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서 시각장애인역을 맡은 송혜교
SBS
또 지난 22일에는 SBS의 새미니시리즈 <그 겨울, 바람이 분다>를 홍보하는 보도자료에서시각장애인역을 맡은 송혜교씨가 하이힐을 신은 것을 가지고 "시각장애인이 하이힐을 신을 수 있냐?"와 "시각장애인도 하이힐 신고 다닌다"는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시각장애인은 앞을 볼 수 없기 때문에 하이힐을 신으면 매우 위험하다, 그래서 하이힐을 신지 않는다"라는 주장이 있는 반면 "시각장애인 중 중도 실명한 장애인도 많다, 그런 사람들은 하이힐을 신은 경험 때문에 하이힐을 신을 수 있다"라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사실 둘 다 틀린 주장입니다. 선천적이거나 후천적이거나 장애의 발생 시기나 정도와 하이힐과는 무관합니다. 성격이나 특성에 따라 하이힐을 선호하거나 선호하지 않는 차이는 있겠지요. 당연히 시각장애인 여성 중에 하이힐을 신는 분들도 많습니다. 선천적 시각장애인인 제 아내가 구두를 살 때 벌이는 저와의 논쟁은 "하이힐을 신을 수 있냐? 없냐?" 가 아니고 "얼마 전에 사고 또 샀냐? 신발장에 더 이상 넣을 공간도 없다"입니다.
사실 이런 논란은 많이 있을 수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도 실명하기 전에는 시각장애인에 대해 잘 몰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시각장애인은 컴퓨터를 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컴퓨터를 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던 기간이 5, 6년이나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아주 간단한 프로그램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시각장애인도 컴퓨터를 할 수 있고 인터넷을 돌아다닐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너무 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컴퓨터는 물론이고 스마트폰도 사용합니다. 또 책을 올려 놓으면 척척 읽어주는 보조기기 덕분에 일반 소설책도 혼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전 위의 담배나 하이힐과 같은 논쟁이 벌어지는 것이 참 안타깝습니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장애인에게 그릇된 편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시각장애인을 포함한 장애인이 대략 인구의 10% 정도라고 합니다. 그럼 우리들 주위에서 열 사람 중 한 명은 장애인일 텐데 우리가 하루에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 중 장애인은 얼마나 될까요? 그만큼 장애인의 사회참여나 활동이 어렵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요?
저는 2006년부터 일본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살 때보다 일본에서 살면서 훨씬 더 많은 장애인을 만납니다. 왜 그럴까요? 일본이 한국보다 장애인 비율이 높아서일까요? 일부에서는 일본이 근친결혼으로 인한 열성유전으로 인해 장애인이 많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한국보다 일본이 장애인이 활동하기 편한 사회적 환경을 갖추고 있고,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초등학교 4, 5학년이 되면 시각장애인이 사용하는 '점자'와 청각장애인이 사용하는 '수화'를 모든 학생들이 배우는 기회가 있습니다. 또 휠체어를 직접 타는 경험도 합니다.
이런 교육이 단지 '장애체험' 때문만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교육을 통해 두 가지 효과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첫째는 장애를 갖지 않은 아이들도 장애인 친구에 대한 이해의 폭이 커질 수 있습니다. 실제 이런 교육 후 시각장애인 학생들에게 필요한 책을 점자도서로 만드는 점역 자원 봉사를 하는 아이들도 늘어나고 수화 통역을 배우려는 아이들도 늘어난다고 합니다. 또 하나는 혹시 자신이 장애인이 될 경우 정보의 습득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기회를 알 수 있는 계기가 됩니다. 실제 장애인 중 약 10% 정도만이 태어날 때부터 장애인인 선천적 장애인이고, 나머지 90% 이상이 중도 장애인입니다.
이렇게 중도에 장애인이 되면 장애인으로 살아갈 방법을 알고 적응해야 하는데 개인이나 가족이 그런 정보를 얻는 데 매우 시간이 걸리는 게 문제입니다. 만약 어릴 때부터 장애에 대한 충분한 정보나 재활 방법 등을 알고 있다면 자신이 불의의 사고나 질병으로 장애인이 되었을 때 훨씬 빠르게 사회에 적응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남성과 여성, 외국인과 내국인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죠.
장애인들이 가장 원하는 것 중 하나가 직업활동입니다. 그런데 실제 직업을 가질 수 있는 장애인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이유는 장애인 능력의 문제가 아니고 "장애인은 능력이 없다"란 그릇된 인식 때문입니다. 하이힐 하나도 제대로 신지 못한다는 인식이 이 사회에 팽배해 있는한 시각장애인이 컴퓨터를 하고 인터넷을 검색하고 파워포인트로 프리젠테이션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테니까요.
그러나 시각장애인이 비행기를 조종하고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전문 컴퓨터프로그래밍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을에서 불쌍한 시각장애인에게 한 덩이의 빵을 줄 것을 고민할 게 아니라 빵을 만드는 시각장애인에게 마을 사람들이 모두가 한 덩이씩 빵을 산다면 그 시각장애인 빵집 주인에겐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입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자는 1급 시각장애인으로 이 땅에서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장애인의 삶과 그 삶에 맞서 분투하는 장애인, 그리고 장애인을 둘러싼 환경을 기사화하고 싶습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