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림산 봉우리에 조성된 선교사 묘역엔 모두 22기의 묘가 있다. 한 선교사의 묘비엔 비문이 다 지워져 그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가 없을 정도다.
이주빈
비문(碑文)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흐릿하게 남은 'Born may 27...'이라는 글씨가 여기 누워있는 이가 어느 해 5월 27일에 태어난 서양인임을 짐작게 해줄 뿐. 지워진 지문처럼 살아온 흔적조차 지운 채 여기 누워있는 이는 누구인가.
그 아무개씨가 잠들어 있는 곳은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 있는 양림산 봉우리. 이 작은 동산 봉우리엔 22기의 묘가 있다. 모두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하다가 돌아가신 분들의 묘로 사람들은 이곳을 '선교사 묘역'이라 부른다. 그러니 비문 지워진 채 누워있는 아무개씨도 볕 좋은 오월에 태어난 서양 선교사였을 것이다.
양림산은 광주천 지척에 있는 해발 108m에 불과한 키 낮은 동산이다. 양림산은 원래 돌림병에 걸린 어린아이들을 묻던 풍장(風葬)터였다. 말이 좋아 바람에 맡겨 장례를 치른 것이지 전염병이 돌까 아이들의 주검을 내다 버린 것이었다. 가여운 아이들이 바람과 함께 이승을 떠난 자리에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선교사들이 누워 있다. 아련한 슬픔은 윤회한다.
선교사 묘역에 가장 먼저 잠든 이는 클레멘트 오웬(한국명 오원 혹은 오기원). 오웬은 미국 남장로회 소속 선교사로 광주에서 최초로 선교활동을 한 유진 벨과 함께 1904년 선교활동을 시작했다.
오웬은 유진 벨과 함께 광주와 목포, 순천을 오가며 진료 활동을 했다. 광주에 온 지 5년째 되던 1909년, 오웬은 진료봉사를 떠난 장흥에서 급성폐렴으로 사망하고 만다. 그렇게 오웬은 양림산 선교사 묘역에 처음으로 묻힌 이가 되었다.
광주 양림동 양림교회 옆엔 '오웬 기념관'이 있다. 오웬이 생전에 할아버지인 윌리엄 오웬을 추모하는 병원이나 기념관을 지으려 했던 자리다. 오웬이 급작스럽게 죽자 가족과 선교회에는 그곳에 1911년께 '오웬 기념관'을 세웠다. 오웬기념관에서는 광주 최초로 서양음악회가 열렸으며, 예배당이 없는 신도들이 예배를 드렸다. 광주 최초의 복합문화 공간인 셈이었다.
교육과 의료에 힘썼던 '호남 선교의 아버지' 유진 벨

▲ 광주 수피아여고 교정 안에 있는 커티스메모리얼홀은 '배유지(선교사 유진 벨) 기념예배당'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유진 벨이 남긴 업적을 기리기 위함이다.
이주빈
오웬을 얘기할 때 어김없이 등장하는 이가 유진 벨이다. 1895년 한국에 처음으로 들어온 유진 벨은 1925년 9월 28일 57세를 일기로 양림산 선교사 묘역에 잠들었다.
'호남 선교의 아버지'로 불린 유진 벨은 특히 교육과 의료에 힘썼다. 광주에 수피아학교(현 수피아여중·고)와 숭일학교(현 숭일중·고)를 세웠고, 목포에 정명학교(현 정명여중·고)와 영흥학교(현 영흥중·고)를 세웠다. 그는 특히 광주에 최초의 종합병원인 제중원(현 광주기독병원)을 세워 한센 환자들 치료에 열과 성을 다했다.
유진 벨은 대선 때 박근혜 당선인을 도와 지금은 대통령직 인수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인요한 박사의 외증조부이기도 하다. 즉 인 박사의 할아버지가 유진 벨의 사위로 한국 선교를 함께 했다. 인 박사 집안이 4대째에 걸쳐 한국과 각별한 인연을 맺고 '유진 벨 제단'을 만들어 북한 결핵 퇴치에 지성으로 나서는 까닭은 이와 같은 가족사와 무관치 않다.
남구 양림동 수피아여고에는 '배유지(유진 벨의 한국 이름) 기념예배당'이 있다. 1921년에 지어진 이 건물은 원래 기증자인 커티스의 이름을 따 '커티스 메모리얼홀'이었다. 1층은 살림집, 2층은 강당으로 이뤄진 이 건물에서 미국 선교사들은 매 주일 오후 4시에 예배를 드렸다.
1955년 선교사들은 회의를 열어 호남 선교의 선구자인 유진 벨을 기리는 뜻에서 건물명을 '배유지 기념예배당'으로 다시 지었다. 이 건물은 2005년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오늘 한국교회가 세습시키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 제중원장을 지낸 미국 선교사이자 의사 윌슨의 사택(우월선 사택). 광주 양림동엔 이렇듯 100년 넘은 것들이 천지다.
이주빈

▲ 우월선 선교사 사택 옆에는 수령 약 410년의 호랑가시나무가 서 있다. 헌신과 박애를 숙명으로 살던 선교사들과 호랑가시나무꽃말인 '행복과 평화'가 묘한 조화를 이룬다.
이주빈
선교사 묘역에서 나무 계단을 타고 호남신학대로 내려오다 보면 '우월선 선교사 사택'이 있다. 미국 선교사이자 의사로 제중원장을 지낸 윌슨의 사택이다. 이 사택은 미국 남부의 전통양식으로 지어진 주택인데 광주에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서양식 주택이라고 한다.
이렇듯 양림동은 기독교 선교 역사와 인연이 많은 곳이다. 그래서 '광주의 예루살렘'이라 불리기도 한다. 또 서양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서양 교회, 서양식 학교, 서양식 병원이 있다고 해서 광주사람들은 양림동을 '서양촌'이라 부르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양림동엔 100년 넘은 것들이 그득하다. 개원한 지 백 년 넘은 병원 광주기독병원(옛 제중원), 개교한 지 백 년 넘은 학교 수피아여고(옛 수피아학교), 지은 지 백 년 넘은 오웬 기념관, 우월선 사택 등...
그들이 남긴 것은 100년 이상을 이어져 온 유형의 자산만은 아닐 것이다. 이역만리 타국 땅에 심은 한없는 헌신, 병들고 가난한 이들과 아낌없이 포옹하는 온전한 박애 그리고 그 어떤 억압에도 두려움 없이 당당한 불굴의 기백. 어쩌면 이 보이지 않는 유산을 선물하기 위해 그들은 순교(殉敎)했는지 모른다.
그래서일까. 우월선 선교사 사택 바로 옆에 서 있는 수령 약 410년의 호랑가시나무가 이방의 건축물과 썩 잘 어울린다. 겉모양새와 키 높이로만 따지면 어찌 교호의 대상이 될 수 있겠는가.
호랑가시나무꽃말은 행복과 평화. 수백 년 질곡을 헤쳐 온 두터운 호랑가시나무 잎은 늘 죽음을 곁에 두고 살면서 헌신과 박애를 실천했던 선교사들이 모두와 함께 나누고 싶었던 간절한 꿈이었으리.
호랑가시나무가 400년 넘게 세습시킨 것은 행복과 평화. 이역만리 타국 땅에서 온 선교사들이 4대를 이어 세습시킨 것은 헌신과 박애. 오늘날 한국교회가 세습시키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 이 순간 한국의 목회자들이 세습시키려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들만 사랑한다면 너희가 무슨 상을 받겠느냐? 세무원들도 그만큼은 하지 않느냐?(현대인의 성경, 마태복음 5:46)
▲ 유진 벨과 함께 광주에서 선교활동을 한 오웬은 환자들을 치료하러 동분서주하다가 급성폐렴으로 사망했다. 그가 죽은 후 그가 병원을 지으려 했던 곳에 세워진 오웬기념관.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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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선교사가 세습시킨 것, 한국교회가 세습하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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