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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내용은 별론데, 이상하게 먹히네

[리뷰] <웜 바디스> 속에서 <늑대소년>을 보다

13.03.21 17:32최종업데이트13.03.22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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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웜 바디스>의 한 장면 ⓒ CJ 엔터테인먼트


아마도 부두교가 시초인 것으로 추측되는 좀비. 영화계에선 벨라 루고시 감독의 <화이트 좀비>를 시작으로 조지 로메로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좀비물의 개념을 세웠습니다. 그 후 샘 레이미의 <이블 데드>, 대니 보일의 <28일후>, 잭 스나이더의 <새벽의 저주>등 이제는 너무나 유명해진 감독들이 좀비를 소재로 영화를 만들며 '좀비영화'라는 장르에 마니아층을 형성했습니다.

그런 공포영화의 하위 분류인 좀비영화가 코미디로 장르 비틀기를 시작합니다. <반지의 제왕>으로 유명한 피터 잭슨의 <고무인간의 최후>, <데드 어라이브>나 루벤 플레셔 감독의 <좀비 랜드>같은 경우입니다. 물론 이 B급 영화는 A급 상업영화 만큼 흥행에 성공하진 못했습니다.

그런데 인간과 좀비의 사랑이라는 더 엽기적인 B급 좀비코미디인 <웜 바디스>가 북미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고 한국에서 역시 좋은 성적으로 개봉 첫 주를 넘겼습니다. 기존의 B급 좀비영화와 비교해보면 어마어마한 관객몰이를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 걸까요. 단순히 좀비+코미디에 거기에 로맨스를 넣어서? 그렇게만 본다면 <좀비 랜드> 역시 로맨스가 있었다는 점을 간과한 것입니다.

사실 굉장히 밋밋한 영화 <웜 바디스>

<웜 바디스>는 우리가 생각하는 좀비영화가 아닙니다. 더 명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조지 로메로 감독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서 정의된 좀비가 사람을 습격하는 공포 상황에서 인간들 역시 인간성을 상실하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이 아닙니다.

영화는 왜 인류가 좀비가 되었는지, 좀비 때문에 사랑하는 이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아픔과 트라우마(특히나 쥴리는 애인이 눈앞에서 죽었음에도 너무나 담담하다)를 생략해버렸습니다. 오히려 두 주인공이 공유하는 세계관은 유토피아에 가까우며 인간성 회복이라는 희망찬 주제까지 곁들인 영화입니다.

특히나 <웜 바디스>의 주인공인 좀비 'R'(니콜라스 홀트)과 인간 줄리(테레사 팔머)의 이름에서 추측할 수 있듯, 영화는 인간과 좀비의 사랑이라는 B급 정서를 <로미오와 줄리엣> 플롯으로 잘 포장해놓습니다.

좀비와 인간이라는 만날 수 없는 신분 혹은 종족의 벽과, 서로 죽여야 살 수 있는 앙숙관계. 그런 사회에서 남녀의 금지된 사랑. 이보다 뻔 하면서도 먹히는 사랑 방정식이 또 있을까요? 여기에 좀비가 인간의 행위를 따라하는 반전으로 웃음을 만들고, 밝은 화면 톤과 잔잔한 음악은 두 사람의 사랑을 아름답게 그립니다.

그런데, 사실 <웜 바디스>는 굉장히 밋밋합니다. 좀비 물로서 장애물인 보니나 로맨스 물로서 장애물인 줄리의 아버지 그라지오(존 말코비치) 장군이 제 역할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입니다. 황당한 두 사람의 관계를 설명하느라고 후반부에 깊은 갈등을 표현하지 못하고, 하물며 전체적인 이야기의 개연성도 떨어집니다. 그런데도 이 영화가 먹히는 이유는 바로 '황당한 두 사람의 관계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소녀 감성을 터치하기 때문입니다.

늑대 같지 않은 늑대와 좀비 같지 않은 좀비

영화 <늑대소년>의 한 장면 ⓒ (주)영화사 비단길


여기서 자연스럽게 조성희 감독의 <늑대소년>과 비교해볼 수 있는데, 좀비가 한 여자 덕분에 인간이 되어가는 이야기 흐름은 늑대인간인 철수(송중기)가 순이(박보영)을 만나 사회화 과정을 거치는 과정과 일치합니다. 물론 두 작품 모두 이 과정을 판타지로 꾸며냅니다.

6·25직후 황폐해진 세상과는 달리 평온한 강원도 산골과 좀비에게 습격당해 인류가 멸망할지 모르는 세상과는 달리 평온한 공항에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뿐만 아니라 멍청하리만큼 착하고, 한 여자만을 사랑하는 순애보적 남자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 역할을 <성균관 스캔들>로 스타덤에 오른 송중기와 <스킨스>로 스타덤에 오른 니콜라스 홀트가 맡아, 여성들이 원하는 판타지를 더욱 더 자극시킵니다.

결국 늑대 같지 않은 늑대와 좀비 같지 않은 좀비는 현실에선 결코 불가능한 판타지를 그리고 있다고 역설합니다. 현실에선 공포의 대상으로 인식되는 존재가 영화 속에선 가장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로 등장합니다. 오히려 같은 인간이 공포의 대상로 등장하고 괴물들은 인간이 되기엔 어디가 결여되었다는 점이 순수함으로 작용하고, 다시 괴물들이 갖고 있는 이빨과 발톱이라는 무기는 무서운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주는 듬직한 갑옷이 되어줍니다.

이 말은 인간애를 상실한 현실에 싫증이 난 관객들이 판타지를 통해 대리만족을 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웜 바디스> 오프닝에 보면 좀비가 생겨나기 전 공항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들은 각자 휴대기기를 만지며 오히려 좀비만큼도 소통을 하지 않습니다. 소통의 부재. 그리고 좀비를 치유하는 방법이 소통이라는 점. 이 판타지를 자극하는 것이 <웜 바디스>의 흥행요소가 아닐까요?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개인블로그(http://hoohoots.blog.me/)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웜바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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