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소녀들의 '범죄' 부탁, 이해가 됐습니다

[불혹 배낭여행기 ⑧] 이란과 쿠르드족도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

등록 2012.12.29 10:33수정 2013.03.22 17:15
0
원고료로 응원
a

이란과 터키 국경의 깎아지른 바위 절벽. 중동의 산들은 그 거대함에서 오밀조밀한 아름다움을 가진 한국의 산들과는 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 홍성식


이란 여행 초기. 온갖 꽃나무가 잘 정돈된 정원을 채운 이스파한의 고풍스런 호텔에 묵었다. 거기서 파키스탄 접경지역에서 온 여대생들을 만났다. 농업과 관련된 학문을 전공한다고 했다.

친구들과 함께 하는 수학여행의 즐거움에 들뜬 열아홉, 스물의 소녀들은 방에서 나오지 말라는 교수들의 제지에도 아랑곳없이 자정에 가까운 시간까지 정원 나무의자에 모여 앉아 나와 체코에서 여행 온 전기기술자에게 서툰 영어로 수십 가지 질문을 던지며 호호거렸다.


"왜 아내 없이 혼자 여행을 다니느냐?"
"어떤 나라를 가봤느냐?"
"직업이 뭐냐?"
"종교가 없다고? 그게 말이 되느냐?"
"당신네 나라 여자들은 남자가 보는 앞에서도 춤을 추느냐?"

사이를 두지 않고 끊임없이 쏟아지는 이란 바깥 세상에 대한 의문들.

그들의 웃음 끝에 묻어나오는 순진함과 순수함이 더없이 좋아 보여 나와 체코 전기기술자는 어떤 질문도 피하지 않고 솔직하고 즐거운 답변을 들려줬다. 우리 말에 깜짝 놀라기도 하고, 자기네들끼리 소곤거리며 깔깔대는 모습이 한국의 열아홉 소녀들과 다를 바 없었다.

멀찌감치 떨어져 앉은 우리에게 자기네들이 먹고 있던 피스타치오를 나눠주고 싶은데, 누가 그걸 가져다주는 어려운 일(?)을 할지 의논하는 모습(대부분의 이란 여성들은 모르는 남자와 말을 섞지 않는다)도 귀여워 보여 나와 체코 사내는 한 번 더 크게 웃었다. 

이란 소녀들도 '레이디 가가'를 듣는다


a

내가 본 이란 사람들 중 가장 유창하게 외국어를 구사했던 아저씨. 반다르 안잘리 수산시장에서 만났다. 내게 '남한에서 왔냐, 북한에서 왔냐'고 물었다. ⓒ 홍성식


카스피해에 접한 해변도시 반다르 안잘리에서 만난 열일곱 소녀 둘도 마찬가지였다. 사촌지간이라는 그녀들은 좀 더 대담하게 "우리는 히잡 쓰는 게 귀찮고 싫어요"라며 검은 스카프 밑 머리카락을 바닷바람 앞에 잠시잠깐 드러내기까지 했다.

그 장면을 본 소녀의 엄마는 자신의 눈앞에서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놀라며 둘을 나무랐지만 소용없었다. 그녀들은 엄마의 시선을 피해 까불거리며 히잡 벗은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달라는 맹랑한 요구까지 했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간에서 히잡을 벗는 것도, 그걸 사진으로 찍는 것도 무슬림 근본주의 국가에선 사소하지만 분명 범죄다.

영어를 공부하고 있다는 두 소녀는 이란을 지칭해 "테러를 지원하는 불량국가"라고 말하는 미국의 가수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레이디 가가를 좋아한다고 했다.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나이라면 몰래 숨어서 본 예쁜 여가수의 춤과 화장법을 따라하고 싶은 일탈욕구가 왜 없겠는가.

어떤 종교적 도그마가 자유롭고, 아름답고자 하는 젊은 여성의 욕망을 완벽하게 막을 수 있을까. 지켜야 할 수천 가지 규범 안에서도 이란 여성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숨 막히는 현실에서의 탈출을 꿈꾸고 있었다.

남녀를 불문한 이란 사람들의 현실 탈출 욕구.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외엔 그들에게 별다른 도움을 줄 수 없었던 나는 그저 이란 사람들이 지금보다 확장된 자유 속에서 살 수 있기를 빌어주었을 뿐이다. 그건 신을 믿지 않는 내가 해본 거의 유일한 진심 어린 기도였다.

기억 속에 남아있는 이란 풍경... 오랫동안 아름답기를

a

낙쉐 로스탐. 페르시아 제국 황제들의 무덤이다. 거대한 돌산을 깎아 커다란 조각을 새기고 깊숙하게 왕의 시신을 안장했다고 한다. 그들이 살아 생전의 광영을 누리던 페르세폴리스에서 30분 거리에 위치해있다. ⓒ 홍성식


여러 사람의 우려와 적지 않은 문화충격을 받으며 시작한 이란 여행. 하지만, 그걸 극복하고 무슬림의 선량함과 매혹적인 풍경에 익숙해져 즐거움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은 짧았다.

지금도 기억의 회로 속에 선명하게 돋을새김 돼 있는 이란의 풍광들.

황량한 바위산 아래 무더기로 피어 방랑자의 심란함을 위로해준 붉디붉은 양귀비꽃, 끝없이 펼쳐지던 광대한 사막, 해질녘 푸르스름한 빛을 반사하며 보석처럼 빛나던 모스크의 벽과 지붕, 페르시아 왕조 부침의 역사를 긴 설명 없이 한눈에 보여주는 거대한 무덤 낙쉐 로스탐, 카스피해를 바라보며 한가로이 낚시를 즐기던 흰 수염 근사한 할아버지, 사막도시 야즈드를 뒤덮은 수백 채에 이르는 진흙집들, '캐러반 사라이'(실크로드를 오가던 상인들의 숙소) 옥상에 홀로 누워 바라보던 주먹만큼 큰 별들, 보랏빛으로 반짝이던 우르미예의 소금호수….

이란에서 내가 만난 갖가지 세상 풍경은 '외롭고 쓸쓸한 것들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엄연한 진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했다.

이런 풍광들과 더불어 이란에서 만난 아이들의 천진한 눈망울도 쉬이 잊히지가 않는다.

a

이스파한에서 만난 이란 꼬마 남매. 이목구비가 뚜렷해 몹시 귀여웠다. 하기야, 어느 나라, 어떤 인종의 아이들이 귀엽지 않겠는가. ⓒ 홍성식


a

사막도시 야즈드에서 만난 또 다른 이란 꼬마 남매. 부모가 장애를 가진 걸인임에도 그 표정이 그늘 하나 없이 너무나 맑아 나를 더욱 슬프게 했다. ⓒ 홍성식


소풍 나온 공원에서 자기 몫의 음료수와 샌드위치를 내게 나누어주려던 여섯살 알리, "귀여워서 사진 한 장 찍고 싶다"니 차렷 자세로 포즈를 취해주며 수줍어하던 남매, 함께 놀아준 30분 남짓의 시간에 정이 들어 품에 안겨 떨어지려하지 않던 모하메드, 장애를 가진 걸인 부모를 뒀음에도 표정에 그늘 하나 없어 나를 더욱 슬프게 만든 또 다른 어린 남매까지.

잊힐 만하면 미국은 이란에 대한 공격 가능성을 공공연히 말한다. 최근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핵무기를 개발하려 한다'는 것이 이유다. 여기서 누구나 덧붙일 수 있는 이 문제에 관한 구구한 정치적 해석과 일방 편들기에 나까지 나서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이 말만은 해야겠다. 지구 위 어느 민족보다 순박하고 선량한 이란 사람들, 아무런 죄도 읽히지 않는 눈빛으로 죄에서 자유롭지 못한 내 삶을 반성하게 만든 이란의 아이들. 그들이 고적하고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

세월이 흘러 다시 이란을 찾았을 때도 알리 또는, 후세인 혹은, 모하메드라는 이름을 가진 이들과 어깨를 걸고 웃을 수 있기를 바란다. 미국의 폭탄은 그들의 집과 일상을 파괴할 권리가 없다. 내가 만난 100명의 후세인과 알리 그리고, 모하메드 역시 소리쳐 말하지 않을 뿐 그 명백한 진리를 분명 알고 있을 것이다.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제 마음에 들건, 들지 않건 세상과 관계를 맺는 일이다. 조그만 생선을 잡는 그물처럼 촘촘한 그 관계망을 찢어버리고 나 하나만으로 자유롭고 싶은 날들이 있다. 그런 날이면 이란 사람들의 순수하고, 기품 있는 미소를 떠올린다. 나도 그들처럼 웃고 싶은데 아직은 그게 잘 안 된다. 언제쯤이면 그런 웃음을 내 얼굴에도 그릴 수 있을지.

또 하나의 이야기, 쿠르드족과의 아름다운 추억들

a

무언가를 수확하고 있는 것일까? 환하게 웃고 있는 쿠르드족 아줌마와 소녀들. ⓒ 홍성식


3000만 명에 가까운 인구와 자기만의 언어를 가졌음에도 국가를 가지지 못한 민족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터키 동부와 이란, 이라크 북부와 시리아 등지에 흩어져 사는 쿠르드족이 바로 그 비극의 주인공들이다.

중세 이후 계속된 이들의 불행. 이라크에서는 화학무기에 의한 대량학살의 피해자가 돼야 했고, 이란에서의 독립국가 건설운동은 허망하게 무산됐다. 터키 정부를 상대로 진행 중인 무장독립단체의 저항운동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나라가 없는 민족의 슬픔. 일본제국주의 시대를 살아보지 않았고, 식민지 체험을 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그게 어떤 형태의 서글픔인지 알기 힘들다. 허나, 짐작이야 왜 못하겠는가.

바로 이 쿠르드족들을 대거 만난 적이 있다. 터키 동북부와 이란을 여행한 지난해 늦봄과 초여름이었다. '수니파 무슬림이 다수를 이루는 호전적인 민족'이란 세간의 평가는 그야말로 선입견에 불과했다. 내가 만난 쿠르드족 누구도 호전적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너무나 순진해서 동정심이 생길 정도였다.

a

가족소풍을 나온 쿠르드족. 처음 보는 내게 이것저것 먹을 걸 어찌나 많이 주던지 곁에 앉아 있는 30여 분 동안 배가 터질 뻔했다. ⓒ 홍성식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가 발견됐다는 풍문이 떠도는 아라라트산이 지척인 도우베야짓, 엄청난 크기의 푸른빛 소금호수가 장관을 이루는 도시 반, 그리고 이란과 아르메니아의 접경인 우르미예에서 적지 않은 쿠르드족을 만났다.

터키 정부군의 폭격에 12명의 쿠르드족 무장단체 대원이 목숨을 잃은 다음 날. 도우베야짓에서 벌어진 항의시위 현장을 목격했다. 차도르를 입고 말없이 눈물을 흘리던 할머니와 제 민족이 처한 상황을 목소리 높여 한탄하던 청년. 인종문제가 야기한 불행은 그 상처가 깊고도 컸다. 하지만, 그 상처가 쿠르드족의 선량한 성품까지 부수지는 못한 것 같았다.

자신들도 탄압받고 있음에도 이방인인 나의 안전을 걱정해 택시를 태워 도우베야짓 시내 외곽으로 나를 데려다준 것은 터키 경찰이 아닌 쿠르드족 청년들이었다.

반에서 만난 쿠르드족 젊은이들 역시 그들의 피크닉에 기꺼이 나를 초대해 자신들 앞에 놓인 것보다 훨씬 많은 닭다리와 닭가슴살 바비큐를 내 몫으로 선뜻 양보했다.

우르미예의 한 유원지에서 내가 마시고 먹은 홍차와 견과류의 값을 대신 치른 것도 나이 지긋한 쿠르드족 영감님이었다. 그는 내가 자신의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마치 자신의 아들을 송별하듯.

a

터키 동부에 위치한 거대한 호수의 도시 반. 그곳에도 많은 수의 쿠르드족이 살고 있다. 새파란 물빛이 비현실적으로 아름답다. ⓒ 홍성식


a

경상남도 면적보다 넓은 거대한 소금호수가 있는 도시 반. 쿠르드족이 다수 거주하는 그곳의 황량한 풍경. ⓒ 홍성식


내가 그들의 기질과 성정, 내밀한 속내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알겠나. 하지만, 인간은 자신이 경험한 것에 관해서는 자의대로 해석할 권리를 지니는 것. 내가 만나고 교류한 쿠르드족에 한정시켜 보자면 그들은 독립해 자기들의 나라를 만들어 순한 양처럼 서로 기대고 살 자격이 충분한 사람들이다. 그렇지 못한 그들의 현재가 안타깝다.

쿠르드족을 생각할 때면 조그맣지만 분명히 내 안에도 자리하고 있을 휴머니즘이 눈물을 떨군다. 아주 오래 전부터 오늘까지 개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그네들의 슬픈 현실이 내일은 좀 나아졌으면.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계간문예지 <문학의오늘>에 연재되고 있는 여행기입니다.
#이란 #쿠르드족 #수니파 #무슬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3. 3 [단독] 윤석열 장모 "100억 잔고증명 위조, 또 있다" 법정 증언
  4. 4 "명품백 가짜" "파 뿌리 875원" 이수정님 왜 이러세요
  5. 5 '휴대폰 통째 저장' 논란... 2시간도 못간 검찰 해명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