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신혼여행 다녀온 후 전과자가 되다

[나의 황당 해외여행기] 태국에서 만난 쓸개 빠진 '사기의 추억'

등록 2012.12.29 10:50수정 2012.12.29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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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양 6대주는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살면서 외국물 좀 먹었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만 빼고 다양하게 다녀봤으니 나름 해외여행 해 본 축에 낀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중 여행을 목적으로만 간 것은 두어번인데 가장 기억에 남는 해외여행을 꼽으라고 한다면 뭐니뭐니해도 처음 외국을 나갔던 신혼여행입니다.


때는 1995년 3월 3일, 제가 결혼식을 한 날입니다. 이른바 '세계화'라는 화두를 국정 과제로 내세웠던 김영삼 정부 당시 우리가 신혼 여행지로 선택한 곳은 태국의 방콕, 푸켓 코스였습니다. 한편, 우리가 이처럼 과감하게 신혼 여행을 해외로 결정한 것은 '정부 시책'에 따른 분위기 편승이었습니다.

당시 김영삼 정부는 외국에 나가 견문을 넓히는 것이 '세계화'라는 좀 묘한 논리로 국민에게 해외 여행을 적극 권장했습니다. 그래서 해외 여행시 국민 부담을 줄여 주겠다며 달러당 환율을 800원대 초반까지 끌어 내리기도 했습니다.

사족이지만 당시 이같은 '환율 인하' 정책에는 꼼수가 있었습니다. 자신의 임기중 국민 1인당 소득(GNP)을 1만 달러로 만들어 이를 치적으로 삼고자 한 김영삼 정부의 의도가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처럼 무리한 환율 정책 등으로 인해 추후 외환 위기인 IMF 사태가 불거진 아픈 기억이 새롭습니다.

각설하고, 처음으로 해외 여행을 가는 것이었기에 어수선했습니다. 여권을 발급받는 과정부터 이후 챙기고 확인하고 나가는 것까지 모두 낯설었습니다. 우왕좌왕으로 시작한 해외 여행기는 그래서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많은 실수담에 씩~ 웃음이 납니다. 시작은 신혼여행을 떠나기 전날 밤부터입니다.

태국과 한국 기온, 어디에 맞춰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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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 여행지에서 다정한 행복 푸켓에서 보낸 신혼 여행은 지금도 행복한 추억입니다. 배를 타고 007 영화 촬영지를 향해 가던 중 가이드가 촬영해 준 사진입니다. ⓒ 고상만


한국과 달리 태국의 3월 초는 평균 온도가 34도에 달한다며 여행사는 꼭 가벼운 여름 옷을 가져가야 한다고 수차례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낯선 외국을 가는데 가급적 짐을 가볍게 꾸려가자고 합의했던 우리 부부는 따로 옷을 챙기지 말고 아예 처음부터 가벼운 옷을 입고 가기로 했습니다. 더구나 명색이 춘삼월인데 공항에 잠깐만 있다 비행기를 타고 출국할 테니 별 문제 있겠나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결혼식을 마친 바로 그날 출발하는 비행기가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때부터 였습니다. 결국 다음날 새벽 6시 첫 비행기를 타기로 했는데 이른 새벽부터 오기도 뭐하니 아예 김포공항 근처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저녁을 먹으려고 숙소를 나와 보니 사정이 달랐습니다. 갑작스러운 꽃샘 추위가 닥친 3월 초의 밤은 그야말로 '한 겨울'이었습니다.

하늘하늘한 봄 옷만 입고 나온 아내는 순간 얼었고 티셔츠 하나만 입고 밖에 나온 저 역시 봄날은 간데없이 온 몸을 휘감아 도는 한기에 오싹했습니다. 결국 그날 밤, 꼼짝없이 감기에 든 우리 부부는 이후 신혼 여행지인 태국에 도착해서도 내내 날은 더운데 코는 훌쩍거리는 이중고를 겪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가 발생한 것은 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할 때였습니다. 당시 만 30세 이하인 남자가 외국 여행을 갈때는 병무청 '공항 출장소'에 출국 신고를 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새벽 6시부터 그 넓은 공항 내부를 물어 물어 찾아가 출국 신고를 하는데 담당 공무원의 태도가 영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부하 대하듯 반말 비슷하게 말을 하는 것도 그렇고 친절한 태도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것 역시 제 신경 줄을 튕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부당한 것은 참고 못 보는 제가 이 꼴을 보고 그냥 지나갈 수 없었습니다. "민원인에게 좀 더 부드럽게 대할 수 없냐"고 따지다가 결국은 언성이 높아지는 시비로 확대되었습니다. 따지는 저도 만만치 않았지만 근무하는 병무청 공무원도 거침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옥신각신하며 점점 고성이 올라가던 그때, 다행히 아내가 들어와 저를 데리고 나오면서 상황이 종료될 수 있었습니다.

신혼 여행 출발부터 말다툼을 했으니 아내의 기분이 좋을리 없었습니다. 결국 비행기가 태국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저는 아내에게 내내 핀잔을 받는 처지가 됐습니다. 그런데 이 돌발적인 사건이 생각지도 못한 변고가 될 줄 그때까지 몰랐으니, 사람이 참을 때는 참아야 한다는 교훈을 새긴 사건이 됐습니다. 일단 그 사연은 뒤로 돌리고 비행기 안에서 벌어진 사건부터 이야기하겠습니다.

기브 미 호프? 비어? 아... 창피해!

아침부터 병무청 직원과 다투고 다시 이 일로 아내에게 핀잔을 들어가며 태국까지 비행하는 시간이 즐거울 수 없었습니다. 어떻게 시간을 보낼까 고민하던 그때 제 눈에 들어온 모습이 있었습니다. 승객들이 스튜어디스에게 기내 서비스로 술을 청해 마시는 것이 아닌가요. 생각해보니 비행기에서는 무료로 술을 준다는 상식이 떠 올랐습니다.

"그래. 나도 한잔 마시는거야. 좋았어."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그럼 뭘로 마실까" 소주, 와인, 양주? 하지만 와인은 당시만 해도 마셔 본적이 없고 그렇다고 소주나 양주를 아침 시간부터 마시는 것도 그렇다고 생각한 제가 결정한 것은 맥주였습니다. 결정을 했으니 이제 해야 할 일은 스튜어디스와 눈을 마주치는 것이었습니다. 이리 저리 눈동자를 굴렸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제가 용건이 있다는 것을 알게된 한 스튜어디스가 다가왔을 때 저는 낮은 목소리지만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기브 미 호프."

그런데 반응이 이상합니다. 무슨 뜻인지 몰라 다시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발음이 부정확해서 못 알아 듣나 싶어 부끄럽지만 다시 정확하게 발음하고자 좀 더 강한 톤으로 길게 말했습니다.

"기브 미 호~오~프"

고백하자면 사실 제가 영어가 매우 약했습니다. 어느 순간 영어가 재미없어 그때부터 영어 공부를 등한시했습니다. 그래서 "맥주를 주세요"라는 말을 어떻게 하는 것일까 고민해보니 그때 불현 듯 떠오른 모습이 있었습니다. 바로 제가 숱하게 다녔던 맥줏집들의 간판이었습니다.

레벤 호프, 카이저 호프, 밀러 호프, 하이트 호프....

아. 맞다. 맥주는 분명 '호프'일 거야. 그러니까 그 많은 간판들이 다 무슨 무슨 '호프'라고 쓰고 있겠지. 그래서 저는 확신을 가지고 '기브 미 호프'를 외쳤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스튜디어스는 제가 원하는 뜻을 계속해서 못 알아 듣는 것이 아닌가요. 그리고 제 영어 발음이 안 좋아서 못 알아 듣나 싶어 다급해진 제가 계속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호~오~프'만 외치는 그때였습니다. 이 난감한 상황을 정리해 준 사람은 또 다시 아내였습니다.

제 모습에 당황한 아내가 스튜디어스에게 제대로 정정해 준 것입니다. 고백하자면 저는 그날 처음 맥주는 '호프'가 아니고 '비어'임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아내를 존경합니다. 저에게 맥주는 '호프'가 아니라 '비어'임을 가르쳐 준 아내. 사랑합니다.

아내에게 정강이를 걷어 차인 '뱀 농장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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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사원에서의 신혼 부부 태국은 불교 도시답게 많은 사원이 있었다. 지금은 어디인지 모르는 이곳에서 아내와 남긴 한컷이다. ⓒ 고상만


비행기 안에서 빚어진 촌극으로 시작한 첫 해외여행이자 신혼여행은 그래도 즐거웠습니다. 아내와 함께 태국의 유명 관광지를 둘러보며 또한 처음 보는 태국의 토속 음식을 나눠먹던 기억 역시 근 20여 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을 수 없는 행복한 기억입니다. 다만 한가지 잊어 버리고 싶은 추억이 딱 하나 있습니다. 아내가 처음으로 제 정강이를 걷어 찬 '뱀 농장 사건'이 바로 그것입니다.

지금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 당시 여행 가이드가 반드시 들리는 곳이 있었습니다. 바로 쇼핑타운을 비롯한 '무슨 무슨' 농장이 그것입니다. 그곳에서 손님이 구입하는 비용의 일부분을 리베이트로 받다보니 가이드 입장에서는 필수 일정입니다. 저 역시도 피해갈 수 없는 곳을 가야했는데 바로 뱀 농장이었습니다. "근처에 뱀 농장이 있는데 잠깐 들려보지 않겠냐"는 가이드에 말에 거부 의사를 표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일행이 좋다고 했고 저의 의견은 금방 무시됐습니다.

그래서 도착한 뱀 농장에는 그야말로 별별 유형의 뱀이 다 있었습니다. 특히 코브라 뱀이 적에게 위협을 가하고자 몸을 납작하게 만드는 과정과 그러한 뱀을 맨 손으로 휘어 잡은 후 관광객들에게 만져보라고 권하는 것은 긴장감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럼 이제 보여줄 것 다 보여줬고, 해볼 것 다 해봤으니 남은 것은 무엇일까요. 맞습니다. 뭔가를 사야겠죠.

예상처럼 뱀 장수는 우리 일행에게 '뱀의 쓸개'라며 시커멓게 생긴 것이 담긴 통을 내밀었습니다. 설명만 들으면 만병 통치약입니다. 나이든 무릎도 좋아지고 신장도 좋아지고 또 정력까지 좋아진다는 신비의 명약, '코브라 뱀' 쓸개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한통에 30개씩 담긴 뱀 쓸개를 양가의 아버님께 여행 선물로 사 가시면 틀림없이 칭찬 받을 것이라며 본격적인 유혹을 시작했습니다. 너무 약효가 좋아 귀국후에도 추가 주문하는 사람까지 있다는 말 역시 빼놓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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랍스타를 든 아내 유명 관광지를 둘러보고 그곳의 특산물을 함께 나누었던 신혼 여행. 가이드는 그곳에 명물이라며 랍스타 농장으로 안내했고 싫다는 아내에게 랍스타를 들어보라며 강권하여 촬영한 사진이다. 내 눈엔 아름답다. 그리고 지금도....^^ ⓒ 고상만


하지만 저는 살 생각이 없었습니다. '뱀' 쓸개도 싫었고 그러한 것을 먹으라고 사는 것 역시 싫었습니다. 그런데 함께 간 다른 여행객들은 달랐습니다. 한꺼번에 10통씩 사는 것이 아닌가요. 그러자 갑자기 곁에 있던 아내가 입장이 바뀌었습니다. "우리도 두통만 사자"는 것이었습니다. 싫다고 하는 저와 "남들 사는데 우리도 사자"는 아내 사이에서 가벼운 실랑이가 벌어지자 곁에 있던 가이드가 아내 입장을 거들고 나섰습니다.

"원래 한 통에 50달러씩 받는 것인데 제가 특별히 이야기해서 이쪽은 35달러에 사게 해 드릴게요. 그러니 두통만 사세요. 다른 사람들은 다 사는데 혼자만 안 사시면 좀 그렇잖아요. 사모님도 원하시는데....."

하지만 저는 완강했습니다. "뭘 먹을 게 없어 뱀 쓸개를 먹냐"며 끝까지 거부했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것으로 선물을 사면 된다"고 말하던 그때였습니다. 갑자기 제 오른쪽 정강이에 뜨거운 불이 떨어진 것처럼 아팠습니다. 세상에. 앉아 있던 테이블 아래에서 아내가 제 정강이를 걷어찬 것입니다. 난생 처음 당해본 아내로부터의 황당한 폭력. 다른 사람들은 10통씩 사는데 기껏 2통도 못사겠다며 버티는 제가 미웠다고 합니다. 결국..... 샀습니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합니다. 사고 보니 또 좋은 겁니다. 귀한 '코브라 쓸개'라고 하니 양가의 두 아버님에게 드리면 정말 좋아하실 것 같아 저도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그러자 아내가 다시 또 한통을 사라는 겁니다. 좋다는데 당신도 하나 사서 먹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건 정말 싫다고 딱 잘라서 말했습니다. 뱀 농장에서 뱀을 봤는데 그걸 보고 나는 못 먹겠다며 단호하게 거부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가지고 온 '코브라 쓸개'의 운명은 기구했습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그날 저녁,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기가 막힌 타이밍 앞에 '코브라 쓸개'는 바로 쓰레기 통으로 직행해야 했습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우리를 위해 한 상 잘 차려놓은 저녁 밥상 앞에서 이제 아버님에게 그 귀한 '코브라 쓸개'를 선물로 사왔다며 으스대려던 찰나였습니다. 마침 틀어놓은 '9시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어떤 기자의 리포팅에 우리 부부는 동시에 얼어붙었습니다.

보도는 최근 태국 등 동남아를 여행하며 사온다는 '코브라 쓸개'와 관련된 내용이었습니다. 기자는 이른바 '코브라 쓸개'라며 태국 등 동남아에서 판매되고 있는 것들이 사실은 '닭' 쓸개이거나 '오리' 쓸개이며 심지어는 '돼지' 쓸개를 잘게 썰어 말린 후 이를 '코브라 쓸개'라고 속여 파는 사례가 빈번하다고 지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런 사기를 당하지 않으려면 구매 자체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황당을 넘어 멘붕으로 빠져 들어가던 그때였습니다. 함께 '문제의 뉴스'를 보던 아버지가 한심한 사람들이라고 혀를 차더니 저희에게 물었습니다.

"설마 너희들은 저런 것에 속아서 사오지는 않았겠지?"

뜻하지 않은 봉변? '병역법 위반' 전과자가 되다

결국 저희가 야심차게 준비한 '코브라 쓸개'는 지금까지 식구들은 모르는 비밀로 붙여 졌습니다. 그런데 첫 해외여행이자 신혼여행지에서 벌어진 사건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외국으로 출발하던 그날 새벽, 병무청 직원과 벌어진 말 싸움과 관련된 후폭풍을 이제 이야기하려 합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오고 대략 6개월이 지나가던 어느 날, 우연히 본 신문에서 '불길한 법 상식'이 눈에 띈 것입니다. 

내용은 이랬습니다. 만 30세가 넘지 않은 남자는 출국시 병무청에 신고해야 하고 마찬가지로 다시 귀국할 경우에도 2주 이내에 관할 동사무소에 귀국 신고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만약 이러한 신고를 하지 않을 경우 병역법 위반으로 3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기사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법 규정을 잘 몰라 벌금 전과자가 양산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악! 이럴 수가. 그제서야 생각해보니 그때 병무청 직원과 말 싸움 도중 아내가 저를 강제로 끌고 나갈 때 뒷통수에 대고 그 직원이 뭐라고 소리친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때는 화가 나서 "뭐라고 하는거야"라며 귀 담아 듣지 않았는데 생각해보니 뭘 자꾸 신고해야 한다고 했던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이 "귀국하면 2주 이내에 동사무소로 신고해야 한다"고 말했던 것 같은 불길한 느낌,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결국 그때 흥분한 나머지 그 말을 챙기지 못한 저는 뒤늦게 귀국 신고를 했고 이후 몰라서 일어난 일이라고 간곡하게 호소했음에도 끝내 30만 원짜리 벌금 전과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더 억울한 것은 이같은 법이 제가 벌금을 내고 약 석달이 지나가던 1995년 12월말 국회에서 폐지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김영삼 정부가 규제 완화 차원에서 불필요한 법을 폐지했는데 이 법이 불필요하게 국민 불편을 초래한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정말 끝까지 운이 없었던, 자진해서 신고한 덕에 막차로 벌금 전과자가 된 기구한 사연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다가올 결혼 20주년 기념으로 다시 한 번 태국에 가려 합니다. 처음 간 해외 여행이라서 경황이 없었던 그때와 달리 이번에는 차분하게 태국의 조용한 아침을 보고 싶습니다. 맨발의 탁발승이 시주를 받고, 아침 햇살을 받아 붉게 도드라졌던 꽃이 아름다웠던 조용한 태국의 아침.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했던 내 생애 첫번째 해외여행은, 그래서 지금도 입가에 미소를 띄우게 합니다. 행복했기 때문이지요.
덧붙이는 글 '나의 황당 해외 여행기' 공모글입니다.
#해외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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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운동가,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 의문사 및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을 조사하는 조사관 역임, 98년 판문점 김훈 중위 의문사 등 군 사망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오마이북),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돌베개), 다시 사람이다(책담) 외 다수.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 등 다수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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