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스타일> 흥얼대는 터키인의 한마디 "행님"

[나의 황당 해외여행기] 한국인 최초로 올해산 보즐레누보도 맛보다

등록 2012.12.26 21:01수정 2012.12.26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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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으로 향하는 태안 버스터미널에서부터 컨디션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게다가 3시간여를 버스로 이동한 뒤, 또다시 목적지인 스위스로 향하는 15시간의 비행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이미 지난해 스위스와 이탈리아를 생애 처음으로 다녀온 터라 이번의 장도에서 느껴지는 피로감은 출발하기도 전부터 밀려왔다.


더군다나 올해는 11월 10일 인천공항을 출발해 17일까지 6박 8일간의 일정으로 스위스·독일·룩셈부르크·벨기에·프랑스 등 5개국의 농촌체험관광 선진지를 취재 차 방문하는 일정이어서 단순관광 여행보다 빠듯한 일정이었다.

우리나라 시각으로 지난 11월 10일 오후 2시 비행기에 올라 오스트리아 빈을 거쳐 스위스 취리히 공항에 도착한 것은 출발한 지 15시간 만이었다.

<강남스타일> 콧노래 부르는 이방인의 말 "행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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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눈의 터키청년 이스마엘과 함께 단순히 버스기사였지만 가이드와 함께 사진사까지 자처한 형제나라 터키 청년입니다. 스위스 레인폴 폭포에서 찍은 사진인데 이 이후로도 이스마엘은 행님! 행님!하며 돈독한 우애를 이어갔고, 제 생일이라고 케익에 와인까지 선물해 줬습니다. ⓒ 김동이


"행님!"

지치고 초췌한 모습으로 취리히 공항을 나온 일행들을 맞이한 이는 푸른 눈의 버스기사였다. 수염이 덥수룩한 이방인의 입에서 나온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 한 마디는 15시간을 날아온 일행들의 피로를 잊게 해줬다. 또한, 센스있는 운전기사는 이미 전세계인들의 트랜드가 된 <강남스타일>을 흥얼거렸다. 그러자 우리는 처음 대면하는 사이인데도 친근감이 느껴질 정도로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이렇게 푸른 눈의 이방인 버스운전사는 6일간 우리 일행을 목적지로 인도하며 잠시도 무료하지 않게 분위기 메이커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행님! 행님!"하며 마치 오래 전부터 알고 지냈던 사이처럼 친근하게 다가오는 버스운전사 이스마엘(31)은 감동을 전해 줘 해외 여행임에도 큰 위로가 되기도 했다.

스위스에서의 하룻밤을 보내고 둘째 날 공공기관을 방문하는 낮 일정을 소화한 뒤 숙박장소인 독일 라흐트바흐 일명 흑림지역 민박집으로 이동했다. '민박집'이라는 단순한 선입견 때문이었을까. 약간의 실망을 안은 채 민박집 앞에 도착했다. 전통적인 독일풍의 가옥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민박집 내부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깨끗하고 아늑했다.

숙소를 배정하고 민박집에서 맞은 두 번째 저녁.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거의 거르다시피 끼니를 때워서 그런지 허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또 빵.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하자 민박집 주인 아주머니의 반가운 소리가 들려왔다.

라면을 끓여준단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났을 때의 기분이랄까. 그런데 한편으로는 '독일 아주머니가 라면을 끓여준다고?'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이때 통역사의 말 "이곳 흑림지역 민박집은 한국사람들이 자주 찾는 편이어서 라면을 끓일 줄 안다." 또 한 번 반가움이 밀려왔다.

오랜만에 맡는 한국의 냄새와 맛에 빠져 라면을 폭풍 흡입했다. 여기서는 저녁에 라면은 입에 대지도 않는데도 말이다. 그렇게 독일에서의 첫날 밤은 포만감을 안고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그런데 마치 호텔급으로 꾸며놓은 독일 민박집에는 비밀이 하나 있었다. 방안 벽면이 우리나라처럼 벽지가 발라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한쪽 벽면만 데코타일을 붙여놓은 것처럼 꾸며져 있고, 은은하게 역겹지 않은 풀냄새도 풍겼다.

나중에 알고봤더니 일행들이 묵었던 민박집 숙소는 소에게 먹일 건초더미를 쌓아두던 공간을 민박집 방으로 리모델링한 것이었다. 하지만 건초창고라고는 전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깨끗한 실내와 방안에서도 올려다보이는 밤하늘의 별까지 시골출신인 나에게는 이 모든 것들이 고향에 온 것처럼 포근하게 느껴졌다.

다음날 친절한 미소로 일행들을 맞아주었던 민박집 주인 가족들과의 재회를 기대하며 아쉬운 이별을 한 일행들은 독일에서의 마지막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흑림지역의 농가마을을 방문했다. 이곳에서 일행들은 가족단위 농장 운영에 놀라움을 표하면서 사람들과 더불어 유유자적한 농촌에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농장주들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농가의 특산품을 하나씩 구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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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라흐트바흐의 한 농가에서는 이처럼 쐐기풀을 차로 만들어 음용하고 있습니다. 맛이 좋습니다. 또한, 말린 쐐기풀씨를 작은 통에 담아 팔고 있는데 '독일의 자연산 비아그라'라고 합니다. ⓒ 김동이


그 중에서도 한 농가에서 쐐기풀을 우려낸 차와 쐐기풀 씨를 말린 자연산 조미료(우리나라 참깨맛이 남)는 일행들의 눈길을 끌었다. 특히, 농장주의 "자연산 비아그라"라는 말에 우리는 한 통에 4.5유로짜리 하는 걸 두 통이나 구입했다. 게다가 애교로 일행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10살의 농장주 딸을 위한 선물이라며 거스름돈 없이 10유로씩을 건네 한국인의 인심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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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셈부르크 중앙역 인근입니다. 가을단풍이 한 폭의 그림처럼 물들었더군요. ⓒ 김동이


그렇게 독일에서의 모든 일정이 끝나고 룩셈부르크를 지나 유로본부와 오줌 누는 아이 동상이 있는 벨기에에 도착했다.

해외서 맞은 생일... 운전사가 선사한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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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맞은 생일 케익과 와인을 선사해 준 푸른 눈의 터키청년 버스기사의 센스로 평생 잊지 못할 생일을 맞았습니다. ⓒ 김동이


"몇 개 없는 한국식당이 제법 솜씨 있다"는 통역사의 말에 귀가 번쩍 뜨인 일행들은 그동안 라면 이외에는 한식 구경 조차 못했던 터라 한식당으로 저녁을 결정했다.

한식당으로 이동하는 버스 안. 함께 동행했던 가이드의 말이 내 마음을 찡하게 만들었다. 가이드 왈.

"이스마엘(버스기사)이 생일이라고 케이크랑 와인을 사줬어요, 도착해서부터 친하게 지내시더니 이스마엘이 행님꺼라고 하면서 주더라고요."

일면식도 없던 푸른 눈의 낯선 사나이가 생일을 챙겨준다는 건 상상도 못했던 난 곧바로 버스기사에게 고맙다는 말과 함께 가벼운 포옹을 해줬다.

"행님!" 여전히 버스기사는 에너지가 넘쳤고, 고마워하는 나에게 머쓱하지 않도록 권투 자세로 장난을 걸어왔다.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고, 강남스타일을 따라부르던 푸른 눈의 버스기사는 평생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을 나에게 선사해줬다.

일행들의 생일축하 노래에 맞춰 함께 박수치며 따라 부르던 그 푸른 눈의 터키 청년은 이날 밤을 마지막으로 일행들과의 아쉬운 작별을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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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산 보즐레누보 출시 기념 11월 15일 프랑스의 뷔나쥬팜이라는 농장에서 올해 처음 출시된 보즐레누보를 맛보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 김동이


그렇게 벨기에까지의 일정을 마친 일행들은 이번 일정의 마지막 종착지인 프랑스에 입성했다. 패션의 도시이자 프랑스의 심장부인 파리에 입성하기 전 마지막 일정으로 뷔나쥬팜이라는 프랑스의 작은 마을을 찾았다.

작은 농장임에도 채소수확 프로그램을 발전시켰고, 농장식품인 치즈와 육류 등을 판매하며 도시농장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 이곳 뷔나쥬팜에서도 평생 누릴 수 없는 색다른 경험이 일행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행들이 방문한 11월 15일. 이날은 우리가 쉽게 접해보았던 와인인 '보즐레누보'의 올해산 출시일과 맞아 떨어진 것. 농장견학을 마친 일행들은 올해 첫 출시한 보즐레누보 와인을 한국인 최초로 맛보며 프랑스에서의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었다.

센 강 유람선 탄 일행들, 무장한 군인 호위를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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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상징 에펠탑. 야경이 정말 멋있습니다. 이곳 근처에 세느강 유람선이 있는데 일행들은 무장한 군인들의 호위(?)를 받으며 유람선을 타기도 했습니다. ⓒ 김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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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개선문 에펠탑과 함께 파리의 상징인 개선문 ⓒ 김동이


이후 일행들은 교통신호도 무시하는 복잡한 프랑스에 진입, 마침내 프랑스 심장부인 파리에 입성해 세계 최고의 박물관인 루브르 박물관과 에펠탑·개선문·센 강 유람선 관광을 하며 파리에서의 낭만을 인생의 수첩 속에 새겨 넣었다.

특히, 가이드도 없고 통역도 없던 파리에서는 웃지 못할 헤프닝도 벌어졌다. 에펠탑 인근 숙소에 여장을 푼 일행들은 파리의 야경을 본다며 용감하게 거리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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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펠탑의 야경입니다. ⓒ 김동이

숙소에서 10여 분을 걸어 도착한 에펠탑. 야경은 그야말로 환상 그 자체였다. 하지만, 에펠탑 모형을 파는 잡상인들이 낭만을 즐기도록 가만 두지 않았다. 애써 뿌리치고 에펠탑을 뒤로하고 센 강변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일행들이 에펠탑에서 센 강 유람선 선착장으로 이동하는 동안 총을 든 무장한 군인들이 따라붙었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따라왔지만 무표정한 무장 군인들의 동행(?)에 일행들은 달가울 리 없었다.

"왜 따라오는겨?"
"아무래도 에펠탑 테러에 대비해 경계하다 보니까 그런 거 아닐까?"
"근데 왜 우리를 따라오지?"

통역도 없고 말도 통하지 않던지라 답답하기만 했다. 더군다나 군인들이 따라붙어서 그런지 우리 일행들은 매표소와는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 엉뚱한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유람선 마지막 운행밖에 없는데 말이다. 우여곡절 끝에 일행들은 유람선 출발을 코앞에 두고 마지막 유람선표를 구할 수 있었다.

말로만 듣던 센 강변을 사진기에 담기 위해 일행들은 유람선 밖으로 나가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유람선이 출발한 지 채 10분도 안 돼 모두 파리의 강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실내로 들어오고 말았다. 밤에 센 강변에서 보는 에펠탑과 루브르박물관·퐁네프의 다리 등 파리의 야경은 유람선에서 흘러나오는 감미로운 음악과 함께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이렇게 또 마지막 일정까지 잊지 못할 추억을 남긴 일행들과 5개국 6박 8일의 빠듯한 일정이었지만 낯선 이방인들의 환대를 받았던 올해 유럽에서의 일정은 평생 잊지 못할 인생의 한 페이지로 기억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나의 황당 해외여행기' 응모글입니다.
#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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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의 지역신문인 태안신문 기자입니다.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밝은 빛이 되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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