밑지는 단가라도 기계를 돌려야 그나마 자금이라도 회전되니까 돌리는 것이다."


- 인쇄업체만 그런 것은 아니지 않느냐?
"사회 풍토가 바뀌어야 한다. 일본 같은 경우는 대형 인쇄업체들이나 중소인쇄업체 모두 밤 새워 인쇄기를 돌리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루 8시간에서 많으면 10시간, 정해진 시간만 인쇄기를 돌린다. 대신 품질에 신경을 쓴다. 그럴 수 있는 것은 인쇄단가가 되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이야기지만 일본 인쇄 단가는 우리의 7~8배 정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 그동안 못 받은 돈이 연간 1억 원 정도 된다고 했는데.
"역시 사회 풍토의 문제가 크다고 본다. 우리에게 일을 준 사람도 돈을 못 받거나 했다면 그래도 이해가 된다. 그러나 자신들은 받을 돈 다 받고도 당연히 지불해야 할 인쇄비는 주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기획사 등에서 납품 대금이 들어오면 그 돈 가운데 인쇄비 등 다른 곳에서 들어 간 제조비용은 자신들의 돈이 아니라고 생각해야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 악착같이 받아내려 하지 않아서 그런 것은 아닌가?
"그런 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소업체들로서는 돈 받는 일에 매달릴 여유도 그리 없다. 영업사원을 둔 적도 있지만, 거래처에서 계속 미루면 별 도리가 없다. 기본적으로 거래는 믿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신뢰가 깨지니까 참 어렵더라. 사람들이 싫어진다. 그래도 돈 왜 안 받아 가느냐고 되레 돈 주는 쪽에서 채근하는 경우도 있긴 하다."

"한국, 중소업체 하기 힘든 나라... 멘토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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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농도조절판. 인쇄의 '마지막 품질'은 결국 기장의 손에 의해 결정된다. 적색과 청색, 노랑색, 검정색 각 유니트의 블랑켓에 묻는 잉크의 양을 얼마나 잘 조정하느냐에 따라 나오는 색감이 달라진다. 각 블랑켓 마다 오른쪽 끝에서 왼쪽 끝까지 구역별로 잉크량을 조정하게 돼 있다. ⓒ 백병규


- 인쇄업은 사양산업이라는 말 많이 하는데.
"종이 인쇄 물량이 많이 줄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인쇄가 필요한 부문은 무궁무진하다. 인쇄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디지털 인쇄 등 새로운 기술과 기계도 많이 나오고 있다."

- 을지로 인쇄골목을 가 봐도 젊은 기술자들이 많지는 않아 보인다.
"갈수록 기술자를 찾기 힘들다. 3D 업종이라고 젊은 사람들도 기피한다. 오죽하면 직접 인쇄기를 돌리겠다고 생각했겠느냐. 그러나 인쇄 기술을 익히면 밥 먹고 사는 데 지장은 없다. 기술을 잘 배우고 익히면 갈 곳은 많다. 을지로나 성수동 인쇄업자의 60% 정도는 기계를 돌리다가 직접 공장을 차린 분들이다. 그런 분들이 기계도 잘 아니까 잘한다."

- 인쇄 기술을 배우기가 어렵나?
"인쇄기가 간단해 보이지만 사실은 첨단 기계다. 내가 갖고 있는 케바우 인쇄기의 경우 시간당 최대 1만5000장을 찍어낸다. 초당 4장 꼴로 뽑아낸다. 컬러니까 종이(전지) 한 장이 흑색(B), 적색(M), 청색(C), 노랑색(Y) 4개의 유닛(블랑켓)을 0.25초 안에 지나면서 정확하게 서로 핀이 맞아야 한다. 각 유닛의 핀이 조금만 엇나가도 색이 번진다. 각 유닛으로 종이를 보내주고 받는 것은 집게가 한다.

다루면 다룰수록 이런 기계 어떻게 만들었나 싶다. 보통 정밀한 게 아니다. 독일과 일본이 세계 인쇄기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이유다. 게다가 색감을 맞추는 것은 아무리 자동화됐다지만 기계로만은 안된다. 결국 기술자(기장)의 감에 의해 맞추게 된다. 기계의 특성이나 기능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제대로 색을 내자면 보통 노하우가 아니다. 열심히 배우고 창의적으로 공부를 하면 어디서나 대접받는 기술자가 될 수 있다."

- 20년 가깝게 인쇄업에 종사했는데.
"영업을 하던 때와 인쇄기를 돌리고 중소업체 하나 꾸리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뭣 모르고 뛰어 들어서 이 길을 왔지만, 이럴 줄 알았으면 아마 시작하지 않았을 것 같다(웃음). 대한민국은 중소업체 하기가 정말 어려운 나라다. 자영업을 시작하거나 그런 분들에게 충분히 준비할 수 있도록 해 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중소업체를 운영하는 사람에게는 정말 강력한 멘토가 있어야 할 것 같더라."
#인쇄업체 #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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