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없는 역사박물관... MB의 마지막 '한 건'?

[주장] 졸속과 편향성 드러낸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등록 2012.12.28 16:58수정 2012.12.28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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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역사정의실천연대 주최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앞에서 열린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졸속 개관 중단 촉구 기자회견 ⓒ 역사정의실천연대


그동안 사업 추진 방식의 폐쇄성과 일방성, 즉흥성 등으로 말썽과 잡음이 끊이지 않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마침내 엊그제(12.26) 개관했다. 2009년 4월 16일 건립위원회(당시에는 아직 '국립대한민국관')가 처음 출범하여 위원들이 대통령에게 위촉장을 받을 당시 언론들은 개관 예정일을 2014년이라 보도했으니, 당초 일정을 무려 2년이나 앞당겨 개관하는 셈이다. 온갖 파행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현 정부 임기 안에 개관해 정권 업적으로 남기겠다는 의도를 관철시킨 것이다.

한편 독일의 경우, 현대사박물관인 '독일연방공화국역사의 집'은 헬무트 콜 전 총리가 건립 의지를 천명한 후 12년의 준비를 거쳐(1982~1994) 1994년에야 첫 상설전시관을 개관했다. 그 오랜 '박물관논쟁'을 통해 독일인들은 역사박물관의 역사전시란 무엇보다 개방성과 다양성의 원리에 기초해야 하며, 특히 전시 내용에 대해서는 역사가들로 구성된 '학술자문회'에서 모든 것이 논의되고 결정되도록 조치해야 하는데 합의하였다.

12년에 걸친 민주적 토론 과정과 비판 의견의 수용 및 전시 내용의 조정을 거친 독일의 경험과 비교해볼 때, '현대사박물관' 설립을 공표한 지 불과 4년여 만에 문을 여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그야말로 '졸속개관'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박물관은 유물 수집 및 자료 연구, 전시 연구에 많은 시간이 들 수밖에 없으므로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여서 개관할 일이 아니다. 특히 한국현대사는 우리 사회에서 커다란 쟁점이 되고 있으므로 전시 내용과 방향을 정하기 위해서는 다른 어떤 역사박물관보다도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지난 10월 8일 열린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의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에서 야권 의원들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전시내용에 역사왜곡이 심각하다는 비판을 쏟아냈다. 강동원 의원(진보정의당)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집권기를 보여주는 제3전시실은 나머지 1·2·4 전시실의 면적보다 41% 넓고, 전시자료도 전체의 1500여 점(41%)에 이르렀으며, 내용도 당시 추진된 경부고속도로와 새마을 운동 관련 내용이 대다수였다"며 "역사박물관은 박정희 찬양·미화 기념관"이라고 질타했다.

도종환 의원(민주당) 역시 "독일의 '역사의 집' 등의 사례 등을 보면 근현대사 유물은 사회적 논란과 쟁점 요소들이 많아 상당한 역사 평가기간을 거친다"며, 개관 연기를 주장했다. 이처럼 국정감사에서 박물관의 개관 시기를 조정하고 충분한 역사 검증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지적했음에도, 정부는 개관일정을 11월 22일로 잡았다가 다시 12월 26일로 미루는 등 마지막까지 혼선과 준비부족을 보이면서도 끝내 졸속개관을 강행하였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 연구자들과 소통도 없이 임기 말 졸속개관 강행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은 대한민국이 성취한 기적의 역사를 기록하고 새롭게 이어질 수 있도록 '현대사박물관'을 설립하겠다고 공표하면서, "선진일류국가가 되려면 무엇보다도 '기본'부터 다시 돌아보아야 합니다. 기본이 충실하지 않으면 사상누각일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우리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야말로 '기본'이 안 된 사상누각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본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학계 및 시민사회와의 소통부재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현대사박물관' 설립을 공표한 이후, 전문 역사학자들이나 시민사회가 시종 문제를 제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그 어떤 대화나 소통의 절차를 밟지 않았다. 정부는 역사학계를 비롯하여 학계의 전문적인 의견수렴 과정을 거치지 않았음은 물론, 시민사회를 비롯한 다양한 정치사회주체들의 의견수렴을 위한 공청회나 공식적인 간담회를 개최하지 않았다.

건립위원회 역시 대통령과 수차례 식사모임을 가졌지만 역사학계 원로 인사라든지 역사학 관련 학회 인사들과 간담회조차 하지 않았다. 건립위원회와 정부가 얼마나 일방적이고 비민주적으로 일을 추진했는지는 용역보고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운영기반 구축 및 발전방안 연구>에 잘 나와 있다(16-17쪽). 이를 보면, 건립착수단계와 건립실행단계, 모두에서 학계와 시민사회와의 토론 기회를 원천적으로 배제했고 일방적으로 추진해왔음을 잘 알 수 있다.

둘째, 한국현대사연구자를 배제한 전문성의 결여이다. 대통령이 위촉한 건립위원회의 위원들은 당연직 정부기관 위원 10명과 민간위원들 19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당연직 정부인사가 10명이나 되는 것도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역사박물관' 건립사업에 위촉된 19명의 민간위원 중 역사학 전공자는 4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건립추진단이 발주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전시주제 해설 기초자료 조사 연구용역'을 수행한 연구책임자를 비롯하여 공동연구원(11명) 거의 대부분이 한국현대사 연구자들이 아님이 드러났다. 더욱 한심한 일은, 집필진을 확정한 지 불과 2개월(2011. 10. 1.~12. 2.) 만에 1000페이지가 넘는 용역보고서가 작성·제출되었다는 사실이며, 이 보고서의 70%가량을 차지하는 해방 이후 현대사 부분의 감수자가 뉴라이트 계열의 학자로서 편향적 역사인식의 소유자라는 사실이다.

게다가 그는 기록대학원 교수로서 역사학자도 아니다. 설사 집필진 일부가 한국현대사와 관련한 연구 성과를 보여주었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정부 산하의 현대사박물관을 지으면서 그와 관련된 전시주제해설을 당대의 가장 뛰어나고 대표적인 연구업적을 선보인 역사가들과 그들이 속한 연구회나 연구자 집단을 모조리 배제한 것은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는 노릇이다.

셋째, 전시계획의 졸속성과 준비부족이다. 지난 2010년 3월 12일에 공표한 건립기본계획 및 전시주제(대주제, 중주제, 키워드)는 내용도 문제이지만, 한 나라의 현대사박물관 건립 기본 계획이라고 하기에는 내용 자체가 너무 빈약했다. 그 내용은 '대한민국의 태동', '기초 확립', '성장과 발전', '세계로의 도약'의 4개 대주제를 핵심 근간으로 이루어졌지만 앙상한 뼈대 이상의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다른 용역보고서인 <근현대사연구 활성화 방안연구>(국제정치학회 근현대사연구팀, 연구책임자: 김왕식 이화여대 사회생활학과 교수)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운영기반 구축 및 발전방안 연구> 모두 2011년 12월 말에 제출된 것으로 나온다. 이는 건립위원회가 최소한 2011년 말까지 어떤 종류의 체계적인 전시구상과 내용도 갖추지 못한 채 강령적인 초안을 갖고 박물관 전시를 준비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수백억 원을 들인 국가사업, 특히 역사전시를 다루는 박물관 사업을 전시 내용과 관련해 완성된 구상안도 없이 졸속으로 추진했던 것이다.

'성공의 역사'만 기록한 박물관... 그것은 역사가 아니다

넷째, 진행과정의 불공정성이다. 역사박물관 전시물 설명에 바탕이 되는 <전시주제 해설 기초자료> 용역을 수주한 곳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전시물 용역을 맡기 3개월 전 회사 설립을 신고한 정체불명의 급조된 기획사임이 이번 국감에서 드러났다. 게다가 1억 원이 넘는 각종 연구 용역, 공사 등은 반드시 공모를 통해 일반경쟁입찰로 결정해야 하지만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연구용역의 경우 수의계약으로 진행하였다.

특히 이 '듣도 보도 못한' 기획사는 연구용역 수행실적이 전무한 비전문적인 기관이었는데도, 과업수행기관의 전문성, 즉 '유사사업 수행실적'을 묻는 평가항목에서 평가위원들 모두로부터 A등급을 받았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될 수 없는 일들로 용역특혜 의혹이 제기되는 까닭이다.

다섯째, 성공신화가 갖는 내용의 편향성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성공의 역사'인 대한민국 건국 60년의 역사가 기록되고 새롭게 이어질 수 있도록 '현대사박물관'을 짓겠다고 공언하였다. '대한민국 성공신화'에 기초한 승자 중심, 정치지도자 중심, 결과 중심의 '국가 성공사'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전시의 중심축인 것이다. 그러나 '성공한 역사'라는 담론은 기본적으로 결과를 합리화하고, 그러한 결과를 이끈 승자들의 논리를 중심으로 역사를 협소하게 인식하는 문제를 낳는다.

역사의 다양한 발전 전망을 두고 여러 정치·사회 집단 사이에 치열한 경쟁과 경합이 존재했던 것이 객관적 사실이다. 그런데도 역사를 설명하면서 승자들이 구축한 길만이 유일한 길이고 나머지가 희생된 것은 불가피했다고 한다면, 이는 승자와 그들이 이룩한 결과만이 기억되는 협소한 역사인식이 될 것이다. 수많은 공동체 성원들의 다양한 기억과 경험은 일방적으로 배제되며, 그들의 희생과 피해 및 저항의 역사는 주변화되거나 하찮게 평가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독일에서도 콜 수상이 현대사박물관 설립을 처음 제안할 때, 전후 서독이 이룬 성취와 성공을 전면에 내세우고자 했다. 그러나 많은 역사학자가 역사를 단순히 '성공'과 '실패'로 규정하는 것이 갖는 위험성을 끊임없이 비판했다. 이러한 토론과 비판을 거치며 독일의 현대사박물관은 역사가 특정 '승리와 성공의 역사상'을 국민들에게 주입하거나 강요하는 방식이 아니라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 원리에 조응하는 좀 더 다원적인 역사상을 담아내는 방향으로 전환될 수 있었다.

아울러 '독일연방공화국역사의 집'은 독일사의 비극과 어둠들, 특히 국가범죄 및 인권유린 및 억압적 지배와 사회갈등의 역사들을 절대로 감추지 않았다. 그것 또한 민주주의 사회의 현대사박물관이 전시에서 주요하게 보여주어야 할 기본 내용이기 때문이다.

세 가지 없는 '삼무 박물관'... 전면 재논의 필요하다

이상의 '기본'이 안 되었기에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이름에 걸맞지 않게 세 가지가 없는 '삼무(三無) 박물관'이 되고 말았다. 첫째,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는 '대한민국'이 없다. 건국이념과 지향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박물관 어디에도 대한민국이 어떤 이념을 가지고 출범하였으며,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 나라인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한국현대사연구자 배제에 따른 전문성 결여로 인해 빚어진 일이다. 이 때문에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체성과 미래가치를 보여주는 성찰의 공간이 되지 못하였다.

둘째,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는 '역사'가 없다. 스토리와 메시지가 없다는 것이다. 박물관에는 유물과 문서만 전시하였을 뿐 이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역사적 사실의 맥락과 의미에 대한 설명이 없다. 역사학계와의 소통을 거부하였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이 때문에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과거 역사를 통해 사회적 학습효과를 거두는 역사교훈의 장소가 되지 못하였다.

셋째,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는 '박물관'이 없다. 설명과 해설이 없다는 것이다. 가전제품을 비롯한 여러 물건들을 전시하고 있으나, 이러한 물품들이 어떻게 변화 변천해왔고, 이것들이 활용되면서 시민들의 삶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졸속개관에 따른 준비부족으로 인해 일어난 일이다. 이 때문에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과거의 삶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살아있는 공간이 되지 못하였다.

역사박물관은 단순히 과거 유물을 모아놓는 골동품 창고가 아니다. 승자를 기리는 기념비적인 공간도 아니다. 역사박물관은 공동체의 역사적 정체성을 포괄하는 기억과 경험의 공간이다. 공동체의 미래가치를 보여주는 성찰의 공간이다. 지금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 앞으로 어떤 나라를 꿈꾸고 만들어 가느냐의 문제는 결국 우리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어떻게 집단적으로 기억하느냐에 달려 있다.

역사박물관이 다양한 가치에 개방성을 띠고 다원주의를 존중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특히 국가폭력과 전쟁, 독재와 인권유린을 경험한 한국현대사의 경우, 역사박물관은 민주주의와 인권, 자유와 평등, 정의와 평화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구현하기 위한 역사교훈의 장소가 되어야 한다. 이는 대한민국 헌법가치이기도 하다. 정부가 주도하는 현대사박물관이라면 반드시 추구해야 할 기본 방향이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21세기 국제 현대사박물관의 역사에 '기이한 사례'로 남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다음 조치가 요구된다. 첫째, 오늘의 개관이 후세에 '부끄러운 과거'로 기억되지 않기 위해, 향후 일정을 무기한 연기하고 전면적인 재논의에 들어가야 한다. 둘째, 역사학계, 박물관 관계자 등의 전문가로 특별 소위원회 등을 구성해 전시 내용의 학문적 검토와 조정을 거쳐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 셋째, 정치권, 시민사회 등 여러 사회 세력의 의견을 수렴하는 공청회 등의 절차를 거쳐 내용의 다양성을 제고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참고한 글
이동기·홍석률,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사업 비판과 정책 대안>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긴급 토론회 발표문, 2012.11.14
이동기,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건립 과정 비판>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긴급 토론회 발표문, 2012.11.14
* 한상권 기자는 덕성여대 사학과 교수이자 역사정의실천연대 상임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역사정의실천연대 #현대사박물관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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