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 치고나서야 생명 품는 바다

[포토에세이] 제주 바다를 보며 인생을 배웁니다

등록 2012.12.27 15:53수정 2012.12.27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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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달리 바다 단 한순간이라도 쉬지 않는 바다, 파도가 높은 날이면 물고기는 더 깊은 바다로 들어가 쉰다. ⓒ 김민수


폭풍이 오면 바다는 화난듯 소리를 지른다. 그 소리에 놀란 물고기들은 저 심연으로 숨어들고, 어부들도 폭풍이 지나가길 기다린다. 그것이 바다에 대한 폭풍과 높은 파도에 대한 예의다.


폭풍의 시간, 그것은 바다에게는 정화의 시간이다. 자기 안에 더러운 것들을 뒤집어 내는 시간, 다시 생명을 잉태하는 시간은 인간이 생명을 잉태하는 순간처럼 비밀스러운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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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 바다 성산일출봉에서 바라본 성산포, 우도에서 성산포로 들어오는 도항선 꼬리에 하얀 포말이 인다. ⓒ 김민수


한결같은 바다인듯 하면서도 단 한 번도 같은 적이 없었던 바다. 미칠듯 그리워하다가도 태풍이 몰아치는, 칼바람이 몰아치는 바다에 서면 이내 돌아설 수밖에 없다.

사람이 변덕스러운 것이 아니라, 바다가 변덕스러운 것일까? 변덕스럽기 보다는 그것이 바다고 그것이 사람이다.

안절부절... 바다가 내게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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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 하도바다에서 바라본 우도의 일출, 여명의 빛이 바다를 물들인다, ⓒ 김민수


내 삶에 폭풍이 밀려올 때 나도 저 심연의 바다 밑으로 숨어드는 물고기처럼 내 안으로 숨어들었다.


그러나 내 안은 바다처럼 깊지 않았다. 숨지도 못하고 안절부절하지 못하고 있을 때 바다는 내게 말했다.

"당신도 나처럼 이겨낼 수 있을 거야. 폭풍이 몰아치고 나서야 생명을 잉태하는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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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 하도 철새도래지에서 바라본 일몰, 다랑쉬오름이 그림자처럼 서 있다. ⓒ 김민수


그 뒤로는 바다가 무섭지 않았다. 내 삶에 휘젓고 들어오는 바람도 무섭지 않았다. 그러나 어떤 바람은 두려웠다. 그 바람에 쓰러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 바람의 크기가 가늠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구나 희망을 말하지만, 절망하지 않은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선물이기 때문에. 절망한 것들도 희망하지 않아서 절망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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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포의 아침 빛내림이 찬란한 아침,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아 벅차다. ⓒ 김민수


먹구름을 파고드는 햇살, 먹구름이 없어도 좋았겠지만, 먹구름이 있어도 나쁘지는 않다. 또 다른 빛으로 다가오는 것처럼, 폭풍의 삶 혹은 그런 역사라면 또 다른 빛으로 빛나면 될 일이다.

온갖 상상할 수 없는 풍랑을 다 겪고도 바다인데, 이미 각인된 풍랑이며 언젠가는 이겼던 풍랑의 세월인데 쓰러지기야 할라고. 내가 쓰러져도 또 다른 이가 이겨내면 되는 것이지.

아픔 직시하더라도 절망 않는 게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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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 하도 바다의 일출...바위들이 하나의 작은 섬같다. ⓒ 김민수


아픔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똑같은 바다를 바라보면서도 아주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으며, 바다에 대한 찬가가 아니라 독설을 내뱉으며 저주를 할 수도 있고, 찬가를 부른 이가 반드시 승리하는 것은 아니구나. 그것은 그냥 지나갈 것들이구나.

지나갈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영원한 것, 더디더라도 이뤄지고 말 것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것이 잘 사는 것이 아닐까? 지금이 그 순간이 아니라고 조바심내거나 절망하지 말고, 기어이 이런 날들도 지나갈 것이라는 기대가 현실이 되는 날을 볼 수 있는 것이 사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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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 그로인해 바다는 썩지 않는다. ⓒ 김민수


원하지 않는 풍랑. 바다는 원하는 바람만 맞이하지 않는다. 그리고 풍랑이 일거나 잔잔하거나 바다는 그냥 바다이듯 사람도 그냥 사람이다. 사람이기에 자기가 원하는 대로만 살 수 없는 것, 그래도 여전히 사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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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 처음, 하루의 시작은 이렇게 벅차게 시작되건만... ⓒ 김민수


그렇게 살다보면, 때론 내가 원하지 않았던 풍랑이 내 삶에 다가왔듯이 내가 상상하지 못하던 아침도 오는 법이다.

다 끝난 것도 아니며, 내일이 오지 않는 것도 아니라면, 그 내일을 내가 맞이할 수 없다고 해도 끝난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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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신 바다, 그 깊음 속에도 저 빛이 비추면 좋겠다. ⓒ 김민수


바다를 보면 함부로 살지 말아야지, 아무 말이나 쏟아내지 말아야지, 스스로 나를 속이는 일 없어야지 다짐하게 된다.

바다에 우리가 볼 수 없는 수많은 생명들이 살아가듯, 내 맘 속에 있는 생명있는 말들을 조근조근 아껴야지. 불쑥불쑥 튀어나오고 싶어 안달하는 남을 헐뜯는 말들을 저 심연의 바다에 뭍어버리고, 그 말들이 부서져 생명의 말로 거듭나게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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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 그 바다에 사람이 있을 때, 바다는 바다가 된다. ⓒ 김민수


그는 바다이고, 나는 사람이기에 내게는 사람이 먼저다. 아무리 아름다운 풍광이라도 사람이 없으면,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면 사람인 네게 그것이 무슨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바다에 사람이 없으면, 그를 바라보는 사람이 없으면 사람인 내게 바다는 무슨 의미란 말인가? 너무 이기적인가? 이기적이라고 해도 할 수 없다. 사람이 없어도 바다는 존재하겠지만, 그렇게 존재하는 바다가 사람에게 무슨 의미란 말인가?

내가 살아 숨쉬면 만나는 것들에게만 나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은 끊임없이 나를 거기에 세우겠다는 것이다.

한 차례의 폭풍이 지나가고 다시 시작된 폭풍전야에 나는 나를 다잡는다. 어떤 풍랑이 밀려와도 나는 사람으로, 사람답게 살아가겠노라고.
덧붙이는 글 2006년 이전에 담은 제주도의 바다 사진 중에서 선별한 것입니다.
#제주도 #바다 #종달리 #하도 #성산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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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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