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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절대로 작은 존재가 아니야!

[리뷰] 영화 <월플라워>를 보고...

13.04.15 15:21최종업데이트13.04.15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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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입니다. 꽃샘추위에 쌀쌀해지긴 했어도 더할 나위 없는 봄이 왔습니다. 출근 길, 집 앞 골목길을 나서면 앞 집 마당에 흐드러지게 핀 보랏빛 라일락을 볼 수 있습니다. 봄바람이라도 살랑거리면 라일락 꽃향기가 온 동네에 퍼져 집집마다 봄의 기운을 전파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마당뿐만이 아닙니다. 도로변 가로수엔 어느새 초록색 싱그러움이 가득 차있고 동네 꽃집엔 봄꽃의 등장으로 다시 북적이고 있습니다. 심지어 콘크리트 틈 사이에도 꽃들이 아기자기하게 피어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봄꽃이 아닌 조금 색다른 꽃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벽에 붙어 있는 꽃, 바로 이 꽃에 관해서 말이지요.

벽에 붙어 있는 꽃, 즉 월 플라워(Wall Flowers)는 파티 장에서 파트너가 없어 춤을 추지 못하는 사람이 벽에 기대 혼자 서있는 모습을 비유한 단어입니다. 파티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들이라도 어떤 상황인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하하호호 무리지어 즐겁게 다 함께 있는데 그 속에서 나 혼자 덩그러니 벽에 기대어 멀뚱멀뚱 서있는 거죠. 상상만 해도 심장이 오그라들고 얼른 그 자리에서 도망가고 싶어지네요. 하지만 겁 많은 저와는 달리 주먹을 불끈 쥐고 용기를 낸 친구가 있습니다. 영화 <월플라워>의 찰리(로건 레먼)입니다.

▲ 영화 <월플라워> 한장면 ⓒ 데이지엔터테인먼트


찰리는 이제 막 고등학교에 입학한 신입생입니다. 소위 '루저' 혹은 '찌질이'의 분위기가 마구마구 풍깁니다. 입학 첫 날 그가 한 일은 졸업까지 남은 날짜를 세는 것이었습니다. 수업 중 중간고사 A학점을 내걸은 파격적인 조건이 걸린 질문에도 찰리는 알고 있는 답을 노트에 끼적일 뿐입니다. 하지만 찰리는 파티 장에서 어렵게 용기를 내어 평생에 잊지 못할 친구들을 사귀게 됩니다. 그 이후로는 '불량품들의 섬'에서 '평균이하'임을 즐거워하고 마음껏 재밌는 학창시절을 보내게 되죠. 물론 사랑에도 빠지고요. 사랑에 아파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여기까지만 보면 여타의 10대 성장영화랑 별반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조금 다른 곳에 방점을 찍고 싶습니다. '어떻게' 성장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니깐요.

▲ 영화 <월플라워> 한장면 ⓒ 데이지엔터테인먼트


찰리는 마음에 아픔이 많은 친구입니다. 본인이 기억하고 있는, 혹은 망각하고 있는 상처로 인해 자꾸만 환영을 보는 특별한 아이죠. 하지만 상처가 있는 사람은 찰리뿐만이 아닙니다. 샘(엠마 왓슨)과 패트릭(이즈라 밀러) 역시 쾌활하게 웃고 있지만 밤이 되면 더 이상 웃는 척이 힘들어져 표정이 일그러지고 마는 그런 친구들입니다. 이들의 아픔은 나와 닮았고, 내 가까운 사람들과도 닮았습니다.

찰리와 샘 그리고 패트릭은 서로의 상처에 대해 깊게 공감하고 자신의 슬픔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합니다.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 대수롭지 않아보여도 사실은 매우 대단한 것입니다. 들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 그리고 나의 이야기를 비판 없이 편견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존재가 있다는 믿음. 이것들이 합쳐져야 타인에게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이들의 답변 역시 정공법입니다. 돌직구죠. 하지만 가시는 없습니다. 오히려 내 존재를 오롯이 받아들여주어 고마울 뿐입니다.

▲ 영화 <월플라워> 한장면 ⓒ 데이지엔터테인먼트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의 크기만큼의 사랑을 선택하거든."

찰리는 고민합니다. 왜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늘 본인을 아끼지 않은 사람들과 사랑을 하는지에 대해서요. 그가 가장 사랑했던 이모, 전교에서 놀림 받는 이상한 사람과 사귀고 있는 똑똑하고 예쁜 친누나, 심지어 자신이 사랑하는 샘까지. 이 생각은 단순한 고민거리를 뛰어넘어 울부짖음으로 치닫습니다. 이에 유일하게 말을 하고 지낸 선생님과 병원 주치의는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의 크기만큼의 사랑을 선택한다"라는 대답을 해줍니다.

▲ 영화 <월플라워> 한장면 ⓒ 데이지엔터테인먼트


찰리는 샘에게 말합니다.

"샘, 너는 절대로 작은 존재가 아니야. 너는 정말 아름다워."

서로의 진가를 발견하고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며 함께 아파하는 것. 이러한 요소들이 생채기 가득한 이 친구들을 성장케 하는 가장 큰 동력은 아니었을까요. 샘과 패트릭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지만, 여전히 찰리와 함께 합니다. 예전처럼 신나는 음악을 쾅쾅 들어놓고 터널 속을 달리는 거죠. 하지만 이번엔 비로소 아픔에서 자유로워진 찰리가 창문 밖으로 나와 하늘을 나는 것처럼 공기를 가로지릅니다. 그의 표정은 이제서야 한결 가벼워 보이고 진정 행복해 보입니다.

▲ 영화 <월플라워> 한장면 ⓒ 데이지엔터테인먼트


"날 지켜봐주는 사람이 있을 줄 몰랐어."
"우리도 이런 멋진 친구가 숨어있는 줄은 몰랐어."

우리는 우리의 잣대로만 소중한 사람들을 재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아픔을 함께 떠안아야하는 책임감과 부담감으로 인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을 회피해온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돌이켜 봐야합니다. 시간의 마법에 기대지 말고 우리가 유리벽을 깨는 노력, 그것이 필요 할테지요. 설사 그 유리벽이 깨지지 않아도 말입니다. 내가 너를 위해 노력한다는 것, 그 자체가 감동이니까요.

▲ 영화 <월플라워> 한장면 ⓒ 데이지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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