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인턴 제도 의미 퇴색... 인턴은 '봉'?

2~30대 청년들의 인턴 구직 이야기

등록 2012.12.31 12:07수정 2012.12.31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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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1# 수도권 소재 대학교에 재학 중인 대학생 A씨(27)는 지난여름 3개월 동안 한 공공기관에서 인턴 생활을 했다. 비록 인턴직이었음에도 서류전형, 논술·상식 필기전형, 면접전형을 다 거친 후 비로소 인턴을 할 수 있었다. 그가 3차에 걸친 관문을 통과해야 했던 이유는 이 인턴직이 정규직 채용을 전제로 하는 자리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신입 인턴 중 일부만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방침 때문에 인턴 기간 3개월 동안 동료 간의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했다.

몇 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지도 알려주지 않는 상황에서 나름 최선을 3개월 전력을 기울였지만, 그가 마지막에 받은 것은 다음 기회에 한 번 더 도전해달라는 불합격 통보 문자가 전부였다. 친구들이 취업 준비에 박차를 가하는 대학의 마지막 여름방학을 인턴 생활에 모두 쏟아 부었던 A씨는 정규직 전환에 실패하자 결국 마지막 학기 휴학을 선택했다.

사례 2# 지난 2월 졸업 후 꾸준히 구직 활동을 해 왔던 B양(26)은 직무 관련 경험이 없는 게 본인의 약점이라 판단하고, 졸업 후 공백 기간도 채울 겸 정부해외인턴사업 중 하나였던 유럽글로벌기업인턴 프로그램에 지원했다.

교육과학기술부 측의 갑작스러운 사업 중단 공고 등 여러 우여곡절을 겪긴 했지만, 다행히 사업이 재개되어 11월부터 외국계 기업 한 곳에서 인턴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B양이 배치받은 기업은 애초에 자신이 희망하지 않았던 서비스 관련 분야였고, 계속 이쪽에서 일하는 것이 자신에게 득이 될 것 같지 않다고 판단해서 한 달 정도의 고민을 거치다가 자신이 원래 원하던 무역 관련 회사의 계약직으로 자리를 옮겼다.

언제부턴가 대학생들의 성공적인 취업을 위해서는 인턴 경험이 학점, 토익에 못지않게 중요하게 여겨지는 시대가 되었다. 실제로 한국능력개발원이 지난 3일 발표한 '4년제 대학생의 스펙 쌓기 실태조사'에서도 괜찮은 일자리(대기업, 공기업, 금융업, 외국계 정규직) 취업자의 인턴 경험이 기타 취업자와 비교하면 5%가량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인턴 경험을 통해 조직 전반에 대한 이해와 실무 역량이 높은 인재를 선호하는 것은 기업의 입장에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대학생들의 기업 실무에 대한 실습 과정을 밟는다는 본래 인턴 제도의 의미는 퇴색되고 채용 시 평가를 위한 보조 수단이나 단순한 잡무를 돕는 의미의 인턴직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단순한 잡무 돕는 의미의 인턴직 늘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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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포털 취업 카페에 올라온 인턴 구인 공고들 ⓒ 노윤혁


앞 사례 A씨는 제한된 자리를 놓고 동료 인턴들과 경쟁시키는 것은 구직자들에게 잔인한 제도인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인턴 기간 친분을 쌓았던 동료와의 피할 수 없는 경쟁도 심적으로 힘들었고, 3개월 동안 다른 구직 활동에 집중하거나 취업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도 아쉬웠다고 했다. 학생 신분이었던 자신은 그나마 돌아갈 학교가 있었지만, 졸업 후 한창 구직 중이었던 몇몇 동료는 정규직 전환에 실패 후 더욱 힘들어했다고 전했다.

B씨는 인턴 경험이 구직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 정부해외인턴사업에 지원하였지만, 사업이 갑자기 중단되는 등 미숙한 사업 진행 때문에 자신이 애초에 지원했던 직군과는 정반대의 기업에서 인턴을 하게 된 경우였다. 기업에서 배우는 일 또한 단순 업무 보조에 가까웠기에 고민 끝에 중도에 그만두게 되었다.

정규직 전환 여부나 업무적인 측면 외에도 인턴비와 관련해 불합리한 처우를 받는 예도 있었다. 통상적으로 인턴비는 80~120만 원 사이에서 결정되는데, 80만 원 이하를 받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특별히, 외국계 기업이나 NGO 등의 공익 단체에서 무급 인턴 공고를 내는 빈도가 높았으며, 작은 규모의 언론사에서도 월 30~40만 원 정도를 소정의 활동비 명목으로 지급하기도 했다.

인턴 제도 정착 위한 기업, 정부의 고민이 필요한 시점

재정 상황이 어려운 공익 단체나 소규모 언론사에서 무급 조건을 제시하거나 교통비·식비만 제공하는 것이 이해는 가지만, 업무 강도가 정규직 못지않으면서도 임금 차별을 주는 것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다고 인턴 경험자들은 이야기한다. 또한 노동자의 최저임금 준수나 인상을 강력히 주장하는 공익 단체나 언론사에서 정작 자기 인턴들에게는 노동에 대해 올바른 보상을 해 주지 않는다는 것은 아이러니라고 말한다.

높은 정규직 전환율과 잘 짜인 수습 프로그램을 통해 인턴 만족도가 높은 예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경우 대부분 별도의 인사·교육 시스템이 잘 짜여 있는 대기업에 국한되었다. 많은 경우 업무 보조를 위한 저임금 단기 계약직의 한 형태로 기업이 인턴을 활용하거나, 공공부문에서 청년 실업률을 낮추기 위한 채용 형태가 다반사였다.

무분별한 스펙 쌓기 열풍과 취업률 증가만을 목표로 한 방향 잃은 정부 정책,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 저임금으로 인력을 대체하려는 기업의 목적 등이 만나 오늘날 청년들의 인턴 대란을 만들어 낸 것이다. 예비 구직자에게 실무 경험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과 우수 인력에 대한 상시적이고 유동적 정규직 전환 등 본래 취지에 맞는 인턴 제도 정착을 위한 기업, 정부의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인턴 #청년인턴 #취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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