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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 한판으로 살린 계약직, 말도 안 된다고?

[드라마리뷰] KBS 2TV '직장의 신', 사회를 움직이는 건 어쩌면 따뜻한 마음

13.05.14 13:37최종업데이트13.05.14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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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의 신>의 계약직 사원 정주리(정유미 분)는 해고될 뻔했지만, 미스김과 황갑득의 유도내기 덕분에 위기에서 벗어났다.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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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직장의 신>에서 장규직(오지호 분) 팀장은 이미 계약 해지가 결정된 정주리(정유미 분)의 일을 부장님(김흥수 분)께 한 번 더 간청하겠다고 하는 무정한 팀장(이희준 분)을 말리며 말합니다. '안 그래도 고과장님을 회사에 잔존하게 한 것 때문에 부장님이 너를 주목하고 있는데, 정주리 일까지 문제를 일으키면 찍힌다'고.

이렇게 무정한 팀장처럼 이름과는 다르게 모든 일을 '정'에 이끌려, 무정한 식 표현에 따르면 살면서 기본에 충실하고자 하는 사람을 흔히 조직 내에서는 '온정주의자'라고 하지요. 조직 내에서 무능의 상징으로 손가락질 받는 '온정주의'지만, 사회에서 받는 대접은 또 다릅니다. '정'을 광고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모 제과 회사는 중국에서까지 대박이 났다지요.

'직장의 신'의 온정주의, 비현실적인가요?

하지만 세상이 변하는 걸까요?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었던' 정도 이젠 '말해야 한다'며 광고 내용을 바꾸었습니다. 무능력하다며 술 취해 자조를 내뱉던 무정한의 온정주의 덕분에, 그리고 거기에 마음이 울린 미스김 덕분에 모처럼 정이 넘친 회사가 된 <직장의 신>은 시청률이 떨어졌습니다.

장옥정이 착한 캔디에서 권력을 향한 악녀로 돌변한 SBS <장옥정, 사랑에 살다>의 시청률 상승과 대조적이게도 말이지요. 그러고 보면 여전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세상은 정보다는 '만인 대 만인의 투쟁상태'인가 봅니다.

1위인 MBC <구가의 서>의 뒤를 바짝 쫓던 <직장의 신> 시청률이 전회(14.0%) 대비 0.9%P 하락, 13.1%를 기록했습니다(닐슨 코리아 전국기준, 이하 동일). 반면 <장옥정, 사랑에 살다>는 전회(8.0%) 대비 1.2%P 상승했네요. 그러데 재밌는 건, 지난 주 고과장님의 명예퇴직 사건이 벌어진 방영분에서도 <직장의 신> 시청률은 떨어졌습니다.

시청자들이 생각하기에 현실적으로는 당연히 해고당하는 계약직 정주리와 만년 과장 고정도가 동료 직원, 그 중에서도 특히 미스김의 발군의 노력을 통해 기사회생하는 미담이 보기 껄끄러웠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비현실적인 신파처럼 다가왔겠죠.

그렇다면 <직장의 신>을 왜 보는 걸까요? 민주당이 '을을 위한 정당'이라고 당의 슬로건을 내걸듯이 갑과 을로 고착화된 사회에서 능력자 을인 미스김을 통해 통쾌하게 한 방을 먹이는 그 '페이소스'를 즐겼던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마치 샌드백을 대신 두들겨 주는 듯한 쾌감에서 한 발 더 나아가, 미스김이 눈물을 흘리고, 갑과 을의 관계를 넘어 사무실의 사람들이 '정'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시청자들에게 이 드라마는 판타지를 넘어 비현실로 다가와 재미가 적어졌겠지요. 그러면서 거침없던 미스김 대신에, 마치 점이라고 찍고 나타난 듯 '다 부숴버리겠어!'라고 덤비는 장옥정으로 리모컨이 돌아갔을 지도 모를 일입니다.

사회개혁, 분노가 아닌 따뜻한 마음으로부터

<직장의 신>의 무정한 팀장(이희준 분). ⓒ KBS


사실 원작에서도 그렇지만, 비정규직의 연명을 부장님과의 유도 대련 한 판으로 해결한다는 설정은 어이없는 것이지요. 하지만 정작 진짜로 어이없는 것은 계약직 매니저조차 이해할 수 없는 정주리의 계약 해지 사안이지요.

그런데 현실에서 정주리와 같은 일을 비일비재하게 겪는 우리의 뇌는, 어느 틈엔가 그의 계약 해지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유도 한판으로 그녀의 계약 해지가 취소된 일만을 비합리적이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원작의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것은 유도 대련 한 판으로 오고갈 만큼 보잘 것 없는 계약직의 생명줄 아니었을까요?

그리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정한의 무능하다는 자책에도 불구하고, 미스김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평가한 그의 자세입니다. 계약직 정주리 가 회사를 떠난다고 할 때 무심하거나, 그렇지 않았거나, 모든 사무실 사람들이 아쉬워했습니다. 우리가 '그래, 저러면 잘려' 라며 정주리의 퇴사를 인정하듯이, 사무실 사람들도 그저 안타까워 할 뿐이었지요.

그렇지만 무언가를 하려고 해서 정주리를 위기에 몰아넣은 무정한은 무언가를 할 수 없었음에도 동아줄을 잡듯 애타게 노력을 했습니다. 그가 한 것은 아무 것도 없지만, 그런 그의 노력이 미스김의 마음을 돌려놓아, 정주리를 회사에 머물게 해주었습니다.

영웅은 꼭 영화관에서, 주인공 앞에 적이 나타났을 때만 등장하는 게 아닙니다. 갑을 컴퍼니 와이장의 영웅 미스김을 불러온 건 무정한의 '온정주의'였습니다. 어쩌면 사회를 개혁시키는 관건은 분노가 아니라, 따뜻한 마음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주에 개봉할 영화에, 칸 영화제 심사위원 수상작인 <엔젤스 셰어(The Angels' Share)>가 있습니다. 엔젤스 셰어란, 위스키를 발효시킬 때 사라지는 1%로, 사회 부적응자 청년 네 명의 좌충우돌 성공 스토리를 통해 사회의 하층 1%를 위해 우리의 마음을 열어야 한다는 취지를 빗대어 설명한 것입니다.

<직장의 신>의 정주리와 고정도 과장의 스토리는 또 다른 우리 사회의 엔젤스 셰어와 같은 이야기 아닐까요? 정에 호소한다, 온정주의다 하지 말고, 무정한처럼 우리가 조금만 사람으로 살아가는 기본으로서 마음을 연다면 어쩌면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까요? 천사의 몫이지만 노력하면 사람이 만들 수도 있다고, 영화처럼 <직장의 신>도 화두를 던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신파라 외면하지 말고, 한번 마음을 열어보자고요.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블로그(5252-jh.ty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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