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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레터> 14년 만에 두 번째 관람…감동은 여전

[리뷰] 이와이 슌지 감독의 대표작 <러브레터> 멜로 영화에 대한 추억 돋는다

13.02.15 11:53최종업데이트13.02.15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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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한 여선배에게 물었던 적이 있다. "<러브 레터>는 왜 씹는 사람이 없죠?" 그 선배는 의아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며 한동안 말이 없었다. 1999년 국내 개봉 당시 치기 어린 청춘이었던 필자를 심통나게 할 정도로 관객들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았던 그 영화, <러브 레터>가 우리 곁에 다시 찾아왔다. 이제 더 이상 '왜 <러브 레터>는 씹히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는다. 14년 전보다는 성숙해졌고, 사랑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1인 2역 연기, 각본, 연출...지금 봐도 만족스럽다

처음 볼 때는 몰랐었다. 영화의 첫 장면이 그렇게 섬세한 장면인줄 말이다. 주인공 와타나베 히로코(나카야마 미호 분)가 눈쌓인 언덕에 누워있는 모습으로 시작되는 컷에 이어 서둘러 언덕을 홀로 내려가는 히로코의 걸음걸이를 한 번의 컷도 없이 롱테이크로 담은 것부터가 이 영화의 섬세한 매력을 알 수 있게 한다. 진정한 여심을 오롯이 2시간 조금 못되는 상영시간 내에 관객에게 전하고자 한 제작진의 정성스러운 태도가 엿보이는 장면이다.

온통 눈으로 뒤덮인듯한 일본 고베시 어느 마을. 히로코는 등산중 조난 사고로 세상을 떠난 연인 후지이 이츠키의 추모식 때문에 이 마을에 왔다. 추모식을 마치고 이츠키 어머니의 집에 온 히로코는 이츠키의 중학교 졸업 앨범에서 불현듯 이츠키의 주소를 알아보고 팔뚝에 메모한다. 여기서부터 <러브 레터>의 색다른 재미가 시작되는데, 자칫 멜로물에 지루함을 느낄 사람들도 계속해서 영화를 보고 싶게끔 하는 일종의 장치가 가동되는 것이다. 히로코가 죽은 이츠키의 집주소로 편지를 보낸다는 것이 바로 그런 흥미를 자아내는 핵심 요소가 된다.

이 영화의 백미 중에 하나가 나카야마 미호의 1인 2역 연기와 그녀가 맡은 두 캐릭터의 존재감이다. 특히 '여자 후지이 이츠키'는 자연스러움 그 자체인 인물이다. 도서관 사서인 그녀는 감기 때문에 집 방안에 누워있다 일어나 슬리퍼 한 짝을 발로 차버리고, 어른들과 함께 하는 식탁에서 저도 모르게 재채기를 해버리며 디지털 타자기로 편지를 쓴다. 그 모든 이츠키의 행동은 상당히 자연스러운데 그것은 이런 캐릭터를 잘 표현해낸 각본과 연출 그리고 잘 연기해낸 나카야마 미호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나카야마 미호가 연기한 또 다른 주인공 히로코 역시 상당히 균형 있게 창조되었다. 너무 얌전하지도 너무 슬프지도 않으면서 때로는 귀엽고, 때로는 재치도 있는 사람. 히로코는 외모와 별개로 그런 사람이다. 지난 사랑을 쉽게 잊지 못하고 지금의 사랑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마음 따뜻하고 현명한, 인간적인 캐릭터 히로코를 나카야마 미호는 훌륭히 보여주었다. 나카야마 미호가 이런 연기를 할 수 있도록 잠재력을 충분히 끌어낸건 아마도 이와이 슌지 감독의 내공일 것이다. (이와이 슌지 감독은 이 영화의 각본도 담당했다)

슬픔을 강요하지 않는 미덕 <러브레터>가 원조

이 영화는 상영 내내 슬픈 느낌이 서려있는듯 하다. 그러나 슬픔을 강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적절한 유머 코드가 녹여져 있는 게 이 영화의 매력이다. 그러면서도 결코 하찮지 않은 정도의 슬픔이 이 영화의 주된 정서 중 하나다.

그건 아마도 사람이 가지는 당연한 감정을 그대로 다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고 난 뒤에 간직하게 되는 슬픔. <러브 레터>는 그런 사람의 평범한 감정을 한편의 영화로 잘 풀어낸 작품이기도 하다. 최근 눈물을 강요하는 영화들에 내심 지쳐있었다면 이 영화로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엉엉 울게 되는 게 아니라 부지불식간에 눈시울이 적셔진다. 히로코와 이츠키가 편지를 주고받다가 히로코의 현재 연인인 아키바(토요카와 에츠시 분)가 개입해 이츠키는 히로코에게 더 이상 편지를 보내지 말라고 하게 된다. 영화는 두 여인이 편지를 주고받는 상황을 흥미롭게 그리다가 어느 순간 관객이 잠시 잊고 있던 감정을 이끌어낸다.

"감기는 다 나았을까, 내가 보낸 감기약은 먹었을까" 하며 이츠키를 걱정하는 히로코의 모습은 자신과 편지를 주고 받은 이츠키가 아닌 죽은 이츠키를 그리는 모습으로 읽혀진다. 히로코의 연인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이 그토록 깊다는 것을 너무나도 가슴이 와 닿게 보여주어 보는 사람은 저도 모르게 눈시울을 적시는 것이다.

이 영화의 각본은 꽤 잘 쓰였다. '그리움' '옛 사랑을 아름답게 봉인하고 새로운 사랑을 지켜간다'는 표현을 인위적이지 않게 은은하게 영화화 했다.

게다가 이 영화는 마치 잊고 있었던 사랑을 되살리는 느낌을 가는 서사구조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분 좋은 반전과 여운을 가질 수 있게 해준다. 멜로 영화의 반전으로는 역대 최고의 완성도가 아닐까 싶다.

<러브 레터>가 14년 전과 달리(처음 개봉한 당시는 초겨울이었다) 올해는 밸런타인데이에 재개봉했다. 영화는 보통의 연인뿐 아니라 서로 옛 사랑의 상처를 지닌 채 그걸 감추고 사귀는 중인 연인들에게도 좋은 멜로물이다. 극중 히로코의 현재 연인인 아키바의 존재가 이 영화가 현재 진행 중인 사랑을 위해 과거의 사랑을 아름답게 보내주는 의미로 해석되게 해주기 때문에 그러하다.

또한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짝사랑 하고 있는 커플 관객에게도 이 영화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극중에서 여자 이츠키를 짝사랑하는 집배원이 꽤 오래도록 기억될 만큼 인상적으로 나오면서 웃음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 사랑이었다' <건축학개론>의 이 홍보 문구가 어쩌면 이 영화에도 어울릴 법하다. '첫사랑 멜로의 레전드'로 기억될 <러브 레터>. 특히 이 영화는 여성 캐릭터의 감정선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여성 관객들이 더욱 감정이입할만한 작품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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