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눈의 터키청년 이스마엘과 함께단순히 버스기사였지만 가이드와 함께 사진사까지 자처한 형제나라 터키 청년입니다. 스위스 레인폴 폭포에서 찍은 사진인데 이 이후로도 이스마엘은 행님! 행님!하며 돈독한 우애를 이어갔고, 제 생일이라고 케익에 와인까지 선물해 줬습니다.
김동이
"행님!"지치고 초췌한 모습으로 취리히 공항을 나온 일행들을 맞이한 이는 푸른 눈의 버스기사였다. 수염이 덥수룩한 이방인의 입에서 나온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 한 마디는 15시간을 날아온 일행들의 피로를 잊게 해줬다. 또한, 센스있는 운전기사는 이미 전세계인들의 트랜드가 된 <강남스타일>을 흥얼거렸다. 그러자 우리는 처음 대면하는 사이인데도 친근감이 느껴질 정도로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이렇게 푸른 눈의 이방인 버스운전사는 6일간 우리 일행을 목적지로 인도하며 잠시도 무료하지 않게 분위기 메이커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행님! 행님!"하며 마치 오래 전부터 알고 지냈던 사이처럼 친근하게 다가오는 버스운전사 이스마엘(31)은 감동을 전해 줘 해외 여행임에도 큰 위로가 되기도 했다.
스위스에서의 하룻밤을 보내고 둘째 날 공공기관을 방문하는 낮 일정을 소화한 뒤 숙박장소인 독일 라흐트바흐 일명 흑림지역 민박집으로 이동했다. '민박집'이라는 단순한 선입견 때문이었을까. 약간의 실망을 안은 채 민박집 앞에 도착했다. 전통적인 독일풍의 가옥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민박집 내부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깨끗하고 아늑했다.
숙소를 배정하고 민박집에서 맞은 두 번째 저녁.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거의 거르다시피 끼니를 때워서 그런지 허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또 빵.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하자 민박집 주인 아주머니의 반가운 소리가 들려왔다.
라면을 끓여준단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났을 때의 기분이랄까. 그런데 한편으로는 '독일 아주머니가 라면을 끓여준다고?'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이때 통역사의 말 "이곳 흑림지역 민박집은 한국사람들이 자주 찾는 편이어서 라면을 끓일 줄 안다." 또 한 번 반가움이 밀려왔다.
오랜만에 맡는 한국의 냄새와 맛에 빠져 라면을 폭풍 흡입했다. 여기서는 저녁에 라면은 입에 대지도 않는데도 말이다. 그렇게 독일에서의 첫날 밤은 포만감을 안고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그런데 마치 호텔급으로 꾸며놓은 독일 민박집에는 비밀이 하나 있었다. 방안 벽면이 우리나라처럼 벽지가 발라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한쪽 벽면만 데코타일을 붙여놓은 것처럼 꾸며져 있고, 은은하게 역겹지 않은 풀냄새도 풍겼다.
나중에 알고봤더니 일행들이 묵었던 민박집 숙소는 소에게 먹일 건초더미를 쌓아두던 공간을 민박집 방으로 리모델링한 것이었다. 하지만 건초창고라고는 전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깨끗한 실내와 방안에서도 올려다보이는 밤하늘의 별까지 시골출신인 나에게는 이 모든 것들이 고향에 온 것처럼 포근하게 느껴졌다.
다음날 친절한 미소로 일행들을 맞아주었던 민박집 주인 가족들과의 재회를 기대하며 아쉬운 이별을 한 일행들은 독일에서의 마지막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흑림지역의 농가마을을 방문했다. 이곳에서 일행들은 가족단위 농장 운영에 놀라움을 표하면서 사람들과 더불어 유유자적한 농촌에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농장주들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농가의 특산품을 하나씩 구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