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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식 상사, 빈틈없는 미스김에게 구멍내다

[드라마리뷰] KBS 2TV '직장의 신', 디지털 시대 아날로그형 직원의 가치

13.05.06 11:25최종업데이트13.05.06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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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직장의 신>에서 권고사직 위기에 놓은 고정도 과장(김기천 분).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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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의 신> 10회 방영분에서 특이한 건 미스김(김혜수 분)의 태도다. 모든 직원이 하나같이 고정도(김기천 분) 구하기 프로젝트에 몰두하지만 미스김은 '병 주고 약 주는' 캐릭터였다. 고정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황갑득(김응수 분)의 질문에 와이장 직원들은 하나같이 긍정적인 답변을 한다.

그런데 미스김만은 유독 예외였다. 고정도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함으로 고정도의 권고 사직이라는 회사 방침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이러한 미스김의 태도는 8회 방영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지난 8회에선 박봉희(이미도 분)를 구하기 위해 장규직(오지호 분)과의 씨름도 마다하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고정도의 퇴사에 도화선을 붙이기까지 한다.

아니, 어쩌면 미스김은 여태껏 고정도의 퇴사에 결정적인 재정적 기여를 한 것일지도 모른다. 첫 회에서 포클레인을 운전한 일과 회식 때 탬버린을 신명나게 흔든 것까지 세세한 항목 모두 회사에 과다 청구한 미스김이야말로 돈 먹는 하마였으니 회사 입장에서는 미스김으로 빼앗긴 회사 자산을 누군가의 퇴사로 보충해야 한다고 간주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미스김은 결정적인 순간에 고정도의 존재가 회사에 중요하였다는 걸 각인시켜주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있었다. 병 주다가 약을 주는 순간이다. 사내 정전으로 PC를 사용할 수 없자, 직원들은 수기로 계약서 하나 변변하게 작성하지 못한다. 이 때 미스김은 여자의 몸으로 고정도를 어깨에 안고 사무실까지 데려와 계약을 무사히 성사시킨다.

디지털 시대, 아날로그 인간의 가치 보여준 미스김

이는 미스김이 고정도라는 존재가 회사에 민폐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황갑득과 회사에 증명한 사건이다. 동시에 디지털과 아날로고의 유비로도 바라볼 수 있다. 디지털로 대변되는 이는 장규직과 미스김을 비롯한 젊은 사원들이다.

반면 고정도는 퇴물 취급 받는 아날로그형 인간이다. 디지털에 밀려 아날로그는 구식 취급 받고 사라져야 할 존재로 홀대 당한다. 하지만 아날로그 역시 회사에는 없어선 안 될 가치관이라는 걸 드라마는 고정도라는 캐릭터를 통해 유비로 보여준다.

또 하나, 고정도는 미스김에게 함께 나아가는 걸 각성하게 만들어준 멘토 역할도 한다. 미스김은 슈퍼우먼이다. 자격증도 한 두 개가 아니라 124개나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감정을 꽁꽁 숨긴 채 사내 로봇처럼 살아가는 캐릭터다. 점심도 혼자 먹고 동료들과 정서적 공유는 빵점에 가까우리만치 군다.

하지만 이는 과거 직장에서 '을'로 살아왔던, 혹은 아끼던 사내 동료의 죽음으로 말미암은 울분에 대한 트라우마로 말미암은 결과다. 그래서 미스김은 직장에서 감정과 정서적인 면을 꽁꽁 싸맨 채 기계 행세를 하며 자기 상처를 감춘다.

하지만 이런 미스김에게 고정도는 "시계는 큰 바늘 작은 바늘이 함께 돌아가야 잘 돌아간다. 그래서 나같이 고장 난 시계도 다 같이 돌기 때문에 움직일 수 있다. 하지만 미스김은 그 바늘들을 혼자 돌리려고만 하니 너무 힘들고 외로운 거다"라고 이야기한다.

월급 도둑으로만 치부되던 고정도의 한 마디는 미스김에게 촌철살인이 아닐 수 없었다. 이 말을 들은 미스김은 고정도가 지나간 뒤에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미스김의 완벽주의에 균열이 일어나는 순간이자 동시에 '함께 나아가는 법'을 가르쳐준 신의 한수가 아니었을까.

직장은 가족이 될 수 없다? 와이장은 달랐다

KBS 2TV <직장의 신>에서 와이장의 마케팅영업부 직원들. ⓒ KBS


회사라는 메커니즘은 회사원을 식구와 같이 대할 수 없는 조직이다. 물론 말로는 식구 같은 사내 조직원이라 하며 술자리 혹은 회식 자리에서 회사원을 도닥여준다. 하지만 회사가 가족과 결정적으로 대표적으로 다른 점 하나를 언급한다면, 회사는 조직의 구성원이 쓸모없을 때엔 더 이상 그를 회사의 구성원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러한 관점은 영화 <고령화가족>과는 반대된다. <고령화가족>의 엄마는 아들이 백수건달이라 할지라도, 월세를 3개월 째 내지 못해서 집주인에게 타박 받는 못난 아들일지라도 품 안으로 거둬들이고 고기 구워 먹이기에 여념이 없다. 아들의 사회적 능력과는 상관없이 '피붙이'라서다. 어지간하면 가족은 가족을 내치지 않는다.

하지만 회사는 겉으로는 가족을 표방하지만 회사 구성원이 회사에 도움을 주지 못할 때에는 정리해고를 단행한다. 가족은 다르다. 가족 구성원이 못났다고 해서 서로 연락은 하지 않을지언정 가족을 호적에서 파는 일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직장의 신> 속 와이장 직원들은 <고령화가족>의 가족관과 흡사 닮아있다. 설사 고정도가 월급 도둑이라 하더라도 그를 왕따시키거나 소외시키는 것이 아니라 필사적으로 정리해고 대상이 되지 않도록 만들기 위해 여러 노력을 기울인다. 디지털 구성원인 신세대 직원들이 고정도라는 아날로그형 선배도 필요하다는 걸 정전 사건은 증명하고 있다.

그간 미스김은 감정을 회사 안에서는 표출하는 일이 없다시피 하고 회식도 간을 버리는 자리라고 거절하기 바빴다. 회사 구성원을 가족이라고 간주하지 않고 자신을 스스로 '용병'으로 간주한 탓이다.

하지만 미스김의 용병이라는 스스로의 정체성에 구멍을 내준 이는 고정도였다. 비정규직이라는 용병도, 또한 아날로그형 인간인 고정도 같은 구식 상사도 회사 안에는 모두 필요할뿐더러 가족이라는 걸 보여줌으로 말이다. 함께 나아갈 때에야 다 같이 행복할 수 있는 발걸음을 할 수 있다는 걸 <직장의 신>은 시청자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직장의 신 김혜수 오지호 미스김 고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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