왈츠 틀어놓고 고문...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

민주주의자 고 김근태 선생, 1주기에 부쳐

등록 2012.12.31 11:20수정 2012.12.31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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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세로 별세한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영정 ⓒ 유성호


어제(30일)는 민주주의자 김근태 선생이 우리 곁을 떠난 지 1주년이었다.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고된 삶을 살다가 '2012년을 점령하라'는 유언을 남긴 채 떠난 뒤 민주주의 가치가 유신망령에 점령당한 상태에서 1주기를 맞았다. 지하에서 얼마나 상심하실까 산 자들의 책임이 무겁다.

유신과 5공의 폭압으로 민주주의가 유린되고 많은 지식인이 침묵과 보신에 긍긍할 때 고인께서는 금단의 벽에 도전했다. 제적 - 강제징집 - 지명수배 - 위장취업 - 노동운동 - 민주화운동 - 투옥 - 고문 등 한 시대의 고난을 온몸으로 겪었다. 체포 26회, 구류 7회, 5년 6개월의 두 차례 투옥으로 점철되었다. 민청련을 조직하면서 두꺼비를 상징으로 삼았다.  

한 마리 두꺼비가 되어 뱀에게 잡아 먹혀 죽어가면서도 자신의 독성으로 뱀을 죽이고 뱃속의 새끼들이 그 뱀을 자양분으로 삼아 알을 까고 나오게 하자는, 민주제단의 희생양이 될 각오였다. 그렇게 하여 5공의 철벽을 뚫었다.

정치권에 입문해서도 그의 길은 험난했다. 정권교체와 정치개혁에 앞장 섰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동교동계와 노무현 정부에서는 친노그룹과 대립하면서 정치개혁과 정치자금의 투명성을 위해 힘겹게 싸웠다. 3선의원과 장관을 지내면서도 그의 삶은 조금도 삿됨이 없었다. 해서 야인이 되었을 때는 대중교통을 이용할 만큼 청렴 강직했다.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오는 고문을 당하고도 "그의 얼굴에 늘 보이는 미소는 그가 독재정권에서 당했던 고문의 흔적을 가렸다"(뉴욕타임즈). 혹독한 고통 속에서도 올곧게 산 맑은 심성이 고난의 생애에도 항상 밝은 미소를 짓게 했다.

선생을 '민주주의자'로 만든 군부정권 30년은 반이성과 야만이 지배하는 몰상식의 시대였다. 그 시대에 고인은 결코 관념적인 민주주의자가 아닌 파수꾼이었다. 동시대인으로 민주사회에 무임승차한 5060세대와 유신·5공의 참혹함을 잘 모르는 2030세대는 영화 <남영동 1975년>에서 '역사체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고인이 생애를 걸고 추구한 가치는 인간의 존엄이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고자하는 세상이다. 이를 위한 수단치가 민주주의라 믿었고, 그래서 반민주세력과의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에둘리지 않고 말해서, 반란단체를 만들지 못하게 정당이 있고 폭력혁명을 막고자 선거제도가 있다. 한데 유신·5공은 정당과 선거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김근태 선생 등 민주인사들이 육탄으로 맞섰다.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5년의 실정과 폭정으로 정권교체의 열망이 높았음에도 뜻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역사에서 교훈은커녕 현실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 셈이다. 108만 표가 승부의 분기점이었다. 민주진보진영에는 '백팔번뇌'의 수치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정당·선거제에 의구심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고인이 생명을 걸고 싸웠던 유신·5공 세력은 건재하다. 국회·언론·학계·검경·재계·대형교회에 포진한다. 여기에 '유신에 중독'된 다수의 국민이 좀체로 해독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고인이 그토록 고치고자 했던 민주당의 고질병도 선거와 정당의 존재이유에 부정적인 한몫을 한다. 질래야 질 수 없는 대선이 4·11 총선의 판박이가 될 만큼 국민의 뜻도, 시대정신도 반영하지 못했다. '변할수록 옛 모습을 닮아가는' 프랑스혁명 뒤의 모습이다. '탕평인사'의 첫 인물이 극우인사의 등용이듯이 권력은 회귀하는데, 야당의원들이 '정치귀족'으로 안일한다면 1470만의 절망은 공황상태가 될 것이다. 

하지만 전혀 희망이 없는 것도 아니다. 김근태 선생의 신앙이었던 성서(구약)의 어떤 불의와도 타협하지 않고 바른 쪽을 택한 '남은 자'들, 정의감에 불타는 2030의 젊은이들, '천배 사죄'에 나선 민주당의 초선들이다. 김근태 선생은 이근안 무리가 라디오에 왈츠곡을 틀어놓고 고문을 하던 그 절망의 순간에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 '희망'은 고인이 우리에게 남겨준 소중한 메시지다.

길지도 짧지도 않는 64세의 생애를 의롭고 치열하게 그리고 맑은 품성과 밝은 미소를 간직하면서 살다 가신 김근태 선생의 영면을 기원한다(심한 감기로 1주기 행사에 참석 못하고 이 글로 대신한다).
덧붙이는 글 김삼웅 기자는 <김근태 평전> 저자이자, 전 독립기념관장입니다.
#김근태 #민주주의자 #김근태 1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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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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