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종이 주워서 125만원... "행복해유"

폐지 주워 23년간 불우이웃돕기 실천한 문기석씨

등록 2013.01.10 18:25수정 2013.01.10 18:27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태안읍내 상설시장에서 쌀집을 운영하고 있는 문기석씨. ⓒ 이미선


"멀쩡한 가게 놔두고 아빠가 폐지 주우러 다니는데 어떤 자식이 좋아하겠습니까?"


23년째 폐지와 고철을 주워 불우이웃을 돕고 있는 문기석(50·태안읍 동문리)씨. 주말과 공휴일이면 본인이 운영하는 가게 문을 닫고 동네 청소에 나선다.

"고철을 가져가는 조건으로 청소를 요청하는 분들이 많다보니 입은 옷이 더럽혀지는 것은 일쑤고유(허허). 한창 사춘기 두 아들 녀석도 이런 아빠를 어찌나 부끄러워했던지... 그래도 그런 아들들이 이젠 둘 다 군대에 들어갔습니다. 세월 참 빠르쥬."

빛바랜 추억을 상기하듯 가게 모퉁이 오붓한 가족사진 속 아들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문씨. 곡식이 상할까 한겨울인데도 가게 안 온풍기는 엄두도 못내는 문씨지만, 이런 곡식만큼이나 문씨가 아끼는 보물 같은 친구가 이곳엔 또 있다. 쌀집 금고 위 붉은색으로 도색된 모금통이 바로 그것.

"저와 함께 23년간을 같이 한 친구쥬."

멋쩍은 듯 모금함을 가리키는 문씨가 설명을 곁들인다.


"남들은 낚시·골프 같은 운동이 취미생활이라면 저한테는 봉사가 취미예유."

이상하리만큼 납득이 가지 않지만, 또 한편으로는 문씨의 봉사인생을 이토록 쉽게 정리시켜주는 말도 없으니 그 말이 맞긴 맞는 것 같다.

"폐지장사가 잘되는 날이면 천 원짜리도 넣고, 오천 원짜리도 넣고, 잘 안되면 십 원, 백원 이렇게 넣다보니 1년에 몇 백만 원은 모아지더라고유."

정성 가득 담긴 125만770원

a

문기석씨가 태안읍에 기탁한 성금 뭉치. ⓒ 이미선

이런 문씨는 지난 4일, 어김없이 태안읍사무소를 찾았다. 1년간 모금통에 모은 돈 125만770원을 기탁하기 위한 것이다. 10원, 100원, 500원, 1000원, 5000원, 만원 권이 가지런히 정리돼 정성이 묻어난다.

"올해는 고철도 별로 없고 하다 보니 작년보다 돈이 좀 적어유. 장사도 예전 같지 않고유."

문씨 말에 의하면, 처음 봉사활동을 시작하던 23년 전만 해도 주변에 고철과 폐지가 많았단다. 하지만 최근에는 상가마다 상자와 고철을 모아 자체적으로 내다팔기 때문에 이를 모아 돈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다고.

"제가 어릴 때 참 무던히도 가난하게 살았네요. 결혼하고 아들 두 놈이 태어났는데, 내가 걔네들한테 물려줄 거라고는 남을 위한 봉사정신밖에 없대유. 그래서 큰애가 3살 될 때 부턴가 무작정 도로에 나가 고철을 주웠어유. 첨엔 다 미친놈이라고 했쥬. 멀쩡한 방앗간 놔두고 종이 주우러 다니니께. 욕도 많이 먹었슈. 장사해서 돈 벌면 되지 뭐 하러 고철까지 주워서 돈 버냐고. 다들 모르는 소리쥬. 이제는 오래도 됐고 해서 '아, 또 저거 주워서 이웃돕기 할라고 그러나 보다' 해유."

20년 동안 방앗간을 운영하던 문씨가 10년 전 지금의 가게로 전업하고도 바뀌지 않았던 것은 이 작고 빨간 모금통뿐이다. 이 통에 폐지와 고철을 주워 23년간 불우이웃돕기한 금액은 현금으로 약 1억 원.

"많은 해엔 700만 원에서 500만 원까지도 넣어봤슈. 예전엔 이 방앗간 위 12평 남짓한 곳에서 네식구가 살다가 있던 땅을 팔아 지금 집으로 이사를 갔는데, 땅을 팔다보니 주워온 고철을 보관할 장소도 없고, 고철도 많지 않고. 그러니 돈 액수가 많이 줄을 수밖에유."

그래도 건강할 때까지 이 취미 생활 죽어도 놓지 않으리라 다짐한다는 문씨. 방앗간 벽면 가득 그의 봉사정신을 기리는 표창장과 사진들의 나열돼 그의 23년 봉사인생을 대변한다.

"집안 쓸 돈도 많은데... 아내가 더 대단하쥬"

태안읍 송암리가 고향인 문씨는 아내 한미숙(50)씨에게 기사를 통해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일 년간 이 통에 돈이 모으면 집안에 쓸 돈도 많을 텐데 군말 없이 돈을 내줘유. 고철 줍다 옷이 찢어지면 그거 꿰매서 삶는 일도 만만찮찮유? 그거 다 이해하고 내조하는 거 보면 우리 마누라가 저보다 더 대단하쥬."

문씨의 이웃사랑은 이런 모금함이 다가 아니다. 2001년에는 지인 18명과 '초심회'라는 봉사단체를 결성해 매년 저소득가정 집수리와 공동묘지 무연분묘 벌초 활동을 펴고 있다. 또 개인적으로 가정형편이 어려운 독거노인들을 찾아 아들과 함께 봉사활동에 나선다.

"이제는 이런 제 마음을 아는지 두 아들 모두 장기기증서약을 했더라고유. 난데없이 장기를 기증했다고 하는데 참, 말을 안했지만 기특하기도 하고 대견스럽더라고유."

그 아빠에 그 아들들이다. 몸소 실천하는 문씨 덕에 두 아들도 자연스레 남을 위한 봉사를 습득하게 됐다며 문씨는 이 세상 누구보다도 행복한 아빠 미소를 보였다.

"짧은 인생 자기밖에 모르면 뭐한대유? 서로 돕고 양보하며 살아야쥬."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태안미래 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 해 중복송고를 허용합니다.
#태안읍 #불우이웃돕기 #폐지 #23년 #기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아니, 소파가 왜 강가에... 섬진강 갔다 놀랐습니다
  2. 2 "일본정치가 큰 위험에 빠질 것 우려해..." 역대급 내부고발
  3. 3 시속 370km, 한국형 고속철도... '전국 2시간 생활권' 곧 온다
  4. 4 두 번의 기회 날린 윤 대통령, 독일 총리는 정반대로 했다
  5. 5 '김건희 비선' 의혹, 왜 자꾸 나오나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