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을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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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운(ema0921)등록 2013.04.02 14:20
최근 모 대학 학생들이 사거리를 점거하고 차량 통행을 방해하는 모습을 찍은 영상이 인터넷에 올라와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누리꾼들의 반응은 비난 일색이었습니다. 명색이 '대학생'이라는 사람들이 할 행동이 아니라는 겁니다. 하필이면 해당 대학이 지방에 위치해 있어 지긋지긋한 '지잡대(지방대를 비하하는 말)' 논란이 반복되기도 했습니다.

대학생이란 어떤 존재일까요. 역사적으로 보면 대학생은 사회 변혁의 선봉이었습니다. 높은 지적 수준과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대학생들이 보기에 세상은 모순투성이인데, 그들에게는 지켜야 할 기득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옳다고 믿는 바를 이루기 위해 대학생들은 몸을 던져가며 싸웠습니다. 억압의 시대에서 대학생은 '행동하는 지성'이었습니다.

요즘 대학생은 좀 다릅니다. 술을 마시고, 게임도 해야 하고, 가끔 영화도 보고 쇼핑도 합니다. 대학 입학 후 젊음을 즐기다가 고학년이 되면 취업이라는 산이 기다립니다. 취업문이 좁아지면서 자립도 늦어집니다. 부모는 대학생 자녀에게 "다 컸으니 알아서 해"라고 말하면서도 독립된 '어른'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대학생이란 단어는 취업준비생과 같은 뜻으로 쓰입니다. 대학생은 아이도 어른도 아닌 주변인으로 살아갑니다.

옛날 대학생이 독재에 항거한 데모로 신문지면을 장식했다면, 요즘 대학생은 MT에서 한 성추행으로 인터넷 포털 뉴스에 오릅니다. 옛날 대학생이 집안의 희망이었다면, 요즘 대학생은 돈 먹는 하마이자 골칫거리입니다. '옛날 대학생'이었거나 혹은 그들의 목격자였던 기성세대에게 요즘 대학생이 눈에 찰 리 없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와 2010년대의 대학생을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오늘날 대학생에게는 싸울 대상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장발 단속을 하는 것도 아니고, 선거도 꼬박꼬박 합니다. 친구가 쥐도새도모르게 사라졌다가 시체로 돌아오는 일도 없습니다. 사회의 병폐를 느끼긴 하지만 거리로 나가서 전경들과 맞설 만한 일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바쁩니다. 학점도 관리해야 하고, 영어 점수도 따야 하고, 자격증도 준비해야 합니다. 대외활동도 시간 있을 때 미리 해야 하고, 어학연수도 한번쯤은 다녀와야 안심이 됩니다. 비싼 등록금 때문에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용돈쯤은 스스로 벌어야 합니다. '알바' 시장은 북새통을 이룹니다.

물론 모든 대학생 문제가 구조에서 기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필자도 대학생이지만, 주위를 보면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도 없고,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으며, 집에서 받은 용돈으로 놀러 다니며 시간만 때우는 철없는 대학생이 분명 있습니다. 이들은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다만 이런 학생들의 작태를 대학생 전체로 일반화해서 보는 것은 온당하지 않습니다.

대학생의 몰락은 쉽게 해결될 사안이 아닙니다. 취업 준비 기관으로 전락한 대학이 제 기능을 하기 위한 개혁이 필요합니다. 난립한 부실 대학들도 정리해야 합니다. 선거 때마다 이슈가 되는 등록금도 손을 대야 합니다. 취업 구조도 개선해야 대학 개혁이 의미를 얻습니다. 복잡한 문제입니다. 이렇게 얽힌 실타래를 외면한 채 "요즘 대학생들은 참 한심해"라며 혀를 차는 것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후보자 때는 청년에 대한 관심이 많아 보였던 박근혜 대통령이 막상 정부 출범 후에는 청년 정책에 소극적인 모양새를 보여 걱정입니다. 대학생 문제는 청년 문제의 중요한 축 가운데 하나입니다. 대학생이 대학생다워지기 위해서는, 대학생 자신의 노력은 물론 올바른 정책과 사회적 관심이 필요합니다. 우리나라 대학생이 '행동하는 지성'이란 명예로운 수식어를 다시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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