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해서 농사만 짓는다는 생각, 버리세요

전북 진안 봉곡마을 귀농부부를 만나다

등록 2012.12.27 16:44수정 2012.12.27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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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토와 볏짚으로 건축한 스트로베일 하우스 ⓒ 오창균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전북 진안으로 귀농한 지 8년차인 이재철, 박후임 부부가 살고 있는 집은 일반 농촌주택과는 달라보였다. 황토흙벽을 두드리자 속이 텅 빈 것 같은 느낌이다. 볏짚과 황토를 이용해서 지은 스트로베일하우스(strawbale house)라고 했다. 에너지 자립을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생태건축이다.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한낮에는 별도의 난방없이 통유리로 들어온 햇볕만으로도 단열효과가 있어서 실내에서는 온기가 느껴졌다.


그동안 빈집을 얻어서 살다가 작년에 집을 지었다. 처음부터 내 소유의 땅과 집에 대한 생각이 없었는데 경매로 넘어갈 처지에 놓인 마을주민의 밭을 농사를 짓고 있던 부부가 거둬줬으면 하는 마을의 간곡한 뜻을 받아들였다.

"땅을 사기로 하고 돈을 마련해야 하는데 없었다. 지인들에게 메일을 보내서 땅을 살 돈을 모아보자 했는데 마침 일했던 교회에서 주지 못한 퇴직금(1500만 원)을 보내줘서 구입하게 되었다." - 박후임

서울 구로공단 새터교회 목사였던 부인 박후임씨와 천주교 수사가 되고 싶었던 이재철씨는 개종에 대한 고민을 나누면서 가깝게 지냈다. 이후 자연 속에서 명상하고 일하는 삶이 곧 영성이라는 깨달음에 대한 생각이 같음을 알고는 더욱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귀농의 계기도 새로운 방식의 삶으로서 농촌에서 농사를 짓고 사람 만나고 사는 것이 목회라고 생각하여 마을 한 가운데의 빈 집을 얻어 2005년 진안으로 귀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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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와 담소를 나누는 지역주민들 ⓒ 오창균


마을 안에서 살다보니 마을이 눈에 들어오고 농촌의 현실이 마음 속에 들어왔다는 이씨는 초창기부터 작목반과 농촌개발사업등을 하는 일에 기획을 하고 행정과 마을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 열심히 하는 것은 좋았는데 변화를 하려는 계몽적인 생각들이 강해서 시행착오를 많이 거쳤다. 지역사업 중에서 교육은 대부분 행정기관(컨설팅업체)이 만든 매뉴얼대로 움직인다. 인터넷상거래, 마케팅 이런 것들이 실제로 마을에는 필요 없어 보였다. 내가 공공부분을 맡고 있어서 어차피 쓸 예산이라면 각각의 동아리들이 지역에서 활성화 되도록 공부방 등의 제안이 받아져서 지역역량강화 사업들이 시작되었다." - 이재철


귀농인에 대한 시선이 곱지만은 않은 농촌현실에서 처음부터 마을 일에 주도적으로 나선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텐데, 마을 주민들이 부부를 믿고 신뢰하는데는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부인 박후임씨는 그 이유를 문화적 차이에 적응을 잘했고 존중을 했기에 가능하다고 했다.

"동질감이 중요하다. 그것은 농사를 같이 짓기 때문이다. 농사를 짓느냐 아니냐는 같이 생활을 하느냐 아니냐의 문제다. 같이 일을 나눠서 하기 때문에 농사방법이 달라도 인정을 해주는 계기가 된다." - 박후임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하는 관행농업 속에서 유기농업을 시작한 부부의 농사법을 마을에서 존중해주는 데에는 먼저, 마을문화에 대한 존중과 주민들의 삶을 인정하고 칭찬하는데 인색하지 않았던 것이다. 농기계 없이는 농사짓는 것이 어려운 농촌현실에서 마을의 여러 가정들이 중고기계를 공동으로 구입하고 쓰는 것도 흔치 않는 일이다. 그러나 나이가 많은 어른들을 대신해 이씨가 직접 기계를 움직이고 공동으로 농사일을 하면서 서로간의 존중과 신뢰가 쌓였음이 짐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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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고 수사가 되고 싶었던 이재철(왼쪽)씨와 목사였던 박후임 부부 ⓒ 오창균


이씨는 도시에서 귀농한 사람들이 농촌에서 겪는 갈등의 원인은 문화적인 차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귀농인들이 도시에서 어떻게 살았던 간에 농촌에 대한 당당함, 우월감이 있다는 것이다. 농촌문화는 감성적이고 정서적이기에 농촌문화에 대한 배려와 이해가 없다면 갈등은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마을사람들과 생활하다 보니까 어른들의 삶이 훌륭하고 가치있었다. 생명, 먹거리를 생산하고 있다는 것. 땅을 지키고 있다는 것.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는 그것들이 제대로 반영이 안 되고 있다. 7%의 농촌인구가 투표를 하더라도 제대로 대접을 못 받는다. 모든 정책에서 농업은 밀리고 핸드폰, 자동차 수출이 낫다는 시장의 자본논리로 접근해버리니 농촌이 필요없다고 보는 거다. 그런데 농촌에 내려와서 보니까 그건 아니라는 문제의식을 갖게 된 거지. 또 하나는 콤플렉스가 있어. 배우지 못한 것에 대한 삶의 자존감이 높지가 않아. 그러다보니 자신의 삶에 대해서 스스로 좋은 점수를 못 주는 거야. 그래서 자식만큼은 나처럼 살지 마라 그러니까 농촌에서 도시로 자식들을 가르쳐서 밀어냈던 거야." - 이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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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주민들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시작한 행복한 노인학교 ⓒ 오창균


마을주민들 스스로 당신들의 삶이 훌륭하다는 자존감을 높여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고민이 시작되었고, 교육과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때마침 마을교회에서 행복한노인학교를 시작하게 되었고, 귀농인들이 자원봉사형태로 참여를 해서 부인 박후임씨는 한글교실과 교감을 맡고 있다.

삶의 자존감을 높여주는 또 다른 매개체로 마을박물관을 제안했다. 지역사회기여사업에 공모를 해서 채택이 되었고 마을박물관을 어른들과 함께 준비하게 되었다.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먼지 앉은 앨범 속 사진들에 담긴 수많은 이야기와 애환들을 듣다가 같이 울고 웃으며 어른들이 갖고 있던 삶의 물건들과 사진(복사본)을 모아서 마을 박물관을 개관하게 되었던 때가 2010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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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박물관에는 오래된 생활용품과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 오창균


귀농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마을 일에 두 팔 걷고 나선 이들 부부의 생계수단이 궁금해졌다. 처음 2년은 결혼축의금으로 생활해보니 월 50만 원이면 살겠다 싶었다. 그 뒤로는 가정경제를 꾸려나갈 시스템의 필요성을 느꼈다. 가까운 친인척과 지인들에게 생각을 담은 메일을 보냈고, 한정되게 생산된 농산물을 분배해서 나눠줬더니 25가구에서 매달 2~3만 원씩을 지금까지 보내주고 있다.

"이것은 등가의 개념이 아니라 그때마다 한정되게 생산된 농작물을 분배해서 보내줬다. 감자,양파, 야콘, 사과, 쌀… 그렇게 해서 생활시스템을 갖췄다. 그것의 바탕은 신뢰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가 땅을 살리고 농사를 살리는데 함께 한다는 마음을 나눴으면 좋겠다 해서 시작했고, 우리가 농사 짓는 것이 그분들과 함께 농사짓고, 땅을 살리는 것이라는 마음이었다."  - 이재철

부부는 현재 3000평(논 1천평, 밭 2천평)의 임대농사를 짓고 있으며 지역의 특산물인 오미자가 가계에 큰 보탬이 되고 있다. 귀농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그동안의 귀농경험에 비춰서 조언을 부탁했다.

"농촌사회가 농사만 지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그림을 그리거나 교육을 담당하거나 다양한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농사만 짓는다고 한다면 주민들과 경쟁상대가 될 수도 있다. 한정된 자원과 인력 속에서 다양한 일자리들이 계속 개발되고 만들어져야 한다. 귀농인들이 농촌문화에 대해 옳고 그름으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갈등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어떻게 풀어내느냐가 중요하다. 오는 사람이나 여기 있는 사람이나 서로 만나면서 문화의 다양성이 존중 된다." - 이재철

소득과 관련해서는 농사를 짓는다면 시간을 길게 봐야 한다고 했다. 자본을 투입해서 바로  얻어지는 상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씨는 귀농귀촌은 많이 권유하고 싶다면서도 도시에서의 삶을 다른 관점(단순소박한 삶)으로 바꾸는 것이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을 강조했다.
#진안 #귀농 #농촌 #자존감 #동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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