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무니없는 이유로 해고... 시간강사는 소모품인가?

벼랑으로 떠 밀리는 대학 시간 강사의 현주소

등록 2012.12.29 18:42수정 2013.01.04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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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4일 오후 3시 43분]

2012년 12월, 겨울 찬바람이 뼛속 깊이 파고드는 때 전국의 대학시간강사들이 동시파업투쟁을 벌이고 있다.

경북대, 영남대, 부산대, 전남대 그리고 조선대 등 비정규교수노조가 있는 대학에서는 임단투 승리와 강사 구조조정을 반대하는 파업투쟁을 벌이고 있다. 비정규교수노조의 파업투쟁이란 2학기 성적입력 거부와 천막농성밖엔 없다. 그런데 강사들이 성적입력 거부라는 파업투쟁을 잘 이겨내기란 참으로 대단한 각오가 아니면 가능한 일이 아니다. 다음 학기 강의배정에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약자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노조가 있는 대학은 그나마 힘을 모아 단체교섭도 하고 파업투쟁이라도 할 수 있지만, 노조가 없는 대학에서는 벌써 해고의 칼바람이 불고 있고, 그런 곳의 시간강사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형편이다. 내가 출강하는 또 다른 대학인 전남 소개의 모 국립대학교가 그렇다.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대학시간 강사의 현주소를 제대로 알리기 위해 불가피하게, 그리고 참담하지만 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지난 4년 동안(2008년 2학기부터 2012년 2학기까지) 이 학교 교양과정 부에서 시간강사로 근무했다. 매 학기 공채라는 형식을 통해 <글쓰기와 의사소통>이라는 교양필수 과목을 강의해 왔다. 그런데 작년부터 교양과정부장이 워크숍이 끝나고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두어 차례 3년 이상 강의한 사람은 다음 학기부터 강의 배정을 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고용불안... 강의 배정이 은총처럼 여겨져

시간강사가 직면한 여러 어려움 중에 고용불안이 가장 큰 문제다. 방학 중에 임금이 지급되지 않거나 연구공간이 없어서 자동차 안에서 쉬거나 하는, 유령 같은 존재가 어쩔 수 없이 감당해야 할 어려움이 많지만 그중에서 가장 심각한 게 이 고용불안 문제다. 그래서 가끔은 한없이 비굴해지는 마음을 주체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강의 배정이 은총처럼 여겨지는 요즘의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하여튼 나는 교양과정부장의 평소 호언대로 다음 학기(2013년 1학기)부터 강의 배정을 받지 못한다는 확인을 받았다. 다른 때 같으면 진즉 다음 학기 강의배정이 끝나야 할 시기인데도 아무런 연락이 없어서 직접 물었더니 메일로 다음과 같은 답이 돌아왔다.

첫째, 본래 강의 연한을 3년으로 한 건데 당신을 배려하느라 4년으로 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 기간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학교 내의 합의가 있다. 그래서 당신을 포함해서 3명을 다음 학기부터 강의배정 하지 않기로 했다.

둘째, 2011년 2학기의 교수수업평가 점수가 3.5 미만이어서 교무과에서 당신을 강사로 채용하지 말라는 공문이 와서, 특히 당신의 경우는 어쩔 수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그동안 우리 대학교까지 와서 강의하느라 고생했다,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시간강사에 대한 차별적 관행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는 사회이긴 하지만, 그러나 적어도 내가 아는 다른 대학에서는 이처럼 야비한 방법으로 사람을 몰아내지는 않는다.

우선, 강사 연한이 3년이니 4년이니 하는 규정이라는 것 자체가 아무런 타당성도 객관성도 갖추지 못한 임의적인 조항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런 조항에 대해 설명을 듣거나 계약서상에 명시하거나 하지도 않았다. 그야말로 느닷없이 그런 조항을 들어 시간강사의 해고를 합리화하고 있을 뿐이다. 다른 하나는, 교수수업평가 점수가 아주 나빴다는 것인데, 학교에서 그 점을 지적하기에 그동안 수업했던 학기의 수업평가 결과를 학교 인트라넷에서 찾아보았더니, 그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2008-2학기 3.80
2009-1 학기 3.90 / 4.18
2009-2 학기 3.87 / 3.79
2010-2 학기 4.17 / 3.79
2011 -1학기 4.37 / 4.15
2011-2학기 3.49
2012-1학기 4.30/ 4.63/ 4.66

2012-2학기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아서 그동안 수업했던 학기의 수업평가 결과만 보면 위와 같은데 하필 가장 낮은 학기의 점수(2011-2학기)만 보고 그보다 훨씬 좋았던 다른 학기의 점수는 일부러 외면하는지 그 까닭을 알 수가 없다. 전임교수들은 강의 평가가 아무리 낮더라도 그것만 가지고 해임을 하거나 하지는 않지만, 그건 전임이니까 그렇다 치자. 다른 대학의 경우 대체로 이 교수강의평가를 활용하기는 하지만 직전 학기 2년 동안의 평가를 평균치로 한다거나 해서 객관성을 담보하는 편인데, 대부분의 대학은 자신들이 보고 싶은 결과만 보면서 강사해고를 합리화하고 있는 형편이다.

이 대학도 다른 학교와 마찬가지로 학생들을 잘 가르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렇게 하겠다고 ACE사업이라는 학부선도대학 프로젝트로, 교과부에서 매년 수십억 원의 지원금을 받고 있다. 그런데 교양과목을 담당하고 있는 강사에게, 박사학위 여부와 논문 등의 실적, 수업 평가, 이런 객관적인 지표들을 종합해서 강의배정을 해야 학생들의 능력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런데 다만 3년 혹은 4년간 강의를 했으니까 이제그만 나가라고? 대학교의 시간 강사는 단지 소모품일 뿐인가?

나는 이 문제에 어떻게든 대응하려고 우선 법률구조공단을 찾아가 상담해 보았다. 상담결과는 무기력할 뿐이었다. 시간강사의 계약기간이 종료돼서 학교가 다음 학기 강의배정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법으로 강제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부당해고라 하기 어렵다는 말이었다.

대학시간강사는 자신의 해고와 관련해서 일체의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더구나 비참한 것은 다른 강사들은 몸 사리고 있다는 것, 내가 선례가 되면 결국 자신들도 차례로 해당이 될 텐데도, 우선 나는 살았다는 안도가 그들의 정서라는 것이 서글플 뿐이다.

해고는 당장 생존 문제와 직결된다

이명박 정부의 교과부가 무늬만 교원인 강사법을 억지로 통과시키려다 시행이 1년 유예되기는 했지만, 이 추운 겨울, 대학에서는 벌써 이처럼 해고의 칼바람이 불고 있다. 해고는 당장 생존의 문제와 직결된다. 나의 경우는 수입의 절반이 줄어드는 것이고, 문학을 공부해서 박사학위를 받았을 뿐 달리 살아갈 방법을 잘 알지 못해 망연자실할 뿐이다. 무엇보다, 그래도 지식인이라고 학생들에겐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역설하던 내가, 강단에서 뚜렷한 잘못 없이 쫓겨나는 모욕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 이 모욕감마저 사치라는 것이 괴로울 뿐이다.

대체 강사라는 이유만으로 이렇게도 무참하게, 아무런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생존의 벼랑에 내몰리는 사회가 과연 정상적인 사회인가? 최근 비정규노동자들의 연이은 자살, 그 마지막 저항의, 처절한 몸짓이, 결코 남의 일 같지 않은 겨울이다.

사실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시간강사 문제 해결의 근본적 어려움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은 맞다. 대학생 숫자는 줄어드는 상황이고 기존 강좌도 그러한데 매 학기 박사과정을 마치거나 학위를 받고 강단에 서고자 하는 연구자는 많으니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님을 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시간강사를 바라보는 대학 측, 전임교수들의 태도의 문제다. 그들은 돈이 없다고 한다. 시간강사들의 생활을 책임져야 할 의무도 없다고 한다. 책임지라는 것이 아니다. 납득할 수 있는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강의배정을 하라는 것이다. 강사라는 신분의 분안정을 희생양 삼아 강사 길들이기를 하지 말라는 요구를 지금 나는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시간강사에 대한 차별적 관행을 아무렇지도 않게, 아니 당연하게 여기는 풍토는 온정에 호소하거나 이성적, 논리적 설득으로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이 겨울, 전국의 비정규교수노조는 파업투쟁을 벌이고 있고, 나도 거기에 동참하고 있다. 민주주의도, 노동자들의 권리도 치열하게 싸워서 얻을 수밖에 없다는 것, 그럼에도 이 학교에는 나 혼자뿐이라는 사실이 외로워서 이 글을 쓴다.
#대학시간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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