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9일 임기를 얼마 남기지 않은 이명박 대통령이 각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부정과 비리로 구속된 측근들에게 특별사면을 단행하였다. 이 대통령의 정치적 멘토로 불리며, 파이시티 사업 인허가 알선으로 2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 받은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 이 대통령의 오랜 친구이자 후언자이면서 업체들로부터 세무조사 무마등의 청탁을 받고 수십억원을 수수하여 2년 징역형을 선고 받은 천신일 전 세중나모 여행사 회장, 이 대통령의 대선 공신으로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사건으로 징역형을 받은 박희태 전 국회의장, 금품 수수, 횡령 등으로 징역형을 받은 정상문 전 청와대 비서관, 상품권 수수로 징역형을 받은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 이 대통령의 사돈 집안으로 회사돈을 유용하여 징역형을 선고받은 효성그룹 조현준 사장 등이 사면의 혜택을 받았다.
특사에 대해 각계의 비판이 이어졌다. 법조계는 "사면권은 시대착오적 형벌이 국회에서 시정되지 않거나, 사법권이 국민 정서보다 과도하게 행사되는 등 아주 특별한 경우에만 행사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박근혜 당선인 대변인은 "국민이 부여한 대통령의 권한을 남용하고 국민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비판했으며, 민주당은 이 대통령이 "오직 자신의 사욕을 위해 특별사면을 단행"했다고 성토했다.
5년 전 정부 출범 당시 "사면권을 남용하지 않을 것이고 재임 중 발생한 권력형 비리에 대한 사면은 하지 않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한 이 대통령이 대국민 약속을 이렇게 손쉽게 뒤집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각계의 강도 높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 대통령이 측근들을 사면시키는 "몰염치"를 단행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이익, 특히, 자신과 함께하는 그룹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국가의 기본윤리 보다 그에게 훨씬 더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이익이 최고 가치이기 때문에 부끄러움(恥)을 느끼지 않는 것(沒廉恥)이다. 이러한 몰염치한 이익의 이상화(idealization)는 지난 1월 15일 타계한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감각의 제국>(dans L'Empire des Sens)을 연상케 한다.
오시마 감독은 1959년 학생운동 세대의 희망과 좌절을 그린 <사랑과 희망의 거리>로 데뷔한 후 60년대에 <일본의 밤과 안개>, <태양의 묘지>, <백주의 살인마>, <돌아온 술주정뱅이>, <교사형> 등 예리한 정치의식과 신세대 감각으로 일본사회를 비판적으로 조명하는 작품들을 만들었다. 70년대엔 <감각의 제국>, <열정의 제국> 등 인간의 성(性)과 욕망을 해부하는 작품을 연출해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했다. 성기 노출과 실제 정사 장면 등 대담한 성 묘사로 세계적인 센세이션을 일으킨 <감각의 제국>은 단순히 성의 세계를 과감하게 보여주는 포르노성 예술영화가 아니라 국가와 사회를 구성하는 인간의 내면에서 휘몰아치는 욕망, 죽음 충동, 폭력을 치열하게 재현함으로써 일본의 군국주의 심리와 폭력성을 은유적으로 파헤친 걸작이다.
<감각의 제국>은 일본 군국주의가 한창이던 1936년 실제 있었던 사건을 영화화한 것이다. 스토리를 보면, 요정 종업원인 아베 사다(에이코 마츠다)는 요정 주인 이시다 기치(타츠야 후지)가 아침마다 아내와 성관계를 갖는 것을 엿보게 되고 그에게 반한다. 기치도 사다의 아름다움에 끌리게 되어, 두 사람은 기치의 아내 몰래 성관계를 갖기 시작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다가 기치를 독점하길 원하자 둘은 그의 아내가 있는 집을 떠나 어느 요정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요정의 방에 머물며 둘은 끝없는 성과 사랑의 감각에 몰입한다. 영화는 팔루스(phallus, 남근)에 대한 사다의 욕망과 집착이 끝이 없음을 보여준다. 기치가 자고 있는 동안 그녀는 그의 팔루스가 "너무 좋아서" 밤새 붙잡고 있는다. 그의 팔루스에 대한 그녀의 욕망은 "늘 흠뻑 젖어 있어" 잠에서 깨어난 그가 소변보러 화장실 가는 것도 기다리지 못한다. 욕망을 채우는 것이 최고의 가치이니만큼 그녀는 남의 눈길도 개의치 않는다. 길거리에서도, 이웃 사람이 보는 앞에서도 그녀는 그에게 사랑을 요구한다.

기치에 대한 사다의 독점욕은 극단적이다. 그가 아내를 만나러가게 되자 그가 아내와 성관계를 가지면 그의 팔루스를 잘라버리겠다고 가위를 들고 위협한다. 그가 아내와 집에 머무는 동안 아내와 관계를 갖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사다는 몰래 장독과 유리를 깨드리며 자신의 존재를 그에게 환기 시킨다. 그가 돌아오자마자 칼을 들고 그가 아내와 자지 않았는지를 확인한다.

사다는 기치와 성관계를 가지며 감각의 향유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한다. 음악을 연주하는 게이샤 앞에서 그녀는 먹을 것을 자신의 성기에 묻힌 후 기치에게 먹이고, 그가 늙은 게이샤와 성관계를 갖게 하고 이를 바라보며 흥분한다. 감각의 향유를 더욱 새롭게 하기위해 마침내 이 둘은 가학과 피학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를 때리며 그녀는 더욱 흥분을 느끼게 된다.

예민한 성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식사를 거부한 채 술만 마시며 관계에 몰두하던 사다와 기치는 마침내 성감대가 있는 목을 조르기 시작한다. 사다가 목을 조르자 기치는 처음에 무서워하지만 곧 그녀에게 "더 세게 더 세게" 목을 졸라 달라고 외친다. 감각의 추구는 더 센 자극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기치가 목에 고통을 느껴 본능적으로 목조르는 것을 물리치자 그녀는 이제 그의 양손을 묶고 끈으로 목을 조른다. 사다는 그의 목을 단단하게 조르며 "황홀해. 최고야. 지금 죽여줄께"라고 외친다.
며칠을 음식도 먹지 않고 섹스만 하여 기진맥진해진 기치는 깊은 잠 속으로 떨어진다. 그녀의 자극으로 잠시 눈을 뜬 그가 "잠들면 또 목을 조를 거지? 이왕 조를 거면… 도중에 멈추지마. 그 뒤가 더 힘드니까"라고 말하고 다시 잠에 떨어진다. 사다는 그의 목을 조른다. 기치는 질식하여 죽는다. 이제 그녀는 그의 팔루스를 자른다. 마침내 그의 팔루스를 손에 쥔 그녀는 만족스런 미소를 짓는다. 죽은 기치 몸에 "사다와 기치, 둘이서 영원히"라는 글자를 쓰고 그녀가 그와 나란히 누워있는 쇼트로 영화는 끝난다. 마침내 둘만의 감각의 제국이 죽음으로 막을 내린다.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성에 탐닉한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인데, 오시마 감독은 기치가 거리를 걸어가는 동안 행군하는 일본군대가 반대방향으로 지나가는 짧은 장면을 삽입함으로써 영화가 단순히 성에 대한 것이 아님을 명확히 한다. 언뜻 보기에 기치는 걸어가면서 군대를 외면하고 그가 걸어가는 방향이 군대의 행진방향과 반대이기 때문에 영화가 군국주의를 비판하고 개인의 사랑을 더 가치있는 것으로 그리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기치와 사다의 극단적인 감각의 추구는 일본군국주의의 극단적인 국가이익 추구와 닮았다. 추구의 대상이 하나는 감각의 향유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이익이지만 둘 다 추구 대상의 가치를 이상화, 절대화하며 모든 다른 것들을 부차시하는 메카니즘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꼭 같다.

사다는 자신의 결핍과 욕망을 기치의 팔루스가 완전히 채워 줄 수 있다는 팔루스 환상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의 팔루스를 잘라 소유하려 했다. 하지만 팔루스 환상 위에 지어진 '감각의 제국'은 기치의 죽음과 그녀가 경찰에 체포됨으로써 무너진다. 위대한 대동아제국 건설이라는 국가주의환상을 즐기며 주변 국가의 수많은 희생을 무시했던 일본의 제국주의도 망했다.
MB가 임기 며칠 앞두고 비리와 부정을 저지른 측근들을 사면시키는 것은 측근의 이익을 위해 국가의 기본 윤리를 저버리는 '이익의 제국주의' 조치이다. 사익추구만을 쫓던 기업 회장 출신이기에 그의 몸에 밴 행동방식인지 모르지만, 대통령으로서는 참으로 몰염치한 일이다. 그에겐 국민의 소리에 귀(耳)를 기울이는 마음(心)이 없어 부끄러움(恥)이 없나보다. 국민의 분노와 새 정권의 거리두기로 그의 '이익의 제국'이 무너지면 그가 부끄러움을 알게될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덧붙이는 글 |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은 1,000여명의 교수 회원들로 구성된 교수단체이다. 87년 창립된 이후 현재까지 사회민주화와 교육개혁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을 해왔다. <영화를 읽다>는 민교협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연재하며, 매주 1회 화요일에 게재한다. 이 칼럼은 민교협의 홈페이지에도 함께 올라간다.
- 정경훈 기자는 아주대학교 교수입니다.
| 2013.02.05 11:55 | ⓒ 2013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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