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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권력욕, 그냥 영화였다면 좋을텐데

[리뷰] 류승완 감독의 영화 <부당거래>, 한국의 현주소를 짚어내다

13.01.24 11:55최종업데이트13.01.24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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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부당거래>의 포스터. ⓒ 필름트레인

검찰과 경찰. 각종 범죄에 대한 수사와 증거수집으로 공공질서를 유지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두 국가기관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만약, 그들이 오히려 돈과 권력에 눈이 멀어서 타락한다면 어떻게 될까. 국민이 위임한 권력인 공권력이 범죄를 저지르는 일에 가담한다면, 사람들은 분명 그 상황에 분노를 터뜨리게 될 것이다.

그런 상상하기조차 싫은 일을 소재로 삼은 영화가 바로 지난 2010년 개봉한 류승완 감독의 <부당거래>다.

국내 영화계에서 자기만의 색을 고수하고 있는 류승완 감독은 이 영화에서 황정민·류승범·유해진 같은 연기파 배우들과 함께 공권력이 타락하는 과정을 실감나게 표현해냈다.

영화는,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가상의 연쇄살인사건을 소재로 긴박한 상황들을 전개시키면서 사회 각 분야의 어두운 면을 집요하게 비추면서 스크린으로 끄집어냈다.

대국민 조작이벤트... "너, 오늘부터 범인해라!"

영화 <부당거래>의 한 장면. ⓒ 필름트레인


아동을 상대로 한 성폭행·살인사건이 연이어 벌어지는데 범인 검거는커녕 사건은 오리무중. 국민들은 불안에 떨다가 끝내 불만을 터뜨린다. 민심이 요동치자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사건의 빠른 종결을 언론에 외치고, 경찰계에는 불호령이 떨어진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검거 시도 중 사망하고, 뚜렷한 증거도 입수하지 못해서 무력하다는 비판을 받던 경찰은 결국 위험한 시도를 감행한다. 바로, '가짜 범인'을 만들어 사건을 종결시키려는 것. 이를 위해 경찰계 윗선은, 경찰대 출신이 아니기에 아무런 인맥이 없던 최철기(황정민 분) 반장을 설득해 사건의 수사를 맡기게 된다.

아무런 스펙도, 빽도 없던 최철기 반장은 사건을 신속하고 종결시킬 경우 승진을 보장해주겠다는 윗선의 솔깃한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가짜 범인' 역할을 해줄 사람을 찾기 위해서 자신의 스폰서인 조폭 장석구(유해진)에게 도움을 청한다.

순조롭게 진행돼가는 듯하던 '대국민 사기극'은, 이 사건과는 별개로 최철기 반장이 부동산 업계의 큰 손인 김 회장을 비리혐의로 구속시키려고 하면서 점차 엇나가게 된다. 김 회장의 후원을 받는 검사 주양(류승범 분)이 자신의 스폰서를 지키기 위해 최철기 반장에게 전면전을 선포했기 때문이다.

청와대와 경찰계 윗선의 지시를 받아 사건의 조작을 무사히 끝내야만 하는 최철기 반장, 자신에게 뒷돈을 지원해주던 김 회장을 구해내려는 검사 주양. 출세와 권력욕 앞에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으려는 두 사람의 불편한 만남은 점점 꼬여만 간다.

스폰서 검사-윗선만 챙기는 경찰 그리고 부패언론

영화 <부당거래>의 한 장면. ⓒ 필름트레인


영화에서 등장하는 검사 주양과 경찰 최철기는 모두 충성스러운 인물들이다. 문제라면, 그 충성의 대상이 다른 검사나 경찰들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검사 주양은 자신의 스폰서인 탐욕스럽고 부패한 사업가에게 충성을 다 하고, 경찰인 최철기는 오직 윗선의 지시만을 수행하려고 애쓰며, 이를 위해 살인과 증거조작까지도 불사한다. 이런 모습은 우리가 흔히 검찰, 경찰을 표현하는 단어들인 '법의 수호자'나 '민중의 지팡이'같은 말들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어보인다.

그리고 줄다리기를 하는 듯한 그 둘의 사이에서는, 양측의 사이를 오가며 그들을 시기에 따라 옹호하거나 비판하는 언론인 김기자가 있다. 그 역시도 타락했고, 자신에게 금품이나 향응을 제공하는 사람에게 유리한 기사를 입맛에 맞게 써서 보도한다. 그에게는 이미 언론의 역할 따위는 안중에도 없으며, 시기에 따라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이득을 챙길 뿐이다.

이들의 목적은 모두 유사하다. 아니, 똑같다고 보아도 무방할지도 모르겠다. 영화에서 묘사된 검찰·경찰·언론의 모습은 모두 자신의 욕망을 최우선의 가치로 두었으며, 이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것도 개의치 않고 거리낌없이 행동한다. 권력욕에 눈이 멀어버린 이들에게 법과 도덕, 양심은 이미 오래전에 팔아버린 공허한 이름들에 불과하다.

범법자들을 수사하고 추적해야 될 사람들이 오히려 범죄자가 되어버린 웃지 못할 상황. 원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타락해가는 그들은, 선로를 이탈한 폭주기관차처럼 스스로 멈추지 못할 질주를 위태롭게 이어간다. 아무리 채워도 끝이 없는 욕망의 늪을 향해서.

<부당거래>, 이 영화 정말 픽션 맞나요?

영화의 마지막은, 비뚤어진 권력욕의 충돌 끝에 망가진 등장인물들의 최후를 보여준다. 그리고 나서 카메라는 빠르게 상공으로 날아올라, 높은 빌딩들이 빼곡하게 들어선 도시를 비추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그런데 영화의 마지막장면인 도심의 상공은, 공교롭게도 오늘날 서울의 모습과 매우 닮아있다. 그제서야 관객은 생각해보게 된다. 영화로만 생각해온 이런 이야기들이, 과연 그저 상상에 불과한 것일까를.

최근 일어난 사건들을 되돌아보자. 경찰은 12월 대통령선거 직전 벌어졌던 '국정원 직원 선거개입' 논란에 대한 수사결과를 대선후보 TV토론회 직후인 한밤중에 수사결과를 발표하는 모습을 보였다. 문제라면, 당시 뚜렷한 범행여부가 밝혀지지 않은 상황임에도 늦은 시간에 이례적으로 보인 행동이라는 점이었다. 이와 관련해 경찰대 표창원 교수는 교수직에서 물러나면서까지 경찰의 수사행태를 비판하기도 했다.

검찰은 또 어땠는가. '벤츠 여검사' 사건 등에서 드러난 그들의 모습은, 각종 금품과 향응을 제공받으며 비리검사의 이미지로 '떡검'같은 단어를 낳기도 했다. 뿐만 아니다. 고위층이 연루된 사건들에서는 어김없이 사건을 꼬리자르기로 마무리하며 권력에게만 관대하다는 비판을 받아오지 않았나.

그리고, '메이저언론'이라 불리는 언론사들도 마찬가지다. 앞서 언급한 다양한 사건들에서, 과연 이들은 언론으로서 유권자들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 진실을 보도하였는가? 아니면 권력을 보호하기 위해서 사건을 축소하거나 왜곡보도를 일삼으며 선전도구로 전락하지는 않았는가.

뒷맛이 개운치 않은 이 영화... '현실이 잘못했네'

영화는 류승완 감독의 연출력 아래에서 걸출한 배우들의 연기력과 긴장감을 잃지 않는 줄거리가 조합되어 시종일관 빛을 발한다. 황정민, 류승범, 유해진같은 주연들 뿐만 아니라 조연들의 연기력과 캐릭터 소화능력까지 흠잡을 곳이 없을 정도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난 뒤 관객들의 반응은, 잘 만들어진 걸작을 관람하고도 씁쓸함을 감추기 힘들다는 평이 많았다. 극중 인물들이 보여준 부패한 모습들이 지난 몇년간 현실의 대한민국에서 뉴스를  장식한 사건들과 매우 닮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관객들의 불편함을 해소해주기 위해서, 영화의 내용을 바꾸어야 할까? 극 중 검사나 경찰, 기자들이 물질적인 욕망만을 추구하는 모습을 아름답게 묘사하여 그런 일들을 사람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도록 해주어야 할까?

공권력과 언론의 존재이유와 그들이 하는 일의 목적을 생각해본다면, 영화 속의 인물들이 행하는 그들이 보여주는 행동이 잘못된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답은 어렵지 않게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과 판박이인 현실에서의 각계 각층들에 대한 판단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걸음은, 문제가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영화가 뒤틀린 현실을 단번에 바꿔내지는 못할지라도, 그 첫걸음을 돕고 있는 것일런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난 뒤의 개운치 못한 느낌은, 우리에게 다음 걸음을 내딛기를 재촉하는 듯 하다.

부당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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