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나 했는데...공익제보자 눈물, 막을 수 없나

[주장] 국정원 직원 파면... 공익제보자 보호제도 보완 절실

등록 2013.02.22 13:58수정 2013.02.22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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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12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아래 민변)과 참여연대 주최로 서울 통인동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국정원 직원의 선거개입 의혹사건을 통해 본 국정원·경찰 개혁방안' 좌담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박주민 민변 변호사, 이호중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광철 민변 변호사

12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아래 민변)과 참여연대 주최로 서울 통인동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국정원 직원의 선거개입 의혹사건을 통해 본 국정원·경찰 개혁방안' 좌담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박주민 민변 변호사, 이호중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광철 민변 변호사 ⓒ 이주영


국정원은 20일 '내부 정보를 전 국정원 요원 B씨에게 제보한 직원 A씨에 대해 징계위원회를 열고 직무상 비밀 누설, 정치 관여 금지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하고 파면했다'고 밝혔다. 국정원 자체 감찰 결과 A씨는 국정원을 퇴직한 B씨에게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을 제보했고, B씨가 이 내용을 민주당에 알린 것으로 드러났다.

시민사회와 여론은 즉각 들끓었다. 본질인 국가기관의 조직적 선거 개입 의혹을 가리기 위해 제보자를 파면했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지난해 한국투명성기구로부터 투명사회상을 수상한 이해관 KT새노조 위원장 역시 비슷한 일을 겪었다. 이 위원장은 국내전화망을 이용한 '제주 7대 경관' 전화투표에 해외요금을 부과했던 KT를 내부고발하고 조직의 부도덕성을 외부에 알렸다. 하지만 곧 KT로부터 보복성 징계를 받아 파면당했다.

학계에서는 내부고발을 "개인의 양심을 능동적으로 실현하여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수호하기 위한 행위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외부인이 알 수 없는 조직 내부의 부조리함을 통제하여 부패를 예방하고 단체나 조직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실현하는 기능을 한다"면서, "국민의 알권리를 비롯한 권익을 보호하며, 정치권력이나 상관의 부당한 압력이나 간섭에 대한 내부적 권력통제수단으로 작용하여 공익실현에 크게 기여하는 행위라 평가"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2001년 '부패방지법'을 시작으로 지금의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과 '공익신고자 보호법'에 이르기까지 법령을 통해 공익제보자들을 보호하고 있다. 하지만 법령이 시행된 이후에도 여러 공익제보자들은 심각한 보복행위를 당하고, 대부분은 결국 조직을 떠나야만 했다. 또한 같은 분야에서는 다시 취업을 할 수 없게 되는 등 엄청난 비용을 치르며 지금껏 살아가고 있다.

허점 투성이 공익제보자 보호제도

공익과 정의를 위한 행동에 대해 보상을 해주지는 못할망정 지켜주지도 못하는 현실은 법적·제도적 개선이 필요함을 말해주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첫째, 제보방법이 너무나 협소하다. 현행법에 의하면 시민단체나 언론기관에 제보한 행위는 보호되지 못한다. 이는 시민사회의 역할을 간과하는 것이다. 특히 행정기관의 유착이나 수사기관의 정치적 중립성을 의심할 경우, 결국 언론기관이나 시민단체에 제보를 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공익제보가 시민단체나 언론을 통해 이루어졌다.


또한 기명의 문서로만 신고를 하여야 한다는 규정도 문제가 있다. 소속되어 있는 조직으로부터 보복을 당할 가능성이 농후한 경우에는 일단 익명으로 신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 차후에 신원이 밝혀지면 법령에 의해 보호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본의 경우는 기명의 제보만이 보호된다고 명시하고 있지 않아 제보자가 특정되는 순간부터 공익통보자보호법에 의해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둘째, 보호되는 신고대상이 국한되어 있다. 현행법은 국민의 건강과 안전, 환경, 소비자의 이익 및 공정한 경쟁에 관한 법률을 위반하는 범죄행위와 강행법규위반으로 인한 행정처분의 대상이 되는 행위를 제보한 신고만을 보호하고 있다. 신고자는 자신의 제보가 형사처벌이나 행정적 규제 대상인지를 손수 일일이 찾아봐야만 한다. 따라서 이를 기준으로 하기보다는 공익적인 가치가 있는 제보에 대해 보호하고, 더불어 신고사항에 대한 고의적 증거은폐행위에 대한 신고 역시 보호대상으로 하도록 확장할 필요가 있다.


영국의 경우에는 공익정보공개법(The Public Interest Disclosure Act 1998)에서 "내부공익제보행위를 소속 조직의 범죄행위, 법률이나 계약상의 의무위반행위, 위증이나 증거제출거부 등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행위, 건강과 안전에 대한 침해행위, 환경훼손행위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거나 이러한 행위에 대한 고의적 증거은폐행위를 알리는 경우"로 보다 폭넓게 규정하고 있다.

셋째, 부패행위에 대한 조사권이 없다. 국민권익위원회는 고충민원에 대해서는 조사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부패행위에 대해서는 조사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 단지 타기관으로 이첩하도록만 되어 있는데, 이는 기초적인 사실관계에 대한 조사권을 고충민권처리와 관련하여서는 인정하고 부패행위에 대해서는 부정하는 것이다.

부당한 제도나 행정작용으로 불이익을 입은 국민을 구제하기 위한 고충민원처리와 부정행위로 인하여 피해를 당한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부패행위신고는 성격적으로도 유사한데, 유독 부패행위에 대하여는 조사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국민의 권익보호나 권리구제 측면에서도 모순적인 태도다. 다행히 진보정의당 서기호 의원이 이달 10일 국민권익위원회가 공직자 부패사건을 직접 조사할 수 있도록 한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고 하니 결과를 지켜볼 일이다.

공익제보자를 '고자질쟁이'쯤으로 보는 건가

넷째, 조사 불응 시 제재수단이 미흡하다. 국민권익위원회는 공익신고자가 당한 불이익 조치에 대해서 조사를 할 수 있지만 자료제출, 출석, 진술서의 제출을 거부하더라도 과태료를 부과할 수밖에는 없다. 따라서 과태료만 부담하고 조사에 불응할 경우, 소속기관 등의 신분상 불이익조치에 대해서 조사할 수가 없다. 이는 매우 경미한 제재다. 일단 보복성 불이익처분을 하고 과태료를 내면 그만이다.

설령 형사고발로 이어진다고 해도 이미 제보자의 삶은 철저히 짓밟혀버린 후다. 한 지방자치단체 소속 공무원은 군수의 토지 인허가 관련 비리를 공익제보했다 파면당했다. 그는 다시 복권을 받아 직장에 복귀했지만, 한직을 떠돌며 동료들의 따가운 눈초리를 받는다고 했다. 한 언론 인터뷰에서는 스스로를 "은둔자로 살고 있다"고 표현할 정도였다.

물론 이러한 제도적 보완 외에 사회적 인식의 전환도 필요하다. 아직까지 좁고 폐쇄적인 우리 사회는 공익제보자들을 '고자질쟁이'쯤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공익제보자들을 조직의 배신자가 아닌 조직의 미래를 위해서, 그리고 정의가 바로 서는 사회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존재라는 인식을 사회적인 차원에서 가질 수 있도록 지속적인 교육과 캠페인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사례연구를 보면 거의 모든 공익제보자들이 조직의 문제를 외부로 가지고 나가기 전에 내부에서 이를 해결하고자 노력했다고 한다. 그때마다 돌아오는 것은 "일이나 제대로 하라"는 핀잔과 무시였다. 사실 그 시점부터 조직의 보복은 시작된다. 기나긴 고민을 하며 그들이 느꼈을 무서움과 불안함을 무엇으로 표현하랴. 끝끝내 신념을 버릴 수 없어 공익제보자의 길을 선택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냉담한 현실이다. 그들의 죄라고는 국민의 알권리 충족과 조직의 부조리를 바로잡으려 했던 것뿐인데 말이다.

부디 제도 보완과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져, 다시는 공익제보자들이 눈물 흘리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국정원 #내부고발자 파면 #공익제보자 #국정원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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