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3·1만세운동 발원지를 아시나요?

항일여성독립운동가의 산실 광주 수피아여고

등록 2012.12.27 21:01수정 2012.12.27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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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피아홀 5월 신록 속의 수피아홀(100년 된 건물로 지금은 역사관으로 쓰고 있다.) ⓒ 수피아여고


"그리운 옛동산에 다시 올라 외오쳐 불러보는 애틋한 메아리여 / 흘러간 세월 자락의 굽이는 물결과 항거의 아우성에 분노의 저 노도(怒濤)도 / 그 매운 절개로 하여 총칼 앞에 몸을 던져  피 뿌려 싸우던 자매의 그 반일(反日)의 크막한 얼이 깃들어..."(정소파 <그리운 옛동산의 노래 - 교령 팔십에 바치는 시> 가운데)

항일여성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를 찾아 빛고을 광주 수피아여자고등학교(교장 박정권)를 찾은 것은 초겨울 추위가 제법 쌀쌀하던 2012년 12월 3일 오후였다. 겨울비가 내린 탓에 곳곳에 오랜 역사를 간직한 건물들이 말끔히 세수를 한 듯 정갈했고 떨어진 낙엽과 어우러진 교정은 어느 이름 모를 화가가 그린 한 폭의 그림 같이 정겨웠다.

서둘렀는데도 학교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5시. 밖이 어두워지기 전에 교정을 둘러보자는 박정권 교장선생님의 권유로 1911년에 건립된 수피아홀부터 시작해 3·1만세 운동 기념비까지 둘러봤다. 수피아홀은 현재는 역사관으로 쓰이고 있는 곳으로 수피아 백년의 역사를 간직한 세월이 힘에 겨운 듯 지금 리모델링 작업이 막 끝나가고 있었다.

약간 언덕에 있는 역사관 건물을 지나 1924년에 지은 아담한 배유지(Eugene Bell 목사의 한국명)기념관에 서서 수피아여학교를 비롯한 목포 정명학교와 영흥학교 등 한국의 근대화된 교육기간을 세워 인재를 육성하던 배 목사님의 한국사랑 정신을 되새겨 봤다.

항일투쟁의 역사가 담긴 수피아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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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통 골목 수피아여학교 학생들이 만세운동을 부르며 달려 나오던 서문통 골목, 만세운동을 주도한 박애순 애국지사의 환갑 때 모습(1957) ⓒ 수피아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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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문 박애순 애국지사의 형사재판 판결문 ⓒ 수피아여고


당시 수피아여학교 교사였던 박애순 애국지사는 3월 10일 광주만세운동주동자로 체포돼 왜경에 모진 고문을 받으면서도 "나는 조선의 독립을 절실히 희망하였기에 만세운동에 참가했다"고 당당히 말하며 왜경을 호통 쳤다. 3월 1일 서울에서 거족적인 만세운동의 물결이 일어난 뒤 닷새 뒤인 3월 6일 광주 양림동의 남궁혁 목사 집에서는 박애순 교사 외에 12명의 애국지사들이 모여 광주의 독립만세 운동을 꽤했고 드디어 3월 10일 광주에서도 독립만세운동의 불길이 번졌다.

"박애순 애국지사는 고등과 제1회 졸업생으로서, 본교 교사로 재직 중에 광주 3·1 만세운동을 주도했는데, 특히 수피아 여학생 60명을 데리고 만세운동을 선도하다 체포돼 1년 6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983쪽에 이르는 <수피아 100년사>에는 당시 여학생들의 항일투쟁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만국강화회의에서 우리나라가 독립이 승인됐다, 각지에서 독립운동이 전개되고 있으니 우리들도 이 운동을 벌여 대한독립만세를 불러야 한다"며 당시 서울의 만세운동 소식과 더불어 국제정황에 대한 교육을 게을리 하지 않던 박애순 애국지사는 학생들의 피 끓는 애국심을 독려했으며 그 자신이 솔선수범해 앞장서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투옥됐다.

광주지역의 만세운동으로 왜경에 붙잡혀간 수피아여학교 독립투사들은 교사 박애순(징역 1년 6월)·교사 진신애(징역 10월)를 비롯해 학생 20명이 징역 8월에서 4월에 이르는 옥고를 치렀다. 홍순남·박영자·최경애·양태원(징역 8월), 김필호·임진실·고연흥·박성순·이태옥·김양순·양순희·윤혈여·김덕순·조옥희·이봉금·하영자·강화선·이나열·김안순·최수향(징역 4월) 등 댕기머리 여학생들은 왜경의 총칼도 두려워하지 않은 채 광주 지역의 만세운동에 적극 가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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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일회 반일회(反日會)를 숨겨서 반일회(班日會)라는 이름으로 학예회를 하던 학생들 (1931년) ⓒ 수피아여고


밤이면 반짝이는 수많은 불빛들 / 생명은 끝없는 조수를 타고 흘러온다
초록빛 별빛 같은 들에 과수나무 / 바닷빛 파란 하늘에 걸린 구름들이
내 일찍이 조선의 빛과 자랑 / 광주보다 좋은 곳을 보지 못했노라
- 수피아 100년사 가운데


1923년 미국에서 발간한 잡지 'kwangju korea (미국 내쉬빌 미국장로회 외국선교 집행위원회서 간행)에는 당시 빛고을 광주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별빛·초록빛·바닷빛·불빛. 빛의 고장 광주에 정식 여학교가 들어선 것은 1908년 4월 1일이다. 학교를 세운 사람은  미국 남장로교 배유지 (Dr. Eugene Bell) 목사로 수피아(須彼亞)란 이름은 스턴스(M.L.Sterns) 부인의 여동생을 기념해 "jennie speer memorial school for gils" 이라고 부른 데서 유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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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옥기념 3·1 운동으로 투옥되었다가 같은 날 출옥한 분들의 기념사진 / 강화선, 이나열, 최경애, 양태원(뒷줄 왼쪽부터), 고연홍, 김필호, (식모), 최수향, 이봉금(앞줄) ⓒ 수피아여고


올해로 104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수피아여고는 항일독립운동가인 박애순(1986년 대통령표창)·진신애(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조옥희(2003년 대통령표창) 등 수많은 애국지사를 배출했으며 한국민주화운동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긴 광주의 어머니 조아라 여사도 이 학교  출신이다. 이러한 선학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법조계는 물론이고 사회 각 분야에 진출한 걸쭉한 동문의 활약이 두드러진 가운데 후학들 역시 뒤질세라 '대한민국 인재상'을 수상하는 등 광주의 자존심 수피아여고의 이름을 드날리고 있다.

100년 역사 지닌 이 학교의 힘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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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인재상 박한나 학생의 “대한민국 인재상” 수상 기사 ⓒ 수피아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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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탑 3.1만세운동 기념탑과 총동문회에서 내건 수피아 출신 법조계 진출 동문 펼침막 ⓒ 이윤옥


'믿음에 굳게 서자, 실력을 양성하자, 정성껏 실천하자'는 교훈 아래 현재 총 36학급 1378명이 재학 중인 광주의 명문 수피아여고는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하여 1937년 9월 6일 자진 폐교한 이래 1945년 12월 5일에 복교한 민족의 자존심을 지닌 학교이다.

"학교장으로 제가 추구 할 것은 단 하나 '행복'입니다. 수피아 학생들과 선생님들은 하루의 대부분을 학교에서 보냅니다. 따라서 이곳이 즐거운 곳이 되면 모두의 삶이 행복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과 정이 넘치고 따뜻한 관심과 배려가 넘치는 학교, 스스로 배우려는 활력이 넘치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학교로 만들고 싶습니다."

위는 수피아여고 누리집에 있는 박정권 교장선생님의 인사말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학생사랑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데 이러한 교장선생님의 뜻을 이어받아 공부 외에도 학생들은 지구환경탐구반·사서반·미국드라마영화감상반·포크기타반·시사문제토론반 등 무려 56개의 동아리반을 만들어 행복한 학창시절을 수놓고 있다.

수피아 100년의 힘은 무엇일까?

"저는 100년사를 준비하면서 수피아의 힘은 훌륭한 스승임과 아름다운 제자들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 그들의 사랑으로 수피아는 발전하여 마침내 동창들의 모교사랑으로 이어져 오늘의 수피아가 되었습니다."(수피아 100년사)

이 말이야 말로 오늘의 광주 수피아여고를 간결하게 대변해주는 말이 아닐까 한다.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운데 박정권 교장 선생님과 대담을 마치고 귀경을 서두르는데 사위는 이미 어두워져 버렸다. 대담 내내 미소를 잃지 않던 교장 선생님은 시장할 텐데 학교 식당에서 저녁을 함께 하자고 권해 구내식당으로 갔다. 학생식당과 나란히 붙은 교직원 식당의 저녁 뷔페 음식은 "학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하는 학생을 배려해 최대한 맛있고 영양가 풍부한 식단을 위해 항상 힘쓰고 있다"는 교장 선생님 말처럼 시내 그 어느 음식점의 음식보다 맛있고 정성이 가득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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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권 미소 띤 얼굴로 수피아여고 출신의 여성독립운동가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박정권 교장 선생님과 함께 ⓒ 이윤옥


공부도 행복하게, 음식도 행복하게, 학창시절의 추억도 행복하게 보낸다면 그것이야말로 나라를 빼앗기고 독립을 쟁취하려던 독립운동가들이 꿈꾸던 세상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광주 학생운동의 발원지이자 항일여성독립운동가들의 나라사랑 정신이 가득 서려 있는 수피아여고 교정을 나오면서 그간 제대로 조명되지 않은 여성독립운동가들을 하루 바삐 정리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귀경길에 올랐다.
덧붙이는 글 수피아여고 출신의 항일애국지사에 관한 이야기는 항일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필자의 시집 <서간도에 들꽃 피다>3권 (2013년 출간 예정)에 실을 예정입니다. 이 기사는 <대자보>에도 보냈습니다.
#수피아여고 #3?1 만세운동 #박애순 #박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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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시인.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한국외대 외국어연수평가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냄 저서 《사쿠라 훈민정음》, 《오염된국어사전》,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 》전 10권,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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