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법원 출퇴근에 옥탑방살이…이 배우가 사는 법

[인터뷰] 영화 '노리개', 진실 밝히려는 검사 김미현 역의 배우 이승연

13.04.25 11:18최종업데이트13.04.25 11:25
원고료로 응원

영화<노리개>에서 검사 김미현 역의 배우 이승연이 15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영화 <노리개>에는 인격체로 존재하지 못한 신인 여배우 정지희(민지현 분)도 있었지만,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히려는 김미현(이승연 분) 검사도 있었다. 극 중 대법관의 딸인 김미현 검사는 과거의 아픈 기억을 담고 사는 인물이다. 심증만 있고 물증은 없었던 사건을 파헤치면서 점점 진실에 다가가지만, 그의 외침은 여러 사람의 권력싸움 앞에서 무기력해지고 만다.

이승연은 "30대 여자 배우가 전문성 있는 캐릭터를 맡을 기회가 많지 않기에 기회가 왔을 때 잘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면서 "현실에 가까운 검사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서 법원으로 출퇴근하며 공판장에 드나들었다"고 털어놨다. 처음엔 떨려서 국어책 읽듯 말하지만 점점 사건에 몰입되는 모습까지 세밀하게 관찰한 뒤 모티프를 얻어 연기했다고.

"성범죄 관련 공판도 몇 번 봤어요. 자료가 없는 상태에서 (공판에) 들어갔는데 피의자들은 제가 보기에도 '저 사람이 한 것 맞아?'라는 오해가 생길 정도였어요. 우리 영화에서도 권력을 가진 남자들이 입을 싹 닫고 거짓말하잖아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김미현이라는 검사에게도 더욱 정의감이 생겼던 것 같아요. 눈앞에서 거짓말하는 것을 보지만, 티 안 내고 해결해야 하니까요."

ⓒ 이정민


"여배우 인권 문제 줄어들려면 실력이 당연한 사회 되어야"

극 중 검사 역을 맡았지만 이승연의 직업은 배우다. 연예계, 그리고 신인 여배우가 맞닥뜨린 현실을 그린 영화에 일정 부분 공감했을 법했다. 이승연은 <노리개>의 소재인 성 상납에 대해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으면 하지 않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더라"고 전했다. 그 역시 어느 정도 욕심이 담겼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사회적으로는 이미 그물망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어 있더라는 것이다.

"사실 저도 비슷한 제안을 받은 적이 있어요. 하지만 다행이었던 건 제가 선택할 수 있는 입장이었거든요. 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었어요. 하지만 욕심이 있고 없고는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아요. 이 구조 안에서는 모두 피해자죠. 여자를 너무 당연하게 노리개로 사용할 수 있는 세상이니까요. '그렇게 쉽게 얘기할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걸 받아들이지 않으면 배우 생활을 아예 못하게 될 것 같잖아요. 희망적인 생각을 아예 못하게 하는 거죠."

이승연은 "단편부터 시작해 감독이 되는 분들이 많아지면서 조금 나아졌지만, 옛날 감독님들은 평소 말하는 내용 자체에 성폭력적인 것이 많았다"면서 "오히려 요즘은 다시 자본의 힘이 세져서 옛날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고 밝혔다. 이어 "전체적으로 바뀌기에는 너무 탄탄하게 꼬여 있으니, 더 썩고 곪게 덮어두지 말고 조금씩 들출 필요가 있다"고 했다. 또 이승연은 "오디션이 더욱 투명해져야 한다"면서 "실력이 당연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 이정민


"배우란 타인의 고통이나 행복 겪어 보여주는 일"

2003년부터 영화계와 연극계를 오가며 꾸준히 활동했지만, 이승연의 발목을 잡는 것은 '인지도'다. 최종 캐스팅 단계까지 올라갔지만 번번이 인지도에서 밀려야 했다. 배우로 사는 게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이승연은 "어차피 삶은 힘든 것"이라면서 "선택한 '힘듦'이라서 오히려 좋다"고 미소 지었다. "배우는 진정한 나와 만나는 작업이며, 끊임없이 나를 두드려야 하는 작업"이라고 설명한 이승연은 "괴로운 게 당연한 것 같다"고 했다.

"최근 영화에서 우울증에 공황장애까지 있는 여자 역을 맡았어요. 옥탑방에 사는 여자인데, 직접 옥탑방을 구했어요. 혼자 계속 있으면 진짜 죽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지 궁금했거든요. 해보니까 정말 죽을 수도 있겠더라고요. 그 뒤로 (옥탑방을) 나와서 제주도 여행을 가 털고 왔어요. 제가 생각하는 배우는 제 몸을 통해서 다른 사람의 고통이나 행복을 체화해보고 그걸 남들에게 보여주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제부턴가 배우가 자신인지, 이승연이 자신인지 헷갈린다는 그는 "배우로 살다 보면 계속 관찰하고 몰입한 것들이 하나씩 쌓여 삶이 다채롭게 보인다"면서 "사람을 보는 폭이 넓어진 것을 느낀다"고 했다. 이럴 때면 '연기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그동안 독립영화에 많이 출연했는데요. <노리개>를 통해 관객에게 제대로 눈도장을 찍으려고요. 앞으로 더욱 다양한 역할을 소화하는 모습 보여 드릴게요."

이승연 노리개 최승호 감독 민지현 마동석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