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화수류정은 높고 경사진 지형을 이용하여 마치 공중에 떠있는 듯 아련한 곳에 지어졌다.
김종길
방화수류정의 군사적 공식 명칭은 동북각루(東北角樓)다. 화성에는 모두 네 군데에 각루를 만들었는데, 서북각루, 동남각루, 서남각루(화양루), 동북각루(방화수류정)가 그것이다. 성의 굴곡부나 모퉁이, 돌출부 같은 요소에 지은 다락집을 '각루' 혹은 '초루'라고 하며 짐승의 뿔처럼 튀어나온 땅 위에 높은 마루 집을 짓고 적들의 동정을 살피는 곳이며 총이나 포를 쏘기도 하는 요새다. 즉, 각루는 전망대와 감시초소의 기능을 겸하는 곳이다.
동북각루인 방화수류정은 갑인년(1794) 9월 4일 터를 닦기 시작하여 10월 19일 완성하였으니 한 달 반 만에 공사를 마무리한 셈이다. 그러나 다른 각루들은 모두 그보다 2년 뒤인 병진년(1796)에 완성하여 방화수류정의 가치를 더욱 높여준다. 서북각루가 그해 7월 9일, 서남각루인 화양루가 7월 20일, 동남각루가 7월 25일에 완성됐다. 그 비용도 방화수류정엔 5352냥 1전 2푼, 화양루 885냥 1전 2푼, 서북각루 411냥 8전 9푼, 동남각루 410냥 9푼이 들었다. 방화수류정은 화양루의 약 6배, 서북, 동남각루의 13배가 넘게 들었다. 그만큼 당시에도 방화수류정에 얼마나 많은 공과 정성을 쏟았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사적 제3호로 지정된 수원 화성에서 방화수류정이 보물 제1709호로 별도로 지정된 것만 봐도 그 가치를 충분히 인정하고도 남겠다.

▲ 방화수류정 야경
김종길
장하도다! 화성 서장대 야경밤이 깊어서야 서장대로 향했다. 서장대는 화성이 자리한 팔달산에서도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해 화성뿐만 아니라 수원시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 좋은 곳이다. 게다가 야경 또한 일품이라고 하니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무래도 아쉽겠다. 지난 <1박2일> 방송에서 이곳 서장대를 찾은 것도 이런 빼어난 위치와 야경 때문이리라. 수원 화성행궁에서 올려다보면 옆으로 부드럽게 누운 산이 보이고 그중 가장 높은 곳에 장수처럼 우뚝 솟아 있는 건물 한 채를 볼 수 있는데 그것이 곧 팔달산(128m)과 그 정상에 있는 서장대다.

▲ 수원제일교회 첨탑에서 본 팔달산과 서장대(오른쪽 끝)의 노을
김종길
서장대는 '서쪽에 있는 장대'라는 뜻의 보통명사이면서 이곳을 가리키는 고유명사이기도 하다. 화성에는 무수한 구조물이 있는데 그중 장대(將臺)는 연무대인 동장대와 서장대 두 곳뿐이다. 장대는 일종의 성안의 군사지휘소로 성곽일대를 한눈에 바라보며 평시에는 군사를 조련하고, 비상시에는 군사를 지휘하던 사령본부였다.
화성에서 가장 높은 팔달산 정상에 있는 이곳 서장대를 정조도 5번이나 오른 것으로 전해진다. 정조는 1795년 윤 2월 12일 현륭원(융릉) 참배를 마치고 서장대에 올라 장용외영 군사들의 주간훈련과 야간훈련을 직접 지휘했다고 한다.
서장대에선 성안을 한눈에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성 밖 백리 내의 모든 동정을 살필 수 있어 수원성의 총지휘본부였다. 이곳에 쇠뇌를 발사할 수 있는 8면의 노대(서노대)가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노대는 여러 개의 화살을 한꺼번에 나가게 할 수 있는 활인 쇠뇌를 쏘는 군사인 노수가 머물던 곳으로 화성에는 동북노대와 이곳 서노대 두 곳이 있다. 이곳 서노대가 성벽 안쪽에 만들어진 것에 비해 동북노대는 성 밖으로 쌓은 치성 위에 벽돌을 쌓아 만들었다. 서노대에서 보면 서장대와 수원시 일대가 한데 어우러져 멋진 풍광을 연출한다.

▲ 수원 화성 서장대의 ‘화성장대’ 편액은 정조의 친필이 있는 고궁박물관 편액을 모각해 달았다.
김종길

▲ 서노대에서 본 서장대와 수원시 야경
김종길
2층 누각으로 지어진 서장대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중층누각으로 지붕은 모임지붕이다. 둥근 기둥 12개를 세운 1층은 모두 비어 있고 2층은 사면에 교창을 내고 판자를 깔았다. <화성성역의궤> '서장대도'를 보면 당시에는 서장대와 그 뒤에 노대, 옆에 군무소인 후당이 있었다. 지금은 서장대와 노대는 복원되어 있고 군무소는 없다. 군무소 건물은 서쪽 2칸은 온돌이고 동쪽 1칸은 판자를 깐 것으로 보인다.
서장대는 정조 18년(1794) 8월 11일에 터 닦기 공사를 착수하여 9월 16일에 상량하고 9월 29일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화성장대'의 편액은 정조의 친필이 있는 고궁박물관 편액을 모각해 달았다. 서장대는 애석하게도 2006년 방화로 불에 탔다가 2007년 4월에 복원이 되었다.
밤이 이슥해서야 오른 서장대, 추녀 끝으로 달이 낮게 드리웠다. 발아래로 화성과 수원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휘황찬란한 불빛들이 마치 그 옛날 야간훈련을 하던 군사들의 횃불처럼 보인다. 장용영 군사들의 우렁찬 고함소리가 밤하늘을 울리는 듯 환청이 들린다. 어둠 속에서 발길을 재촉하는 소리만 없었다면 검은 하늘에 무수한 무용담을 썼을 게다. 떠나기가 아쉬웠다.

▲ 수원 화성 서장대에서 본 야경
김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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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미식가이자 인문여행자. 여행 에세이 <지리산 암자 기행>, <남도여행법> 등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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