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중공업 사태 해결까지 숨 가빴던 시간

고 최강서씨 자살 이후 65일간 이어져온 노사의 줄다리기

등록 2013.02.23 14:34수정 2013.02.23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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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중공업 해고자들은 지난해 합의 이후 복직 조치로 지난해 11월 9일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으로 출근했다. 원직 복직 여부를 놓고 사측과 갈등을 빚던 해고자들은 로비 농성에 들어갔고 사측은 해고자 전원을 원직에 복직시키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내 사측은 작업 물량이 없다는 이유로 복직자들에 대한 휴업조치를 단행했다. ⓒ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사태가 노동자 최강서씨의 죽음으로 갈등으로 치닫기 전부터 회사와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 사이에는 지속적인 마찰이 빚어졌다. 한진중공업은 지난해 11월 9일 정리해고로 갈등을 겪던 노동자 92명에 대한 복직을 단행했다.

2010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맺은 권고안을 받아들이면서 진행된 조치였다. 하지만 복직자들이 회사로 돌아가는 길은 험난했다.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는 극심한 조선 경기 불황 등으로 조업 물량이 거의 남지 않은 상태였고 대부분의 노동자가 순환휴직 상태에 놓여있었다.

복직자들에게 휴직 조치가 내려졌다. 1년 8개월여 만에 직장으로 복귀한 복직자들은 부푼 꿈과는 달리 바로 내려진 휴직에 큰 실망을 하고 돌아서야 했다. 동시에 복수노조의 출범으로 새노조인 기업노조로 옮겨간 노동자들이 급증하면서 금속노조 한진중공업지회는 안팎으로 위기 상황에 놓인다.

사측과 한진중공업지회 사이에는 노-노 갈등의 이면에 사측이 있다는 설전이 자주 오고갔고 노사 관계는 냉랭해져만 갔다. 그 와중에 박근혜 당선인의 대선 승리로 노동계의 향후 전망이 어두워질 것이라는 불안감이 노조에 드리워졌다. 그리고 대선 결과가 나온 지 이틀뒤인 21일 오전 최강서 한진중공업지회 조직차장이 부산 영도조선소 안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스스로 목을 맨 채 발견됐다.

최씨는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다시 공장으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다. 최씨는 사망 전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와 함께 전날 자신의 휴대전화에 메모 형식의 유서를 남겼다. 유서에는 사측이 노동조합을 상대로 제기한 158억 원 상당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의 부당함, 노조탄압을 향한 분노, 대선 결과에 대한 실망 등이 담겼다.  

최씨의 죽음으로 극단으로 치달은 한진중공업 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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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부산본부는 지난 2월 16일 오후 부산역 광장에서 "158억 손배소송 철회, 강제휴업 중단, 노조탄압 분쇄, 한진중공업 최강서 열사 정신계승 결의대회"를 열고 3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앞까지 거리행진했다. 고인의 영정이 한진중공업 본관 건물 앞에 세워져 있다. ⓒ 윤성효


최씨의 자살에 대한 책임이 상당 부분 사측에 있다고 판단한 유족과 동료 조합원들은 그날부터 영도구 구민장례식장에 빈소를 마련하고 투쟁에 들어갔다. 하지만 회사는 회사와는 별다른 관계가 없는 죽음으로 보고 유족과 협상만 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결국 책임 공방을 놓고 양측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시간이 흘러 최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41일째가 되던 지난달 30일 유족과 한진중공업지회 등은 빈소를 한진중공업 앞으로 이동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운구가 시작되자 이를 막는 경찰과 충돌이 발생했고 밀고 밀리는 공방 속에 운구행렬이 공장 안으로 진입하게 됐다.

사측은 "노조가 계획적으로 공장 안으로 들어왔다"고 항의했고 노조는 "사측이 경찰을 동원해 운구행렬을 막으며 생긴 우발적 사태"라고 반박했다. 그리고 다시 "빈소가 공장 밖으로 나가야 대화가 가능하다"는 사측에 노조가 "모든 책임은 사측에 있다"고 반발하는 상황이 반복됐다.

좀처럼 입장을 좁히지 못하던 양측은 설 이후부터 물밑 협상을 벌이며 본격적인 대화의 물꼬를 텄다. 이 과정에는 새 정부 출범 전에 이번 사태를 해결하고픈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바람도 일정 부분 작용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우여곡절 속에 협상을 시작했지만 양측은 몇몇 쟁점 사항에서 여전히 뚜렷한 의견 차를 나타냈다. 

그 중 막판까지 가장 쟁점이 된 사항은 손배소와 유족 보상에 관한 문제였다. 특히 손배소 철회를 요구해 온 노조의 요구에 사측은 일정 부분 협의가 가능하다는 전향적인 입장을 나타낸 바 있다. 하지만 그 정도와 방법을 놓고 설전이 이어졌다. 유족과의 보상 문제도 매끄럽게 진행되지 못했다.

협상 타결해 놓고도 합의문 작성에 막판까지 이견

23일 오후 1시 40분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에서 노사 협상 대표가 그동안의 한진중공업 사태를 마무리 짓는 합의문 조인식을 마치고 악수를 나누고 있다. 오른쪽이 이재용 한진중공업 사장, 왼쪽이 박상철 금속노조 위원장. ⓒ 정민규


타결 임박 소식이 밖으로 흘러나오기 시작했던 20일 전후해서도 여전히 내부에서는 협상 타결에 부정적인 반응이 심심치 않게 감지됐다. 21일에는 서울에 올라가 있던 노조 집행부 간부들까지 영도조선소로 내려와 막판 협상을 위한 의견 조율을 하는 등 사태 해결을 향한 논의도 이어졌다. 한편으로 노조는 22일을 협상 마지노선으로 긋고 대통령 취임식에 앞선 상경 투쟁을 예고하기도 했다. 

마침내 22일 오후 5시 전격 합의에 도달한 노사는 협상 타결 소식을 대외에 알렸다. 그럼에도 합의서 서명은 순탄치 못했다. 손해배상청구소송에 대한 합의 범위를 놓고 합의서 작성 과정에서 다시 협상이 중단되는 진통을 겪은 것. 때문에 당초 22일 오후 7시로 예정됐던 합의서 조인식도 23일까지 미루어졌다.

마침내 23일 오후 합의서 조인으로 65일간 지속되던 한진중공업 사태는 마무리 되었다. 조인식장에 들어선 양측 협상 대표들은 그동안의 심경을 밝히고 회사정상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다짐했다.

이재용 한진중공업 사장은 "빠른 정상화가 1차적 관건이고, 두번째는 저희 회사로 인해 불편을 당하는 부산 시민들과 한진중공업에 관심을 갖는 모든 분들께 정상화의 모습 드리고자 대승적 차원에서 합의했다"며 "노사 협력해서 정상화되는 모습 보여드리겠다"고 말했다.

박상철 금속노조 위원장도 "이번 일이 그동안의 여러가지 오해나 불신을 푸는 계기가 되서 이번 사태와 같은 일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노사가 함께 얘기했다"고 말했다.
#한진중공업 #최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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