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법? 우리랑 상관 없어... 사장 배만 불리는 일"

택시기사들에게 '택시법 국회통과' 물어봤더니

등록 2013.01.03 21:08수정 2013.01.03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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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의 한 기사식당 앞. 택시기사들이 식사하기 위해 택시를 줄지어 세워놓았다. ⓒ 조정훈


택시를 대중교통으로 인정해 정부가 재정을 지원토록 한 '대중교통 육성 및 이용 촉진법 개정안'. 이른바 '택시법'이 국회에서 의결됐으나 후폭풍이 적지 않다.

전문가들과 누리꾼 사이에서는 "25만여 명에 이르는 택시기사들의 표를 의식한 정치적 행보"라는 비난이 나오고, 정부와 청와대는 공개적으로 택시법 반대 입장을 내놓았다.

국토해양부는 법안이 통과된 지난 1일 성명을 통해 "택시의 대중교통수단 인정은 교통정책 혼란을 야기하고 과도한 재정부담을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청와대는 그 다음날인 2일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야 할지를 놓고 고심 중"이라는 의사를 밝혔다.  

논란이 일자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2일 "지원을 할 수 있다는 것과 해야 되는 것과는 다른 것"이라며 "택시법에는 그런 식으로 예산을 주라는 것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세부적인 지원 방안과 예산은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택시법을 두고 업계 바깥이 시끄러운 반면, 정작 택시기사 종사자들은 조용하다. 3일 서울 용산구 서계동과 마포구 연남동 근처 기사식당에서 만난 택시기사들은 대부분 택시법에 대해 "법안에 구체적인 내용이 없어 잘 모르겠다"고 입을 모았다.

"26일 꼬박 일해도 100만 원"... "택시 사장만 배불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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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업계가 2012년 6월 20일 하루동안 '대중교통 법제화' '엘피지 가격 안정화' '택시연료 다양화' '택시요금 현실화' 등을 요구하며 전면 파업에 돌입한 가운데 서울 광진구의 한 택시회사에 운행중단된 수백대의 택시가 빼곡하게 세워져 있다. ⓒ 권우성


특히 회사(법인) 소속 택시 기사들은 "기사들과는 상관없다"고 잘라 말했다. 택시업계에서는 연간 1조 9000억 원이 지원될 거라 예상하지만, "회사에만 도움이 될 뿐 정작 기사들에게는 돌아오는 게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회사 택시 기사들은 임금 지원과 택시연료인 액화천연가스(LPG) 비용 부담 면제 등 "택시기사 종사자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혜택을 줘 처우를 개선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인택시 기사들은 "LPG 비용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근본적으로는 택시 대수를 줄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국에 등록된 택시는 25만 대. 서울시에 따르면 전국의 1/3(약 7만 2000대) 정도의 택시가 모여 있고, 하루 평균 4~5만 대가 시내를 돌아다니는 것으로 추측된다. 택시 과잉 문제를 해결해야만 여러 가지 중첩된 택시 관련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법인·개인택시기사 종사자들의 생생한 육성을 그대로 소개한다.

"정부가 지원한다면 기사들 기본급 올려주는 게 더 좋다"

신아무개(63), 회사(법인)택시 운행 3년차 : "기사들이랑 별로 상관없다. 방송에 나온 거 들으니 별 내용 없더라. 사납금(10~12만 원씩 매일 회사에 납입하는 돈)을 깎아주는 것도 아니고. 정부가 지원해준다면, 기사들의 기본급을 인상해주면 좋겠다. 지금은 월 26일을 꼬박 일해야 기본급 100만 원을 받는다. 근무 일자도 주5일제로 줄여줬으면 한다." 

전아무개(70대), 회사택시 운행 10년차 : "정부가 택시요금을 1900원에서 2400원으로 올릴 때 택시기사 처우를 개선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그런데 사납금도 덩달아 올라서 기사에게 돌아오는 이윤이 별로 없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택시를 대중교통에 포함시키더라도 별로 달라지는 건 없을 테다. 택시 사장들만 배불리는 것이다.

정부에서 책임지고 기사 생존권 문제를 해결해줘야 한다. 요즘 법인택시 기사들은 열심히 일하면 한 달에 120만 원 정도 번다. 부양가족이 있는 데다가 아이들 학교 보내는 사람들은 어떻게 식구를 먹여 살릴까 싶다. 야간 운행은 손님이 많아서 머리만 잘 굴리면 본전은 챙긴다. 그런데 주간 운행 때는 요즘 시간당 만 원 벌기도 힘들다.

사납금을 못 채워서 월 70~80만 원을 겨우 버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사납금 때문에 밥도 못 먹는다. 나는 혼자 살아서 생활비 얼마 안 들어 괜찮다. 오늘 오전 수입이 괜찮아서 이렇게 6000원짜리 기사식당 밥을 먹는다. 사실은 김밥으로 점심 식사를 때우는 기사들이 많은 게 현실이다.

기사들 먹고 살게 해주는 내용이 택시법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면 굳이 돈 많이 벌려고 과속운전도 안 해도 되니 얼마나 좋은가. 이왕이면 택시 운행 수입을 전부 회사에 주고 기사들은 월급을 받는 전액관리제를 시행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나 서울시에서는 안 한다."

"택시업계 지원 늘어나도 기사들한테는 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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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택시기사가 기사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후 시동을 걸고 있다. ⓒ 이주영


익명 요구(55), 회사택시 운행 4년차 : "사내 기사들은 다 무관심이다. 위에서만 시끄럽지, 기사들은 되든 말든 조용하다. 지원이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는 없지 않나. 당장 우리하고는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다 회사 좋으라고 하는 것이다. 지난 6월에 택시 총파업 했을 때도 별로 참석하고 싶지 않았다. 회사에서 일 안 해도 급여 인정해준다고 해서 갔다.

지금 기사들에게 필요한 건 LPG 요금 인하다. 정부에서 기사들이 부담하는 LPG 비용을 지원해줬으면 한다. 지금은 회사가 20리터 제공해주는 것 외에 추가 비용은 기사가 부담한다. 이를 정부가 100% 지원해주면 좋겠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이야기해도 정책에 반영이 안 된다. 윗사람들이 책상머리에서 이것저것 만들기만 할 뿐이다. 조금 과격하지만, 전태일처럼 투신자살을 해야 알아듣는다." 

김아무개(50대), 회사택시 기사 :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괜히 이것저것 늘어나면 기사들만 더 피곤하다. 손님이 '택시법 통과됐는데 택시 서비스 왜 이러냐'고 물으면 어떡하나. 기사들한테는 돌아오는 게 없는데 말이다.

택시업계가 받는 지원이 늘어나도 정작 회사는 기사에게 별로 혜택을 안 준다. 회사는 유류세 지원을 받으면서, 그 비용을 기사들에게는 주지 않는다. 이렇게 웃긴 게 어디 있나. 정부에서 지원해줘도 회사에서 안 주면 그만이다. 그러니까 택시법 통과됐다 해도 기사들이 관심이 없는 것이다.

우린 출퇴근시간대에 버스전용차선 진입과 합승을 허용해준다고 해야 피부에 와 닿는다고 느낀다. 또한 택시기사들 처우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택시 고급화다. 대중교통수단에 포함시키면 안 된다. 왜 택시가 대중교통인가. 요금 올려서 택시 탈 사람은 타게 해야 한다. 그런데 요금을 올렸는데 회사가 사납금을 올리면 아무 소용없다. 만약 정부가 세금 감면 혜택 등을 회사에 주면, 사납금 동결 같은 규제를 달아야 한다."

"택시대수 줄이는 게 우리들한텐 지원"... "LPG값 낮췄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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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업계가 2012년 6월 20일 하루동안 '대중교통 법제화' '엘피지 가격 안정화' '택시연료 다양화' '택시요금 현실화' 등을 요구하며 전면 파업에 돌입한 가운데, 서울 광진구 한 택시회사에서 운행중단된 수백대의 택시가 빼곡하게 세워져 있다. ⓒ 권우성


이아무개(63), 회사택시 운행 2년차 : "회사에서 기사끼리 택시법과 관련해서 별 이야기를 안 한다. 우리한테는 택시법 혜택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 피부에 닿는 게 있어야 할 텐데 그러기는 힘들 것 같다. 정부에서도 안 된다고 하지 않나.

택시기사들에게 필요한 지원은 감차 지원이다. 택시가 너무 많다. 서울시에 개인택시만 약 5만 대다. 3부제니까 그중 2/3만 나온다고 쳐도 하루에 3만대가 넘게 돌아다니는 것이다. 거기에 법인택시까지 나온다. 도로에 걸리적거리는 게 전부 택시인 셈이다."

조종현(64), 개인택시 25년차 : "아직은 세부적인 지원 내용이 정해지지 않아서 모르지만, 일단 반긴다. 택시는 사실상 대중교통이다. 버스나 철도가 발달하기 전에는 다들 합승하면서 대중교통수단으로 이용했다. 그러한 점을 인정해주고 지원해주는 거니 환영한다. 택시법이 시행되면 버스기사 수준으로 택시기사 처우가 좋아질 것이다."

박경수(67), 개인택시 운행 25년차 : "택시법에 대해 잘 모른다. 무슨 내용인지 안 나왔기 때문이다. 자기들(국회)끼리 정하고서는… 쯧쯧. 나중에 봐야 뭘 알 것 같다. LPG 값을 택시기사들에게 3분의 1 정도로 낮춰줬으면 한다."
#택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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