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상처받을 사람 많은 '노리개', 만들면서 많이 울었다"

[인터뷰] 최승호 감독 "부담스러운 제목 '노리개', 인격이 사물로 지칭되는 사회 담아"

13.04.23 11:20최종업데이트13.04.23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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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 활동 대신 성 상납으로 인권을 유린당한 꿈많은 20대 여자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노리개>의 최승호 감독이 15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오마이스타] ■ 글 이언혁 기자 · 사진 이정민 기자

"마지막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전 독립영화 진영도 아니고, 주류 영화에 크게 빚을 지거나 덕 본 것도 없습니다. 이전에 제작했던 두 작품(<헬로우 마이 러브> <환타스틱 모던가야그머>)이 상업적인 성취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임팩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의미가 있어야 하지 않나 싶은 거죠."

영화 <노리개>의 개봉을 앞둔 지난 15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만난 최승호 감독은 "<노리개>를 준비하며, 그리고 촬영하며 참 많이 울었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신인 여배우의 성 상납이라는 쉽지 않은 소재를 법정 드라마로 풀어내기까지. 부담감은 겹겹이 쌓여 최 감독을 압박했다.

"<나꼼수> 들으며 법적 측면과 일반인 법 상식 괴리 생각"

영화는 시작 전부터 가상의 이야기임을 강조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이들은 고 장자연을 떠올리게 한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최승호 감독은 "자료 조사 단계를 거쳐 시나리오를 쓰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어떤 사건, 무엇에 영향을 받아서 이렇게 흘러가는지' 잊게 된다"면서 "줄거리를 딱 세워놓고 나면 '내가 만든 이야기인가' 헷갈리는 순간이 온다"고 설명했다. 모티프는 얻었지만, 가공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컸다고.

"관객에게 어떤 느낌을 강제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어떤 유사한 사건이 떠올랐다면 그 느낌이 맞겠죠. 각자가 보는 <노리개>가 마음에 남지 않을까요. 제작 과정을 끝내고 후반 작업을 하면서도 부담감이 줄지 않더군요. 상처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으니까요. 경계하고 조심하려고 노력했다고 생각하지만 판단은 관객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질타를 받아야 하는 부분이 있다면 겸허하게 받겠습니다."

ⓒ 이정민


법학을 전공한 최승호 감독은 성 상납이라는 소재를 법정 드라마의 틀에 넣으려고 했다. 평소 사회 참여적인 사람이 아니었지만,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와 영화 <도가니> <부러진 화살>이 주목받은 이후 정치적인 의식이 성장했다고 판단해 <노리개>를 만들게 됐다. 최 감독은 "<나꼼수>를 들으면서 '지난 10년 동안 표현의 자유가 많이 위축됐구나'라는 생각을 했다"면서 "특히 장자연 사건을 다룬 부분을 듣고 법적인 측면과 일반인의 법 상식 사이 괴리를 생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법적인 논리를 구성하는 게 가장 힘들었습니다. 형법상의 강요죄가 있긴 하지만 실제로 적용된 예가 많지 않거든요. 법리를 만들어내는 게 힘들었죠. 연예계 사건이 법정에서 형사 사건으로 얘기되는 경우가 거의 없어서 더욱 쉽지 않았고요. 사실관계를 꾸미는 것이 오히려 더 쉬웠던 것 같습니다. 또 법정에서 어려운 말이 오고 가기 때문에 캐릭터는 오히려 평면적으로 구성했습니다."

ⓒ 이정민


법정 드라마 만든 최승호 감독 "하고 싶은 것은 코미디"

민지현·마동석·이승연 등 <노리개>에 출연한 배우들은 쉽지 않은 연기를 하면서도 다들 차비만 받고 촬영장을 오갔다. "소재는 무거웠지만 촬영장 분위기는 정말 좋았다"고 밝힌 최승호 감독은 "충분히 기회가 되고 여건이 된다면, <노리개>로 함께 했던 배우, 스태프와 다음 작품도 하고 싶다. 단, 그분들이 나와 함께 하고 싶어한다면"이라고 전했다.

코미디를 만들고 싶어 영화를 시작했다는 최승호 감독. 그는 "영화를 만들고, 배급하고, 관객에게 공개하는 과정은 고통의 연속"이라고 했다. 영화를 하며 기뻤던 순간을 묻자, 그는 잠시 주춤하더니 "제작, 기획했던 영화 <헬로우 마이 러브>의 시나리오가 영화진흥위원회 지원작으로 선정됐을 때"라고 답했다. 어느 것이든 '밥벌이'는 고단한 일. 그럼에도 최 감독은 왜 영화를 만들려고 할까?

ⓒ 이정민


"전 말을 좋아하고 즐깁니다. 적어도 관객이 영화관에 들어선 순간에는 제 이야기를 늘어놓을 수 있잖아요. 영화만큼 이기적인 커뮤니케이션이 없는 것 같아요. 일방향이니까요. 제 이야기를 온전히 들려주고 싶은 욕구가 있는 것 같습니다. 더이상 할 얘기가 떨어지면 연출을 하지 않을 수도 있겠죠.

일단 <노리개>를 잘 끝내는 게 제게 남은 숙제입니다. 하나의 인격체를 지칭하기에는 다소 과한 제목을 붙였습니다. 상당히 부담스러운 제목이지만, 이처럼 인격이 사물로 지칭되는 것에 문제 제기를 했다고 생각해주면 좋겠습니다. 진심이 오독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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