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정권 5년 평가, 이 책으로 시작합시다

[내 맘대로 고른 올해의 책 5] <시민을 고소하는 나라> 외

등록 2012.12.30 18:50수정 2012.12.30 21:43
0
원고료로 응원
"자부도 체념도 없이 말하거니와, 읽고 쓰는 일은 내 삶의 거의 전부이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자부도 체념도 없이"라고 담담하게 말하지만, 그에 미치지 못하는 나는 적잖은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말한다.

"읽고 쓰는 일은 내 삶의 상당 부분이다."

2012년이 끝나가는 지금, 지난 1년을 돌아본다. 거기에는 '내 삶의 상당 부분'인 독서를 돌이켜보는 일도 동반된다. 올 한해 만화책 10여 권을 포함해 총 102권의 책을 읽었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을 포함하면 103권으로 마무리될 듯하다. 출간 연도에 관계없이 그중 5권을 마음대로 '올해의 책'으로 선정했다.

[올해의 책 ①] <시민을 고소하는 나라>

<시민을 고소하는 나라>(2012)는
a

<시민을 고소하는 나라> 표지. ⓒ 스토리플래너

<오마이뉴스> 구영식 기자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변호사들과 한 인터뷰를 엮은 책이다. 'MB공화국 5년, 표현의 자유를 말한다'는 주제로 '천안함 허위 문자메시지 사건'이나 'G20 쥐그림 사건' 등 표현의 자유 관련 사건을 맡은 변호사들과 나눈 인터뷰가 실려 있다.

사실 이 책은 나와도 깊은 인연이 있는 책이다. 이 책에 수록된 인터뷰 녹취록을 정리하는 작업을 내가 맡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게는 각별한 의미가 있는 책이다(관련기사: 조용해서 좋다? 그러다 망합니다).


개인적 의미를 떠나서 내용도 의미 있다. 이 책은 내가 아는 한 '표현의 자유'라는 주제로 MB정권 5년을 기록하려 한 시도 중 가장 충실한 시도였다. 국가보안법 문제를 다루지 않은 점은 아쉽지만, MB정권 5년의 표현의 자유를 말하기 위해서는 이 책에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시작점 삼아 지난 5년을 함께 기억하고, 평가했으면 한다. 

[올해의 책 ②] <대한민국은 군대다>

a

<대한민국은 군대다> 표지. ⓒ 청년사

<대한민국은 군대다>(2005)는 여성학적 관점에서 군사주의와 국가주의를 바라본 책이다. 구체적으로는 1980년대의 학생운동과 군대를 다루고 있는데, 특히 학생운동을 기록한 부분이 흥미롭다. 1980년대 학생운동은 폭력투쟁을 주요 수단으로 채택함에 따라 남성과 여성의 역할 분담이 확고해졌고, 그에 따른 차별도 심화됐다. 여성들은 남성처럼 돌을 던지는 대신 구호를 외치는 제한된 역할만 수행할 수 있었고, 자연스레 학생운동의 주변부에 위치할 수밖에 없었다. 여성들은 언더써클의 멤버로 '선발'되는 것도 어려웠다.

학생운동의 비민주성을 지적하는 대목도 흥미롭다. 한 여성활동가는 학생운동의 주요 구호였던 "자유와 민주라는 말이 참 낯설었다"고 말한다. 학생운동에 투신한 사람들도 민주주의를 체화하지 못했음을 깨닫게 하는 말이다. 저자는 학생운동 내부에는 민족을 위해 개인이 철저히 헌신해야 한다는 집단주의적 정서가 있었고, 그 때문에 운동 내부의 비주류나 소수자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학생운동 내부의 여성 차별도 그 때문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오래된 습관 복잡한 반성> 같은 책이 있기는 하지만, 학생운동에 대한 성찰이 담긴 보기 드문 책이다. 여성학에 특별한 관심이나 지식이 없는 사람도 쉽게 읽을 수 있다.

[올해의 책 ③] <경제 민주주의에 관하여>

a

<경제민주주의에 관하여> 표지. ⓒ 후마니타스

2012년 한국사회의 가장 큰 화두 가운데 하나가 바로 경제민주화였다. 여야를 불문하고, 모두 경제민주화를 외쳤다. 그러나 경제민주화라는 용어가 재벌 개혁이라는 특정 분야에만 치우친 감이 없지 않다.

로버트 달이 말하는 경제민주주의는 한국사회에서 통용되는 경제민주화와는 조금 다르다. 그의 경제민주주의는 자치 기업, 즉 "기업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통치하는 기업 체계"를 의미한다. 로버트 달은 노동자 협동조합, 혹은 자주 관리로 불리는 이러한 체제를 통해 기업 내의 경제적 불평등이 줄어들고, 이는 정치적 평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상한다. 한국사회에도 유의미한 시사점을 던지는 통찰이다.

그러나 그보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경제 민주주의에 관하여>(2011)1장에서 민주주의가 다수의 횡포나 독재 체제로 귀결할 수 있다는 주장에 반박하는 대목이다. 특히 민주주의 체제에서 독재 체제로 전환한 13개국의 사례를 실증적으로 살피는 대목은 압권이다. 로버트 달은 이들 국가에서 민주주의가 붕괴된 것은 민주주의나 평등의 과잉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민주주의가 뿌리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평이한 문장에 두껍지 않은 분량이지만, 만만치 않은 문제의식과 사유가 담긴 책이다. 비슷한 주제를 다루는 김상봉의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2012)도 추천할 만하다. 

[올해의 책 ④] <전쟁과 사회>

a

<전쟁과 사회> 표지. ⓒ 돌베개

<전쟁과 사회>의 초판이 나온 때가 2000년, 개정판이 나온 때가 2006년이니 참으로 늦은 독서였다. 그러나 뒤늦은 독서에도 이 책의 의미는 퇴색하지 않았다. <전쟁과 사회>는 "과도하게 정치화되고 도그마화된 우리 사회의 한국전쟁 해석"에 이의를 제기한다.

북한의 침공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의 참상은 곧 북한과 공산주의에 대한 혐오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러한 해석이 대단히 이데올로기적임을 보여준다. 당대의 민중들은 반공주의 같은 이념에 따라 움직이지 않았다.

"국군에 입대한 동기도 대부분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거나 이전에 좌익에 연루된 적이 있었던 청년들이 감시와 탄압을 피하기 위한 생존전략인 경우가 많았다. 결국 당시 민중들이 국군에 입대하는 것이 곧 국가에 대한 충성의 표시는 아니었으며, 이후 인민군 징집을 기피하는 행위도 반공과는 거리가 멀었다."(<전쟁과 사회> 142~143쪽)

지면관계상 여기에는 옮길 수 없지만, 실제로 일반인들은 북한의 인민군, 특히 간부들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북한과 공산주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지금처럼 팽배해진 것은 자유주의적 지식인들의 담론만이 확대 재생산된 결과라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뒤에 실린 꽤 많은 주석도 유용하다.

[올해의 책 ⑤] <미국민중사를 만든 목소리들>

a

<미국민중사를 만든 목소리들> 표지. ⓒ 이후

우리 시대의 위대한 역사학자이자 탁월한 활동가였던 하워드 진. 그의 팬을 자처하는 내게도 <미국민중사를 만든 목소리들>(2011)은 상당한 강적이었다. '참고문헌'과 '찾아보기'를 빼고도 1093쪽에 달하는, 좀 너무하다 싶은 두께. 정가 5만5000원이라는 비인간적 가격. 과연 이 책을 사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미국민중사를 만든 목소리들>은 하워드 진이 대표작 <미국민중사>를 쓰기 위해 참고했던 사료 중 중요한 사료들을 엮은 책이다. 이 책에는 마틴 루서 킹·말콤 X 등 저명한 활동가들은 물론이고 무명의 흑인 노예·인디언 등 다양한 민중들의 목소리가 시대 설명과 함께 담겨 있다.

미국사의 주류를 차지하는 백인·남성·부자의 목소리 대신 그들에게 가려져 있던 민중(흑인·여성·인디언·빈자)들의 목소리를 생생히 들을 수 있는 역작이다. 체로키 인디언들의 '눈물의 행렬'을 묘사한 기록을 읽을 때는 울컥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읽고 나면 미국사는 이제 웬만큼 안다는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도 생긴다. 하워드 진의 역사관을 잘 보여주는 구절을 하나 옮긴다.

"표면 아래를 들여다보면, 거리와 공장에서, 미국 막사와 트레일러 캠프에서, 공장과 사무실에서 역사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불의에 맞서고, 전쟁을 끝내고, 여성과 흑인과 토착 미국인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는 곳이라면 어디든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이 소리를 높이고, 조직하고, 저항하고, 민주주의를 되살려 낸 역사가 있다."(<미국민중사를 만든 목소리들> 27쪽)
#올해의 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15기 인턴기자. 2015.4~2018.9 금속노조 활동가. 2019.12~한겨레출판 편집자.

AD

AD

AD

인기기사

  1. 1 아니, 소파가 왜 강가에... 섬진강 갔다 놀랐습니다
  2. 2 100만 해병전우회 "군 통수권" 언급하며 윤 대통령 압박
  3. 3 "일본정치가 큰 위험에 빠질 것 우려해..." 역대급 내부고발
  4. 4 시속 370km, 한국형 고속철도... '전국 2시간 생활권' 곧 온다
  5. 5 두 번의 기회 날린 윤 대통령, 독일 총리는 정반대로 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