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학생들이 "편하지 않은 집", "창틀 안에 갇혀있는 느낌"이란 답을 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다큐멘터리 <학교의 눈물>과 드라마 <학교2013>은 지금의 학교가 어른들이 만들어 낸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것과 가해자와 피해자를 이분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을 공통적으로 보여주었다.
중학교 입학 때 왕따를 경험한 정순이(가명)는 2학년이 되어서는 왕따를 시키는 아이가 되어서 학생폭력위원회에 회부되어 강제 전학을 가고, 항상 학생들이 자기를 때리고 괴롭힌다는 혁이(가명)는 2학년 때 신체가 커지면서 자기보다 작은 아이들을 찾아 괴롭히고 협박을 하고, 폭력에 시달리던 정근이가 폭력 서클에 스스로 가입해서 폭력을 일삼는 아이로 둔갑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던 교사들은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고, 무기력함을 어쩌지 못하는게 사실이었다.
학교폭력의 피해자와 가해학생 모두 심리분석 결과 높은 우울감과 낮은 자존감이 발견된다. 피해 학생들은 용기를 내 신고해도 그 증거를 입증해야 하고, 가해자가 처벌된 뒤에도 남아있는 아이들의 시선이 신경 쓰이는 정신적 후유증에 시달리고. 가해학생의 경우에는 징벌을 완수한 뒤 자신의 행동을 후회는 해도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모습이 적어, 같은 폭력이 되풀이 된다.
교사들이 보아왔던 폭력사건에 관련된 가해학생들의 대부분이 지독한 가난으로 인해 부모로부터 방치되어 올바른 생활습관도 배우지 못한 아이들, 병든 조부모 곁에서 버티며 사는 아이들, 정신과적으로 문제있는 부모들(피해망상, 심각한 불안증, 대인관계 회피증)에게 습관화된 아이들, 가족들의 폭력이 일상화 되었던 아이들이었다.
<학교의 눈물>의 담당PD는 "가해자를 지켜보고 있으면 의외로 순수하고 착합니다. 왜 그런 짓을 할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요. 처음부터 큰 잘못을 저지르지는 않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나쁜 길로 빠져요. 아이들이니까 그렇게 둔해지는 거죠. 어른들이 사건 발생시 최초에 개입하게 된다면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했다.
이런 학생들에게 학교와 사회는 소통과 치유로 다가 가야 한다.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소통할 수 있도록 감수성을 기르고, 교사와의 소통이 어려운 학생들은 '또래 상담'(상담활동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 도와주는 것)을 통해서 학교폭력이든, 왕따든 부모나 교사에게도 할 수 없는 얘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건 친구를 통해서 할 수 있도록 하고, 학교에서는 학생들과의 소통과 학생들의 치유를 위한 여러 가지 노력들을 계속해야 한다. 사회적으로도 '사회의 빈부격차가 클수록 학교폭력 지수도 높다'는 캐나다의 한 연구팀 논문에서 지적 되었듯이 소득불평등과 빈부격차를 줄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학교의 눈물>은 학교폭력을,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영혼의 패자로 남는 잔혹한 게임'이라 말한다. 그런데 거꾸로 사회는 부산스럽게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각 지방 경찰청과 교육청 협력으로 스쿨폴리스를 발족하며, 가해 학생의 징계가 더욱 강화되는 모순만 되풀이 하고 있다.
<학교의 눈물>에서 학교폭력의 가해자들에게 판결을 내리던 판사는 이렇게 말했다.
"학교폭력의 일차적 책임은 아이가 아닙니다. 사회가 만든 겁니다. 이 아이들 전부 대한민국의 아이들 아닙니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을 저지른 아이들을 벼랑 끝까지 내몬 것은 결국 어른들이다. 학교가 아이들의 꿈이 되지 못하고, 아이들을 경쟁이라는 매질로 학대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학교의 눈물은 그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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