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밀레' 박수근의 고향 양구에 가다

[양구·인제 여행기] 박수근미술관에서 느낌 감흥

등록 2012.12.25 15:20수정 2013.07.1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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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나와 친구들은 강원도 양구군의 박수근미술관과 인제군 수산리의 자작나무 군락지를 당일치기로 다녀왔다. 예전 이곳까지는 무척 먼 길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도로가 좋아져서 당일로 돌아볼 수 있다.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양구로 향했다. 잠시 휴게소를 다녀온 다음 토막잠을 자고 일어나니 10시 무렵에 양구읍에 있는 '박수근미술관(朴壽根美術館)'에 당도한다. 이곳 미술관은 양구군 주도로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서민적인 화가로 한국의 밀레라는 평을 받았던 박수근 화백의 예술혼을 기리기 위해 2002년 생가 터에 세워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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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 박수근미술관 화가의 좌상 ⓒ 김수종


전시관에서는 화가의 미공개 스케치 50여 점과 수채화 1점, 판화 17점과 직접 쓰고 그린 동화책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엽서 모음과 스크랩북, 생전에 사용하던 안경, 연적, 편지와 도서 등 200여 점 등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가 직접 그린 수채화 1점을 제외하고는 유화는 1점도 없다. 그의 작품 값이 호당 1억 원을 웃돌아 구입하는 데 막대한 비용이 들어 가난한 지자체가 구매하기에는 부담이 크기 때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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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 박수근미술관 선생의 글 ⓒ 김수종


미술관의 전체적인 규모는 이곳을 찾는 관람객들이 휴양과 함께 산책 등을 즐길 수 있도록 4500평 정도의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산언덕 위에는 화가의 묘소가 있어 참배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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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 박수근미술관 제1관 ⓒ 김수종


난 버스에서 내려 우선 미술관 전체의 느낌이 남다름에 놀랐다. 크게 보면 공원이고, 구릉지를 중앙에 두고 양쪽에 큰 전시관 건물이 두 동으로 나뉘어져 있다. 특히 입구 쪽의 1관 건물은 돌로 외벽을 쌓아 모양도 특이하고 멋스럽다.

스튜디오 메타 대표인 건축가 이종호 선생 작품이라고 한다. 위에서 조망해 볼 수 없어 전체 모양을 짐작하기는 어려웠지만, 분명 누워있는 거대한 동물의 형상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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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 박수근미술관 화가의 작품 ⓒ 김수종


어린 시절 밀레의 '만종'을 바라보며 화가의 꿈을 키웠다는 박수근은 보통학교 밖에 다니지 못했다. 하지만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했으며 짧은 공무원 생활과 미술교사를 거치면서 평생 가난하게 살면서 시민들의 일상을 그림으로 그렸다.

어렵게 살았던 경험 때문인지 그는 서민의 삶을 소재로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리고자 일생을 바쳤다. 그는 단순한 형태와 선묘를 이용하여 대상의 본질을 부각시키고, 서양화 기법을 통해 우리 민족적 정서를 거친 화강암과 같은 재질감으로 표현해냄으로써 한국적 미의 전형을 이루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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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 박수근미술관 화가의 작품 ⓒ 김수종


힘들고 고단한 삶속에서도 그는, 삶의 힘겨움을 탓하지 않고 살아가는 서민들의 무던한 마음을 붓으로 그렸다. 절구질하는 여인, 광주리를 이고 가는 여인, 길가의 행상들, 아기를 업은 소녀, 할아버지와 손자 그리고 김장철 마른 가지의 고목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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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 박수근미술관 화가의 작품 ⓒ 김수종


그는 예술에 대하여 거의 언급한 일이 없고 또 그럴 처지도 아니었지만 그의 부인 김복순 여사가 쓴 <아내의 일기>를 보면 "나는 가난한 사람들의 어진 마음을 그려야 한다는 극히 평범한 예술관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의 미술기법은 독특하게 단순화시킨 소박한 주제 전개와 굵고 명확한 검은 선의 윤곽, 흰색, 회갈색, 황갈색 주조의 평면적 색채에 명암과 원근감이 거의 배제된 특질적인 표현이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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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 박수근미술관 선생의 작품 ⓒ 김수종


또한 가난과 서민 생활에 사랑의 눈길을 집중시키는 등 주제의 일관성 및 독특한 조형성으로 성숙된 예술적 경지를 반영했다. 여기에 화강암질의 기법과 표현적 내면성도 절정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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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 박수근미술관 정말 마음에 든 호랑이 판화 ⓒ 김수종


나는 그가 결혼 전 약혼자 김복순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약혼 전 편지>의 내용은 "실례인 줄 알면서도 이 편지를 보내오니 용서하시고 끝까지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나는 양구군 양구면 정림리 부농가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는 고운 옷에 갓신만 신고 자랐습니다. 그런데 내가 일곱 살 되던 해 아버지의 광산사업이 실패하고 물에 전답이 떠내려가서 우리 집은 그만 가난하게 되었습니다... "로 시작되며 이후 그림이 대한 철학과 보고 싶다는 말로 끝을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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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 박수근미술관 2관 전시관 밖에 걸린 작품 ⓒ 김수종


예술가의 인간적인 측면이 느껴지는 편지였다. 전시장을 둘러보면서 주로 판화작품이 많은 것이 아쉽기도 했지만, 나름 좋은 그림이 많아서 행복했다. 전시장 구석에 있는 호랑이를 그린 판화가 무척 마음에 들어 한참을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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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 박수근미술관 후배들의 전시회 ⓒ 김수종


제2전시관으로 이동했을 때 그를 좋아하는 많은 후배들이 중심이 되어 그의 '탄생 100주년 기념 선포식 및 기념 판화전작집 시판 기념식'을 겸해 열리는 '박수근과 한국판화 졸(拙)과 박(朴)의 미로 부르는 칼 노래와 판 울림' 전시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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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 박수근미술관 제2관 ⓒ 김수종


김봉준, 김억, 류연복, 이상국, 홍선웅, 강행복, 김상구, 서상환, 안정민, 이혜영 등 당대 최고 작가들의 자료 및 판화 40여 점은 그의 뜻을 잇기에 충분한 감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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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 박수근미술관 김봉준 화백의 판화 ⓒ 김수종


아울러 곁에 있는 창작스튜디오에서는 젊은 작가들의 작품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숙식과 작업실을 제공하고 있다고 하니, '이곳이 박수근 미술의 새로운 학교가 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넓은 부지에 큰 건물과 보기에 좋은 작품들, 주변의 소나무 숲, 화가의 동상, 묘소 등 다양한 볼거리가 창작을 불태우는 작가들에게도 힘이 되고,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에게도 큰 감동을 주는 곳이다.
#박수근미술관 #양구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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