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 유치장 입감 과정에서 브래지어 탈의를 강요받은 여성들이 "인격권 등을 침해당해 정신적 고통을 입었다"며 국가를 상대로 낸 위자료 소송에서 1심부터 대법원까지 모두 승소했다.
법원에 따르면 K(31·여)씨 등 여성 4명은 지난 2008년 8월 서울 종로에서 열린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에 참석했다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위반 및 일반교통방해 혐의로 현행범으로 체포돼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됐다.
이들은 유치장 입감을 위한 신체검사를 받던 중 여경으로부터 브래지어 탈의를 요구받고 탈의했다. 이에 K씨 등은 "당시 경찰은 별다른 설명도 없이 규정상 브래지어를 벗어야 한다고 강요해 당황스러웠고, 길게는 체포시한인 48시간 가까이 브래지어를 벗은 채 유치장에서 생활해 인격권 등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당해 정신적 고통을 입었다"며 위자료 소송을 냈다.
반면 국가는 "경찰의 조치는 적법한 법령에 근거해 원고들의 동의를 받아 이루어진 관계로 직무에 충실한 보통 일반 공무원을 표준으로 할 때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했다고 인정될 정도의 직무행위라고 볼 수 없고, 또한 재량권을 남용한 것으로도 볼 수 없다"며 맞섰다.
1심인 서울중앙지법 민사37단독 조중래 판사는 2012년 5월 K씨 등 4명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낸 위자료 청구소송에서 "피고(국가)는 원고들에게 각각 150만 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자살충동 등 이유로 탈의 요구... 과잉금지의 원칙에 반해"
재판부는 "피고는 체포 직후의 유치인에게는 급작스러운 상황의 변화에 따른 자살충동 등이 발생할 수 있어 브래지어를 탈의시킨 것이라고 주장하고, 유치인들이 착용하고 있던 브래지어를 사용해 자살에 이르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나, 그런 사정만으로 경찰이 유치인들의 자살 예방을 위해 보다 세밀히 관찰하는 등 피해가 덜 가는 수단을 강구하지 않은 채 브래지어 탈의를 요구하는 것은 과잉금지의 원칙에 반한다"고 밝혔다.
또 "현재 법무부 소속 교정시설 내 여성 수용자들은 1인당 3개의 범위 내에서 브래지어 소지가 허용되고 있다"며 "경찰서 유치장 내 여성 수용자들을 교정시설 내 여성 수용자들과 달리 처우할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현재까지 유치장에서 브래지어를 이용해 자살한 경우는 없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경찰의 브래지어 탈의 조치는 자살 예방 목적 달성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도의 범위 내에서 이루어지거나, 원고들의 명예나 수치심을 포함한 기본권이 부당하게 침해되는 일이 없도록 충분히 배려한 방법으로 이루어지지 않아, 당시 원고들에게 자살의 징후가 포착됐는지 원고들의 탈의 동의가 있었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한편, K씨 등은 1인당 600만 원의 위자료를 청구했으나, 재판부는 "원고들의 나이, 직업, 경찰의 브래지어 탈의 요구의 강제력 정도 등을 참작해 원고마다 150만 원으로 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국가가 항소했으나, 서울중앙지법 제7민사부(재판장 김대성 부장판사)는 2012년 12월 국가의 항소를 받아들이지 않고 기각했다. 사건은 국가의 상고로 대법원으로 올라갔으나, 대법원 제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9일 "국가는 원고들에게 150만 원씩을 지급하라"고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브래지어가 자살이나 자해에 이용될 수 있음을 이유로 유치인으로부터 이를 제출받도록 규정한 '경찰업무 편람'은 법규명령이라고 볼 수 없고, 행정명령에 불과한 '피의자 유치 및 호송 규칙'도 유치인에게 불필요한 고통과 수치심을 주지 않으려는 취지에서 신체검사의 유형을 세분화하고 있는데, 브래지어를 자살에 공용될 우려가 있는 물건으로 보고 언제든지 제출받도록 한다면 그와 같은 취지를 몰각시킬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따라서 경찰의 조치는 원고들의 자살 예방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도의 범위 내에서 이루어지거나 원고들의 기본권이 부당하게 침해되는 일이 없도록 충분히 배려한 상당한 방법으로 이루어진 것이 못 되므로 위법하다고 판단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천주교인권위·인권운동사랑방 "국가인권위원회도 법원 판결 배워라"
한편 이번 판결과 관련, 천주교인권위원회와 인권운동사랑방은 <경찰은 유치장 브래지어 탈의 관행을 중단하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라>는 논평을 통해 "유치장 브래지어 탈의 조치의 불법성과 폭력성을 최종 확인한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관행의 이름으로 유지돼온 국가 폭력이 우리 사회에서 깨끗하게 사라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두 단체는 "이번 판결은 경찰의 브래지어 탈의 조치가 법률에 근거하지 않고 경찰이 재량권을 남용해 자의적으로 기본권을 침해한 것임을 법원이 최종 인정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또 "게다가 피해 여성들은 경미한 범죄 혐의로 연행돼 자살이나 자해의 동기나 가능성이 애초에 없었으므로 경찰의 브래지어 탈의 강요는 자살 방지라는 목적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행해진 매우 임의적이고 이례적인 조치로 위법·부당한 공권력 행사였다"며 "브래지어 탈의 강요는 경찰이 구금된 여성에게 위축감과 수치심을 주려는 성별화된 폭력일 뿐"이라고 규탄했다.
두 단체는 이와 함께 국가인권위원회도 비판했다. 이들은 "우리는 2008년 당시 국가인권위원회의 어이없는 권고 또한 기억한다"며 "국가인권위는 경찰청장에게 브래지어 탈의요구 시 그 취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탈의한 후 성적수치심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보완조치를 강구하라고 권고함으로써 브래지어 탈의 자체는 문제가 없다며 면죄부를 준 바 있다. 이에 경찰은 '향후 여성유치인용 조끼를 비치해 인권위 권고를 이행하겠다'며 사건을 무마하려 했다"고 상기시켰다.
그러면서 "이번 판결은 브래지어 탈의 자체가 불법적인 공권력 행사임을 법원이 인정했다는 점에서 국가인권위가 법원에 비해서도 인권감수성과 성 인지도가 얼마나 부족한지 일깨워준다"며 "법원의 엄격한 법적 잣대를 통과하기 어려운 다양한 피해를 인권침해로 호명하고 구제하기 위해 설립된 국가인권위가 이번 판결로부터 배울 점을 찾기 바란다"고 꼬집었다.
끝으로 "법원의 최종 판단이 끝난 지금, 경찰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경찰은 불법적인 유치장 브래지어 탈의 관행을 중단하고 피해자들에게 사과하라. '피의자 유치 및 호송규칙'과 '유치장 업무편람'을 즉시 개정하는 등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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