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정세가 정전협정을 둘러싸고 중대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북한이 연일 충격적인 조치를 내놓은 것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자는 요구로 보인다. 이에 대해 한미 두 나라는 북한이 핵무기 폐기 등을 먼저 다짐해야 대화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정전협정 문제로 두 진영이 마주 달리는 기관차와 같은 모습을 보인다.
북한은 과거에도 수차례 정전협정을 백지화하겠다고 선언했으나 이번 경우는 그 강도에 차이가 있어 보인다. 북한이 정전협정을 백지화 선언은 조선중앙통신사가 지난 24일 '정전협정백지화는 조선반도의 전쟁상태를 끝장내기 위한 정의의 대결단'이라는 제목의 보도에 상세히 언급돼 있다.
즉 미국은 정전협정을 그 체결 직후부터 위반하면서 대북 군사적 위협을 증대했고 북한은 정전협정의 평화협정 전환을 지속적으로 주장했으나 이 주장이 묵살되면서 지속적인 군사적 위협을 당하고 있다. 이제 정전협정은 아무 구속력도 지니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키리졸브 훈련을 전후해 전면전을 포함한 군사적 행동을 언급하는 성명전과 함께 정전협정 백지화, 남북 연락시설 단절 등과 같은 조치를 연이어 취하고 있다. 이는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절박한 분위기를 조성해 평화협정을 개시할 필요성을 극대화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은 여전히 북한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이 핵무기 폐기와 한반도 비핵화를 규정한 2005년의 6자회담 9·19 성명을 준수하겠다고 약속해야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를 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면서 키리졸브 훈련 등을 통해 남한에 대한 핵우산 제공, 북한의 도발에 대한 강력 응징하겠다는 결의를 각종 첨단 무기를 동원해 과시하고 있다. 북한의 도발 시 전면전도 불사하겠다는 방침을 거듭 확인하고 있다.
남한도 미국의 대북 군사전략에 적극 동조하면서 북한의 평화협정 체결 요구에는 귀를 막고 있다. 박근혜 새 정부는, 이명박 정권이 천안함 사고 등을 빌미로 취한 5·24 조치 등이 남북 관계 개선을 저지하는 실질적인 대못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박 정권은 미국의 강경 태도 등의 영향으로 당분간 남북 당국간 대화를 모색 하기 어려울 듯하다.
북한은 최근 핵 실험 이후 유엔 등의 강력 제재, 특히 중국의 대북 제재 수위가 높아지면서 더 이상 감내하기 어려운 입장으로 몰리는 국면이다. 미국이 압장 선 국제사회의 북한에 대한 각종 봉쇄 및 제재 조치로 북한 경제 등이 더욱 악화돼 체제 유지에 불안을 느낄 정도가 되지 않았나 하는 추정도 가능한 상황이다. 이는 북한이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계기를 만들지 않으면 최악의 국면에 몰릴 수 있다는 자체 판단을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현재 시시각각 진행되는 한반도 위기 상황은 북한과 미국이 서로 상대방의 굴복을 요구하고 있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북한은 더 물러설 곳이 없다는 상황 판단으로 국면 전환을 위한 최강수를 두는 듯하고 미국은 시간은 우리 편이라면서 더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대치 상태는 과거의 경우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진정 국면으로 돌아설지 속단키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난 수년간의 경우처럼 군사적 대치와 '너 죽고 나 살자'식의 강력 대결 태세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남북간에 정전협정을 외면한 듯한 군사 행동 공언과 그 다짐이 일상화되면서 우발적 사고가 전면전으로 치달을 위험도 커지고 있다.
북한은 미국의 대북 핵 선제공격 전략 수립에 대응해 자신들도 핵 선제공격을 하겠다는 성명전을 펴고 있다. 남한은 북의 도발 시 10배로 군사 응징을 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우발적 또는 사소한 충돌이 전면전으로 비화될 분위기가 조성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런 급박한 상황에서 주목되는 것이 중국이다. 중국은 북한의 정전협정 백지화 주장에 평화체제 전환을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원론적 입장을 되풀이 했다. 즉 중국 외무성 대변인은 '한반도 정전협정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 유지에 필요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정전협정은 평화협정으로 대치돼야 한다는 점에서 당사자들은 항구적 평화와 안전을 이 지역에 정착시킬 수 있도록 협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의 이런 언급은 북한이 과거 수차례에 걸쳐 정전협정 백지화 주장을 내놓았을 때 보였던 반응과 유사하다. 중국은 평화체제 추진에 대한 구체적 방안 제시거나 움직임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이는 중국인민해방군이 1958년 한반도에서 철군한 뒤로 유지하고 있는 일관된 입장이다. 중국의 이런 태도는 주변국의 자주권을 존중한다는 입장으로 이해될 수 있지만 중국은 한반도 정전협정 서명국이라는 국제법적 책무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도 명백하다.
한반도 문제가 더 이상 악화되는 것은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해결의 열쇠가 있는 부분에 대해 관련 당사자들이 최선을 다 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중국이 구체적으로 평화협정 등에 대한 입장과 추진 방안을 밝혀 국제법적 책무를 이행해야 할 필요성이 점차 증대하고 있다.
한반도 평화 체제에 대한 책무를 지고 있는 것은 유엔도 마찬가지다. 유엔사령관이 정전협정서명자로 돼 있기 때문이다. 정전협정문에는 협정 효력 발생 후 3개월 이내에 서명 당국 정부가 평화체제를 협의하도록 돼 있지만, 60년이 되도록 아직 아무런 변화가 없는 상태다. 이런 상태를 유엔이 방치하는 것도 직무유기라 하겠다. 세계사 최장의, 동북아를 위태롭게 하는 정전협정 유지 기록은 이제 끝장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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