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13.03.02 20:16수정 2013.03.02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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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동네를 구경하는 것은 늘 새롭고 재미있다. 차를 타고 지나칠 때는 별다를 것 없어 보이던 동네들도 안으로 들어가 보면 색다른 맛이 난다. 그래서 오늘도 이웃 마을에 들어섰다. 지은 지 오래 된 집들도 있고 또 말끔한 모양새로 서있는 새 집들도 있다. 새 것과 헌 것이 같이 있지만 동떨어져 보이지 않는 것은 동네 안을 감싸고 있는 구불구불한 골목길 덕분이리라.
큰 길을 벗어나서 골목길로 접어드니 개들이 먼저 알고 아는 체를 한다. 목줄에 메여있는 한정된 세계를 벗어나보고 싶은 걸까. 거칠게 튀어 오르며 짖어대지만 괜한 허세를 한 번 부려보는 것일 뿐 개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낯선 동네의 빨래터
어디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보니 길 아래쪽에 빨래터가 있다. 그 위에 있는 샘에서 촐촐 소리를 내며 물이 흘러내려왔다. 시멘트로 네모나게 만든 빨래판도 양쪽으로 나란히 서있었지만 이제는 찾는 사람이 없는지 고여 있는 물에는 초록색 이끼가 둥둥 떠 있었다.

▲ 강화읍을 출발해서 북산을 넘어서면 이렇게 예쁜 빨래터가 있습니다.
송학골 빨래터입니다.
이승숙
먼 기억 속으로 달려간다. 우물가에는 물을 긷는 여인네들이 있고 빨래터에서는 방망이 소리가 들린다. 빨래를 하는 여인들은 부지런하기가 이를 데 없어 몇 가지 일을 한꺼번에 다 한다. 방망이질을 하면서 입도 놀렸고 또 귀를 세워 넘쳐흐르는 말을 주워 담았다. 동네 소문은 우물가와 빨래터에서 재생산이 되었고 시름과 근심은 비누 거품과 함께 씻겨 나갔다.
어린 우리들에게 빨래는 일이기보다는 놀이에 가까웠다. 그래서 빨랫감이 없으면 걸레 하나를 들고서도 개울가로 달려갔다. 대야를 허리춤에 얹고 부리나케 달려 나가면 저 쪽 모퉁이에 또래 계집아이 하나가 기다리고 있다. 그 애 옆구리에도 대야가 얹혀 있다.
개울가 빨랫돌에는 이미 임자가 다 찼다. 좋은 자리를 놓친 아쉬움도 잠시 아이는 곧 넓적한 돌을 하나 가져와서 물가에 놓는다. 그리고 빨랫감에 물을 적셔 비누칠을 하기 시작했다.
추억 속의 방망이 소리돈이 귀했던 시절이라서 그랬던 걸까. 장에서 사온 비누는 아껴 쓰느라 늘 비누 그릇 속에 담아두기만 했다. 대신 집에서 만든 비누를 썼는데 우리는 그것을 '사분'이라고 했다. 둥글 넙적하게 뭉쳐서 만든 사분을 빨래에 칠하면 거품도 잘 나지 않고 냄새도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때는 그게 전부나 마찬가지였다.
사분은 양잿물과 쌀겨를 섞어서 만들었다. 생긴 모양새나 색깔 등은 집집마다 다 달랐지만 쓰임새는 똑같았다. 양잿물을 넉넉히 넣은 사분은 때가 잘 빠졌고 또 기름칠을 한 신사의 머리처럼 매끄러웠지만 그렇다고 마냥 많이 넣을 수만은 없었다. 양잿물은 독해서 많이 넣으면 손바닥이 빨갛게 되며 따가웠다. 양잿물을 아낀다고 또 좀 적게 넣으면 거칠거칠한 게 때도 잘 안 빠졌고 물에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리곤 했다.

▲ 강화여고 뒤에 있는 은수샘물입니다.
문희일
사분이 다 떨어지면 어머니는 양잿물을 꺼내놓고 등겨를 채에 내렸다. 등겨는 방앗간에서 벼를 정미할 때 나오는 벼의 껍질인데, 거칠고 껄끄러운 겉껍질인 왕겨를 벗겨내면 속에 고운 등겨가 있었다. 왕겨도 등겨도 하나 버릴 게 없었다. 왕겨를 외양간에 깔아주면 소똥과 섞여서 거름이 되었고 아궁이에 한 소쿠리 밀어 넣어주면 불기운이 뭉근하게 오래 갔다. 쌀눈과 속껍질이 섞인 등겨는 마치 콩고물처럼 노르스름하고 또 보드라웠다. 소죽 위에 한 바가지 뿌려서 섞어주면 소는 긴 혀를 내밀고 등겨를 훑어먹었다.
별이 내 가슴에 내려왔다그물눈이 작은 체로 등겨를 치면 아주 고운 노란 가루들이 체 밑으로 솔솔 떨어져 내렸다. 그 고운 가루에 물에 녹인 양잿물을 섞어서 비누를 만들었다. 독한 양잿물을 맨 손으로 치대며 만졌으니 오죽 따갑고 쓰라렸을까. 요즘처럼 고무장갑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그 시절에 그런 게 있을 턱이 만무하니 따갑고 쓰라려도 참을 수밖에 어쩔 도리가 없었으리라. 궁여지책으로 헌 양말을 손에 둘둘 감고 반죽을 했다는데, 그 정경을 그려보니 안타깝기만 하다.
서쪽 하늘에 눈썹달이 떠있던 어느 해 가을의 저녁이었다. 빨랫감을 담은 대야를 머리에 인 어머니는 내 손을 이끌고 개울로 갔다. 어머니의 등에는 두어 살 먹은 동생이 업혀 있었다. 흐르는 개울물에 달빛과 별빛이 부서져서 반짝였고 동생의 옷에도 별이 반짝였다.
내 기억 속에 그 밤은 무척 아름답게 남아 있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서 그 시절을 돌아보니 가슴 한구석이 아릿하다. 어머니는 여덟이나 되는 대식구의 먹성과 입성을 책임지셔야 했다. 안살림을 거들어 줄 손이라도 있었으면 한결 쉬웠을 텐데 어머니 혼자 집안 살림을 다 쳐내셔야 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게다가 농사일까지 거들어야 했으니 어머니는 잠시도 쉴 틈이 없었을 것 같다. 그래서 저녁 설거지를 마친 뒤에 빨래를 하러 가신 것이리라.
빨래터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기억 저 너머의 방망이 소리며 빨래 주무르는 모습들이 아련하게 그려졌다. 빨래대야를 옆구리에 끼고 대문 앞에서 나를 부르던 동무도 생각이 나고 어머니의 등에 업혀있던 동생도 떠올랐다. 어느새 오십 줄에 들어선 내 남동생의 그때 그 반짝이 옷이 별빛을 담아 빛나고 있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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