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미국인이 오만한 것은 아니었다

[불혹 배낭여행기 ⑩] 알바니아에서 받은 또 하나의 선물

등록 2013.01.04 17:26수정 2013.03.22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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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 중심가. 보이는 건물은 '오페라'라고 적힌 것으로 볼 때 아마도 극장인 것 같았다. ⓒ 홍성식


불가리아 소피아와 마케도니아 오리드를 거쳐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로 향하는 버스에 오른 건 더위가 전 유럽에 맹위를 떨치던 2011년 8월. 거리의 모든 게 녹아버릴 듯 뜨거운 날이었다. 낡은 차량이 매연을 뿜어내며 덜컥거리는 길을 7시간 이상 달렸으니 티라나에 도착했을 땐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숙소를 찾기 전 조그만 구멍가게에 들러 시원한 맥주부터 한 병 집어 들었다. 맥주 이름이 도시 이름과 같은 '티라나'다. 동유럽 도시들은 예쁜 이름을 가지고 있다. 소피아, 루비아나, 벨그레이드, 포드고리차, 부카레스트…. 티라나 역시 그 어감이 70만 명 이상이 모여 사는 도시 이름치고는 작고 예쁘다. 맥주병 디자인 역시 앙증맞고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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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아 맥주 티라나 ⓒ 홍성식


그런데, 막 버스에서 내린 터라 알바니아 화폐인 레크(Lek)가 하나도 없었다. 맥주 값은 180레크(1유로=약 260레크). 잔돈을 받지 않을 요량으로 0.5유로(50센트) 동전 2개를 가게 주인에게 내밀었다.

헌데, 그가 집어든 것은 달랑 동전 하나. 왜 나머지 동전을 가져가지 않느냐며 의아한 표정을 짓는 내게 "알바니아에 온 걸 환영" 한단다. 이어지는 얼굴 가득한 웃음. 청하지 않았는데 맥주 가격을 깎아준 것이다. 새로운 여행지에서의 기분 좋은 출발이었다.

구멍가게 주인과 경찰관의 웃음이 부러웠던 티라나

다음은 며칠 전 인터넷에서 검색한 게스트하우스를 찾아야 했다. 어떤 이유인지 알바니아엔 버스터미널이 없다. 해서, 각지에서 도착하는 버스가 정차하는 곳이 다 달랐다. 물론, 타 지역으로 가는 버스의 출발지도 모두 다르다. 이 때문에 힘들어하는 여행자가 적지 않다고 한다. 

길눈까지 밝지 않은 나는 내린 곳이 어디인지조차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여행객에게 숙소 찾는 걸 도와주고, 무료 지도 등의 편의를 제공하는 관광안내소도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난감했다. 이럴 땐 경찰을 찾는 게 좋은 방법이란 걸 여행하며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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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아엔 버스터미널이 없다. 그래서 이정표가 요긴하다. 길눈이 어두운 사람에겐 힘든 여행지. 그러나, 길을 모를 땐 아무에게나 물으면 된다. ⓒ 홍성식


교통경찰로 추정되는 제복 입은 사내에게 물었다. 안타깝게도 영어를 못한다. 두어 번을 반복해 듣고서야 내가 찾는 곳이 '호스텔 알바니아'란 걸 알아차린 그가 마임(?)을 시작했다. 오른손을 들어 뻗었다가 한 바퀴 돌리고, 다시 왼편을 가리켰다가, 건널목을 건너야 할 곳에선 두 발을 모으고 껑충대며 뛰기까지.

누가 봤으면 경찰이 아니라 무언극 배우의 거리공연인 줄 알았을 것이다. 무더운 길 한가운데서 '연극적으로' 길을 설명해준 그에게 고개 숙여 고마움을 표했다. 그랬더니, 그 역시 맥주를 팔던 구멍가게 주인처럼 환하게 웃는다. 내 어깨를 두드리며 "오케이, 오케이" 란다. 뭔지는 모르지만 그가 좋다니 나도 좋았다. 때론 몸짓이 언어보다 유용하다. 

경찰의 설명 덕에 오래 헤매지 않고 숙소를 찾을 수 있었다. 20대 청년 두 사람이 운영하는 작고 소박하고 다소 낡은 호스텔. 나무가 가득한 정원이 있었고, 그 아래 시원한 그늘에 테이블 몇 개가 놓여 있는 한국 시골 민박집 풍경과 다를 바 없는 숙소였다. 유년시절 외가에 온 듯한 분위기가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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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아의 시장. 한국의 소읍 재래시장과 별반 다를 바 없는 풍경이다. ⓒ 홍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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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가 360만 명 정도인 알바니아. 수도인 티라나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면 대부분의 거리가 한산하다. ⓒ 홍성식


타국에서는 처음 만난 이들의 인상과 태도가 그 나라에 대한 느낌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알바니아에 들어온 지 1시간 남짓. 가게 주인과 경찰관, 숙소 주인들까지 웃는 얼굴이 보기 좋았다. 어린 시절 내가 살던 동네와 다를 바 없는 거리 풍경도 편안함을 줬다. 때 묻은 배낭을 내려놓고 그늘 아래 정원 테이블에 앉아 티라나 한 병을 더 청해 마셨다.

미-소 냉전시대. 폐쇄적인 독재자의 장기집권을 겪어야 했던 알바니아. 그 여파 때문일까. 아직도 경제적 측면에선 열악함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보기에도 흐뭇한 미소를 만면에 머금은 사람들의 표정과는 달리 수도인 티라나의 건물들은 페인트칠이 벗겨져 을씨년스럽게 보였고, 대중교통 시스템도 열악했다. 깔끔하게 청소된 거리 역시 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내부와 외부가 두루 완벽하고, 정신과 물질 모두에서 행복한 나라가 지구 위에 얼마나 있을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내부'와 '정신'에 방점을 찍고 싶다. 알바니아 사람들도 그런 것처럼 보였다. 가난 속에서 웃을 수 있는 것,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제아무리 종교에 모든 것을 기대어 사는 사람들일지라도.

스칸데르베그 광장, 미국인에 대한 편견을 깨다

알바니아는 아직까지 여행자가 그다지 많지 않은 나라. 내가 머문 호스텔의 손님은 10여 명 남짓이 전부였다. 대부분이 독일이나 슬로베니아, 몬테네그로와 오스트리아 등 인근 유럽 국가에서 온 청년들. 20대 초반인 그들은 내 옆 테이블에서 콜라와 주스를 나눠 마시며 그간의 여행 경험들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 청년들과 조금 떨어져 발코니 의자에 혼자 앉아 책을 읽는 한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훌쩍 큰 키에 갈색 장발. 호감이 느껴지는 인상이다. 게다가 나이가 나와 비슷해 보여 더욱 친근감이 생겼다. 마흔 살 '나홀로 여행자'는 젊은 친구들 사이에서 가끔 외로운 법이다. 다가가 먼저 인사를 했다.

미국 워싱턴에서 왔다는 그는 정치인들의 연설문을 대필해주는 것이 직업이라고 했다. "어떤 정치인들의 연설문을 대필해주느냐? 공화당 쪽이냐, 아니면 민주당이냐"고 물었다. 웃는 얼굴로 그가 답했다.

"내가 조지 부시를 좋아할 사람으로 보이나? 공화당은 아니고 민주당 쪽 정치인을 돕는다."

내 서툰 영어와 그의 매끄러운 영어가 오가며 대화가 이어졌다. 이라크에서의 미군 철수 문제와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파키스탄에서 사망한 오사마 빈 라덴과 친이스라엘로만 내달리는 미국의 중동정책까지 화제가 자못 심각했다.

한국말로 한다고 해도 결코 쉽거나 가볍지 않은 주제. 엉터리 외국어로 단어만을 조합해 의견을 말하는 나야 남들 보기에 우스웠겠지만, 그걸 귀 기울여 들어주고 가장 쉬운 단어와 문장으로 자기 의견을 피력하는 그의 배려는 대단했다.

"내 영어가 형편없어서 이해하기 힘들지 않냐"고 물으니 돌아오는 답이 근사하다. "괜찮다. 남의 나라 말 아닌가. 네가 나보다 낫다. 나는 한국어를 한 마디도 못 한다." 내가 품고 있던 선입견 중 하나가 '미국인은 오만하고, 자기중심적'이라는 것이었다. 그 선입견의 한 귀퉁이가 무너지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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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식 수육과 비슷한 알바니아 음식. 유럽임에도 물가가 매우 저렴하다. ⓒ 홍성식


내친 김에 저녁을 함께 하기로 했다. 어두워진 티라나의 거리를 걸어 식당을 찾았다. 여행하는 나라에서는 가능하면 그 나라 음식을 먹자는 게 원칙의 하나. 그도 다르지 않았다. 현지인들이 많은 식당을 두리번거리며 찾았다.

수염 근사한 무슬림들이 탁자마다 자리를 메운 서민 레스토랑에서 다진 양고기와 채소를 반죽해 숯불 위에 구운 요리를 주문했다. 감자튀김과 맥주 한 병씩을 곁들이니 제법 근사한 만찬이다. 이 모든 걸 합친 가격이 1인당 6000원 정도니 저렴하기까지 했다.

미국인인 그와 한국인인 나의 이야기는 북한과 미국의 관계, 조지 부시와 버락 오바마의 차이, 주한미군 문제까지 범위를 넓혀갔다. 한국이 아니고 그렇다고 미국도 아닌, 알바니아 티라나의 스칸데르베그 광장 인근 식당에서 갑작스레 벌어진 정치토론에 흥이 오른 나는 한국식 목로주점과 유사한 근처 술집으로 자리를 옮겨 주량 이상으로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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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알바니아의 거리. 저 멀리 모스크와 미나렛이 이곳이 이슬람국가임을 보여준다. ⓒ 홍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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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아의 농촌 풍경은 한국과 매우 흡시하다. 초록빛 농경지와 산, 푸른 하늘이 늦여름 한국 풍광과 크게 다르지 않다. ⓒ 홍성식


겸손하고 예의 바른 사람은 세상 어디에나 있다

서툰 영어로 그처럼 많은 말들을 쏟아낼 수 있었던 건 '술의 힘'에 기댄 탓이 크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었다. 그 미국 사내의 미소 띤 배려와 이해가 없었다면 짧지 않은 그 대화의 시간은 애초에 없었을 것이다.

내 친구들이 알바니아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면, 나는 미국에 대한 편견을 지니고 있었다.

남아메리카와 동아시아, 중동에서 행해지는 미국의 정책은 상호주의가 아닌 자기중심주의에 기반하고, 한국 사회의 불행 중 일정 부분은 미국이 불러온 것이라 생각했다. 사실, 이 판단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하지만, '미국'과는 별개로 '미국인'에 관한 편견의 작은 부분이 깨지긴 했다.

알바니아에서의 여행 첫날. 조용한 말투와 편안한 몸짓으로 나의 문제 제기에 나긋나긋 제 의견을 내놓았던 '미국 민주당 정치연설문 대필 작가'는 '미국인은 오만하고, 건방질 것이 분명하다'는 내 선입견 혹은, 편견을 일정부분 허물었다. 그건 분명 알바니아 여행이 준 또 하나의 선물이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겸손하고 예의 바른 사람은 알바니아만이 아닌 미국에도 분명 존재하지 않겠는가. 그걸 몰랐거나 애써 부정했던 내가 문제였을 뿐.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계간문예지 <문학의오늘>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알바니아 #티라나 #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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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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