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접수 코앞서 귀환한 한니발, 네 맘 알겠다

[시골 한의사, 미국을 달리다] 미국 자전거 횡단 76-77일

등록 2012.12.27 14:50수정 2012.12.27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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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9일 일요일
halfway, OR

미 오리건주 해프웨이(Halfway)에 일요일의 태양이 떠올랐다. 그림같은 침실에서 늘어지게 자고 기지개를 펴는데 아래층에서 계단 밟는 소리가 들렸다.


"성규! 교회 같이 갈래?"

빌 아저씨의 중후한 목소리였다. 그는 본 직업 외에 전도사(preacher)를 겸하고 있는데 이런 작은 시골마을에서는 따로 목사(pastor)가 없기에 그 역할을 담당한다. 옥스보우(oxbow)의 작은 교회로 설교를 떠나는 그와 동행했다. 교회를 다니진 않지만, 미국 문화 체험의 기회를 마다할 내가 아니다. 댐 근처에 교회가 세워져 있었다. 댐을 관리하는 아이다호 전력회사(Idaho power company)가 지역 사회를 위해 무상으로 대여해 준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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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보우(Oxbow) 교회 예배 한가로운 일요일 오전, 동네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어 예배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 최성규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든다. 어떤 이들은 음식을 챙겨왔다. 마치 포트 럭 파티(pot luck party; 미국, 유럽에서 보편화된 파티 형태로서 초대받은 사람들이 한두 가지 종류의 식사, 요리를 갖고 와서  다 같이 즐기는 파티) 같은 분위기. 조촐하지만 따사로운 훈김이 돈다. 남녀노소 마주 앉아 서로 문답하며 성경공부를 했다. 공보의 시절 시골 마을 회관에서 두런두런 모여앉아 어르신들이 말씀 나누던 모습이 떠올라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이제 내 차례야. 나, 나간다!"

내 옆에 앉았던 빌 아저씨가 자리에서 일어나 연단으로 향했다. 성경 말씀을 소개하며 설교를 하다가 자신이 최근 겪었던 소중한 만남에 관해 일화를 들려주었다. 가만히 듣고 있자니 내 얘기다. 스프링클러에 젖을 뻔한 자전거 여행자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는 대목에서는 사람들의 웃음이 터졌다. 다친 여행자를 찾아 베이커 시티를 헤집고 다녔던 이야기까지. 웃음으로 버무린 진심이 느껴져 순간 코 끝이 찡했다.


예배가 끝나고 빌 아저씨는 헬스 캐년(Hell's canyon)의 진면목을 보여준다며 헬스 캐년 댐(Hell's canyon dam)으로 나를 이끌었다. 우리는 흔히 그랜드 캐년이 최고라고 생각하지만 미국 현지인들, 그 중에서도 오리건 주와 아이다호 주 사람들은 이 헬스 캐년을 더 최고로 친다. 바닥에서부터 정상까지의 높이가 7993 feet (2,436 m)로 북미에서 최고 깊이를 자랑하는 협곡이다. 유유히 흐르는 스네이크 리버(Snake River) 양쪽으로 거대한 능선이 높이 치솟아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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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 캐년(Hells Canyon) 협곡 사이로 스네이크 리버(Snake River)가 흘러가고 있다. 일명 지옥의 협곡은 북미에서 가장 깊은 협곡이다. ⓒ 최성규


여름철에는 야생 염소들이 더위를 피해 숨어있지만, 겨울철이 되면 서늘해진 기후를 따라 무리 지어 아래로 내려온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자전거 코스가 아니라는 이유에 그냥 지나쳤던 북미의 진경을 오늘에야 보게 되었다. 인생사 새옹지마인지 사고 덕택에 얻은 게 상당히 많다.

나름 현지 관광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저녁 어스름 무렵. 우리는 향후 일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자전거 여행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박음쇠를 박은 무릎은 아직도 쑤시고 고름이 나온다. 무리하다가는 상처 부위가 다시 벌어지거나 덧날지도 모른다.

머리를 맞대고 대안을 찾아본다. 자전거 타는 시간을 최대한 단축시키기 위해 태평양 연안에 가장 가까운 도시로 이동하면 어떨까? 목적지인 플로랑스에 가까운 대도시로는 유진(Eugene)이 있다. 베이커 시티에는 하루 두 번 유진으로 운행하는 그레이 하운드 버스가 있다. 버스 노선을 보니 일직선으로 가는 게 아니라 북쪽의 포틀랜드(Portland)에 먼저 들렀다가 다시 남하하여 유진으로 우회한다.

그렇다면 유진이 아닌 포틀랜드에 내리면 어떨까? 유진보다 3시간 일찍 도착하는데다가 사촌형이 사는 시애틀과 가깝다. 포틀랜드에서는 태평양 연안에 있는 애스토리아( Astoria)를 향해 가면 된다.

"포틀랜드까지는 6시간 밖에 안 걸리는데. 내가 태워줄게!"

기다렸다는 듯이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아저씨와 손사래를 치는 나. 며칠 신세도 황송한데 그런 수고로움을 끼치는 건 나그네의 자세가 아닌 법. 아니, 아니, 아니되오. 주인은 더 주려하고 손님은 말리는 실랑이 속에서 오리건 주의 밤이 깊어간다.

7월 30일 월요일

Halfway, OR - Seattle, WA

428mile = 684.8km

눈을 떴다. 왼쪽 무릎과 왼쪽 팔꿈치에 덧댄 밴드를 들추어보았다. 상처에서 흘러나온 진물이 스며들어 비릿한 냄새가 났다. 왼무릎을 접었다 펴보는데 살갖을 파고든 쇠붙이가 무척이나 거북살스러웠다. 엊저녁에 생각했던 잠깐 동안의 라이딩마저 가능할지 의문이었다. 상처가 신속히 나으면 모를까, 빌 아저씨 집에서 언제까지 신세를 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여행을 접어야 하는 건가? 만감이 교차한다. 여기까지 3600마일을 달려 왔다. 바닷물이 넘실대는 오리건 주 플로랑스(Florence)까지는 단 400마일을 남겨두고 있었다. 제2차 포에니 전쟁(한니발전쟁)을 일으켜 각지에서 로마군을 격파하던 한니발 장군. 로마를 코 앞에 두고 복수의 칼날을 닦던 한니발. 갑작스레 본국 카르타고에서 온 전령은 대(大) 스키피오가 조국을 위협한다며 재빠른 귀환을 촉구한다. 한니발은 입술을 깨물며 철수 명령을 내렸다. 그와의 동일시는 무리겠지만 적어도 두 달의 페달질을 접어야 하는 소회(所懷)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일생에 한 번 더 여기에 올 수 있을까? 이루지 못한 일은 언제나 후회가 된다는데 그걸 감당할 수 있을지. 상처 뿐인 영광 대신 현명한 포기가 낫다고 자위하지만 진한 아쉬움이 묻어난다.

고심 끝에 여행 중단을 선언했다. 대신 사촌형이 사는 시애틀(Seattle)에 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당장 시간표 검색을 하니 베이커 시티에서 시애틀까지 6시간 반 만에 도착하는 그레이 하운드 버스가 있다. 출발 시간은 9시 40분.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마음이 급해진다.

빌 아저씨는 나를 픽업트럭에 태우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그와의 마지막 시간. 그리고 자전거 횡단 여행의 마지막 순간이었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줄이기 위해 지름길을 찾아 내달리는 가운데 우리는 못 다한 얘기 꾸러미를 풀어놓았다. 주제는 어느덧 입양 이야기로 옮겨갔다. 그는 친딸이 있음에도 6살짜리, 4살짜리, 1살 안팎의 아이 두 명을 입양했다. 아이들이 점차 커나가면서 친딸을 포함해 3명과는 사이가 좋지만 나머지 둘과는 관계가 소원해졌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감도 크지 않을까?

"입양까지 해서 키울 때는 기대가 있는 법인데 그렇게 관계가 틀어지면 속상하겠어요."
"제 배 아파서 낳은 자식도 어디 내 생각대로 자라던가?"

우문현답(愚問賢答)이다.

그는 해외입양을 하지 않은 이유를 들려주었다. 같은 나라 사람을 입양해야 진정 그 아이를 위한 환경을 만들어 줄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인종과 피부색이 다른 아이는 자라나는 과정에서 주위의 편견어린 시선과 이질감 속에서 괴로워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나만해도 빌 아저씨가 말해 주기 전까지는 백인 자녀들이 입양아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없었다. 그들은 자연스레 친자식처럼 길러졌을 것이다.

"사람들은 미국에는 고아가 없는 줄 알지. 여기 오리건 주만 해서 고아가 천 명이 넘어. 보통 부모가 죽거나 감옥에 가서 생기는데, 부모에게 버림받은 최악의 경우도 있어."

자녀를 낳지 못해 입양을 하는 일반적인 경우에 비춰볼 때 그에게 입양을 택한 특별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단순 명쾌한 대답이 들려왔다.

"그게 옳다고 여겼으니까."(I thought it's right)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 차는 어느덧 베이커 시티에 도착했다. 버스 출발 30분을 남겨둔 시점, 직원의 말에 우리는 혼란에 빠졌다.

"자전거는 박스포장을 하지 않으면 실어주지 않아요!"

버스 회사 측에 문의전화를 했을 때는 박스포장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난감해하는 나에게 빌 아저씨는 예의 여유 있는 미소를 날렸다. 그가 "우린 할 수 있어"라는 말을 남기고 상자를 구하러 나선 사이 나는 버스 티켓을 끊고 수하물 수속을 밟았다.

잠시 후 밖으로 나가보니 아저씨는 땀을 뻘뻘 흘리며 무언가를 붙들고 있었다. 자전거 상자를 구하러 간다던 그가 작은 상자 수 십 개를 가져온 것이다. 상자들을 하나씩 펴서 테이프를 칭칭 감아 더 큰 상자를 만들려는 중이었다. 테이프를 몇 통씩 써가면서 얼기설기 엮은 자전거 박스. 출발 시간을 5분 남기고 완성된 박스를 보며 우리는 동시에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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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합작품, 자전거 박스 빌 아저씨가 가져온 수 십개의 상자를 칭칭 동여매서 자전거를 포장할 수 있었다. 그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보내는 바이다. ⓒ 최성규


"해냈다!"
"야, 사람들한테 이거 내가 만들었다고 하지 마. 캐비닛 제작자 체면이 말이 아니네."

그럴리가요?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자전거 상자인 걸요. 이틀 전 나를 찾아다니며 흘렸던 땀방울이 오늘도 아저씨 이마에 송글송글 맺혀있었다. 버스를 막 타려는데 그가 돈 뭉치를 내밀었다. 손사래를 쳤다.

"제발 받아."
"그거까지 받으면 소화불량 걸려요."

버스에 올라탄 내게 빌 아저씨는 손을 흔들었다.

"다시 돌아와!"(come here again)

내가 탄 그레이 하운드 버스는 서서히 터미널을 미끄러지듯이 빠져나갔다. 두 달 반의 기나긴 여정이었다.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해 주었던 사람과의 정을 되새김질하며 눈을 감았다. 빌 아저씨! 안도현의 시 '너에게 묻는다'에서 한 번이라도 뜨거웠던 사람은 바로 당신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에필로그가 연재됩니다]
#미국 #자전거 #횡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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