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부수는 소리 무섭지만 여기서 죽을 수밖에..."

재개발로 94% 이주한 안양 덕천마을... 남은 주민들이 떠나지 못하는 이유

등록 2012.12.28 09:27수정 2012.12.28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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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 덕천마을 ⓒ 유혜준


"그냥 돈 받고 나간다고 하는데 돈을 안 줘서 못 나가요. 집 부수는 소리 정말 무서워요. 나도 이곳에서 살기 싫어요, 오늘 이 집 부수고, 내일은 저 집 부수고, 유리 깨지는 소리도 들리고, 사람들도 없고, 텔레비전에서 재개발 때문에 싸우는 모습 보면 흉하다고 욕했는데 그게 이젠 내 얘기가 됐어요."

현재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덕천마을 주민 김아무개(70·여)씨의 말이다.

"돈이 없어. 이주비 5400만 원 가지고 요즘 어디 가서 방을 얻어? 또 벌이가 없어서 이자도 못내. 자식들은 있지만 손 내밀기는 좀 그렇고. 걔들(자식들) 지 자식 공부시키기 바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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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 덕천마을 ⓒ 유혜준


역시 덕천마을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황아무개(77·남)씨는 한숨을 쉬면서 이렇게 말했다.

"지은 지 6년밖에 안 된 새 집이고, 방이 3개나 되는 28평형 빌라 감정평가액이 1억3천밖에 안 된대요. 2006년에 융자 1억 안은 상태에서 1억9천 주고 산 집이에요. 그러니 어떻게 나가요. 빚 갚고 나면 3천만 원밖에 안 남는데…. 왜 그렇게 보상금액이 적으냐고요? 땅 지분이 얼마 안 돼서 그런대요. 7평(23.1㎡)밖에 안돼요. 아파트 분양 할 때 땅 지분으로 하나요? 총 평수로 하잖아요. 근데 왜 보상할 때는 땅 지분으로 한대요? (이주비) 이자 내라는 것도 말이 안 되고요. 이주비 받아서 나간 다음에 5년이 걸릴 지 10년이 걸릴 지 어떻게 알아요. 그때까지 어떻게 이자를 내고 있냐고요."

이아무개(50대 중반·여)씨가 덕천마을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다.

폐허가 된 마을, 떠나지 못하는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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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 덕천마을 ⓒ 유혜준


지난 18일,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안양시 덕천마을을 찾았다. 안양 덕천 재개발지구는 안양시 만안구 안양7동 148-1번지 일원(25만7590.19㎡)이다. 안양시는 지난 2006년 9월 7일, 사업시행자로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지정 고시했다. 2008년 12월, 사업 시행 인가를 받아 삼성물산·동부건설을 시공사로 결정했다.

덕천마을에는 59㎡ 1308가구, 84㎡ 1634가구, 114㎡ 384가구, 139㎡ 195 가구 등 아파트 4250가구가 들어설 예정으로 2009년에 분양신청(분양 신청률 92.1%)을 마감하고, 2011년 4월에 관리 처분 총회를 마친 상황이다.

지난해 12월부터 본격적인 이주가 시작, 현재 주민 94%가 이주해 마을 대부분이 빈 집 상태다. 하지만 주민 일부는 여전히 남아서 마을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남은 가구는 전체 가구의 6%로 300여 세대에 이르고 있다. LH공사는 12월에 철거업체를 선정, 내년 3월부터 본격적인 철거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밝히고 있다.

남은 300여 세대가 덕천마을을 나지 못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돈'이다. 남은 이들 대부분은 소유가옥에 대한 감정평가금액이 너무 낮다는 불평을 하고 있다. 몇몇 가구들은 감정평가금액이 1억 원 이하의 영세가옥주로 그 돈으로 덕천마을을 벗어나면 이주할 곳이 없다는 하소연을 하고 있다. 황아무개씨가 대표적인 예다.

덕천마을이 재개발지구로 지정될 때만 해도 부동산 경기는 나쁘지 않았다. 마을 주민 대부분은 재개발에 대한 기본지식이 전혀 없이 "헌 집 주고 새 집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재개발에 찬성했던 것.

하지만 막상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이들의 '꿈'은 현실의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소유하고 있는 가옥이나 상가의 감정평가가 이들의 예상보다 낮게 나왔던 것. 뿐만 아니다. 이주비 문제도 이들의 발목을 잡았다. 감정평가액의 60%를 이주비로 지급한다는 것인데, 문제는 이주비에 대한 이자 부담이었다. 이주 후 6개월까지만 이자를 시행사에서 부담하고 그 이후에는 주민들이 부담한다는 불리한 조건이었다.

재개발이 예정대로 진행되지 않고 지체되면 될수록 주민들의 이자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지난해 12월부터 이주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현재 이주한 94%의 주민들은 이주비에 대한 이자를 부담하면서 재개발이 하루빨리 진행되기를 기다리는 상황이다.

남은 300여 세대는 6개월간의 이자부담 기한이 지나, 이주를 결정하고 이주비를 받는 순간부터 이자를 부담해야 한다. 다른 재개발 지역에 비해 상당히 불리한 조건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 대해 LH공사는 주민들이 결정한 사안이라고 주장한다.

나갈 수도 없고, 돈도 없고, 소통도 안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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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 덕천마을 ⓒ 유혜준


현재 덕천 지구는 공영개발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공영개발 방식이란 서울 난곡 지구 같은 대규모 재개발사업지구에 적용했던 방식으로, 주민협의체인 조합을 구성하는 민영재개발과 달리 LH공사가 시행자가 된다.

재건축 조합 대신, 전문성이 있는 LH공사가 추진하기 때문에 민영개발에 비해 투명성이 높고 사업진행도 빨라지는 이점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주민 의견조율 및 수렴은 주민대표회의가, 각종 인·허가 및 행정 절차, 공사 감독·감리 등은 LH공사가 맡아 진행하는 방식이다.

LH공사 측은 공영개발 방식이지만 모든 결정은 주민 참여하에 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주민들이 추진하는 사업이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주민들이 자신들의 의사가 전혀 전달되지 못하고 LH에서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일부 주민들은 "LH공사에게 협박을 당했다"는 주장까지 하고 있다. 그러나 LH공사에서는 주민들이 결정한 대로 추진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덕천마을에 남은 300여 세대의 또 다른 문제는 그들 대부분이 '현금청산'을 원하고 있는데 이미 아파트 분양신청을 했다는 데 있다. LH공사는 일단 분양신청을 한 세대는 감정평가 금액을 전액 현금으로 받을 수 있는 '현금청산' 대상이 아니라고 못 박고 있다.

남은 주민들은 '현금청산'과 관련, "LH공사 담당자가 감정평가액을 여러 차례에 나눠 분할해 지급한다는 얘기를 했다"며 "분양신청을 안 하면 거지꼴로 내쫓길 수 있다고 협박해서 어쩔 수 없이 분양 신청을 했다"고 주장한다.

일부 주민들은 "감정평가액이 낮으니 일단 분양신청을 해서 프리미엄을 받고 분양권을 파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솔직히 털어놓기도 했다. 문제는 2009년 아파트 분양을 할 당시보다 현재의 부동산 경기가 더 나빠졌다는 것. 미분양 아파트가 속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프리미엄은커녕 분양가 아래로도 매매가 되지 않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들 주민들 대부분이 평당 1천만 원이 넘는 아파트 분양대금을 부담할 능력이 없다는 것도 큰 걸림돌이다. 가장 작은 평수인 24평형의 경우 분양가가 2억4천만 원이 넘는다. 황아무개씨의 경우 소유가옥의 감정평가 금액이 9천만 원이다. 그가 분양받은 아파트는 24평형. 최소한 1억5천만 원을 더 부담해야 하는 상황인데, 현재 77세인 그에게 그런 능력이 있을 턱이 없다.

"일을 하고 싶지만 누가 나 같은 늙은이에게 일자리를 주나. 자식들에게도 손을 벌릴 수가 없다. 차라리 현금으로 받고 나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분양신청을 해서 그것도 안 된다고 해."

이주비로 5400만 원을 받아도 이자를 부담할 수 없는 게 황씨의 현실이다. 당장 이자를 물지 않을 방법이 있기는 있다. 매월 이자를 낼 형편이 안 되는 주민들 이자는 LH공사가 대납해 주고 있다. 하지만 대납한 이자는 아파트 입주 전까지 갚아야 한다. 이자 부담은 주민들이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결국 남은 주민들은 '부동산 평가 현실화 및 주거이전비, 영세민 이주대책 마련' 등을 요구하며 지난 9월부터 안양시청 정문에서 무기한 농성을 하고 있다.

현금청산을 요구하는 주민들은 LH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LH공사 담당자는 "현재 33세대가 현금청산을 요구하며 소송을 하고 있다. 판결여부에 따라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이 될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분양신청을 받은 세대는 현금청산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남은 세대들에게 이주 대책을 마련해준다면 해결책이 있을 것 같지만, 이 또한 쉽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LH공사 담당자는 "1억 원 이하의 영세가옥주에게 국민임대주택 등을 알선해줄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해당자는 극히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기초생활수급권자 등이 대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이 제공하겠다고 나선 임대주택 등은 안양권이 아닌 수원, 오산, 안산, 화성 지역에 있다. LH공사 담당자는 몇 가구가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은 채 "대책이 있다"고만 거듭 강조했다.

안양7동사무소 관계자는 현재 남아 있는 주민 중 기초생활 수급자는 15세대 21명, 차상위 계층은 8세대 20명이라고 밝혔다.

덕천 지구 문제는 또 있다. 재개발의 주체가 되어 문제해결에 나서야 하는 '주민대표회의' 대표와 주민들이 전혀 소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덕천 마을 주민들은 "지난 2009년 초, 감정평가 금액이 발표된 뒤 주민대표인 이아무개씨와 연락이 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감정평가 금액이 예상보다 낮게 나오자 주민들의 항의가 거세졌고, 이에 부담을 느낀 이아무개 대표는 주민들과 일체 접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답답한 주민들이 안양 시청에 중재를 요청, 이씨를 만나긴 했지만 아무 말도 듣지 못했다고 한다.

주민대표회의 사무실은 현재 문을 잠가놓은 상태로 전화를 받지 않고 있다. 지난 24일, 오전에 기자가 통화를 시도했으나 "고객님은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답변만 연거푸 들을 수 있었다. 통화를 시도한 뒤 나중에 휴대폰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의 메시지가 왔다.

"주민대표회의 사무실입니다. 덕천재개발 사업의 시행권한이 LH 공사에 있어, 모든 업무는 LH공사만 할 수 있답니다. 주민 대표 회의가 할 업무가 없다고 하오니 LH공사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LH공사 담당자 역시 "주민대표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또한 이런 사실은 안양7동사무소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답답해진 주민들은 '주민대책위원회'를 구성될 수밖에 없다. 주민대책위는 영세 가옥주 권리자 철거민 대책위원회와 주거 세입자 대책위원회, 주민 비상대책위원회 이렇게 3개의 단체가 구성돼 있다. 남은 300여 세대의 주민들은 처한 상황과 입장에 따라 각기 다른 3개의 단체에 가입해 있는 상황이다.

떠난 주민들 "하루하루가 돈...빨리 재개발 되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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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 덕천마을 ⓒ 유혜준


남아 있는 이들도 문제지만 재개발이 진행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이주한 이들의 속도 시커멓게 타들어가고 있다.

25일, 김아무개(56·남)씨와 어렵게 통화를 할 수 있었다. 김씨는 24평형 아파트(땅 지분 11평)를 소유하고 있었다. 감정평가 금액은 1억2천만 원. 그는 33평형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아파트 평당 분양가는 1000만원~1300만 원 선. 그가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금액은 2억5천여만 원이다.

그 뿐이 아니다. 김씨는 이주비에 대한 이자를 부담하고 있는 상황이다. 만일 아파트 입주가 늦춰지면 늦춰질수록 김씨의 이자부담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김씨는 이와 같은 상황을 설명하면서 "(재개발을) 되돌릴 수 있다면 되돌리고 싶다"고 말했다. 김씨는 재개발을 멈추면 어떻겠느냐고 묻자 "너무 많이 와서 되돌리기 어렵다"며 "하루빨리 (재개발을) 추진해야 이자라도 덜 나가지 않겠느냐"고 대답했다. 김씨는 "혹시 뾰족한 수라도 있으면 얘기해 달라"고 답답한 심정을 밝히기도 했다.

주민대표가 손을 놓고 있는 상황에서 LH공사는 철거업체를 선정, 내년 3월부터 본격적인 철거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 때까지 남은 주민들이 이주하지 않을 경우 어떻게 할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LH공사 담당자는 명확한 대답을 하지 않으면서 "재개발 사업은 예정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담당자는 "남은 사람들도 문제지만 이주한 94%의 주민들을 위해서라도 사업은 예정대로 추진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하지만 뚜렷한 이주 대책이 없는 상황이라 이 과정에서 주민들과 충돌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남은 주민들은 "죽어도 떠날 수 없으니 여기에서 죽을 수밖에 없다"는 말을 되풀이 하고 있다. 이상은 주민비상대책위원장은 "폐허 같은 마을을 벗어나고 싶지만 이주대책이 나올 때까지 갈 수가 없다"고 말했다.

94%의 주민들이 이주한 덕천마을은 점점 폐허로 변해가고 있다. 빈집들은 대부분 창문과 문, 부엌가구 등이 깨어진 채로 방치되어 있다. 빈집 여기저기에는 이주한 주민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들이 쌓여 있어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이 지역은 특히 밤에 우범지대로 변할 것을 우려, 안양7동사무소에서 밤마다 순찰을 돌고 있다.

"덕천마을은 70년대에 난곡이 재개발이 되면서 이주해온 사람들이 만든 마을이다. 그 때는 비가 오면 허리까지 물이 찼던 동네를 사람이 살 수 있게 만들었는데, 이제 여기를 떠나면 대체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우리는 갈 곳이 없다."

백발이 성성한 황아무개씨가 푸념하듯이 털어놓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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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 덕천마을 ⓒ 유혜준


#덕천마을 #공영개발 #LH공사 #재개발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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