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이룬 내 모습, 궁금하죠?

작은자야학, 지적장애 성인 연극 <꿈의 공장> 발표

등록 2012.12.26 16:51수정 2012.12.26 16:51
0
원고료로 응원
a

작은자야간학교 연극 ‘꿈의 공장’ 중 한 장면. ⓒ 심혜진


공장이다. 4명씩 두 조로 나눠 콘센트와 칼을 만들어 상자에 담는다. 커피 마실 시간도 없이 바쁘게 일하는 사이 새 세 마리가 날아와 노래를 한다. 공장에 활기가 도는 듯하더니, 이내 사장이 새들을 쫓아낸다. 잠시 후, 다시 날아온 새를 직원들이 안아주자 새는 꿈을 이뤄주는 산타할아버지를 공장에 초대한다. 꿈을 이룬 직원들은 신나는 패션쇼를 연다.

연극 <꿈의 공장>을 관객에게 처음 선보이는 자리다. 20일부터 23일까지 인천 부평문화사랑방에서 민들레장애인야학과 작은자야학, 참빛발달장애인대안학교가 함께 '2회 반짝별문화제'를 열었다. 4일 동안 그림 전시와 노래·연주 공연, 영화 상영과 연극 공연이 이어졌다.


이 가운데 <꿈의 공장>은 작은자야간학교 지적장애 성인들이 처음으로 연극에 도전해 만든 작품이다. 신체가 부자유스러운 지체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연극수업은 이미 여러 곳에서 시행되고 있다. 민들레장애인야학에서도 작년 뇌병변장애인들이 직접 대본을 쓰고 연기를 한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하지만 지적장애인의 경우 대사를 외우고 연기자와 연출자가 상호작용을 하는 게 어려워, 수업에 연극을 많이 활용하지 못했다.

지적장애인을 위한 새로운 수업 없을까?

이번 연극 수업은 작은자야학 성인 지적장애인반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김원호(30) 교사의 고민에서 시작했다.

"학생 중에는 한글과 수학을 10년 동안 공부하는 분이 계세요. 그럼에도 실력이 나아지지 않아 고민하시죠. 저 역시 3년 동안 수업하면서 내가 가르치는 내용이 이분들(학생)에게 정말 필요한 내용인지 의심하기 시작했어요. 저 뿐만이 아니라 다른 분들도 지적장애 성인을 위한 새로운 수업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 있었죠."

서로 다른 장애를 가진 이들이 저마다 수업에서 소외되지 않고, 교사의 일방적인 가르침 대신 학생 스스로 수업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게다가 문자를 벗어난 수업방식이어야 했다.

"결국, 말하고 듣고 움직이는 것이 중심이 되는 수업이 필요했어요. 하지만 막막했죠."

그러다, 작년 민들레장애인야학에서 진행한 문화예술교육으로 학생들이 자존감과 자신감을 갖게 됐음을 알았다. 자신이 표현한 작품에 주목하는 관객을 보면서, 학생들은 비로소 자신의 삶을 긍정하게 됐다. 야학 교사들과 논의해 문화예술교육 가운데 연극수업을 작은자야학에 적용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지난 4월부터 일주일에 세 시간씩 연극수업을 진행했다. 수업엔 교사 여섯 명이 참여했다.

행복한 질문 "다음 수업은 뭐에요?"

a

연극 ‘꿈의 공장’ 공연 후, 공연 참가자와 동료·가족들이 함께 무대에 모였다 ⓒ 심혜진


수업은 학생들이 자신을 표현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을 소개하고,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은 무엇인지, 꿈은 무엇인지 이야기했다. 또 큰 종이에 누워 서로의 몸을 그리고 색칠하며 자신을 드러냈다. 친밀감이 형성된 후엔 소중한 물건에 얽힌 추억을 나누고, 삶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이야기했다. 수업 사이사이 역할극과 상황극을 실습하기도 했다.

김 교사는 "자신의 이야기를 해본 경험이 드문 학생들이 질문과 상관없는 이야기를 두서없이 하거나 이야기를 충분히 하지 않아 생각보다 많은 부분에 교사들이 개입해야 했어요. 하지만 전과 다르게 수업시간에 많이 웃으시고, 수업이 끝나면 '다음 수업은 뭐냐'고 물어보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같이 즐거워졌어요"라고 말했다.

9월부터는 본격적인 연극 작업에 들어갔다. 학생들이 직접 겪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극을 만들었다.

"거의 모든 학생들이 장애인재활시설 작업장에서 일한 경험이 있더군요. 그래서 극 배경을 공장으로 했어요. 교사들은 그 안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알지 못해, 학생들이 스스로 상황을 연출했죠."

세 달 동안 대사를 외우고 동작을 맞췄다. 공연을 앞두고 학생들은 "우리가 정말 공연하는 게 맞나?", "떨린다", "좀 더 예쁜 옷을 입고 싶다"며 긴장감과 기대감을 드러냈다.

마지막까지 혼신을 다한 무대

공연 당일, 리허설은 공연 직전까지 끝나지 않았다. 각자 자신의 배역에 충실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혼신의 힘을 다했다. 드디어 공연장으로 들어가는 문이 열리고 관객들이 객석을 채웠다. 객석 맨 앞자리에는 휠체어가 늘어섰다. 이미 전날 연극공연을 마친 민들레야학 연극 공연팀이다.

무대에 불이 켜지고 얼굴에 소형 마이크를 붙인 배우들이 등장했다. 오랜 연습을 거친 덕분에 극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간혹 대사 순서를 잊은 동료에겐 눈짓과 손짓으로 이를 알려주느라 애를 쓰기도 했다. 저마다 꿈을 이룬 복장을 하고 패션쇼를 여는 마지막 장면은 관객에게 뭉클한 감동을 안겼다.

공연을 마친 문창선씨는 "많이 떨리지 않았어요. 재미있었어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김지태(45, 인천 십정2동)씨는 "정말 좋았어요. 앞으로 연극을 하는 데까지 열심히 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심선식(35)씨의 매형 윤성진(41, 인천 산곡동)씨는 "동료들과 함께 무대에 오른 것을 보니 대견하고, 앞으로 격려도 하고 이야기도 많이 나눠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라는 소감을 전했다. 세 자녀가 무대에 오른 이숙자(63, 인천 간석동)씨는 "야학에 다닌 후 아이들이 무척 밝아졌어요. 어느새 이렇게 커서 무대에 선 걸 보니 기쁘네요"라고 말했다.

김원호 교사는 "무사히 공연을 마쳐 다행입니다. 이번 공연이 수업 참가자들에게 좋은 경험이 됐을 거예요. 저도 다음엔 연극수업을 더 잘 할 수 있겠죠. 앞으로 기대해주세요"라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부평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 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작은자야학 #장애인연극수업 #꿈의공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글 쓰고, 글쓰기 강의를 합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영국 뒤집은 한국발 보도, 기자는 망명... 미국은 극비로 묻었다
  2. 2 '서울의 봄' 정해인 실존인물 보려고, 서울현충원에 100명 모였다
  3. 3 전주시청 1층에 가보셨나요? 저는 정말 놀랐습니다
  4. 4 멧돼지 천국이 된 밭... 귀농 5년차의 한숨
  5. 5 "400만 달라" LH직원 요구 거절하자 임대료 4배로 폭등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