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민이 직접 만든 참여예산 제안서 표지
윤정현
안양시 범계동의 지역위원장을 맡은 윤정현씨의 머릿속은 6월까지 할 일들로 가득 차 있다. 주민에게 필요한 예산을 정하고 우선순위를 매겨 시에 제출해야 하는 상황. 개인 의견을 내는 게 아니기에 어떻게 하면 많은 주민을 참여하게 할지가 그의 고민이다.
윤 위원장 생각에 '주민참여예산'이란 말은 너무 어렵다. 일반 주민에게 말을 건네자니 단어 뜻부터 길게 설명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범계동에서는 집집마다 배포할 전단지를 자체 제작했다.
"당신이 안양시장이라면 2000만 원을 어디에 쓰시겠습니까?" 이런 제목이 박힌 주민참여예산 제안서는 동 주민 전체에게 돌아갈 예정이다. (시청은 6000장의 출력을 고속 프린터로 해줬다.) 모인 사업 제안은 다시 주민에게 알리고 투표로 우선순위를 정할 계획이다. 그런데 수천 명의 주민이 과연 투표에 응할까?
"아파트 입구마다 투표함을 갖다 놓고 동네 여러 조직의 도움을 받으면 가능할 거라 생각해요. 잘 될지 모르겠지만 하는 데까지 해보려고요." 본업과 이 일을 병행하는 윤 위원장에게서는 힘든 기색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무엇이 이들에게 열정을 불어넣는 걸까?
주민이 어떻게 예산을 짜느냐고?서울 서대문구의 장미선씨는 처음에는 그저 주변의 권유로 예산학교에 참여했다. 예산학교는 참여예산위원과 주민 교육을 위해 지자체가 시행하는 사업이다. 이 사업을 통해 주민참여예산제도를 홍보하고 의견도 청취한다. 장씨는 예산학교를 거친 뒤 제도의 가능성을 깨닫고 지금은 이웃과 함께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장씨가 총무로 있는 서대문주민참여예산모임(이하 서주참)은 2011년 서대문구 예산학교 수강생들이 나서서 만든 모임으로, 그동안 이 지역 주민참여예산의 지역회의를 진행하고 이끌어 왔다. 먼저 배운 주민이 강사가 되어 다른 주민을 교육하는 '주민강사' 양성과정이 전국의 주목을 받게 된 데에도 서주참 회원들의 역할이 컸다.
최근 들어 서주참은 비영리단체로 등록했다. 자기 생활을 하면서 여가를 내어 활동하면 될 거라는 처음의 막연한 생각과는 달리 실제로 해보니 일이 끝이 없었다. 자료를 만들고 시간을 내 주민을 만나 교육하는 일을 자원봉사로만 해결하기는 건 한계가 있었다. 현재 서대문구에게 약간의 지원을 받고 있지만 좀 더 안정적인 자격요건을 갖추기 위해 단체로의 전환했다.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참여한 시민은 이웃과 소통하면서 동네를 보는 눈이 넓어지는 걸 경험한다. 혹자는 이대로 몇 년 후면 동네마다 눈에 띄는 인물들이 생기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불필요한 공사를 따져 묻고, 방청을 막는 의원들과 승강이를 벌이며, 주민과의 소통을 넓히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이들에게 희망을 걸어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주민참여예산을 두고 사람들이 흔히 오해하는 게 있다. 주민참여예산을 하려면 전문적인 교육이 필요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많은 공무원과 의원들도 "예산에 '예'자도 모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예산편성에 참여하느냐?"며 회의적인 시각을 보내곤 한다. 그러나 예산은 정책이고, 주민에게 필요한 정책은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가장 잘 안다. 이것이 바로 주민이 가진 전문성이고 주민참여예산을 가능하게 하는 바탕이다.

▲ 주민참여예산제 작동 체계
제갈임주
참여예산의 체계는 일반적으로 위의 그림과 같다. 지역회의는 읍·면·동 주민에게 직접 의견과 제안을 받는 기구로, 20-30명의 위원으로 구성되거나 주민 누구나 참여해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개방형으로 운영되기도 한다. 예산의 일정 범위 내에서 소규모 주민편익사업을 직접 결정할 수 있도록 자체 권한을 주는 곳도 있다.
참여예산위원회는 제안된 주민의견에 대해 심의하고 전체 예산에 대한 의견을 내는 등 행정과 협의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위원회 규모는 20명에서 많게는 100명까지 지역마다 다르다. 일정 비율 이상 공개모집을 하며 인원 초과 시 추첨을 통해 결정하는 곳도 늘고 있다.
민관협의회에는 예산안을 의회로 넘기기 전에 주민 대표인 참여예산위원과 행정이 최종적으로 협의하는 조율기구이며, 연구회는 참여예산 초기 운영 틀을 설계하고 평가와 개선과제를 도출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참여예산제도의 일반적인 체계는 이와 같지만 각 기구의 구성여부와 권한은 지역에 따라 많은 편차가 있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 참여예산제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하다면 보통 시군구청의 '기획·예산' 관련 부서에 문의하면 된다. 참여예산 활동을 해보고 싶은 사람은 지역회의에 참여하거나 주민참여예산위원으로 신청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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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의 한 공부방(맑은내방과후학교)에서 교사로, 과천마을신문의 기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주로 교육관련기사를 담당했고, 교육이 서열화의 도구로 전락하지 않고 제 기능을 찾도록 하는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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