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 <대학에 가지 않아도 성공하는 세상>(2012년 5월)의 표지 사진.
삼성경제연구소
뿌리 산업은 주조, 금형, 열처리, 용접 등과 같이 산업 분야에서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이고 중요한 분야다. 하지만 이 뿌리산업은 지금 최악의 3D 업종으로, 젊은 구직자들에게는 기피 1순위의 산업 분야가 되어 있다. 그래서 보고서는 이 분야에 파격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라고 제안한다. 하지만 이는 하나마나한 당연한 소리 아닌가. 뿌리산업은 그 말만큼이나 우리 산업의 근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뿌리산업이 왜 고졸자에게만 적합한 일자리여야 하는가. 그렇게 우리 산업의 근간이 되는 분야라면 대졸자도 맡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지금 나는 이 보고서에서처럼 고졸자와 대졸자를 나누는 관점 자체를 문제삼고 싶은 것이다. 아주 삐딱하게 말해 대졸자와 고졸자를 노골적으로 나누어 고졸자는 대졸자의 영역에 기웃거리지 말란 말 아닌가.
하지만 이런 식의 과제 해결로는 과잉학력의 문제를 절대 해결할 수 없다. 내가 보기에 고졸 용접공에게 아무리 많은 돈을 주더라도 고졸자와 대졸자에 대한 사회적인 차별이 없어지지 않는다면 결코 우수한 고졸 용접 기술자를 얻기 힘들다. 용접공이든 교수든 이들은 우리에게 모두 필요하고 소중한 노동자들이다. 노동(자)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과잉학력의 문제를 풀 수 없다.
핀란드의 수도 배관공과 교수 월급은 별로 차이가 크지 않다. 이들은 사회적으로도 별다른 차별 없이 동등한 대우를 받는다고 한다. 독일에서는 기술학교(우리나라로 치면 몇 년 전 '마이스터고'로 바뀐 실업계 고교에 해당한다)를 다니면서 현장에서 도제 과정을 마친 고졸자들이 사회적으로 아주 높은 위상을 갖게 된다는 말도 들었다. 이들은 실제 사회에 나가면 경제적으로도 높은 대우를 받는다.
우리는 '대학에 가지 않아도 성공'이라는 전제를 무턱대고 받아들이면 안 된다. 우선 그 말을 하는 이가 생각하는 '성공'의 기준이 무엇인지부터 따져 보라. 만약 그것이 단순하게 '돈'의 문제와만 관련된다면 다시 물을 필요도 없다. 돈의 문제로 성공을 재기 시작하면, 우리나라의 국민 소득이 4만 달러가 아니라 8만 달러가 되어도 그 '성공'은 결코 실현되지 못한다.
대학과 고등학교를 각각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도 알아볼 필요가 있다. 만약 그가 대학과 고등학교를 학문적인 우열이나 주종의 관계로 생각하고 있다면, 그는 두 말 할 나위 없이 사기꾼이거나 교육학적인 백치다. 못 말리는 학력주의자가 아니면 대학과 고등학교 동문회에 사활을 거는 학벌주의자일 가능성도 높다. 그는 한 마디로 크게 신뢰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
대학은 대학이고 고등학교는 고등학교다. 대학은 기초 학문에 대한 창의적 연구를 통해 사회 발전과 혁신의 실마리를 만들어내는 곳이다. 고등학교는, 다행스럽게도 우리나라 교육과정 입안자들이 잘 명시해 놓은 것처럼, 서로 협력하고 소통하는 민주 시민을 길러내는 곳이다. 그 각각 하는 일이 이렇게 명백하게 다르다. 왜 고등학교가 대학교에 종속되어야 하는가. 또 마찬가지로 대학은 왜 기업에 설설 기어야 하는가 말이다.
그러니 무엇보다도 먼저 대학과 고등학교, 대졸자와 고졸자 사이의 차별이 철폐되어야 한다. 일자리와 급여에 관한 한, 대졸자와 고졸자 사이에 그어져 있는 지금의 거대한 장벽이 대대적으로 허물어져야 한다. 일자리 장벽을 완전히 없애기 힘들다면 급여의 장벽만이라도 깨끗하게 없애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일자리 장벽의 문제도 어느 정도 상쇄될 것이다.
학력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전환도 필요하다. '내가 거쳐온 배움의 길[學歷]'이 아니라 '내가 배워서 갖게 된 능력이나 배울 수 있는 힘[學力]'에서 진짜 학력의 의의를 찾아야 한다. 보유하고 있는 지식의 양으로 그 사람의 능력을 판단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지금은 상호 소통과 협력 과정에서 각자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바탕으로 서로 토론하고 더불어 실현해가는 과정에서 진정한 의미의 '경쟁력'을 갖게 되는 시대다. 이미 배운 지식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는 개방적인 태도가 중요한 세상이다. 스티븐 잡스가 대졸자여서 그렇게 '대박'을 냈나. 고졸자와 대졸자의 구별은 전혀 무의미하다.
한 사람의 진정한 능력은 학력(學歷)에 있지 않다. 당연히 기업들이 원하는 진짜 인재도 좋은 스펙을 가진 고학력자가 아니다. 2012년 5월, 컨설팅 회사인 밀레니얼 브랜딩사가 미국의 225개 회사를 대상으로 조사해 보니 고용주들이 원하는 구직자의 조건으로 가장 많이 꼽은 것은 소통 능력(98%)이었다. 그 다음으로 긍정적 태도(97%)와 타인과의 협력(92%) 등이 뒤따랐다.
우리나라 최고 기업이라는 삼성이 바라는 인재상도 비슷하다. 삼성의 인재상은 창의와 열정, 소통을 갖춘 사람이다. 보통 사람들이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 말라며 손을 내저을 만한 자질들이다. 혹여 이렇게 겉으로는 창의와 열정을 부르짖지만 삼성의 '핵심'과 '실세' 자리들은 여전히 특정 학벌이나 학력이 움켜쥐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이 시대에 진짜 필요한 능력과 경쟁의 조건을 무엇으로 보고 있는지는 명확하게 알 수 있지 않는가.
우리에게 '대학에 가지 않아도 성공하는 세상'은 필요하지 않다. 이 말 속에는 대졸이든 고졸이든 학력이 성공의 조건이라는 전제가 숨겨 있다. 그렇다면 학력이 그보다 낮거나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저런 이유로 학교를 벗어나는 한 해 6만여 명 규모의 학생들은 도대체 이 사회에서 어떻게 성공해야 하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대학에 가지 않아도 성공하는 세상'이 아니라 '학교에 다니지 않아도 성공하는 세상'이 아닐까. 학교 교육을 철폐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학교에서의 배움을 무시하자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원하는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만큼만 공부하고, 사회에 나갔을 때 그 공부한 정도에 따라서가 아니라 자기 능력에 맞게 대우 받으면 살게 하자는 것이다. 교육이 사회적 불평등을 고착화하는 데 기여하는 세상은 얼마나 야만적이고 절망스러운가.
* 이러한 점 외에 '보고서'의 문제점과 오류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교의 강인규 교수가 쓴 <망가뜨린것 모른척한것 바꿔야할것>(2012, 오마이북)의 233~241쪽을 참고하기 바란다.** 한국교육개발원이 2012년 9월 11일 발표한 '2012년 교육 기본통계'에 따르면, 2012년 대학 진학률은 71.3%였다. 정점을 찍었던 2009년의 77.8%(합격자 기준 81.9%)에서 2010년 75.4%(합격자 기준 79.0%)을 거쳐 2011년 72.5%에 이어지면서 3년 연속 하락세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언론이 전국의 '우수' 고등학교를 탐방하고 쓰는 기사들을 유심히 보라. 이들 기사에서 학교 교육의 성패는 결국 대학입시 실적으로 판단되는 경우가 아주 많다. 이것은 심지어 대안학교의 의의를 조망하는 기사나 프로그램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에 대해서는 글을 달리해서 꼼꼼하게 따져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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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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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 "대학에 가지 않아도 성공하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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