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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다> 우리 시대에 필요한 김명희의 포용력

[주장] 세대갈등의 아픔 관통한 <보고싶다>…김명희의 헌신이 돋보인다

12.12.27 10:32최종업데이트12.12.27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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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수목드라마 <보고싶다> 한 장면 ⓒ MBC

현재 MBC에서 인기리에 방영 중인 수목드라마 <보고 싶다>는 두 가지 유형의 기성세대가 등장한다.

 

극 중 한정우(박유천 분)의 아버지로 등장하는 한태준(한진희 분)은 누구든 자신이 명령하면 반드시 복종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가차 없이 내칠 정도로 권위적이고 탐욕적이다.

 

태준은 14년 전 아버지로부터 더 많은 돈을 착복하기 위해 자기 아들보다 어린 이복동생 강형준(유승호 분)을 위협하다가 형준의 다리에 상처를 입히고 만다. 그러나 태준은 오직 눈앞에서 형준을 놓친 것만 분한 나머지, 지금까지도 형준을 찾아낼 음모를 꾸민다.

 

하지만 태준에게 당할 형준이 아니다. 해리라는 이름으로 14년 만에 한국에 돌아온 형준은 자신을 해치려고 했던 이복형 태준을 향한 복수의 칼날을 서서히 겨눈다. 형준의 복수 방법은, 태준의 아들인 정우가 직접 자신의 아버지가 지난날 지은 죄를 묻게 하는 것. 그래서 해리는 자신이 계획한 복수극에 서서히 정우를 끌어들이기 시작한다.

 

정우 또한 오래전 아버지와 의절한 상태다. 14년 전 첫 사랑 이수연(윤은혜 분)이 자신이 보는 앞에서 성폭행당했음에도 불구, 그녀를 구해지지 못했다는 트라우마를 앓고 있는 정우는 그 뒤 집에 뛰쳐나와 형사가 되었다. 그리고 생물학적 아버지 태준 대신 수연 엄마 김명희(송옥숙 분)를 새 보호자로 선택하고 같은 집에서 정붙이고 산다.

 

15년 전 김 형사의 실수로 남편을 잃은 김명희는 이후 딸이 성폭행당한 이후 실종되는 참담한 비극을 겪는다. 그럼에도 명희는 수연의 행적을 추적하다가 죽은 김형사의 딸 은주(장미인애 분)는 물론, 딸의 성폭행과 관련되어있는 정우를 친자식처럼 거두어들인다. 명희의 헌신적인 보살핌 아래 정우는 자신들을 불행에 빠트린 세상과 어른들에 대한 미움을 거두고 상대를 배려할 줄 아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반면 자신을 보살펴 줄 어른의 부재 하에 비슷한 또래들끼리 청소년기를 겪으며, 녹록지 않은 과거 상처를 위로하던 수연과 형준은,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었던 어른들에 대한 분노와 증오를 쉽게 거두지 못한다. 조이라는 새 이름을 얻으며 지난날 상처를 다 잊었다고 생각했던 수연은 14년 전 자신을 성폭행한 강상득(박선우 분)을 보고 절규한다.


지난 26일 방영한 MBC 수목드라마 <보고싶다> 한 장면 ⓒ MBC


 

지난 아픈 과거를 깨끗이 잊고 싶었던 수연은 형준과 함께 한국에 온 이후에도, 14년 전 자신이 이수연이었다는 것. 심지어 그동안 애타게 보고 싶었던 엄마 명희까지 외면하고자 한다.

 

14년 만에 그토록 기다리던 모녀간의 상봉에도 불구, 자신의 과거를 거부하는 딸 수연에게 엄마 명희는 기꺼이 딸 수연을 못 본 척해준다. 지난 14년간 애타게 찾아다닌 딸이건만, 딸의 미래를 위해서 자신의 온몸을 다 바쳐 자신을 거부하는 딸조차 감싸 안아주는 것이 명희의 사랑법이다.

 

잊고 싶었던 지난날조차 따스하게 감싸주는 엄마와 정우의 진실한 사랑을 확인한 수연은 부정하고만 싶었던 자신의 과거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형준 에게는 자신의 결핍을 채워주고 그의 상처를 닦아줄 수 있는 보호자가 없다. 오직 형준의 재산을 노리는 승냥이 같은 어른들만 가득 에워쌀 뿐이다.

 

태어날 때부터 태준의 위협에 맞서 싸워야 했던 형준은 어른이 된 이후, 태준이 자신에게 했던 그대로 똑같은 앙갚음을 시도한다. 아버지의 욕심으로 친한 친구를 잃어야 했던 정우도 태준을 원망한다. 지난 20일 방영한 <보고 싶다> 13회에서 형준의 대사처럼, 정우와 수연, 형준은 태준의 탐욕에 희생당한 피해자들이다.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기성세대의 욕심에 이제 막 피어오르려고 하는 어린 꽃들의 희망이 산산조각 부서진 꼴이다.

 

수연이 성폭행당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고 집까지 나온 정우는, 자신이 낳은 아들도 아니요, 수연이 폭행을 당해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정우를 친아들처럼 사랑하는 명희 덕분에 '경찰'이라는 합법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죄책감을 덜어내는 길을 택할 수 있었다. 


권위를 앞세워 자기보다 어리고 힘이 약한 약자에게 폭력적인 '복종'을 강요하는 한태준에게 짓밟힌 상처를 남의 자식도 내 자식처럼 따스한 도시락을 챙겨주는 김명희가 감싸준 것이다.

 

자신을 낳아준 부모 세대를 부정하거나, 혹은 복수를 시도하는 <보고 싶다>의 주인공들의 행태는 심하게 과장되어있는 측면도 있지만, 현재 세대 간의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연상시킨다.

 

물론, 자식 세대는 자신과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해도, 설사 그들의 선택이 자신들을 불행하게 만든다고 해도 강형준 처럼 부모 세대에게 복수의 화살을 당길 수 없다. 그렇다고 부모 세대들이 한태준 처럼 자식 세대에게 무조건 복종만은 강요할 수 없는 노릇이다. 오히려 한태준식의 폭력적인 억압은 되레 더 큰 갈등을 가져오는 법이다.

 

현재 부모 세대와의 깊은 갈등,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절망'에 빠진 청춘들을 위한 최고의 치유법은 위로를 통해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것이다. 비슷한 아픔을 가진 또래들끼리 서로 위로하는 방식도 있지만, 이왕이면 나보다 더 경험 많고 연륜 많은 어른이 청춘의 아픈 가슴을 보듬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 요즘 사회적 트렌드로 굳어진 지 오래인 '멘토' 현상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자신들과 생각이 다른 이들에게 '공손한 복종'을 강요하는 어른에게 지친 청춘들을 따스하게 감싸주는 또 다른 어른들. 우리 청춘에는 남의 자식도 내 자식처럼 따뜻하게 품을 수 있는 김명희 같은 어른이 필요하다.

2012.12.27 10:32 ⓒ 2012 OhmyNews
보고싶다 박유천 윤은혜 송옥숙 유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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