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의 또 다른 영웅 정기룡 장군을 만나다

[상주여행기2] 왜란과 상주의 새로운 발견

등록 2012.12.28 11:32수정 2012.12.28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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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시 감나무 가로수 ⓒ 김수종

상주에서 복요리로 맛있는 점심을 먹은 우리는 지역의 명물 '감나무 가로수 길'을 둘러보기 위해 시청 방향으로 갔다. 전국적으로도 상주와 충북 영동은 감나무 가로수 길이 무척 유명한 곳이다. 특히 상주는 시민들이 가로수로 조성된 감나무에 자신의 이름표를 걸고 관리하고 있는 특색이 있다.
상주시는 지난 20011년부터 관내 감나무 가로수에 대해 자율적인 주민참여를 통한 주인의식 고취 및 쾌적한 녹지조성을 위해 가로수관리 주민실명제를 시행하고 있다. 실명제를 통해 가로수의 중요성과 소중함을 주민들에게 인식시키고 주인의식과 효율적인 가로수 관리, 예찰 및 신고체계를 구축했다.

시행 초기라 아직은 도심에 있는 일부 가로수를 대상으로 주민신청을 받아 이름표를 제작, 부착하여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조만간 사업이 안정화되면 전정, 병충해 방제, 표찰 등에 드는 비용 일부를 지원하고 관리 실적이 우수한 사람들에게는 표창장도 수여할 예정이다.


상주시는 이를 통하여 민관이 함께하는 가로수관리 주민실명제로 더욱 깨끗하고 쾌적한 도시를 만들어 가고 있는 중이다. 아울러 전에는 감 일부를 따서 노인복지시설에 기증하기도 했지만, 요즘은 행사가 많아 많은 사람들이 감상할 수 있도록 따지 않고 그대로 두고 있다고 한다. 우리들은 그 수를 점점 늘리고 있다는 감나무 가로수를 보면서 멋지게 달려 있는 까치밥용 감들을 구경한 다음, 만산동에 있는 '임난 북천 전적지(壬亂 北川 戰跡地)'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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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시 임란북천전적지 ⓒ 김수종


경북도기념물 제77호인 이곳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순변사 이일이 인솔한 중앙군 60여 명과 상주에서 창의한 의병 800여 명이 북상하는 왜군의 선봉 주력부대 17000여 명과 싸우다 순절한 옛 싸움터다.

임란사상 중앙군과 의병들이 뜻을 모아 왜군의 선봉주력부대에 대항하여 최초로 일대 접전을 벌인 전투라는 데 큰 뜻이 있는 곳이다. 후세 사람들이 이곳에 사당을 세워 당시 순절한 8명을 배향했다. 이경류, 박지 등의 3충신과 김준신, 김익의 2의사를 충의단, 판관 권길과 호장 박걸은 현지단에, 찰방 김종무는 충렬단에 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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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시 사당에 큰절을 하다 ⓒ 김수종


나와 친구들은 나라를 지키다가 순국한 수많은 군인과 의병들을 위해 사당에 배향하고 충의단, 현지단, 충렬단을 전부 둘러보았다. 상주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어 놀랍기도 했지만, 부끄럽기도 했다. 그래서 사당에 큰절을 세 번하면서도 마음이 매우 아팠다.

이어 전적지 바로 아래쪽에 있는 조선시대 상주목(尙州牧) 객사인 '상주 상산관(尙州 商山館)'으로 갔다. 객사는 한양에서 지방으로 출장 온 중앙관리들과 외국 사신들이 묵어가는 숙소로 임금을 상징하는 궐패인 전패를 모시고 매월 초하룻날과 보름날에 궁궐을 향해 의식을 행하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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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시 상주목 객사 ⓒ 김수종


상주 객사는 고려 시대에 처음 설치된 후 여러 번 창건과 재건, 이축을 거쳐 1991년 현재의 위치로 이건 되었다. 건물 면적은 460㎡이고 정면 14칸, 측면 3칸이며 가운데에 본관을 두고 양쪽에 동익헌, 서익헌을 갖춘 형식으로 3동이 나란히 연결되어 있다. 본관은 앞면 3칸, 옆면 3칸이고, 지붕은 옆면이 사람 인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동익헌은 앞면 7칸, 옆면 3칸으로 본관 쪽 지붕은 본관과 같은 맞배지붕이고 동쪽은 옆면이 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서익헌은 앞면 4칸, 옆면 3칸으로 동익헌과 같이 본관 쪽은 맞배지붕이고, 서쪽은 팔작지붕이다.

건물의 외부 기둥은 원기둥이고 내진주는 각주로서 7량 가구에 연목천장을 하였고 익공집에 겹처마로 멋과 장식을 더했다. 바닥에는 우물마루를 깔았다. 지방 관아건물 중 남부지방에서 가장 큰 규모의 장대함과 지붕마루 끝에는 14개의 용두가 잘 남아 있어 볼 만하다. 건물 정면 가운데에 '상산관'이라는 멋진 현판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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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시 상주객사 ⓒ 김수종


나는 상주가 경주와 함께 경상도에서 가장 큰 도시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규모가 크고 멋스러운 객사가 있다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얼마 전에 방문했던 나주객사에 비해 비록 규모는 조금 작았지만, 강가에 자리하고 있어 운치도 있고 눈이 와서 참 보기에 좋았다.  

이어 우리가 이동한 곳은 사별면 금흔리에 있는 조선의 무장 '정기룡(鄭起龍)장군의 묘와 유적지'다. 정 장군은 그다지 유명하지는 않아도 실제로는 명장 이순신에 버금갈 만큼 큰 무공을 세운 거룩한 장군이다.

정 장군은 중국 삼국시대 촉나라의 무장 조자룡과 비교되는 임진왜란의 조자룡이라고 불렸던 인물이다. 장군은 임란 당시 이미 '바다에는 이순신, 육지에는 정기룡'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유명했다.

31세의 나이에 상주성 탈환을 비롯해 60전 60승이라는 전승을 거두면서 조선을 위기에서 구해낸 구국의 영웅이다. 너무 젊다는 이유로 전쟁 이후 일등공신에 오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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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시 정기룡장군 유적지 ⓒ 김수종


장군은 경남 하동출신으로 곤양정씨(昆陽鄭氏)의 시조다. 소규모 유격전 기습전을 가장 잘 활용했던 충의와 무용을 겸비한 무신이었다. 임진왜란 때는 거창, 금산 싸움에서 전공을 세우고 상주성을 탈환한 전공으로 상주목사에 올랐다.

이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고령에서 적장을 생포하고 성주, 합천, 초계, 의령, 경주, 울산을 수복했다. 이어 1617년 3도통제사 겸 경상우도수군절도사에 올랐다가 왜구를 방어하던 중책을 맡아 일하던 중 통영 진중에서 병사했다.

상주는 그의 외가 땅이며 묘소가 있는 곳이다. 원래는 묘소 주변에 5평 정도의 작은 사당이 있었는데 1972년 해체 복원하여 충렬사를 지었다. 이후 사당인 충의사와 유물관 등을 짓고 묘소와 주변을 정비했다. 이어 사당은 시호에 따라 충의사, 내삼문은 충렬문, 외삼문은 충의문이라 이름이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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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시 정기룡 장군 사당 ⓒ 김수종


나는 비록 소규모 게릴라 전투이기는 했지만, 60전 60승의 성과를 거둔 정기룡 장군이 계셨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고서 너무 부끄럽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했다. 나라를 위해 평생을 바친 훌륭한 무장의 이름을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해 공부를 더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죄스러운 마음으로 사당 앞에서 깊이 머리 숙여 큰절을 세 번 하고는 돌아서 나왔다.
#상주시 #감나무 #상주객사 #정기룡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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