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줄' 잡고 울던 제 얘기 좀 들어보세요

외면당한 동물원에 남겨진 동물들... 관리·감독할 정부기관 설립 시급

등록 2012.12.27 14:47수정 2012.12.27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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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인'이라는 단어는 나를 두 번 울렸다. 2011년 김진숙 지도위원이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철회를 요구하며 309일간 농성을 벌였던 곳은 영도조선소의 35m 높이 크레인이었다. 어느새 크레인은 극한으로 내몰린 노동자들의 삶을 상징하는 단어가 되었다.

그리고 호랑이 크레인이 있다. 크레인을 처음 본 것은 <작별>이라는 다큐멘터리를 통해서였다. 황윤 감독은 2000년 서울대공원에서 태어난 크레인의 생후 4개월까지의 삶을 관찰하고 카메라에 담았다. 크레인은 태어날 때부터 병약했던 탓에 '강하게 자라라'고 사육사들이 지어준 이름이다. 엄마 선아는 크레인을 낳기만 했을 뿐 돌보지 않았다. 대부분의 동물원에서는 아기가 태어나면 사육사들이 키운다. 야생의 습성을 박탈당한 채 좁은 공간에 갇혀 살아가는 동물은 모성마저 포기하기 때문이다. 선아의 잘못이 아니다.

영화 <작별>에는 크레인이 야생성을 박탈당하는 훈련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사람도 동물도 편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목줄을 풀어달라고 내내 울지만 아무도 크레인의 목줄을 풀어주지 않는다. 울고 또 우는 크레인. 결국 크레인은 울다 지쳐 신문지 위에서 잠을 잔다. 이 장면은 오랫동안 내 기억에 남아있었다.

'야생성 박탈 훈련' 받으며 자란 호랑이 크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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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호랑이 크레인은 어릴 적 야생성 박탈을 위한 훈련을 받았다.(왼쪽) 울다 지쳐 신문지 위에서 자고 있는 크레인. 다큐멘터리 <작별>의 한 장면. ⓒ 다큐멘터리 <작별>


지난 10월 <한겨례신문>과 동물원 연작기사를 기획하는 과정에서 황윤 감독을 만났다. 열악한 사설지방동물원을 취재하려한다는 이야기를 하자 황윤 감독으로부터 크레인이 원주의 치악드림랜드에 있다는 말을 들었다. '살아있을까요?' 황윤 감독의 말에 두려움과 아픔이 묻어나왔다.

11월 12일 <한겨례신문>과 함께 드림랜드를 방문했다. 사육사 아저씨는 호랑이 한 마리가 있는데 어디서 왔는지 언제부터 있었는지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했다. "이상하게 생긴 호랑이 한 마리가 있긴 한데…" "혹시 크레인 아닌가요?" "아 맞아요. 크레인." 그렇게 6년 만에 황윤 감독과 크레인은 다시 조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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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2일 드림랜드에서 만난 크레인 ⓒ 동물을 위한 행동


2000년 서울대공원에서 태어난 크레인은 태어날 때에는 언론의 주목을 받는 귀염둥이였다. 그러나 근친교배로 태어나 선천적으로 백내장이 있었고 뻐드렁니가 심했다. 자라며 전시 가치가 없어지자 원주의 치악드림랜드로 보내졌다. 동물원내에서는 '분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만 인구가 많고 관람객이 많은 동물원에서 못 생기거나 인기가 없는 동물들을 좀 더 작은 동물원으로 보내는데 사용하는 용어이다. 


여러 번 부도 위기를 맞아 재정이 최악의 상황에 도달하게 된 드림랜드에서 만난 동물들은 그간 여러 동물원에서 본 동물들과는 사뭇 달랐다. 이미 삶을 다 포기한 듯한 모습. 유럽불곰의 눈에는 초점이 없었고 몸도 심각하게 말라있었다. 유럽불곰 두 마리는 서로 남매라고 했다. 한 불곰은 먹은 것을 토한 후 다시 먹는 전형적인 정형행동을 하고 있었다.

11월 24일 <한겨례신문>에 크레인의 사연이 나가자 여러 시민들의 여러 문의가 있었다. 원주시청과 강원도청에 도움을 요청했고, 원주시에서 현장 확인도 하고 이미 먹이공급도 도와주고 있는 상태였지만 2015년 강원도와의 계약이 만료되는 시점이 된 이후, 동물들이 갈 곳이 없는 상태였다. 무엇이든 시도해봐야 했다. 11월 29일 박원순 시장에게 직접 트윗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크레인만큼은 서울대공원에서 책임져주었으면 합니다. 동물들이 갈 곳이 없습니다.'

애초에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11월 30일 기적같은 일이 벌어졌다. 서울시에서 트윗으로 답변이 온 것이다.

'크레인이 서울대공원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하겠습니다.'

결정은 되었지만 크레인이 살 공간을 마련하는 일 등 고려해야 할 일들이 많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생각보다 일이 빨리 추진되었다. 12월 18일 비공개로 크레인이 서울대공원으로 옮겨진다는 소식을 들었다.

낮 12시경 드림랜드에서 도착해 서울대공원팀을 기다렸다. 오후 1시경 크레인을 데려가기 위해 큰 트럭 한 대가 오고, 서울대공원에서 수의사 두 분과 사육사분이 도착했다. 마취를 하고 채혈을 하고 항생제와 구충제가 투입되었다. 머리 쪽에 상처를 발견하고 털을 잘라보니 피부병이었다. 재정이 열악한 동물원에서 건강검진은 어려운 일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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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인을 옮길 상자를 내실 쪽으로 옮기는 중. ⓒ 동물을 위한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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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인을 마취할 때 스트레스를 받을까봐 우리는 나가있도록 했다. 철문밖에서 기다리며. ⓒ 동물을 위한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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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취한 크레인의 머리를 만지는 황윤 감독. ⓒ 동물을 위한 행동


운송상자에 들어가 트럭에 실린 크레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사육사분이 트럭 위로 올라왔다. '잘가. 가서 잘 살아.' 2004년 크레인이 드림랜드에 온 이후 지속적으로 돌봐주신 분이라고 했다. 누가 그 분들을 책망할 수 있을까. 그 분들의 잘못이 아니다.

동물원이 관람객의 흥미를 자극하고 동물의 복지를 위하는, 두 가지 요구를 모두 충족하기에는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애초에 동물원 내에서 동물복지의 원칙이 지켜지기 위해서는  멸종위기 동물을 보호하고 종복원 사업을 하고 학대받은 야생동물을 보호하는 기능이 강조되어야 한다. 이윤을 목적으로 개인이 운영하면 상업적 쇼가 횡행하고, 부도가 나거나 폐쇄될 상황에서 드림랜드 동물처럼 방치되기 마련이다.

'동물원 동물' 복지 위한 최소한의 법 전무한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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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인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는 사육사 아저씨. ⓒ 동물을 위한 행동


'자 이제 집에 가자. 크레인, 밥은 집에 가서 먹자.'

트럭이 떠나기 전 서울대공원 사육사분이 말했다. 그리고 트럭은 서울대공원을 향해 떠났다. 완벽하지 않지만 이제 크레인은 종합검진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앞날이 어찌 될지 모르는 불안으로부터도 벗어났다. 인간 삶의 정의도, 동물의 복지실현도 한꺼번에 닥쳐오지 않는다. 한걸음씩 그렇게 변화할 것이다.

그렇게 크레인은 서울대공원으로 돌아갔다. 시베리아 호랑이의 고향은 시베리아건만 크레인의 고향은 시베리아가 아니라 그가 태어난 곳, 서울대공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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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공원에 도착한 후 크레인의 상자를 내실로 옮기는 과정. ⓒ 동물을 위한 행동


어둠이 내릴 때쯤 크레인을 실은 트럭이 서울대공원에 도착했다. 크레인의 몸무게를 재보았다. 109킬로그램. 보통 시베리아 호랑이 수컷의 몸무게는 200킬로그램 가까이 된다. 수의사분께 원인을 물으니 단순히 영양이 부족해서라기보다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던 것도 원인일 수 있다고 했다.

크레인은 근친교배로 태어났다. 따라서 종보전 가치도 없는 셈이다. 전시기능을 위해 태어났으나 몸이 약하고 못생겼다는 이유로 열악한 동물원에 보내졌다. 상업적인 목적의 개인 소유 동물원은 부도위기에 처하자 결과적으로 동물을 방치하게 된 것이다. 동물들은 최소한의 수의학적 처치도 받지 못한 채 겨우 생을 연명하고 있으나 국가기관 어디도 관리감독의 책임이 없다.  

크레인이 떠난 후 남아있는 동물을 보기 위해 12월 23일 '동물을 위한 행동' 회원들이 드림랜드를 방문했다. 영하 10도가 넘는 혹한이어서 동물들이 대부분 내실에 있었다. 나귀에게 다가가니 코를 킁킁거리며 반응하다 크게 울음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어떤 의미일까. 대부분 동물원의 동물들은 관람객에게 하루 종일 시달려 반응하지 않는다.

먹이를 주는 일도 엄격히 제한해야 할 일이다. 관람객들이 무심코 던져준 과자를 먹고 장염에 시달리는 일이 종종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드림랜드의 동물들은 달랐다. 무료하고 외로운 일상때문이었을까. 동물들은 우리의 방문에 금방 반응했다. 우리의 말 소리 하나하나, 손짓 하나하나에 반가운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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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들이 다가가자 나귀가 울음소리를 냈다. 하루종일 외로움과 무료함에서 살고 있는 탓이다. ⓒ 동물을 위한 행동


현재 드림랜드 소유주는 유럽 불곰의 소유권을 포기한 상태다. 받아줄 동물원을 찾고 있지만 전망은 불투명하다. 병약하고 몸집도 작은 불곰을 받아줄 동물원이 있을까. 2015년 강원도와의 계약이 만료되는 시점이 되면 동물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동물원 건립에는 많은 조건이 고려되어야 한다.

현재 동물원 전문단체 '동물을 위한 행동'은 동물원 동물의 복지조건을 관리감독할 정부기관을 설립하기 위한 정부청원과 동물원의 복지를 위한 입법청원을 준비하고 있다. 국내에서 동물원 설립은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과 자연공원법, 개인 또는 민간기업의 경우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 설립 근거가 있다. 즉 개인이 설립한 동물원은 법적으로 '박물관'이다. 그러나 동물원에 있는 동물은 유물이 아니라 살아있는 야생동물이다. 생명체로서 건강과 질병, 최소한의 복지조건을 충족시킬 제도와 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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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랜드에서 소유권을 포기한 유럽불곰. 현재 갈 곳이 없는 상태. ⓒ 동물을 위한 행동


아직 인간의 삶에서도 개선되어야 할 것이 많고 우리 인간이 동물의 고통을 모두 느낀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크레인은 특별하다. 해고된 노동자가 생존을 위해 올라간 크레인과 열악한 동물원에 방치된 못생긴 호랑이 크레인. 그들 모두 이 사회에서 버려지고 소외된 약자들이다.

크레인 농성이 노동자들의 극단적 삶을 세상에 알렸듯이 크레인은 동물원에 살고 있는 동물의 삶을 세상에 알리고 있다. 동물원 동물의 복지를 위한 최소한의 법과 제도조차 전무한 대한민국. 보수적인 정권이 집권하게 되어 많은 시민들이 우려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보수당이 집권하면 사회적 약자에게 매우 불리한 정책을 써왔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미래는 알 수 없다. 정부가 보다 많은 약자를 보호하는 정책을 시행하도록 보다 많은 시민들이 애써야 할 숙제가 남았다.
#동물원 #드림랜드 #서울대공원 #크레인 #시베리아 호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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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위한 행동 Action for Animals(http://www.actionforanimals.or.kr)을 설립하였습니다. 동물을 위한 행동은 산업적으로 이용되는 감금된 동물(captive animals)의 복지를 위한 국내 최초의 전문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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