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번 도전끝에 첫 톱기사를 썼습니다

시민기자 9년 12개월, 청춘의 끝에서 내가 배운 것

등록 2013.01.01 12:34수정 2013.01.01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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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2년 12월 19일. 제 18대 대통령 선거 날은 개인적으로도 의미 깊은 하루가 됐습니다. 그날 오후, 20대 청춘에 꼭 해내고픈 목표 하나를 이뤘거든요. <오마이뉴스>에 100번째 톱 기사를 쓰는 꿈 말이죠.


꿈을 이루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네요. 첫 기사를 쓴 것이 2002년 1월29일이니 횟수로 따지면 무려 9년 11개월 20여일 만이었습니다. 오늘 12월 31일은 첫 기사를 쓴 지, 9년 12년이 지나고 10년 째를 향하는 길목이라 의미가 남달랐습니다. 새해이니만큼 특별한 마음가짐으로 도전할 수 있겠지요.

돌이켜보니 시민기자란 이름으로 취재를 하며 참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 경험, 그 고민, 그리고 극복했던 과정을 같은 꿈을 꾸는 청춘들과 이야기 해보고 싶습니다. 만 20살 1월에 시작해 29살 12월 31일까지 달려왔던 한 청춘의 도전, 근 10년의 시간동안 제가 배웠던 것들을 짧게나마 기록으로 전합니다.

저널리스트, 청춘을 걸어볼만한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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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 기자생활 9년 11개월여 만에 꿈을 이뤘다. 완전 신났다. ⓒ 이연미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로 저널리스트를 꿈꿉니다. 저 역시 이유가 있었지요.

초등학생 때, 담임선생님이 반친구 어머니의 촌지를 받고 성적을 올려준 일이 있었는데, 당시 선생님께 이 일에 대해 따졌다가 오히려 반 친구들 앞에서 혼이 나고 말았죠. 부조리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뒤 장래희망은 항상 기자였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한 일간언론사의 '리포터'로 활동하며 기사를 쓸 수 있었습니다. 어릴 적 경험 때문인지 고딩이 바라본 세상이라는 타이틀로 교육 제도에 대한 비판을 많이 했습니다. 몸이 힘들긴 했지만 당시의 리포터 생활은 제게 있어 마음만은 행복한 취재 활동이었습니다. 청소년이 받는 것치고 원고료도 빵빵(?)했고, 담당 데스크님이 예뻐라 해주신 것도 한 이유라면 이유겠네요.

그런데 제가 만 20살 되던 즈음, 제가 기사를 쓰던 매체가 그만 서비스가 종료되고 말았습니다. 하루 아침에 기사 쓸 공간을 잃어버려 당황했을 때, 슬픔을 즐거움으로 만든 반전 같은 만남이 이뤄졌습니다. 바로 <오마이뉴스>를 알게 된 것이죠. 자유로운 주제로 글을 쓸 수 있는 <오마이뉴스>의 시스템은, 가슴을 두근두근 하게 만들었습니다.

'오마이뉴스? 이름이 좀 특이하긴 한데, 누구나 글을 쓸 수 있다고? 신기하네..... 앞으로 여기다 기사를 쓰면 되겠다! 히힛'

당시 심정이란, 마치 사막한가운데서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었죠. 기쁜 마음으로 완성해 낸 첫 원고를 바탕으로 2003년 1월 29일. 역사적인(?) 첫 기사가 탄생했습니다. 그 후, <오마이뉴스> 이것저것 쉴 틈 없이 기사를 썼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많이 어설펐습니다. 당시 제 기사의 깜냥이란, 다른 시민기자들에 비해 보잘 것 없었던 때문이죠. 그래서인지 ,톱기사를 쓴다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꿨습니다. 그런데 7전8기를 뛰어넘어 79전 80기를 하니깐 되더군요.

80번째 기사를 썼을 때 첫 톱기사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기뻤죠. '내가 쓴 기사가 많은 사람들에게 읽힐 수 있다'는 사실이.... 그때 얼마나 감격적이던지요. 그래서 거창한 목표를 하나를 세웠습니다. 20대 청춘동안 <오마이뉴스>에 탑 기사 100번을 쓰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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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첫 탑기사! 80번째 기사만에 이뤄낸 성과였다. 독자 원고료도 500원(?)이나 붙었다 ⓒ 오마이뉴스 화면 캡처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해(2003년) 제가 쓴 톱 기사는 겨우 3개에 불과했죠, 이런 속도로 셈하자면 톱기사 100개 쓰는데 1년에 3개씩, 무려 34년이 걸리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때가 되면 제 나이가 54살 이었습니다. (으악!)

그래도...그래도 말입니다. 거북이처럼 느린 걸음이었지만 즐거웠습니다. 어렵사리 취재를 해서 기사를 완성할 때면 해냈다는 사실이 뿌듯하고 행복했죠. 그렇게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 마침내 100개 톱기사를 썼네요. 

그 긴 시간동안 한 가지만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저널리스트 활동은 청춘을 걸어볼 만 일이라는 것 말이죠. 친구들에게 '영어, 논술'이 언론 공부였다면, 제게는 기사쓰기가 언론 공부였으니까요. 정말, 청춘을 걸어볼 만한 공부였습니다.

시민기자 9년 12개월, 청춘의 끝에서 내가 배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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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꿈은 여행과 같다! 콜럼버스처럼 신대륙을 발견하러 출발! ⓒ 곽진성


9년 12개월 동안 '청춘' 시민기자로 뛰는 과정에서 배운 점이 많이 있습니다. 그중 딱 3가지만 꼽자면, 첫 번째로 진심이 진실된 기사를 쓰는 밑그림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취재자가 진심으로 대하면 상대방도 마음을 연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제 깐에는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찾은 것 만큼 큰 발견이었죠. 덕분에 정말 멋진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둘째 진실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을 키웠습니다. 열심히 취재하고, 치밀하게 파고 들면 좀 더 진실에 가까운 그림(기사)을 그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빠른 기사 쓰기가 정형화 된 세상에서 기다림의 가치를 알았다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일 것입니다.

셋째로 '멘붕을 극복하는 용기'를 얻게 됐습니다. 어쩌면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한 배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그런 적 있으신가요? 간절히 인터뷰를 필요로 한 지인을 인터뷰했는데, 다음날 소중했던 지인이 운명했던 경험. 최선을 다해 기사를 썼는데 독자들에게 비난만 샀던 경험. 기사를 잘쓰면 세상이 변할 것이라 믿었는데 여전히 세상은 그대로 인 경험.

긴 시간, 청춘과 동행했던 시민기자 활동은 때론 '아픔'과 '슬픔', 그리고 '실패'를 감당해야 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일들은 '아프니깐 청춘이다'라는 말로 위안을 삼기에는 쉽게 감당이 안 되는 것이었죠.

덕분에 2011년은 제게 있어선 정신적으로 많이 무너진, 요즘 유행어로 표현하자면 소위 멘탈 붕괴의 해였습니다. 엎친데 덮친격, 2012년은 현실적인 여건마저 멘탈붕괴가 되고 말았죠. 진짜 88만원 세대에서 반 토막이 난 44만원 세대를 실감했습니다.

취재 때 늘 함께했던 Dslr 카메라 세트는 전부 도둑 당해 '카메라 푸어'가 되었고, 넷북은 고장나 인터넷도 안 되는 '넷북 푸어'로 전락했죠. 그런 상황 때문인지 기사도 잘 써지지 않았습니다. 그럴 때면 '내가 하는 청춘의 목표가 과연 의미있나.' 라는 좌절감도 생겼습니다. '이제 그만하고 열심히 공부 해서 입사 해야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톱기사 100개를 쓰겠다는 목표를 얼마 남겨두지 않았는데, 이제 여기까지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어쩌면 정말 그래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청춘의 목표를 이루기 전, 현실과 적당히 타협 해야할 순간이었죠.

브라보~ 청춘은 가슴 뜨겁다! 우린 아직 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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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청춘 뒷받침해 준 소중한 내 명함! ⓒ 곽진성


현실과 물타기는 쉬웠습니다. 잠시, 돈 좀 모으겠다는 생각으로 한 월간지 면접을 봤는데 덜컥 합격을 해버린 거죠. 이왕 이렇게 된 것, 도전은 멈추고 적당히 살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톱 기사 100개를 쓴다는 것....10년의 청춘 동안 시민기자로 취재를 한다는 것. 어떻게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일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들이 보면 무의미한 일일 수도 있겠지요. 어쩌면 '현실감각'이 없다고 비웃음을 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게 있어 그것은. 젊은날 목표이자 도전이었습니다. 여기서 그만두면 평생 후회가 남을 것 같았습니다. 젊은 날 해왔던 도전이 가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었습니다.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는 가치 말이죠.

문득 오기가 났습니다. '힘들어도 청춘의 도전만큼은 끝내자.'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이 아니라면, 언제 도전할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용기를 냈습니다. 합격해놨던 월간지 입사는 포기하고, 또 집중해야 할 언론사 입사 공부도 잠시 미루고 그동안 생각만 뒀던 탐사보도를 시작했습니다.

모아둔 돈을 털어 탐사보도 취재를 진행했습니다. 카메라는 핸드폰 카메라로. 고장난 노트북은 수첩으로 대신했죠. 꿈 하나만을 보고 달려온 시간. 그런 제게 12월 19일은 평생 잊지 못할 하루가 될 것입니다. 제 18대 대통령 선거일 날 '재외국민 선거' 기사로 목표를 이룰 수 있었으니까요. 대통령선거라는 역사의 큰 흐름에서, 보탬이 되는 기사를 썼다는 것은 가슴 뿌듯한 일이었죠.

선거 결과 후, 여러분은 어떠셨나요? 제 친구들은 대통령 선거 결과에 울기도 하고, 마음 아파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용기를 얻었던 하루였습니다. '더디더라도 포기하지 않는다면 꿈은 이뤄진다'는 것을 실감했기 때문이죠.

각오를 새롭게 다진 12월 19일, 10일 후는 제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청춘의 도전을 한지, 딱 9년 12개월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시간을 내서 고해성사를 봤습니다. 근 반년 만에 가 본 성당, 잠시 낯설었지만 꿈을 향해 달려오며 아팠던 일들을 솔직하게 털어냈죠. 그런 제 마음을 아셨는지 신부님은 따뜻한 답변을 들려주셨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가장 나쁜 것이 언론이라는 말합니다. 아마, 기자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타락해 가는 모습을 많이 봐서 그런 것 같습니다. 어느 언론사를 가고 싶으시죠? 어디 곳을 가든 지금처럼 변하지 않고, 좋은 글을 쓰는 기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알고보니 신부님도 언론에 대해 관심이 많으시더라고요. 이날 신부님이 들려주신 조언은 기자 지망생의 마음을 울컥하게 만드는 말이었습니다. '초심과 좋은 글.' 저널리스트를 꿈꾼다면 언제나 잊지 말아야 할 가치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글이 세상에 나올때쯤에는 이미 새해는 시작됐겠죠? 그래서인지 이 시간은 '청춘의 10년 여정'의 결승점인 2013년 1월 29일을 향해 힘차게 달려보겠다고 마음을 다잡는 밤이네요. 누군가는 묻겠죠? 이십대 목표를 이룬 후에는 어떻게 할거야?라고, 저는 답할 것입니다. 이제 또다른 10년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겠다라고,

청춘의 목표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안도감, 저보다 먼저 현직 기자생활을 하고 있는 친한 후배는 소식을 전해듣고, 어깨를 으쓱하게 하는 응원을 해줍니다.

'진짜 다 기록이고 오빠의 역사잖아! 대단해! 브라보~!'

제 청춘, 잘 해내고 있는 거겠죠? 저는 힘내렵니다. 꿈꾸는 여러분의 청춘도 힘내길 바랍니다. 소중한 꿈을 현실이라는 녀석에게 내주기엔, 멘탈 붕괴 따위에 무너지기에는 우린 아직 젊으니까요.
#저널리스트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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