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소심하게 만드는 제주도민들의 한마디"도민이세요?"

[서울처녀 제주착륙기⑧] 누구보다 제주를 사랑한 사람 김영갑

등록 2012.12.15 21:22수정 2013.03.18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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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를 찾는 육지의 관광객에게 제주도 사람을 분류하라고 하면, '제주에 사는 사람들'과 '관광객'으로 나눌 것이다. 하지만 '제주도에 사는 사람들'에겐 그 문제가 조금 더 복잡해진다. 도민이라고 해서 다 같지가 않다.


제주 토박이. 제주에서 나고 자랐지만 육지에 나갔다가 다시 돌아온 사람. 그리고 제주에서 나지 않았지만 제주에 살겠다고 온 이주민. 그리고 관광객이 있는 것이다.

나는 당연히 굴러들어온 이주민 그룹에 속한다. 그리고 가끔 이런 나의 '정체성'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건 생활 속 사소한 경우에서 종종 만나는데, 말하자면 이렇다.

'서울시민' 친구가 내려와 저녁을 먹으려고 제주시에 있는 근고기집을 갔다. 한라산 한 병 달라고 하자 식당 종업원이 어김없이 묻는다. 

"한라산은 순한 맛(19.5도의 녹색 병의 한라산 소주)이 있고 또…." 
"하얀 걸로 주세요. (흰색 투명한 병의 21도 한라산소주)"
"도민이세요?"
"네."
"난 또 서울에서 오신 줄 알고…."

'도민이세요?'라는 질문에 망설임없이 '네'라고 대답하자, 친구가 어디서 사기를 치냐는 듯이 나를 보고 샐쭉 웃는다.
그럼 나는 그런다.


"내가 그럼 도민 아니냐?"

대구에 있는 식당에 갔을 때 같은 상황이라면 식당 종업원은 '대구 사람이세요?'라고 물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제주도 사람이세요?가 아닌 '도민이세요?'라고 묻는다. 도민은 맞다. 주민등록이 제주도로 돼 있고, 제주도에 사는 사람이니까.

그런데 뭔가 걸쩍지근하다. '도민이세요?'라는 질문에는 '도민=토박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살러 온, 제주도에 얼마 살지 않은) 도민이에요'라고 부연설명을 해줘야 할 것만 같다.

제주도가 좋아서 살러 온 내가 이런 감정을 느끼는 건, 그 구성원으로 인정받고 싶어서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런 질문에서 언젠간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것을. 그 자유는 주위에서 인정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내 자신 스스로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제주 섬 사람들만의 아픈 역사와 고달팠던 삶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이렇게 성급하고 소심한 나 자신을 볼 때면, 떠올리게 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열댓번 정도 가본 곳인데도, 다시 한 번 발걸음하고 싶은 곳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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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갑 갤러리 입구의 모습이다. ⓒ 조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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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갑 갤러리의 정원은 바람, 돌, 사람을 주제로 아름답게 꾸며져있다. ⓒ 영남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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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에 전시된 김영갑씨의 사진을 사람들이 감상하고 있다. ⓒ 조남희


또 가고 싶은 그곳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리에는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이 있다. 사진작가 고 김영갑씨의 사진갤러리다. 그는 충남 부여가 고향이다. 하지만 1982년부터 제주도에 반해 서울과 제주도를 오가며 사진 작업을 하다가 1985년 아예 제주도에 정착했다.

그리고 루게릭병이라는 불치병을 얻어 2005년 세상을 등지기까지, 20년 동안 제주도의 바닷가와 중산간, 한라산과 마라도 등 섬 곳곳을 누비며 제주도의 모든 것을 사진으로 찍었다. 극한의 가난과 외로움 속에서 제주의 자연을 스승 삼아 오로지 제주도를 사진으로 담는 일에만 몰두했다. 그는 밥먹을 돈을 아껴 필름을 샀고 배가 고프면 들판의 당근이나 고구마로 허기를 달랬다.  

그렇게 찍은 목숨과도 같은 사진들이 창고에 쌓여 곰팡이 슬어가는 것을 보다 못한 그는, 삼달리의 폐교를 빌렸다. 이미 병을 얻은 그는 움직일 수 어려운 몸으로 직접 폐교를 개조해 갤러리를 만들었다. 그렇게 지어진 갤러리가 지난 2002년 개관했다. 그의 유골은 바로 그 김영갑 갤러리 마당에 뿌려졌다. 이제 김영갑 갤러리는 제주도를 찾는 사람들에겐 한 번씩 들러야 할 명소가 됐다. 사람들은 말한다. 그의 사진에서는 바람 냄새가 난다고.

하지만 그가 섬에서 생활한 지 십년이 좀 넘었을 때도 여전히 토박이들에게는 '뭍의 것'에 속했다고 했다. 그의 사진을 보며 섬사람들은 그가 뭍에서 왔기 때문에 섬사람들이 찍은 것과 다르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사진을 찍는 동기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세상이 변해 오늘날 뭍의 사람들은 섬으로 몰려와 바람 많은 척박한 땅에 뿌리내리려 한다. 사람 살 곳이 못 된다며 변방이라 부르던 시절, 토박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피눈물을 흘렸었다. 인내와 희생만을 요구하던 시절을 살다간 그들의 땀과 눈물의 흔적이 이 땅에는 아직 남아있다. 그렇게 살다 떠나간 토박이들의 흔적들을 한곳에 모아야 한다고 결심했다. 제주도에 정착하게 된 것은 섬에서 나만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뭍의 것들이기에 일상적인 풍경이 새롭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내 사진에 표현하고 싶은 주제(마음)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 섬에 내가 있었네', 김영갑 저, 129p)

토박이들에게 섬사람 소리는 못 들었지만, 그는 '삽시간의 황홀'한 그 한 순간을 통해 제주도의 바람과 비를, 구름을 읽는 사람이었다. 외로운 섬 노인들의 말벗이 되어드리며 삼성혈 신화에서 4·3사건까지 제주도의 역사를 깊이 이해하려 했다.

그리고 사진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할지를 생각했다. 일년 내내 밭을 기어 다녀도 궁핍함을 면하기 어려웠던 섬사람들의 삶을 온몸으로 겪으며 삶이 무엇인지 배웠다. 그는 말했다. '20년 동안 자연에 몰입하여 발견한 것이 이어도이며, 제주인들이 꿈꾸었던 유토피아를 나는 체험했다'고.     

나는 김영갑씨의 제주도를 사랑하는 마음과 제주도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그것을 평생의 화두로 삼았던 의지와 열정을 따라갈 수 없다. 그래도 내가 '도민'인가 싶은 소심한 마음이 들 적엔, 그저 김영갑씨를 생각하며 조용히 '나의 이야기'를 만들어가야 겠구나 싶다.   

이건 여담이다. 며칠 전 풍수지리학을 보기 위해 오름을 탐방한다는 이야기가 있어 체오름에 가 보았다. 체오름은 인물이 난다는 명당의 지세를 가진 곳이라 했다. 이 지역의 인물이 누가 났을까 생각해보니, 공교롭게도 체오름에서 불과 몇 킬로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인 구좌읍 대천동에 김영갑씨가 살았더랬다.   

나는 재미있는 생각이 들어 그 날 풍수지리 해설을 책임진 제주관광대학교 안선진 교수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혹시 인물이 난다는 체오름의 명당 기운이 구좌읍 대천동까지 미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체오름은 덕천리에 영향력을 미치는 오름이고요. 구좌읍 대천동사거리쯤은 부소악의 지맥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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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오름에서 내려다보이는 동부지역의 오름들이다. ⓒ 조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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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오름의 분화구 속 모습. ⓒ 조남희


은근히 아쉬웠다. 그렇지만 곧 그런 나의 질문 자체가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영갑씨는 중산간 지역의 오름들을 십수년동안 안방 드나들 듯 누비고 다녔던 사람이다. 김영갑씨가 살았던 동네가 체오름의 기운을 받지 못한 곳이었다 해도, 그건 아무런 의미가 없을 듯 하다.

섬 사람이 보지 못한 제주도를 보았고, 한 평생을 오롯이 제주도를 사진에 담는데 바친 그. 그리고 그가 남기고 간 갤러리는 제주도를 찾는 사람들도 하여금 발걸음을 끊이지 않게 한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제주도 #김영갑갤러리 #체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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